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모데전서 5


1. 나이 많은 성도가 잘못 하고 있으면 젊은 감독이 어떻게 해야 하나?

    아버지나 어머니에게 하듯이: 실제로는 직분이 더 중요하지만 나이를 함부로 무시해서도 안 된다. 노인을 공경하는 태도로 온유하게 권면도 하고 가르치기도 해야 한다. 신앙인이 예의범절을 무시할 수는 없다

2. 젊은 여자를 대할 때에는 왜 ‘일절 깨끗함으로’ 대하라고 할까? 다른 분들은 그리 하지 않아도 되는가?

    성적으로 깨끗하라는 말이다: 남자들에게는 피해갈 수 없는 유혹이기도 하지만 반드시 이겨야 하는 유혹이다.

3. 참 과부라니(3, 5, 16)? 그러면 돌 과부도 있는가?

    진짜 도움이 필요한 과부를 가리키는 말이다: 자녀나 손자가 있으면 그들로 하여금 효를 다 하도록 가르치라는 것이다. 이런 과부는 과부지만 꼭 도움이 필요하지 않으니 참 과부가 아니다. 또,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주야로 간구하고 기도하는 과부가 참 과부다.

4. 과부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주야로 간구와 기도만 해야 하나? 다른 재미있는 일을 하면 안 될까?

    당시에 재미있을만한 일이 그렇게 없었을 걸! 생계를 위해서 할 일도 그렇게 많지 않은 시대였으니 달리 할 일이 거의 없었을 것이다. 다른 일 하는 사람을 ‘일락을 좋아하는 이’ 라고 표현하는 까닭이 그런 까닭이다. 일락을 좋아한다는 것은 방탕하게 사는 것을 의미한다.

5. 믿는다고 하면서 친족 특히 자기 가족을 돌아보지 아니하면 믿음을 배반한 자요 불신자보다 더 악한 자란다. 그러면 천국에 못 가나? 믿는데?

    과부같은 어려운 가족을 돌보라는 뜻이다. 이런 문구를 가지고 천국에는 믿음으로 가는 것 아니냐고 따지는 것은 지혜롭지 못하다. 야단치려고 하는 말은 토론이나 공부하는 말과 강조점이 조금 다를 수 있다.

6. 과부의 명부에 올라가려면 60세는 넘어야 한다. 젊은 과부는 어떻게 하라고?

    과부의 명부에 올라간다는 것이 구제의 대상이 되는 것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제도적으로 생계를 보장해줄 뿐 아니라 특별한 자격을 갖추어 직무를 맡았을 것으로 본다. 가령, 오늘날의 여전도사와 같은 일을 한 것 아닐까? 따라서 젊은 과부라고 전혀 구제의 대상이 안 되는 것은 아니다.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면 10절의 선한 행실에 대한 증거가 없으면 구제도 받을 수 없다는 것은 심각한 문제가 될 수 있다. 그러니까 10절도 구제의 대상을 의미하는 말이 아니다.

7. ‘한 남편의 아내였던 자’라야 과부의 명부에 올릴 수 있다면 결혼한 적이 없거나 재혼을 했다가 과부가 된 사람은 어떻게 될까?

    이 표현이 ‘아내로서의 정절을 지킨 자’를 의미하는 것으로 본다. 그러니까 처녀로 지낸 사람이나 재혼을 했더라도 결혼 생활을 온전하게 했던 사람은 해당된다.

8. 젊은 과부가 사집을 가는 것이 그리스도를 배반하는 것인가(11)? 시집을 가라고 하면서(14) 시집가는 것이 그리스도를 배반하는 것이라고 말하는 것은 모순이다.

    과부의 명부에 이름을 올리는 것이 특별한 직무를 맡기는 것을 의미한다고 볼 때 시집을 가는 것은 이 직무를 포기하는 것(=배반)이 된다는 뜻이다. 애초에 이런 서약(=처음 믿음)을 했다가 취소하는 잘못을 범하지 않도록 60세 이상된 분을 명부에 올리라는 것이다.

9. 시집가라고 하는 중요한 이유가 무엇인가?

    정욕(11, 14, 6): 대적에게 훼방할 기회를 주지 말라는 것은 정욕을 이기지 못하여 잘못을 저지르지 말라는 의미다.

10. 게으른 사람이 어떻게 집집에 돌아다니며 일을 만들까(13)?

    심방을 하거나 가르치느라고 집집을 돌아다니는 것은 게으름이 아니지만 돌아다니며 망령된 짓을 하거나 구설수에 오를만한 일을 만드는 것은 열심이 아니라 게으름이다. 오락이나 노름을 밤새도록 하는 것도 열심이 아니라 게으른 것이다.

11. 잘 다스리는 장로들을 배나 존경하라면 못 다스리는 장로들은 어떻게 하라는 말인가?

    못해도 존경하라는 말이다: 못하는 데 어떻게 존경해? 부모를 존경하듯이 하라는 것이다. 부모가 잘못한다고 함부로 내칠 수 없지 않은가? 그런 점을 감안하면 목사를 청빙하는 일에 얼마나 신중해야 하겠는가! 장로를 선출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잘 뽑아야 한다! 뽑았으면 책임을 져야하고! 그런데 말씀을 잘 가르치면 더욱 그래야 한다.

12. 초대 교회 시절에 이미 두 종류의 장로가 있었던 모양이다. 장로가 무슨 종류가 있나?

    다스리는(치리) 장로와 가르치는 장로(=목사): 목사도 장로의 일종이다. 서로 협력하며 교회를 잘 이끌어 가야 하는데 협력이 아니라 어느 한쪽이 힘을 가지고 독단적으로 교회를 좌지우지하는 것이 문제다.

13. 목사님들 중에는 교회에서 사례받는 것을 부담스럽게 여기는 분들도 있다. 디모데도 그러했던 모양이다. 바울의 충고(18)는 받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라는 말인가? 자기도 받지 않고 자비량하고 교회를 섬겼는데? 목사의 생활비에 대한 가장 바람직한 자세는 무엇일까?

    교회는 목사의 수고에 감사하고 목사는 교회의 사례에 감사하는 것이다. 반대로, ‘우리가 목사들을 먹여살리지 않느냐?’고 생각하는 교인들이 있다면 큰 문제다. ‘너희들에게 얻어먹고 살지는 않는다’는 태도로 사례를 받지않고 큰 소리치면서 목회하시는 분들도 있는 모양이다. 그렇게 오만하지 말고 하나님 앞에 겸손한 자세로 성도를 섬기라는 것이 사례의 의미다.

14. 장로라고 증인이 더 필요한가?

    장로에 대한 비난에는 더 신중하라는 말일뿐: 애당초 증인은 두 사람 이상이어야 효력이 있다(신 19:15, 민 35:30). 장로라고 특별히 더 많은 증인이 필요한 것이 아니다.

15. 죄를 범했어도 비공개로 벌을 주는 경우가 많던데 바울의 가르침(20)을 무시하는 건가?

    문맥상으로 여기서 범죄한 자들이란 장로를 가리킨다. 장로의 범죄는 반드시 공개적으로 다루어야 한다. 일반 성도들의 경우에는 공개하지 말아야 교회에 덕이 되거나 또 다른 성도에게 추가적인 피해를 주지 않을 경우도 적지 않을 것이기에 일괄적으로 다룰 수 없다.

16. 감독으로 어떻게 교회를 잘 돌보아야 하는지 두 가지로 요약해보자(21-22).

    공정하고, 신중하게: 편견과 편벽이 없어야 한다는 것은 공정해야(공평해야) 한다는 것이고 경솔히 안수하지 말라는 것과 다른 사람의 죄에 간섭지(원어는 ‘동반자가 되다’) 말라는 것과 자신을 지키라는 것은 상호관련된 것으로 신중하라는 말로 요약이 가능하다.

17. 교회를 잘 돌보라고 당부하면서 그래야 하는 이유를 ‘하나님 앞에서’라고 하면 충분할텐데 굳이 ‘천사들’까지 거론할까?

    천사는 하나님의 명을 친히 담당하는 실무진이므로: 특히 그냥 천사가 아니라 ‘택하심을 받은 천사’라는 것은 자기 처소를 떠난, 즉 타락한 천사들과 대조를 이룬다. 이 천사들이 성도를 돌볼뿐 아니라 훗날 심판하는 일까지 담당할 것이기 때문이다.

18. 일상적으로 사용하던 포도주를 ‘조금씩이라도 쓰라’고 권하는 것은 디모데가 포도주조차 입에 대지 않았던 사람이었다는 말인가?

    일상적인 음료로 쓰이는 것이었지만 나실인의 서약을 한 사람은 전혀 포도주를 입에 대지 않았다. 아마도 디모데는 그런 정신으로 엄격한 자세를 가지고 있었을 것이다. 법이나 양심에 아무런 거리낌이 없는 일이라도 이런 저런 이유로 결심을 하고 혼자서 금욕적인 모습으로 사는 그리스도인들이 지금도 드물지 않다.

19. 건강에 대해서 충고를 하더니(23) 느닷없이 죄와 선행도 결국은 숨길 수 없는 것이란 말(24-25)을 하는 것은 우왕좌왕하는 것 아닌가?

    23절이 삽입된 것이다. 장로를 세우는 일이나 공평하게 교회 일을 처리하는 것이 얼마나 힘드는 일인지 알기에 이런 당부를 하다가 디모데의 몸이 약한 것이 생각나서 한 마디 하고 다시 돌아와 ‘일을 급하게 처리하지 말고 조금 천천히 살펴보면 선악이 다 드러나는 법’이라고 가르치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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