디도서 1장


1. 무슨 인사가 이렇게 기나? 인사말 가운데서 바울은 무엇을 위하여 사도가 되었다고 하는지 세 단어만 지적해보라.

    믿음, 지식, 소망: 믿음을 일깨우고, 진리를 알게 하고, 그리하여 소망을 가지게 하려고 예수께서 자신을 사도로 세웠다. 사도의 역할을 택한 자들로 하여금 믿고, 알고, 소망하게 하는 것이라고 말하는 셈이다. 우리는 전도만 중요하게 여기고 ‘알고 소망하게’ 하는 것은 좀 가볍게 여기는 경향이 있다. 무엇을 알아야 하는가? 경건함에 속한 진리! 무엇을 소망해야 하는가? 영생이다! 이 모든 것의 출발점이 믿음이다.

2. 디도서의 수신자는 디도 한 사람이다. 바울을 잘 알고 있는 디도에게, 더구나 자신이 파송한 디도에게 자신을 이렇게 장황하게 소개해야 할 필요가 있을까?

    디도가 어려운 일을 잘 감당할 수 있으려면 디도를 파송한 바울 자신의 소명에 대한 확신이 절대적이기 때문이다.

3. 영원한 때 전부터 약속하신 것이라면(2) 누구에게 약속하셨는가?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약속하신 것이다. 그러면 작정, 예정과 같은 말이다. 굳이 약속이란 표현을 쓴 것도 영생의 확실성을 강조하기 위한 표현이다. 사람 사이의 약속도 반드시 지켜야 하거늘 거짓이 없으신 하나님의 약속이니 얼마나 확실한가! (한국말 ‘약속’은 영어의 promise와 다르다. 전자는 형편에 따라 어길 수도 있지만 후자는 절대로 어길 수 없는 것이다)

4. 전도를 무엇이라고 표현하는가?

    하나님께서 정하신 때에 하나님의 말씀을 드러내신 것(3): 그러면 예수를 전하는 것과 어떻게 다른가? 다르지 않다. 말씀이 곧 예수시기 때문이다(요 1:1). 말씀의 핵심도 예수다.

5. ‘때’라는 단어가 두 번(2, 3절) 나온다. 어떻게 다른가?

    하나는 지속적인 시간이고, 다른 하나는 일시적인 시점이다. 헬라말로 전자를 ‘크로노스’, 후자를 ‘카이로스’라고 한다. 이 용어가 하도 빈번하게 쓰이므로 차이를 알아두는 것이 좋다.

6. 같은 믿음을 따라 된 나의 참 아들 디도? 사도 바울이 아무나 아들이라고 하지는 않았다. 그러면 디도가 어떤 사람이길래? 이 이름을 어디서 보았더라?

    그가 `할례받지 않은 헬라인'이라는 것은 분명하나(갈 2:3), 그의 출생지와 국적은 불명하다. 디도는 안디옥 교회를 대표하여 바울˙바나바와 더불어 제 1회 예루살렘회의(49-50년 경)에 참석했다(행 15:2, 갈 2:1). 갈라디아서를 썼을 때, 즉 제2차 전도여행 마지막 무렵에(AD 52년 경) 바울과 같이 있었던 것 같다(갈 2:3). 바울과 더불어 제3차 전도여행 중 중대한 사명을 띠고 고린도 교회에 갔다. 고린도전후서는 디도가 사자로서 고린도 교회에 전한 것 같다. 바울은 디도가 돌아올 때까지 불안에 차 있었다(고후 2:13). 디도를 만나 보고를 들었을 때, 바울은 크게 기뻐하였다(고후 7:6).

7. 바울이 그레데에 체류했다는 기록이 사도행전에는 없다. 그러면 바울이 언제 그레데에 들렀을까?

    아마도 로마에서 풀려난 후 다시 투옥되기 전: 그러니까 사도행전의 마지막 기록보다 몇 년 후의 일이다(디도서 기록을 AD 66년으로 추정함).

8. 바로 잡아야 할 부족한 일이란(5)?

    10-16 아닐까? 거짓 교사들의 미혹과 그레데 교인들의 혼란스런 신앙상태일 것이다.

9. 장로도 있고 감독도 있네! 누가 더 책임이 큰가?

    조건을 보면 감독이 더 까다롭다: 실제로는 같은 직분이다(행 20:28). 장로는 지위(나이, 대표성)를 강조하고 감독은 역할(치리, 교육)을 강조하는 표현이다.

10. 장로의 조건이 별 것 아니다. ‘한 아내의 남편’이 되는 것은 쉬운 일 아닌가?

    당시에는 쉬운 일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으레껏 여러 부인을 두기도 했던 모양이다. 장로가 되려면 가족관계가 원만해야 했다. 수신제가치국평천하라고 하더니 그래야 교회를 잘 다스리게 되나 보다. 장로의 자격이 그리 까다롭지 않다. 그만큼 혼란한 사회였다는 반증이다.

11. 디도를 그레데에 떨어뜨려 둔 것은 부족한 일을 바로 잡고 장로를 세우려는 것이었다는데 장로를 세우는 것이 그렇게 중요한 일일까?

    가장 중요한 일이다: 교회가 바로 서는 데에는 목사가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다. 교회가 지닌 많은 문제는 목사에게서 비롯된 것이 거의 대부분이다. 교회를 개척한다고 건물을 짓는 것보다 제대로 된 목사를 키우기 위해서 투자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오늘날 한국 교회의 혼란은 우리 조상들이 잘난 아들은 의대, 법대에 보내고 못난 자식은 신학교에나 보낸 것에 기인한 탓도 있다. 장로나 감독을 잘 선정해야 한다.

12. 감독의 조건을 두 가지로 구분하면 소극(부정)적인 조건과 적극적인 조건으로 구분된다. 다음의 소극적인 각 조건에 이의를 단다면?

    하나님의 청지기로서 책망할 것이 없고: 책망받을 것이 없을 수 있나?
    제 고집대로 하지 아니하며: 소신도 일종의 고집인데?
    급히 분내지 아니하며: 천천히 내는 것은 괜찮은가?
    술을 즐기지 아니하며: 먹지 말라는 말은 아니지?
    구타하지 아니하며: 말로 사람을 멸시하는 것이 더 무서운데?
    더러운 이를 탐하지 아니하며: 감독이 돈을 바라고 하는 것 아니니 당연하지!

13. 감독의 자격조건 중에서 적극적인 것은 다음과 같다. 한 마디로 요약하면?
[ 나그네를 대접하며, 선을 좋아하며 근신하며 의로우며 거룩하며 절제하며 미쁜 말씀의 가르침을 그대로 지켜야 하리니 ]

    말씀대로 행하는 것: 말씀을 지켜 행하는 것은 위의 모든 교훈을 지키는 것이다. 감독이 먼저 본을 보여야 성도들이 따른다. 말씀대로 살지 못하는 사람을 책망하기 위해서라도 감독은 자신이 먼저 말씀을 지켜 행하여야 한다.

14. 할례당이란 유대교에서 개종한 그리스도인들이라도 할례를 받아야 구원을 얻는다고 하는 자들이다. 할례 받는다고 무슨 큰 일이 일어나나? 조상들이 늘 하던 일이니 그렇게 하라고 그러지?

    초대교회에서는 단순한 문제가 아니었다. 행위로 구원을 얻느냐 믿음으로 구원을 얻느냐는 갈림길의 문제였기 때문이다. 할례문제를 양보하는 것은 기독교의 변질인 셈이다. 이런 행위로 구원을 얻는다고 가르치는 것은 헛된 말이요, 속이는 것이다. 더구나 이들이 이렇게 주장하는 의도가 잘못된 신념에 근거한 것이 아니요 더러운 이를 취하려는 것이다. 그래서 ‘이단의 가르침을 좇아가다가도 잘못되었다 싶으면 돌아서면 되는 것 아니냐?’고 하는 생각은 위험하다. 이런 생각을 하기 전에 이미 많은 것을 빼앗기기 때문이다.

15. 지방에 따라 사람들이 독특한 기질을 가지고 있기는 하다. 아무리 그렇더라도 그레데 지방 사람들을 이렇게 매도해도 괜찮은가?

    아마 이 말은 당시 그레데인들조차 인정하는 말이었기에 가능할지도 모른다. 그레데인들은 이런 표현을 오히려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일만큼 그들의 삶이 엉망진창이었을지도 모른다. 오늘 신문에(06. 8. 24 국민일보) 성우들 3명이 한 명의 후배 성우와 불건전한 성관계를 가졌다고 징계를 받았단다. 본인들 스스로가 자랑했기 때문에 드러난 사실이란다. 아마도 무척 자랑스러웠나 보다. 실제로 그레데인이란 말은 거짓말쟁이의 대명사로 쓰였단다. 한국 사람들이 Korean Time이란 말을 그리 부끄럽게 여기지 않는 것이나 비슷하지 않을까?

16. 그레데인들을 엄히 꾸짖어야 할 목적이 무엇인가?

    저희로 하여금 믿음을 온전케 하고(13) 유대인의 허탄한 이야기와 진리를 배반하는 사람들의 명령을 좇지 않게 하려 함이라(14). 믿음을 온전케 한다고? 믿음은 점점 온전해져야 하는 성격이 있다. 믿는다고 다 된 것이 아니라 성장해야 할 요소가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17. ‘허탄한 이야기’란 ‘신화’란 뜻이다. 유대인들이 구약성경 말씀을 왜곡해서 헬라나 로마의 신들의 이야기처럼 만들어버린 셈이다. 오늘의 그리스도인들도 이런 위험을 갖고 있지 않을까? 어떤 경우가 그런 예에 해당될까?

    성경 말씀을 주술처럼 사용하거나, 이적을 사실로 믿지 않거나,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자신의 행위로 하나님을 감동시키려 드는 것이나...

18. 15절 ‘깨끗한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깨끗하나’에 생략된 표현이 있다고 한다면 바로 뒤에서 찾아서 보충해보자.

    마음과 양심이 (깨끗한 자들에게는...): 외부의 어떤 것, 즉 유대인들의 결례에 따른 것에 의해서 사람이 깨끗해지거나 더러워지는 것이 아니라 마음과 양심(내부적인 요인)이 어떠하냐에 따라 깨끗해지거나 더러워진다. 믿지 않는 거짓교사들이 아무리 좋은 말을 하더라도 더러운 것이다. ‘더럽고 믿지 아니하는 자들’이란 표현과 ‘마음과 양심이 더러운 자’는 같은 내용이다.

19. 하나님을 (입으로는) 시인하면서 행위로는 부인하는 예를 들어보자.

    그리스도인이 말씀대로 살지 않으면서도 아무런 가책도 없는 것: 가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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