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모데전서 2 |
없다: 순서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중요성을 말하는 것이다. 그래서 ‘무엇보다도’ 라는 의미로 이해하는 것이 좋겠다. 목회 사역에서 무엇보다도 기도를 열심히 하라는 것이다. 사역자의 우선적인 사역(준비가 아닌)은 기도이다. 기도로 사역을 시작하는 것이지 준비하는 것이 아니다. 2. 간구와 기도와 도고와 감사는(1) 각기 다른 네 종류의 기도일까? 아니면 기도의 내용에 따른 순서일까? 내용에 따른 순서로 보는 것이 좋겠다: 열심히 기도하되 이런 내용을 다 포함시키라고 하는 셈이다. 간구는 간절한 필요를 아뢰는 것이고, 기도는 일반적인 모든 내용을 포괄하는 것이며 도고는 특별히 다른 사람의 유익을 구하는 기도이다(흔히 중보기도라고 한다). 감사드리는 것도 빠트리거나 잊지 말아야 한다. 3. 특별히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들을 위해서 기도해야 할 이유가 무엇인가? 지도자가 일반 백성들 뿐만 아니라 성도들의 삶에도 미치는 영향이 아주 크기 때문이다: 지도자가 잘 해서 나라가 평온하면 그리스도인들도 경건하고 단정하게 하나님을 섬길 수 있지만 지도자가 나라를 제대로 이끌지 못하면 교회도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 그래서 기도하는 그리스도인들 덕분에 일반 백성들도 복을 나누어 가지는 것이다. 4. 하나님께서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데 이르기를 원하신다면(4) 결국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게 되는 것 아닌가? 모든 사람에게 길을 열어두셨다는 뜻이다. 어떤 특정한 사람들이나 민족이라고 (가령 유대인들처럼 이방인은 안 된다는 생각처럼) 구원에 이르지 못한다는 법은 없다는 말이다. 그럼에도 결국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만이 구원을 얻는다. 하나님에게도 이것만은 양보할 수 없는 마지막 자존심이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길을 열어두셨으니까 이들의 구원을 위해서 열심히 기도하라는 것이다. 5. 느닷없이 하나님이 한 분이시고 중보자도 한 분이시라는 말이 왜 튀어나왔을까? 기도해야 할 대상은 하나님이시고, 그 기도가 효력이 있는 것은 예수님 때문이라는 말이다. 대상을 잘못 선택하거나 중보자가 없다면 아무리 기도해도 소용이 없다. 6. ‘기약이 이르면 증거할 것이라’는 표현은 미래형으로 보이지만 실제로는 미래형 시제가 아니다(개정개역에서는 수정되었음). 부정사처럼 정해진 시제가 없이 본동사의 시제를 따른다면 과거형이어야 한다. 그러면 어떻게 해석될까? 기약이 이르렀을 때 증거된 것이라: 예수께서 자신을 속전으로 주신 것이 하나님께서 정하신 가장 알맞은 때에 이루어진 일이라는 뜻이다. 7. 바울이 사도로 세움을 입었고, 이방인의 스승이 된 것이 거짓말이 아니라고 주장해야하는 이유가 있었을까? 거짓교사들 때문이다: 바울은 예수님 생전의 제지가 아니라는 것을 걸고 넘어졌을 것이다. 갈라디아서에서는 자세하게 해명을 했지만 디모데나 에베소 교회에는 그렇게 할 필요까지는 느끼지 못했을 것이다. 모든 사람에게 복음이 전해지도록 기도하라고 권하는 문맥이기에 간단하게 언급하고 지나갈 뿐이다. 8. 남자들이 기도해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하나님께서 모든 사람이 구원받기를 원하셔서 중보자를 세웠고(4-5) 나를 이방인의 사도로 세웠기(7) 때문이다. 그러므로 모든 성도는 쓸데없이 다투지 말고 기도를 통해서 이 일에 동참해야 한다(8). 기도하라고 주신 손으로 싸우지들 말고! 9. 남자들만 기도하고 여자들은 안 해도 되나? 동일하게 해야 한다: 9절의 ‘이와 같이 여자들도’ 란 말은 원리적인 면에서는 동일하다는 뜻이다. 10. 기도할 때는 손을 들고 하라는 말인가? 손을 드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분노와 다툼이 없어야 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마 5:23-24). 11. 남자나 여자나 기도해야 하는 것은 동일하다. 다만 남자는 분노와 다툼이 없도록 자신을 치장해야 하고 여자는 염치와 정절과 선행으로 치장하라는 것이다. 왜 이렇게 치장이 다를까? 남자와 여자 다른 탓이다. 남자들은 쓸데없이 자존심 세우기를 좋아하고 여자들은 외모에 신경을 많이 쓰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하나님을 공경하는 사람은 선한 마음으로 하나님께 기도하라는 것이다. 이런 기질적인 차이 때문에 주로 신경써야 할 부분이 다를 뿐이다. 12. 바울은 남자와 여자를 다르게 취급하는 근거를 어디에서 찾는가? 창조 섭리에서: 즉 하나님께서 만드실 때 다르게 만들었다는 뜻이다. 이것을 오해하여 여자를 무시하거나 열등한 존재로 본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남자와 여자를 동등하나 구별되게 만드셨음을 아는 사람에게는 남자와 여자가 어울려 산다는 것이 너무나 변화무쌍하고 복잡한 놀이 같다. 13. 여자들은 가르치는 일을 하면 안 되는 걸까? 성경에는 여자들이 지도자 노릇을 한 적이 없는가? 구약에는 선지자로 불리운 미리암, 사사로 드보라가 있다(숫자상으로 적기는 적다). 신약에서는 브리스길라, 루디아, 뵈뵈, 빌립의 네 딸, 유오디아와 순두게 등이 있다. 심지어 브리스길라는 아볼로를 가르치기까지 했다. 교회의 질서적인 측면에서 하는 말이지 가정에서 가르치는 일은 어머니의 몫이었다. 디모데가 누구에게 성경을 배웠는가! 순종하는 자세를 유지하면서 가르치는 일을 해야 한다. 14. 하나님께서 만들어두신 기능적 차이를 인정하고 남자를 대표주자로 세워서 순종적인 자세와 조용함과 정절로 자신을 치장한다면 무슨 복이 있을까? 구원을 받는다: ‘그 해산’ 이란 순종함과 조용함 곧 정절을 의미한다. 그것이 곧 믿음과 사랑과 거룩함에 거하는 것이며 곧 믿는 것이다. 믿음으로 구원받는다는 것과 다르지 않다. 15. 상식선에서 남자와 여자는 어떻게 다른지 생각해보자. 남자는 철없는 아이, 여자는 이해할 수 없는 요물: ‘남편이 언제 철들꼬?’ 하다가 철들기를 포기했단다. 철들면 죽는다니까 철들지 말고 그냥 오래 살란다. 남편과 아이 둘을 가리켜 아이 셋이라고 하더라. 반면에 여자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요상한 존재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