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님의 노력에 한 뜸 보태고자 형님의 노력에 한 뜸 보태고자
한 글 올려봅니다.
조심스럽네요
에서 이야기 인데요
메일로 보내려 했는데 운영자 메일 주소를
못찾겠니더
그래서
아래에다 그만 올렸니더
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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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일이 생기거든 하나님께로 먼저 나가십시오
유영업 강도사
1999년 7월 28일
본문 : 창 27:41 - 28:9
창세기는 4가지 중요한 사건과 4사람의 중요한 인물이 나온다.
4가지 중요한 사건은 1장 - 11장에 나오는데 창조, 타락, 홍수, 바벨탑이고
4사람의 중요한 인물은 12장 - 50장에 걸쳐 나오는 아브라함, 이삭, 야곱, 요셉입니다.
이중에서 특별히 야곱은 여러 가지 면에서 생각하게 하는 인물입니다.
그는 쌍둥이로서 어머니 태중에서부터 형 에서와 싸웠던 인물입니다.
그는 어머니의 사랑과 자신의 꾀를 동원하여 형으로부터 장자권을 쟁취한 인물입니다.
참으로 얄미운 야곱과는 달리 에서는 사냥을 좋아하며 들판에서 사는 매우 우직하고 둔감한 인물로 나타납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쩐지 우리 마음에 잔꾀를 부리는 야곱보다는 에서가 더 장자다운 면모를 가진 듯한데 어떻게 그렇게 장자권을 빼앗겨 버렸다는 말인가 하는 의문이 들곤합니다. 에서의 편을 드는 사람들은 에서는 억울하다고 항변할지 모릅니다. 야곱이 팥죽한 그룻과 떡으로 배고픈 형을 꼬드겨서 장자의 명분을 팔라고 했으니 야곱이 더 나쁘다고 할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어머니와 공모하여 아비 이삭을 속이고 형에게 마땅히 돌아가야할 장자의 명분을 빼앗았으니 벌을 받아 마땅하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에서에게 장자의 축복을 주어야지 야곱과 같은 '비열한' 사람에게 축복을 주신 것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할 수 있을 것입니다.
어떻게 된 일입니까?
하나님께서는 야곱을 그렇게 모를 수 있다는 말입니까?
우리는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하나님의 언약이 어떻게 에서를 비켜갔는지 그 이유를 살피면서 우리의 삶에 대한 하나님께서 주시는 중요한 교훈을 얻고자 합니다.
에서가 야곱으로부터 당한 일은 분명히 억울한 일입니다.
그러나 에서가 그 일을 당하고 나서 취한 행동과 그 전의 전력을 살펴보면 하나님의 뜻과 의도를 분명히 헤아려 볼 수 있습니다.
에서가 장자에게 돌아올 축복을 야곱에게 빼앗기고 나서 그가 가진 생각과 행동은 무엇입니까?
첫째, (27:41)그는 야곱을 미워하여 심중에 생각하기를 '내 아우를 죽이리라' 결심합니다. 그 결심이 얼마나 결연했든지 심중에 생각하는 것이 어머니 리브가에게 드러날 정도였습니다.
에서를 관찰한 어머니가 하는 말을 보십시오.
"네 형 에서가 너를 죽여 그 한을 풀려 하나니"
에서는 자기가 심판자로 나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자신에게 명백히 잘못한 야곱을 죽여 야곱의 잘못에 대하여 대가를 직접 지불하고자 합니다. 그러나 그의 의도는 참담한 실패로 끝납니다.
에서의 계획을 미리 알아차린 어머니 리브가가 남편에게 제안하기를
야곱의 아내감을 자신의 집, 하란에서 얻게 하자고 제안합니다.
이삭은 흔쾌히 그 제안을 받아들였을 뿐 아니라 다시한 번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복을 주실 것이라는 축복을 하면서 야곱을 보내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적어도 이삭은 자신이 하나님의 이름으로 축복한 것에 대하여 믿음으로 받아들이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비록 야곱과 리브가가 자신을 속였다고 할지라도 말입니다.
에서가 야곱에게 장자의 축복을 빼앗기고 나서 취한 두 번째 행동은 아비 이삭의 마음을 돌이켜 보는 것이었습니다.
<28:8-9 읽기>
에서는 가나안 여인 둘을 얻어서 이미 결혼한 상태였습니다. 그런데 그 아내들이 아비 이삭을 기쁘게 못했습니다. 이것을 좀더 적극적으로 번역하면 이렇습니다. "에서는, 자기 아버지 이삭이 가나안 사람의 딸들을 싫어한다는 것을 알고"입니다.
이삭은 에서가 가나안 여인을 아내로 맞아들인 것이 매우 못마땅했고 싫었습니다.
그것을 알아차린 에서가 아비의 마음을 자기를 향하도록 돌이켜보기 위해 새로운 아내를 얻습니다. 이삭의 배다른 형제인, 그렇지만 에서가 보기에는 같은 할아버지 아브라함의 후손인 이스마엘의 딸을 아내로 취합니다.
참으로 가련한 것은 버림받은 이삭이 버림받은 자 이스마엘의 딸을 아내로 맞아 들이면서 이삭의 마음을 얻고자 한 것입니다. 그것은 결코 해결책이 될 수 없었습니다.
에서가 야곱이 떠나버린 마당에 아비 이삭의 마음을 어떻게든 움직여 보려고 하는 시도는 성공하지 못했습니다. 아니 성공할 수도 없었습니다. 아비 이삭의 마음이 움직인다 한들 하나님의 이름으로 축복한 것을 다시 바꿀 수는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에서의 미련은 참으로 처절합니다.
이러한 에서를 히브리서 기자가 이렇게 평가하고 있습니다.
<히12:16,17읽기>
"음행하는 자와 혹 한 그릇 식물을 위하여 장자의 명분을 판 에서와 같이 망령된 자가 있을까 두려워 하라. 너희의 하는 바와 같이 저가 그 후에 축복을 기업으로 받으려고 눈물을 흘리며 구하되 버린 바가 되어 회개할 기회를 얻지 못하였느니라."
여기서 망령이라는 단어는 불경죄를 지어 성전에서 쫓겨난다는 의미로서 "신성모독적 행실"을 뜻합니다.
에서의 처절한 노력은 실패로 돌아갔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는 자신 앞에 벌어진 사건, 동생 야곱이 자신에게 돌아와야할 장자의 축복을 빼앗아 간 일이 터졌을 때, 그는 철저히 자기 생각대로, 자기 소견에 옳은대로 행했습니다. 자기 소견은 바로 야곱을 처단하는 것, 축복권자로 보이는 아비 이삭에게 아부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그것은 결코 해결 방법이 아니었습니다.
히브리서 기자가 지적하는대로 축복을 기업으로 받으려고 눈물을 흘리며 구하였지만 그는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였고 회개할 기회를 얻지 못하였습니다. 사람을 향하여 복수의 칼을 갈고, 사람을 향하여 아부의 손을 비비던 에서는 자신의 계획도 성취하지 못했을 뿐 아니라 더욱 무서운 사실은 하나님으로부터 버림 받았다는 것입니다.
왜 그는 회개할 기회를 얻지 못했습니까? 에서의 죄악은 무엇입니까?
우선, 우리는 장자의 명분, 즉 장자권을 팔아버린 어처구니 없는 사건을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창25:27-34>
여기서 '장자의 명분'이란 장자권을 의하는데 이는 가족의 대표자이며 다른 아들들보다 두배의 몫을 상속받고, 특히 언약 계승자의 위치에 있는 자를 말합니다.
아브라함이 받았고, 이삭이 확인 받았던 언약은 무엇입니까?
창12:1-2에 나오듯이 땅, 후손, 복의 언약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주시고, 이삭에게 확인시켜 주신 것으로 하나님의 은혜요 하나님의 축복입니다. 그런데 에서가 그 하나님의 언약을 경홀히 여기고(25:34), 순간적이 배고픔을 이겨내지 못하고 팔아버리다니 하나님이 보시기에 어떠했을까요?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한 언약, 즉, 가나안 땅과, 하늘의 별과 같이 무수한 후손과 축복의 근원에 대한 이야기는 아브라함이 이삭에게, 이삭이 에서에게 수없이 많이 들려 주었을 것입니다. 적어도 이삭이 에서에게 축복하고자 하는 분명한 뜻을 가지고 별미를 만들어 오라고 한 것을 볼 때, 그리고 에서가 얼른 사냥해와서 가져온 것을 볼 때, 에서는 아비로부터 수없이 하나님의 언약에 대하여 들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장자권을 동생에게 팔아버리고 맹세까지 한 것은 장자권을 경홀히 여겼을 뿐 아니라, 하나님을 경홀히 여긴 것입니다. 하나님의 언약, 하나님의 계획, 하나님의 축복, 하나님의 능력을 업신 여긴 행위인 것입니다.
에서가 하나님 앞에서 해결해야할 두 번째 죄악은 바로 26장34-35에 나옵니다.
<26:34-35>
에서가 가나안 족속 중에 하나인 헷 족속의 딸들과 결혼 한 사건입니다.
며느리를 얻은 이삭과 리브가가 기뻐해야할 터인데 마음의 근심이 되었다고 서술하고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 당시에 가나안에는 여러 족속들이 살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부족 간의 평화를 위하여 결혼을 통한 부족 통합을 추구하고 있었습니다.
아마 에서는 별 생각없이 그 시대의 풍습에 따라 자연스럽게 가나안 땅에 사는 여인을 택하여 아내로 맞아들였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이삭에게나 리브가에게나, 특별히 하나님 앞에서 매우 심각한 문제였습니다.
왜냐하면 이삭의 장자인 에서는 언약의 혈통을 훼손하지 않고 신앙의 순수성을 보존해야 했었습니다. 그러나 이교도의 딸과 결혼함으로 인해 언약의 순수성에 심각한 위협을 가져왔습니다.
그러면 에서는 야곱이 자기에게 돌아올 축복을 빼앗아 갔을 때 어떻게 해야했습니까?
하나님 앞에 즉각적으로 엎드려야 했습니다.
사람을 볼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보아야 했습니다.
자신이 심판자로 나설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맡겨야 했습니다. 오히려 야곱을 사용하사 자신을 징벌하시는 위에 계신 하나님을 생각해야 했습니다.
그래도 자기를 더 사랑해주었던 축복권자로 보이는 아비 이삭에게 아부하려 할 것이 아니라 언약을 훼손하고 언약을 주신 하나님을 경홀히 여긴 자신의 죄를 회개해야 했던 것입니다.
에서는,
야곱에 대한 미움이 너무 앞선 나머지 야곱을 사용하사 자신을 징벌하시는 하나님을 보지 못하고 말았습니다. 야곱에 대한 징벌은 하나님께서 마땅히 하실 터인데
롬 14:10
네가 어찌하여 네 형제를 판단하느뇨 어찌하여 네 형제를 업신여기느뇨 우리가 다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리라
자신이 흥분하여 한을 품고 나섬으로 인해 야곱을 징벌하는 것을 실패했을 뿐 만아니라 자신은 오히려 하나님 앞에 회개할 기회를 얻지 못한 채 영원히 버림받고 말았습니다.
에서는.
축복 그 자체에 눈이 너무 어두워 축복을 관장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신 줄 깨닫지 못했습니다. 아비 이삭에게 잘 보이기만 하면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축복을 다시 되돌려 받을 수 있으리라 생각한 에서는 자신의 잘못을 보기 보다는 축복에 더 눈이 멀어 있었던 것입니다.
축복을 관장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며, 하나님은 당신 앞에 거룩한 자, 회개함으로 그 앞에 엎드리는 자, 그리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아 의인된 자에게 축복을 베푸시는 분이심을 몰랐던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에게도 에서와 같은 모습이 얼마나 많은지요.
무슨 일이 생기면 하나님 앞으로 달려가기 보다는
자신에게 피해를 주고 손해를 끼친, 분명히 나에게 죄악을 행한 그를 직접 판단하고 심판하고 보복의 칼을 나도 모르게 갈고 있는 것을 발견하지 않습니까?
어떻게든 상황을 반전시키기 위하여 권력을 가진 자, 결정권자에게 잘 보이려고 하지 않습니까?
이것은 이 땅의 많은 사람들이 살아가는 방법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람들은 달라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자신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이 하나님의 계획과 섭리와 인도하심 가운데 있음을 알고 하나님 앞으로 제일 먼저 달려가 무릎을 꿇어야 합니다.
일이 잘 풀리든, 일이 어려워지든,
날마다 하나님 앞에 나아가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하나님 앞에 나아가십시오. 그러면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마음을 신원해주실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나아가십시오. 그러면 하나님의 의도를 알 수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나아가십시오. 그러면 하나님께서 당신을 회복시키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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