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5 장


< 로마서 요약 >

         제 1 부 하나님의 의의 계시/1:1-8:39
      Ⅰ. 문안과 하나님의 의/1:1-17
      Ⅱ. 죄론(하나님의 의의 필요성)/1:18-3:20
      Ⅲ. 칭의론/3:21-5:21
         1.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 3:21-31
         2. 아브라함을 통한 의의 예증/ 4:1-25 (행위, 할례, 율법, 믿음)
         3. 의의 결과/ 5:1-11 (하나님과 화평, 환난 중에 기쁨, 하나님의 진노에서 구원)
         4. 의와 정죄의 대조/ 5:12-21

      Ⅳ 성화/6:1-8:39
      (다음에 계속)

1. '믿음으로 의롭다(1)'는 것을 4:4-8에서는 '일하지 않고 삯을 받은 것'으로 묘사했다. 본문에서는 또 어떻게 다르게 표현하는가?

    그 피를 인하여 의롭다 하심을 얻었다(5:9); 아무 피가 아니라 '그' 피이다. 믿음으로 구원을 얻었다는 것은 우리가 아무 일을 하지 않았다는 뜻이며 동시에 다른 분이 우리 대신 일을 해주셨다는 것이다. 그 일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피를 흘린 것이다.

2. 의롭게 된 자의 가장 큰 특징은 무엇인가? 또 무슨 소망을 가지게 되었는가?

    즐거워하는 것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는 것, 1, 2, 11)); 사형선고를 받고 죽을 날을 기다리던 죄수가 무죄로 석방되어 나왔다고 생각해 보라. 이보다 더한 기쁨이 있을까? 그렇게 기뻐 날뛰다가 나를 위해서 대신 죽은 분이 있다는 것을 깨달으면 슬퍼질까? 숙연해지고 눈물이 나도록 고마울 것이다. 그러나 기본적인 기쁨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믿음으로 구원받은 성도의 가장 큰 특징은 어떤 어려움에도 굴하지 않는 참된 기쁨을 누리는 것이다. 더구나 신분이 변하여 하나님과 친한 사이가 되었다! 성도는 하나님과 친한 사이이다. 단번에 드린 제사의 위력이다.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는 소망; 비록 이 땅에서 형편없는 모양으로 살고 있다해도 장차 우리가 누릴 모습은 하나님의 영광스런 모습이다. 현실을 초월하는 장래의 소망이 우리에게 있다.

3. 진주는 진주조개의 몸 속에 생긴 상처에서 생긴다던가? 조개에게는 괴로움이겠지만 그것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영롱한 보석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가시밭의 백합화는 가시에 찔릴 때마다 향기를 토한다던가?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는 성도는 환란을 통해서 어떤 결과를 가져오기에 환란도 즐거워해야 하는가?

    소망을 이룸(3); 하나님의 영광스런 모습에 이르는 그 소망을 이루는 과정이라면 환란이 어찌 즐겁지 않으랴! 아무런 어려움도 힘든 과정도 없이 평온한 삶을 사는 것이 인생의 목적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힘으로 어려움을 극복하며 살아갈 때 진주보다 더 아름다운 소망을 이루는 것이다. 스스로 이런 어려움을 즐기며 살자. 하나님없는 자의 고통은 더 이상 바랄 것이 없기에 더 고통스런 것이다.

4. 자신의 주군, 왕건을 위해 목숨을 버린 신숭겸 장군과 자신의 부하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린 강재구 소령 중에 누가 더 위대한 사람인가?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을 이들의 죽음과 비교하면 어떨까?

    막상막하이겠지만 신숭겸 장군 쪽에 더 무게가 있지 않을까?; 강재구 소령은 부하들을 훈련시키다가 실수로 수류탄이 뒤로 빠진 경우인데 이 때 자신이 피하고 부하들이 여럿 죽었다면 자신도 정상적인 삶은 불가능하다. 죽음으로 오히려 실수를 덮어버린 셈이다. 몸으로 덮지 않고 축구공처럼 차버렸다면 어떻게 됐을까? 비록 실수로 인한 사고였지만 자신의 몸을 던져 여러 사람을 구해낸 것은 치하받을 일임에는 틀림없다.

    예수 그리스도는 그래야할 마땅한 이유가 없음에도 자신을 희생시킨 점이 다르다. 의인이나 주군을 위함 죽음이 아니라 죄인들을 위한 죽음이기에 더욱 감격스럽다. 동기면에서도 순간적으로 일어난 일이 아니라 오래 전에 계획된 일이었다. 영향력에 있어서도 비교가 되지 않는다.

5. 그리스도께서 죽으심은 우리를 하나님과 화목되게 하셨다(10). 그러면 그 분의 살아나심은 우리에게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가?

    구원을 얻을 것(10); 우리도 다시 살아날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죽으실 때 죽을 수밖에 없는 우리 육신도 함께 죽고(갈 5:24)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신 그 때에 우리도 함께 부활한 것이다(롬 6:3-5).

6. 다시 정리해보자(1-11). 하나님께서 1) 우리를 구원하시게 된 동기는 무엇이며? 2) 어떻게 이 일을 이루셨으며? 3) 우리는 어떻게 해서 이 일에 동참하는가? 4) 그 결과는 무엇인가?

    1) 우리에 대한 사랑(8)
    2) 아들의 피를 흘림으로(10)
    3) 믿음으로(1)
    4) 하나님과 화목(10)하고 즐거움을 누림

< 12-21 >

7. 바울은 아담의 이야기를 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다. 아담의 이야기를 해도 그것은 아담의 이야기가 아니다.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12)' 이것도 바울이 말하려는 핵심이 아니다. 그러면 바울이 말하고 싶은 것은 누구의 무슨 이야기인가?

    예수 그리스도의 이야기, 한 사람의 순종하심으로 많은 사람이 의인이 되리라(19);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을 말하기 위해서 대조적인 아담을 예로 들었을 뿐이다.

8. 아담과 예수는 어떤 점에서 같으며 어떤 점에서 다른가?

    같은 점; 모든 사람의 대표(한 사람의 행위가 모든 인류에 미침), 시조, 선구자
    다른 점; 한 사람은 범죄한 대표(죽게하고, 심판→정죄, 사망이 왕노릇),
    한 사람은 선한 대표(살게하고, 은혜→의롭다, 생명안에서 왕노릇)

9. 어린 아이는 잘못인 줄도 모르고 반복해서 잘못을 저지른다. 아이들의 실수나 잘못은 오히려 귀엽고 재미있다. 재미있다고 내버려두면 좋지 못한 버릇이 몸에 배일 수도 있다. 이럴 때 부모의 야단이나 가르침을 통해서 아이들은 옳고 그름을 배운다. 구원역사에서 부모의 야단이나 가르침과 같은 역할을 맡은 것이 무엇인가?

    율법(13); 율법 자체가 사람을 선하게 만들 능력을 가진 것이 아니라 무엇이 죄인지 아닌지 가르쳐 주는 역할을 했다.

10. 아담으로부터 모세까지 아담의 범죄와 같은 죄를 짓지 아니한 자들 위에도 사망이 왕노릇하였다(14)는 말은 이들도 죄인이라는 말이다. '아담의 범죄와 같은 죄를 짓지 아니한 자들'이란 어떤 사람을 가리키는 말일까? 왜 하필이면 모세까지일까?

    아담처럼 하나님께 범죄하지는 않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사람들에게 죄를 지은 적은 있지만 하나님께 죄짓지는 않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다. 언제 하나님을 봤어야 하나님께 죄를 짓지? 하나님과 전혀 상관없이 지냈기 때문에 하나님께 범죄하지 않았다고 주장하는 그들에게도 사망이 왔다는 것은 비록 율법이 주어지지 않았다 해도 하나님께 범죄한 인생이었다는 뜻이다.

    율법이 모세를 통해서 주어졌기 때문이다.

11. 아담의 범죄로 인하여 모든 사람에게 사망이 임하였다면서 아담을 오실 자의 표상이라고 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아담이 모든 사람에게 사망이 임하게 한 것처럼 그리스도는 모든 사람에게 생명을 주실 것이다.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 (고전 15:22).

12. 다음 구절은 복잡해서 읽기가 쉽지 않다. 어느 한 부분에 괄호를 치면 읽기 쉽다. 어디에 괄호를 붙이면 좋을까?

    그러나 이 은사는 그 범죄와 같지 아니하니 곧 한 사람의 범죄를 인하여 많은 사람이 죽었은즉 더욱 하나님의 은혜와 또는 한 사람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말미암은 선물이 많은 사람에게 넘쳤으리라(15)

    은혜와 다음, 선물이 앞에

13. 하나님의 은사는 그 범죄와 같지 아니하고(15), 하나님의 선물은 범죄한 한 사람으로 말미암은 것과 같지 아니하다(16)고 한다. 하나님의 은사는 아담의 범죄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더 큰 영향력을 가지고 있다는 말이다. 어떻게 그런가?

    심판은 한 사람을 인하여 정죄에 이르렀으나 은사는 많은 범죄를 인하여 의롭다 하심에 이름이니라(16); 한 사람이 어지럽힌 것을 치우려면 여러 사람의 손이 필요하다. 아담이 망쳐놓은 것을 바르게 고치려는 것이 훨씬 어려운 일임은 자명하다. 아담으로 말미암은 정죄보다는 모든 사람의 범죄를 의롭다 함에 이르게 하는 일이 훨씬 더 어려운 일이다. 16절의 '많은 범죄를 인하여'라는 표현은 '많은 범죄를,' 혹은 '많은 범죄로부터' 로 고치는 것이 이해하기 쉽다.

14. 18절에 두 번 나오는 '많은 사람은' 원문상으로 '모든(παντα) 사람'이다. 15, 19절의 많은 사람도 내용상으로는 모든 사람을 가리키는 말로 보는 것이 자연스럽다. 그렇다면 아담의 범죄로 인하여 예외없이 모든 사람이 죽음에 이른 것처럼 하나님의 선물에서 제외된 사람이 하나도 없다는 뜻일까?

    여기서 강조점은 모든 사람이 아니라 의로워졌다는 데에 있다. 의로워질 수 있는 길이 모든 사람에게 열렸다는 것이다. 모든 사람이 저절로 구원을 받게된다는 것이 주안점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놀라운 선물을 주셨으니 그것을 믿고 받아들이는 자에게는 누구에게나 주어지는 것이라고 성경이 분명히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요 3:16).

15. 바울이 말하려는 것은 죄나 율법의 역할이 아니다. '율법이 가입한 것은 범죄를 더하게 하려 함이라(20)'는 표현은 '율법이 없을 때에는 죄를 죄로 여기지 아니하느니라(13)'는 표현의 강조어법일 것이다. 율법으로 말미암아 모든 죄가 죄로 드러나는 것일 뿐이다. 본론을 말하기 전에 언급하는 서론에 너무 관심을 깊이 가질 필요가 없다. 바울이 진짜 말하고 싶은 것을 한 마디로 무엇이라고 표현하고 있는가?

    이 은사(15); 이 은사를 설명하려고 변죽을 울리고 있었다. 그래서 율법의 성격에 대해서 좀 과한 표현이 있더라도 이해할 수 있어야한다. 은혜와 선물도 같은 의미이겠지만 은사가 가장 먼저 사용되었다.

16. 아담은 귀가 솔겠다. 한번 잘못했다고 말끝마다 자기 얘기니 말이다. 본문에만 아담의 귀를 솔게 만드는 표현이 몇 번인가? 잘못을 이렇게 반복해서 지적해도 문제가 없을까?

    7번 (12, 14, 15, 16, 17, 18, 19); 아이들을 가르치는 경우에 한번 잘못을 계속해서 비난하는 것은 성격을 망쳐버릴 위험이 있다. 따끔하게 한 번으로 끝내야한다. 여기서는 아담을 비난하려는 것이 아니라 아담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일이 이렇게 되었으니 대조적인 두 번째 아담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놀라운 은혜가 임할 것을 확신시키려는 것이다.

17. 다음 빈 곳에 알맞은 대조적인 표현들을 본문에 있는 것으로 찾아보자. (본문에 없는 것도 하나 있음)

    1) 아담은 표상(대표적인 상징) ↔ 예수 그리스도는 실체 (14)
    2) 아담의 범죄 ↔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 (14)
    3) 선물 ↔ 심판(16)
    4) 정죄 ↔ 의롭다 하심(16)
    5) 사망이 왕 노릇 ↔ 은혜와 의의 선물을 넘치게 받는 자들이 왕 노릇(17)
    6) 한 사람의 순종치 아니함으로 많은 사람이 죄인 됨 ↔ 한 사람의 순종하심으로 많은 사람이 의인이 됨(19)
    7) 죄가 사망 안에서 왕 노릇 ↔ 은혜는 생명 안에서 왕 노릇하여(21,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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