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 이필환 |
등록일 | 2000-01-05 01:39:00 P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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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판 강대상 제가 시무하는 활빈교회에 강대상 지정 헌금 1백만 원이 들어왔습니다. 강대상이 너무 볼품없다고 교인 중 한 분이 새 강대상 구입비로 헌금을 한 것입니다. 도시가 아닌 어려운 농촌생활에서 1백만 원을 헌금한다는 것은 보통 정성으로는 어려운 일입니다.
그래서 교회 제직회는 새 강대상을 살것이냐 말 것이냐로 열띤 논의를 하였습니다. 하지만 결론엔 그 동안 쓰던 강대상을 그대로 쓰기로 결정했습니다. 그리고 새 강대상 구입을 위해 지정헌금 하신 분에게는 결정된 뜻을 잘 설명하여 섭섭한 마음이 없게큼 했습니다.
저희 교회 강대상은 아주 오래 전에 베니어 합판 두 장으로 만든 허름한 강대상입니다. 합판 두 장에 그 당시 가격으로 2만원이 들었습니다. 말하자면 2만 원 짜리 강대상인 셈입니다.
그러니 초라하고 볼품이 없습니다.
교인 중에는 웃으며 말하기를 강대상과 목사님이 꼭 닮았다고 하는 분도 있습니다. 그리고 저도 농담이긴 하지만 그 말이 맞다고 합니다.
그런데 저는 그 강대상을 퍽 좋아합니다. 그 강대상에 서면 마음이 푸근하고 여유가 생깁니다. 저만 그 강대상을 아끼는 것이 아니라 교인들 중에서도 그 강대상을 아끼는 분들이 많습니다.
저는 교인들에게, 강대상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강대상에서 선포되는 말씀이 중요하고, 그 말씀을 아멘으로 화답하는 교인들의 신앙고백이 중요하다고 늘 강조하여 말해왔습니다.
별 것 아닌 소리 같지만 신앙생활의 본질에 연관되는 중요한 말이 아니겠습니까?
저는 여러 교회로 집회를 나가기 때문에 여러 강대상에 서는 기회가 있습니다.그런데 초청 교회의 강대상에 설 때마다 강대상이 너무 화려하지 않나 하는 느낌이 들 때가 종종 있습니다.
경북 어느 교회에서는 강대상에만 수천만 원을 들이기도 했습니다. 그 수천만 원 짜리 강대상에 서서 '이 강대상 하나 비용으로 농촌교회 몇 교회를 세울 수 있었겠구나' 하는 아쉬움을 느꼈습니다.
문제는 강대상에 돈을 많이 들였다고 설교가 더 잘 되거나 교인들이 은혜를 더 받는 것이 아니란 사실입니다. 또 그 화려한 강대상 시설로 인해 교회가 더 부흥하는 것도 아니란 사실입니다. 오히려 그런 예산 집행에 거부감을 느낀 교인들이 교회를 떠나는 일은 있어도 그로 인해 교인이 더 불어나는 일은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하나님 나라는 비싼 강대상에 있는 것이 아니라 말씀의 능력에 있습니다. 예수님을 금부처 모시듯 하지 말고 백성들의 상처받은 심령에 모셔야 하겠습니다.
- 김진홍 목사, 고난을 이기는 열 두 달, 두레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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