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모데후서 3


1.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있다고? 바울이 말하는 말세가 거의 2000년이 지난 오늘을 가리키는 걸까, 아니면 그 당시를 가리키는 걸까? 2-5절의 부정적인 내용이 그 당시의 모습일까, 말세라고 하는 오늘의 모습일까?

    바울 당시의 모습이기도 하고 오늘의 모습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말세란 그 때이기도 하고 지금이기도 한데? 신약 성경이 말하는 말세는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 이후부터 재림 때까지의 기간 전체를 가리키는 말이다. 성육신으로 말세가 시작되고 재림으로 완성이 된다. 그러므로 말세가 되어서 사람들이 이러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이런 모습으로 살고 있을 때에 말세의 고통이 닥친다는 것이다. 사람들이 이런 모습으로 사는 것을 보면서 말세라는 것을 알고 자중하라는 의도다.

2. 사귀지 말아야 할 인간의 종류가 너무 많다(2-5). 다 외우기도 어렵겠다. 이 모든 종류를 다 포함하는 대표적인 인간은 어떤 인간일까?

    (하나님 없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 아마 여기에서 언급된 거의 모든 악행이 자신의 유익만을 최고로 여기는 데서 나오는 것이리라. 이런 악의 굴레에서 벗어나는 최선의 길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다. 그러면 거기에서 새롭게 자기의 가치를 인정하게 되고 진정으로 자기를 사랑하는 방법을 알게 될 것이다.

3. 돈을 사랑하는 것이 잘못일뿐만 아니라 심지어 일만 악의 뿌리라면(딤전 6:10) 돈을 미워해야 하나?

    돈의 종이 되지 말고 주인이 돼야 한다: 돈을 사랑한다는 것은 돈 때문에 더 중요한 모든 가치를 포기하는 것을 의미한다. 반대로 더 나은 가치를 이루기 위한 수단으로 돈을 사용할 줄 알면 된다. 말처럼 쉬운 것은 아니다! 절대로 쉬운 것이 아니다! 돈의 위력을 절대로 가볍게 여겨서는 안 된다. 돈보다 더 중요한 것(하나님 사랑, 형제 사랑, 등)을 소유하지 않으면 불가능한 일이다.

4.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는 일(5)이 어떻게 가능하지? 능력을 부인한다면 경건한 모양을 하지나 말지? 오늘날 우리 주변에서 비슷한 예를 찾는다면?

    교회는 다니지만 하나님을 믿지 않는 성도: 그냥 좋은 곳이니, 가족의 화평을 위해서, 상사가 다니고 있으니, 장사에 도움이 될 것 같아서, 교회에 이름이라도 올리지 않으면 화가 미칠 것 같은 막연한 불안감에서... 당시에는 아마도 유대주의자나 이단을 가리키는 말이었을 것이다.

5. 남의 집에 가만히 들어가 어리석은 여자를 유인해서 뭘 하는 걸까?

    끝내 진리의 지식에 이를 수 없는 거짓 교훈을 열심히 가르친다(7): 학문이나 예술을 중요하게 여긴 헬라의 풍토에 따라 귀부인들은 스승을 불러서 이것 저것 열심히 배우곤 했단다. 그러는 중에 이단사설을 늘어놓는 자들이 새로운 사상을 가르친다는 구실로 접근했을 것이다. 오늘날 이단들이 하는 수법이랑 전혀 다를 바가 없었을 것이다.

6. 모세를 대적한 얀네와 얌브레는 성경에 나오는 이름이 아니다. 유대인들의 다른 문헌에 애굽의 술객으로 나온단다. 그러면 이들이 언제 모세를 대적했다는 말인가?

    모세가 바로 왕과 대적할 때(출 7:11, 22, 8:7, 18): 그러니까 이 사람들은 유대인이 아니다. 당시의 이단들, 특히 영지주의자들은 아예 교회의 일원이 아니라는 말이다.

7. 이단들이 아무리 득세하는 것 같아도 결말은 누구와 같아지는가?

    얀네와 얌브레: 애굽의 술객들이 나름대로 왕과 백성을 속이면서 한 때 잘 나갔지만 모세의 등장으로 속임수가 아무런 힘을 발휘하지 못한 것처럼 이단의 결말도 그럴 것이다.

8. 이단자들과 복음 전파자의 결말이 어떻게 다른가?

    이단의 어리석음은 드러나고 복음은 박해 가운데서도 반드시 건짐을 받는다.

9. 디모데가 언제 바울을 만나 제자가 되었는지 알 수 근거가 본문에 있을까?

    바울의 1차 전도 여행 때: 디모데가 기억하고 있는 바울의 박해와 고난이 (비시디아)안디옥, 이고니온, 루스드라에서 있었던 일이고, 1차 전도여행 때 있었던 일이다(행 13, 14장). 루스드라에서 앉은뱅이를 고치자 신이 강림했다고 소동이 일어나기도 했고, 안디옥과 이고니온에서 쫓아온 유대인들이 바울을 돌로 치기도 했던 곳이다. 그러나 디모데에게 할례를 행하고 그를 선교여행에 동참시킨 것은 2차 여행 때이다(행 14:1-3).

10.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사람은 박해를 받는 반면에 남을 속이며 사는 사람은 어떨까? 남을 잘 속이는 사람이 속임을 당하는 수가 있을까?

    반드시 속는다: 스스로 지혜가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것이 진정한 지혜가 아니기에 결국은 자신이 속는 결과를 가져온다. 모래 위인지 바위 위인지 살피지 않고 집을 세우기에만 급급한 꼴이다. 허물어질 때는 마치 모래성처럼 허무하게 허물어진다. 수십번 남을 속여서 취한 이득이 한번의 속임에 다 사라져버린다.

11. 누구에게 뭘 배웠느냐는 것이 왜 중요한가?

    스스로 가치를 판단할 수 없는 곳에 몸을 맡기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가령, 한국에서 태어나면 자신도 모르게 한국 사람의 사고방식, 문화에 젖어서 다른 나라 사람의 행동이 이상하게 보이는 것처럼 잘못된 스승에게 잘못된 것을 배우면 진실이 오히려 이상하게 보인다.

12. 디모데는 누구에게서 뭘 배웠는가?

    외조모 로이스, 어머니 유니게(1:5), 그리고 바울에게서 성경을 배웠다. 좀 더 자세히 본다면 성경의 내용(기록된 말씀)은 할머니와 어머니에게서 배우고 그것을 해석하고 적용하는 방법(선포된 말씀)은 바울에게서 배운 셈이다. 성경자체(음식의 재료라면)를 잘 아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체계(요리법에 해당하는 셈)를 잘 배우는 것은 더 중요하다. 사심이 없는 사람들에게 가장 귀한 진리를 배웠으니 참으로 복되다! 최고의 도박꾼에게 돈 따는 비결을 배운 것과 비교해보라. 돈 따는 비결이 낫다고?

13. 어려서부터 성경을 잘 배운 것이 왜 복일까?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을 뿐 아니라(이것이 가장 귀한 것) 온전한 하나님의 사람이 되게 하기 때문이다.

14. 성경이면 성경이지 왜 ‘모든 성경’이라고 하는 걸까?

    문자적으로는 ‘모든 책’이란 뜻인데 실제로는 구약을 의미한다. 지금처럼 한 권으로 제본된 상태가 아니라 각권이 따로 두루마리 형태로 존재하던 시절을 반영하는 표현이다.

15. 성경이 이렇게 대단한 능력을 지닌 이유는 무엇인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이기 때문: 성경은 성령께서 기록자의 개인적 특성까지 살리시면서 하나님의 뜻을 드러낸 책이다. 자증(自證)능력을 갖추고 있어서 누구의 증언이 필요한 것이 아니다. 진실된 마음으로 들여다보면 하나님을 저자로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책이다. 가령, ‘사람을 미화시키지 않는다, 자기 역사라고 과장하지 않는다, 당대의 세계관을 극복하고 있다’는 점 등이 그런 예에 해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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