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가 1장 |
8-11절 뿐이다. 아가서 전체를 보아도 솔로몬이 부른 부분은 적다: 솔로몬의 전도서는 전부 솔로몬의 말이지만 솔로몬의 아가서는 대부분이 술람미 여인이 부른 노래다. 아가서에서는 솔로몬이 노래의 대상이 된 경우가 더 많다. 2. 사랑하는 사람끼리 주고받는 고백(남녀상열지사)이야 흔해 빠진 것인데 솔로몬의 아가는 왜 성경, 즉 하나님의 말씀인가? 하나님과 그 백성의 관계를 부부관계에 비유하거나 남녀간의 사랑에 비유한 탓이다. 남녀간의 사랑에서 유발되는 질투와 유사하게 하나님은 질투하시는 하나님이라고 하셨다. 하나님을 저버린 행위를 음행이라고 하셨다. 솔로몬이 사랑하는 사람과 나눈 사랑의 노래가 결국은 하나님과 그 백성의 사랑을 예시하는 셈이다(엡 5:22-23, 사 54:5, 계 19:7-8, 21:1-2). 결혼이 자녀출산을 위한 수단이나 신분을 과시하기 위한 수단처럼 여겨졌던 그 옛날에 온전한 사랑을 노래한 것은 예사로운 일이 아니다. 3. 처음 나오는 여자의 고백은 어디서 어디까지인가? 2-7(네, 너를 당신으로 바꾸어 읽어보면 쉽다): 여자가 아주 적극적이다. 남자의 사랑에 대한 확신이 전제되어 있기 때문에 이럴 수 있다! 성도는 하나님의 사랑에 확신을 품고 당당하게 하나님께 나아가기를 하나님께서 원하신다는 사실을 잊지 말자. 평생을 죽을 죄인처럼 살아서는 안 된다. 왕이 한번 불러주기를 고대하며 왕궁에서 처녀로 늙어가는 여자가 얼마나 많았던가? 솔로몬의 왕궁에도 그런 처녀들이 얼마나 많았을까? 왕이 불러주는 것이 그야말로 ‘성은’이다. 그런데 그것은 사랑이 아니다. 아가서의 사랑은 전혀 그런 의미가 아니다. 4. 연애편지를 쓴다면 누가 ‘내게 입 맞추기를 원합니다’ 이럴까? 또, ‘당신의 사랑이 포도주보다 낫습니다’ 이럴까? 원문이 시의 형태를 띠고 있으니 2절만이라도 연애편지 형식으로 바꾸어 보자. 그게 분위기를 파악하는데 유리하다. ‘그리운 당신의 입술, 포도주보다 더 달콤한 그대의 사랑’ 이게 더 낫다. 아가서는 이런 식으로 번역하는 것이 자연스럽지만 우리 사회의 분위기가 성경의 분위기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아가서를 그렇게 이해하고 읽어가자. 원문상으로는 그냥 입맞춤이 아니라 입술의 입맞춤이다. 존경이나 인사의 의미가 아니라 이성간의 관능적인 의미다. 5. 이름이 향기롭다(3)? 이름이 무엇이길래 그럴까? 이름은 존재의 전부를 의미한다: 김춘수 시인의 ‘꽃’을 보라.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냥 단순한 몸짓이었을 뿐이다. 이름을 불렀을 때에 비로소 의미있는 존재가 된다. 그런데 그 이름이 쏟은 향기름(향수)처럼 향기롭다는 것은 그 분이 귀한 존재이며 주변의 모든 사람에게 황홀감과 행복을 주는 존재라는 것이다. 6. 4절의 원문상 첫 단어는 ‘나를 이끄소서’다. 그러면 술람미 여인이 기쁘게 이끌려 가리라는 것이다. 그런데 웬 우리? 뒤에 나오는 예루살렘 처녀들(5), 다시 말해서 술람미와 솔로몬의 사랑을 기뻐하는 친구들일 것이다. 신혼여행 가는 신랑 신부를 끝까지 따라가는 친구들도 있더라. 노래하는 사람에 따라 4절을 다시 분류하면 다음과 같다: ‘(술람미 여인) 나를 이끄소서 왕이 나를 그의 방으로 이끄시는 대로 가리이다/(친구들) 우리가 너를 따라 달려가리라 우리가 너로 말미암아 기뻐하며 즐거워하리니 네 사랑이 포도주보다 더 진함이라 /(술람미 여인) 처녀들이 당신을 사랑함이 마땅하니라’. 노래하는 사람의 뒤에서 코러스를 넣는 셈이다. 7. 사랑의 위기는 외부에서 오는 수도 있지만 내부에서도 올 수 있다. 자신을 사랑하지 못하거나 자신에 대한 자신감이 없으면 남을 사랑할 수 없다. 이 여인에게 위기가 있을 수 있다면 무엇인가? 자신의 외모(5-7): 화려하게 치장은커녕 햇볕에 그을러 거무스름하다. 그렇다고 열등감이라고는 전혀 없다. 검으나 아름답단다. 게달이나 솔로몬은 당대 최고의 능력자였다. 있는 모습 그대로 당당한 것이 진정한 사랑을 나눌 수 있는 바탕이다. 성도는 하나님 앞에 당당하게 나아가는가? 아니면 날마다 죽을 죄인으로 징징거리기만 하는가? 그리스도에 대한 변함없는 확신 가운데 거하는 것이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가지는 비결이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 그리스도께서 희생이 되셨다. 8. 게달은 이스마엘의 차남이다(창 25:13). 주로 유목 생활을 했는데 이들의 장막은 암갈색 혹은 검정색 염소가죽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그러면 솔로몬의 휘장은 무엇인가? 왕의 외부 행사 때 사용하는 장막을 가리킨다: 정말 대단한 자부심이다. 혹시나 임금의 성은을 입지는 않을까 기대하는 그런 장면과는 전혀 다르다. 9. 아가서에는 이 여인의 아버지는 언급되지 않는다. 아마도 아버지가 계시지 않았던 모양이다. 이런 가정에서 내 어머니의 아들들이라면 아버지 역할을 대신하는 오빠들이다. 이들에게 술람미 여인은 어떤 동생이었을까? 화를 내서 일을 시켜야 했을 정도(6): 형제간에야 원래 그러려니 할 수도 있지만 술람미 여인이 완벽한 사람은 아니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어머니의 아들들이란 표현이 반드시 이복형제를 뜻하는 말은 아니란다(참고 삿 8:19). 10. 에스더의 경우를 보면 남편이라도 함부로 그 앞에 가지 못했다. 술람미의 경우는 어떤가? 사랑에 대한 확신을 바탕으로 남자가 일하는 양 떼들이 있는 곳으로 적극적으로 찾으러 간다. 성경의 전체 맥락에서 보면 참으로 특이한 예다. 하나님은 죽자고 자기 백성을 찾아다니고 이스라엘은 엉뚱한 곳에서 헤매고 다닌다. 사랑하는 자기 백성이 적극적으로 자신을 찾아주는 것이 얼마나 감격스러울까? 11. 사랑하는 자를 찾아갔는데 왜 ‘네 친구의 양 떼 곁’에 있으면 안 되는가? 사랑하는 사람이 아닌 다른 사람의 곁에 있다는 것은 사랑하는 사람을 찾지 못했다는 말이 된다. 사랑하는 사람을 찾으려고 이 사람 저 사람을 기웃거리다가 행실이 나쁜 사람으로 오인을 받아 수치를 당하지 않도록 해달라는 것이다. 12. 만날 곳을 가르쳐 달라는 여인의 요구에 남자는 어떻게 응답하는가? 최선의 응답을 한 셈: 여인 중에 어여쁜 자라고 하면서 엉뚱한 대답을 하거나 답을 하지 않았을 리가 없다. 주소나 특정한 지형지물이 없는 경우에 가장 알맞은 답이 양 떼의 발자취를 따라오는 것이며 혼자서 온다면 다른 사람들이 알 것이니 염소 떼를 몰고 오라고 하는 셈이다. 목동들에게는 가장 알맞은 답이었을 것이다. 13. 여인의 고백에 이은 남자의 고백은 어디서 어디까지인가? 8-11: 11절은 남자가 포함된 예루살렘의 여자들(합창단)일 것이다. 이런 점을 감안해 보면 아가서는 칸타타처럼 여러 종류의 사람이 부르는 노래인 셈이다. 14. 이 여인의 아름다움을 ‘바로의 준마’로 비유하였지만 원어상으로는 준마가 아니라 ‘암말’이다. 그러면 어떤 이미지가 강한가? 아름다운 장식미: 10-11절에서 화려한 장식을 언급하는 것을 보면 가장 아름답게 장식된 모습을 묘사하는 것으로 보인다. 15. 여자가 긴 머리털을 지닌 것이나 목걸이를 지닌 것이 뭐 그리 대단하다고? 바로의 준마(암말)라고 한 비유의 연장선이다. 멋진 말은 갈기(목에서 등으로 흘러내린 털)와 목에 두른 장식이 백미다. 그 아름다운 모습에 은을 박은 금사슬을 두르게 하고 싶다.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좋은 것을 주고 싶은 법이다. 16. 사랑하는 여인의 칭찬만큼 남자들에게 좋은 약은 없다. 바로의 준마같은 여인이 남자를 무엇에 비유하는가(13-14)? 몰약 향주머니(향기), 고벨화 송이(향기): 한 마디로 아름답다는 말인데 남녀의 모습이 바뀐 것 아냐? 반면에 자신은 아주 평범한 여인이라고 한다(2:1). 이런 점이 중요하다. 나도 당신한테 어울릴만큼 아름답잖아? 이러면 재미가 없다. 서로 상대방을 존중하고 존경하는 것이 사랑의 기본이다. ‘내 품 가운데 몰약 향주머니’는 여인들이 향내 나는 몰약을 가슴에 달고 다닌 것을 염두에 둔 표현이다. 사랑하는 사람을 그렇게 가슴에 품고 싶은 욕망을 표현한 것으로 이해하기도 한단다. 17. 15-16절은 서로가 아름답다고 칭찬하고 있는 내용이다. 그러다 함께 노래한다(16b-17). 개정개역 번역으로는 남자말인지, 여자말인지 분간이 잘 안 된다. 어느 말을 ‘멋 있어라, 나를 이렇게 황홀하게 하시는 그대!’ 라고 번역할 수 있을까? 16절의 ‘너는 어여쁘고 화창하다’: 이렇게 좀 구분을 해주면 어떨까 싶은데 번역자들이 고민이 많은 모양이다. 의미가 명확하게 구분이 잘 안 되는 탓일 것이다. 18. 어여쁘고 어여쁜 여인은 눈이 비둘기 같단다(15). 비둘기가 평화의 상징이나 순결을 상징한다는 것은 아무래도 현대의 우리 기준일테고... 2:14절과 4:9절에서 비둘기의 의미를 생각해 보자. 고고함, 높은 절개(2:14), 치명적인 매력(4:9): 아마도 매력적으로 화장한 눈을 가리키는 것이라고 추정하기도 한다. 예후를 유혹하기 위해서 이세벨이 자기 눈을 그린 것이나(왕하 9:30), 애굽트의 호루스 부조에는 이런 눈이 등장하는 것을 참고하면 되겠다. 참고로 비둘기를 히브리어로 요나라 한다. 19. 이렇게 사랑하는 사람과 침상에 함께 앉았으니 얼마나 좋을까? 무슨 일이 있을지 얘기하면 안 되지! 그건 상상에 맡기고 그 대신 무엇을 노래하는가? (아름다운) 분위기: 침상은 푸른 초장, 혹은 푸른 숲과 같고 집은 최상의 재료로 지은 아름답고 영광스러운 궁궐을 연상케 한다. 20. 이 여인은 1장에서 어떤 신분으로 나타나는가? 왕의 여인(4), 포도원지기(6), 목동(8): 이렇게 다양한 신분으로 나타나는 것은 아무래도 현실이라기보다는 상징적인 표현일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