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가 4장


1. 이 여인의 아름다움을 묘사하는 글(1-5)을 보고 그림을 그릴 수 있을까?

    불가: 모습을 구체적으로 묘사한 것이 아니라 그 느낌을 말했을 뿐이기 때문이다. 키가 얼마인지 피부색이나 생김새가 어떠한지는 전혀 알 수 없다. 키가 얼마며 가슴, 허리, 힙 사이즈부터 말하는 오늘날 우리 기준과는 전혀 다르다. 전체적인 인상(1a), 부위별 묘사(1b-5), 간절한 소망(6-8)의 순으로 묘사하고 있다.

2. 예뻐 보이기 시작하면 모든 것이 다 예쁘다. 눈, 머리털, 이, 입술, 뺨, 목, 유방... 최종 결론은 뭔가?

    흠이 없다(7): 정말 그럴까? 밭일을 해서 검게 탔고, 아버지를 대신하는 오빠들에게 꾸중도 들어야 하는 사람인데? 수많은 예루살렘 여인들 가운데 하나일 뿐인데? 객관적으로는 그러할지라도 신랑의 눈에는 완벽하다. 이런 것이 사랑이다.

3. 눈이 비둘기 같다는 것은 순결하고 깨끗함을 말하는 것 같다. 그런데 왜 머리털이 누운 염소 떼 같다고 할까?

    색깔(검은 색)을 말하는 것이리라. 염소 떼가 누워있는 걸 봐야 말이지? 염소의 특징은 비탈진 곳이라도 잘 뛰어다는 것이다. 누운 염소는 아무래도 이상하다. 어깨 너머로 찰랑거리는 머리칼이라면 길르앗 산기슭에 뛰노는 염소 떼 같다고 하는 것이 더 옳을텐데? ‘누운’이라고 번역한 단어는 의미를 확실하게 알지 못하는 단어다.

4. 까만 피부에 하얀 이빨을 어떻게 묘사 하는가?

    목욕장에서 나오는 털 깎인(일) 암양(가장 희다)과 길르앗 산의 (검은) 염소 떼: 묘한 대조를 이룬다.

5. 이빨 묘사가 복잡하다. 이빨이 희고 가지런하다는 것을 묘사하려는 의도로 사용된 비유가 무엇인가?

    목욕장에서 나오는 암양(이 때의 털이 가장 희단다)과 쌍태: 쌍둥이처럼 이빨의 모양이 똑 같다는 의미다. 새끼 없다는 말도 이빨의 빠진 곳이나 틈새가 없는 것으로 이해하는 것이 좋겠다.

6. 묘사가 제일 성의 없는 부분은 어디인가?

    입: 그냥 어여쁘다로 끝이다! 특별한 은유가 없다. 입을 이렇게 홀대하다니? 사실은 언어유희적 기교를 부리고 있다. ‘네 입(미드바르)은 어여쁘다(나베)’는 말이 ‘네 광야(미드바르)는 오아시스다(나베)’는 말과 발음이 아주 흡사하다. 그러면 ‘네 입술은 광야의 오아시스’ 라는 것처럼 들릴 수가 있다. 혹은 ‘완벽한 그대에게 혹 광야같은 곳이 있다면 그곳조차도 실은 오아시스란다’ 라는 느낌을 담고 있는 셈이다.

7. 3절의 ‘석류 한 쪽’은 ‘벌어진 석류’를 의미한다. ‘분홍색 껍질 사이로 보이는 빨간 석류알’은 무엇을 가리키는가?

    너울 사이로 보이는 뺨: 고대인들은 껍질 질긴 석류를 잘라먹지 않고 꼭꼭 눌러 빼먹었단다.

8. 목은 다윗의 망대 같단다. 그런데 방패가 천 개나 달린 망대란다. 목에 무엇이 천 개나 달려있다는 말인가?

    아마도 장신구: 수많은 구슬이 둥글게 엮어져서 방패모양을 이룬 장신구일 것이다(1:10 참고). 그러니까 첫날밤 신부는 목에 장신구만 두른 전라의 모습이다. ‘무기를 두려고 건축한’이라는 말은 ‘마름돌로(우아하게, 열 지어) 건축한’으로 번역해야 한단다. 무기를 보관하는 망대라면 방패가 보일 리가 없지 않은가?

9. 유방을 노래하는 것은 아무래도 좀 야하다. 성희롱 아냐?

    부부사이라서 괜찮다, 더구나 신혼 첫날 밤에 신부의 아름다움을 노래하는 것이니: 유교문화권에서는 봐도 못 본 척, 관심이 있어도 없는 척하는 것이 기본 예의라서 조금 어색하게 들린다.

10. 몰약 산과 유향 산(6)이 어디 있을까?

    그런 산은 없다. 술람미 여인을 가리키는 표현이다: 신부의 관능적인 육체의 아름다움을 노래한 다음에 가려고 하는 몰약산과 유향산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자명하다. 아름다운 여인을 온갖 향기가 진동하는 아름다운 구릉(작은 산)에 비유한 것이다. 날이 저물고 그림자가 사라지기 전에 돌아오라던 여인의 요청(2:17)에 대한 답이다.

11. 레바논, 아마나와 스닐과 헤르몬 꼭대기, 즉 사자 굴과 표범 산에서 내려오란다. 여기에 언급된 곳은 사람이 범접할 수 없는, 신들의 거처다. 술람미 여인은 왜 이런 곳에 올라가 있나?

    술람미 여인을 아무도 근접할 수 없는 고결하고 신성한 존재(2:14)로 느끼기 때문이다: 레바논 산, 아마나 산, 스닐 산과 헤르몬 꼭대기는 해발 2,500미터가 넘는 고산으로 신들의 거처로 여겨졌다. 심지어 표범과 사자는 전쟁의 여신의 상징으로 잘 쓰였다. 말하자면 술람미 여인을 여신처럼 느끼고 있다는 뜻이다.

12. 술람미 여인이 정말 그렇게 예뻤을까? 외모가 그렇게 예뻐서 마음이 뺏긴 걸까, 마음이 빼앗기니까 모든 것이 예뻐 보이는 걸까?

    사랑은 마음을 주는 것이다. 마음이 빼앗기고 나니까 술람미 여인을 쳐다보는 순간 그 눈빛 하나에도 마음이 흔들려 버렸다(9). 술람미 여인 스스로도 자신이 그렇게 예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1:5). 참고로, ‘신부’라는 말은 첫날밤을 묘사하는 4:1-5:1에만 나타난다. 신랑은 ‘신부야, 나의 누이야’라고 부른다. 원문상으로는 ‘내 신부’가 아니라 그냥 ‘신부’다. 신부를 ‘누이’라고 부르는 것은 친밀감과 연대감을 나타내는 애칭이다.

13. 여인의 사랑에는 포도주, 향품, 꿀, 젖, 향기가 진동한다. 남자의 사랑에는 무엇이 있었을까?

    포도주, 향기름(1:2-3): 남자를 향한 여인의 찬양에 대한 남자의 응답송인 셈이다. 아무래도 남자가 여자를 향한 내용이 더 풍부할 수밖에 없다. 아마 진도(?)를 더 많이 나가서 그럴지도!

14. 신부의 입술에 떨어지는 꿀 방울이나 혀 밑에 있는 꿀과 젖이 무엇을 의미할까(2가지의 가능성이 있다)?

    입맞춤과 사랑의 밀어: 입술은 관능적이기도 하고 영적이기도 한 묘한 기관이다. 입술(또는 입)이 성적인 기관인 동시에 입에서 나오는 말이 사람을 죽이기도 하고 살리기도 하기 때문이다. 말 한 마디가 죽을 사람을 살려놓기도 한다.

15. 잠근 동산, 덮은 우물, 봉한 샘의 공통점은 무엇인가?

    외부인에게 접근을 허락하지 않는다: 신부의 순결함을 의미한다. 부부의 사랑은 그 누구와도 공유할 수 없으며 독점적이며(잠 5:15) 의무적이다(고전 7:3-4). 성적으로 많이 개방된 사회에 살고 있지만 진정한 사랑은 아무에게나 개방된 것이 아니다. 부부가 영육간에 순결을 지켜나갈 때 누릴 수 있는 즐거움(13-14)은 함부로 개방된 즐거움에 비할 바가 아니다.

16. 잠근 동산에는 무슨 열매가 이렇게 많이 나는가?

    온전한 사랑에는 세상이 줄 수 없는 기쁨이 있다. 아무리 많은 재산이나 명예나 지위가 있어도 누릴 수 없는 기쁨이 잠근 동산에는 있다. 그리스도인에게 있는 세상이 알 수 없는 기쁨과 평화도 바로 그런 것이다.

17. 고요한 동산이 낫지 북풍이 불고 남풍이 불어야 하나?

    그래야 풍성한 열매를 맺는다: 북풍은 찬 바람이고 남풍은 더운 바람이다. 이런 바람이 교대로 불어줘야 나무가 제대로 성장하고 열매를 많이 맺는 법이다. 찬 바람이 차서 싫고, 더운 바람은 더워서 싫다? 그러면 열매를 제대로 맺기 어렵다.

18. 16절을 조금 분명하게 고친다면 ‘북풍아, 남풍아 나의 동산에 불어 향기를 날리라 그래서 나의 사랑하는 자가 그의 동산에 들어가서 그의 열매를 먹게하라’고 할 수 있다. 누구의 동산이며 누구의 열매인가?

    그녀의 동산인 동시에 그의 동산이며 그녀의 열매인 동시에 그의 열매다: 동산이나 동산의 열매가 신부의 몸을 은유하는 것이기에 첫날밤의 신부의 몸은 신부의 것이면서 동시에 신랑의 것이다. 나는 그의 것이라는 고백(2:16)과 다름 아니다.

19. 4장은 온통 신부의 아름다움에 대한 찬양일색이다. 그 다음 순서는 뭘까?

    합방: 신부가 신랑을 초청하여(16) 남편이 정원에 들어가 먹고 마신다(5:1).

[ 5:1 ]

20. 5:1절은 아무래도 내용을 둘로 나누어야 할 모양이다. 앞 부분을 4장의 결론으로 삼는다면 무슨 내용일까?

    첫날밤을 지낸 느낌: 4장에서 신부의 몸을 찬양(4:1-5, 12-15)하고 신부와 한 몸이 되고 싶어했는데(4:6-8) 드디어 한 몸이 된 것이다. 뒷 부분은 다음날의 잔치를 가리키는데 이런 혼인 잔치는 언약의 확증이라는 의미와 하나 된 기쁨을 누리는 것이다.

21. 결혼한 것이 얼마나 흡족했는지 배부르게 먹은 것으로 묘사하고 있다. 우리말로는 어색해서 몇 개를 생략했지만 그가 즐긴 모든 것에는 ‘나의’라는 소유격이 빠짐없이 붙어 있다. 왜 이렇게 강조하는 걸까?

    부부의 사랑은 배타적이다: 모든 것이 나의 것이라는 말이다. 원래는 나의 것이 아니었던 것도 이제는 나의 것이다. 신부의 몸도 신부의 것이 아니라 신랑의 것이다(고전 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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