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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 부 하나님의 의의 계시/1:1-8:39 1. 사실일지라도 서로가 말하고 싶지 않은 아픔이나 슬픔은 있는 법이다. 해결할 수 없는 아픔은 속짐작만 하지 드러내지 않는 것이 서로 위하는 경우가 되기도 한다. 바울은 지금까지 잔인하다 싶을 정도로 인간의 죄성을 까발겨 놓았다. 대책없이 그렇게 하지는 않았다. 무슨 대책이 있는가? 율법의 의가 아닌 하나님의 의가 나타났기 때문이다; 전혀 대책이 없으면 암환자에게 자신의 병이 암이라고 알려주지 않는다. 어느 정도 마음의 준비가 되었거나 이겨낼만한 의지가 있다고 보여지면 알려주어서 대처하도록 하기도 한다. 하나님의 새로운 의를 통하여 인간의 죄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인간의 문제점들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것이다. 아무 해결책이 없으면 이웃의 흠을 들추어내지 말지어다. 2. 유대인들은 율법에 따라 하나님을 섬기고 제사를 지내며 각종 절기를 지켰다. 선지자들의 말을 듣기도 하고 배척하기도 했다. 그 모든 일들이 자체적으로 무슨 신통력을 지닌 것이 아니라 ( )를 가리키는 것이기 때문에 효력이 있었다. 그런 예를 한 가지라도 들어보라. 예수; 제사의 희생제물은 예수의 희생을 가리키는 것이며 유월절에 뿌린 피도 예수의 피이다. 안식일도 예수의 희생으로 말미암아 주어질 영원한 안식을 예표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아브라함이 예수 보기를 심히 원하다가 보고 기뻐하였다(요 8:56). 구약에서 예수님을 발견하지 못한다면 구약은 무용지물이다. 예수를 믿지 않고 구약을 경전으로 받드는 유대인들은 사실은 오리무중 속에서 헤매는 셈이다. 가령, 창 3:15절의 의미를 유대인들은 도무지 이해하지 못한다. 3. 차별이 없다는 것은 이전에는 차별이 있었다는 말인데? 율법은 유대인들에게만 주어졌고, 유대인들은 이방인들을 사람취급도 하지 않았다. 이제 복음 안에서 유대인과 이방인의 차별이 없어졌다는 말이다. 유대인과 이방인의 차별이 없어졌다는 것은 흑인노예와 백인주인 만큼의 차별이 없어졌다는 셈인데, 우리 주변을 돌아보자. 이런 차별이, 적어도 교회 안에서는 완전히 사라졌는지. 빈부의 차이, 교육받은 정도의 차이... 이런 차별이 존재한다면 그것은 우리가 복음에 합당한 생활을 누리지 못하고 있는 증거이다. 4. 일을 열심히 하면 월급을 준다. 너무나 당연한 말이다. 일하지 않아도 월급을 주겠으니 회사에 들어오기만 하라면 들어갈까? 말까? 이 질문은 어느 구절과 관련이 있는가?
22절의 '믿음으로', 혹은 24절의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와 관련. 5. 얼마 잃었는지 아는 사람은 그리 많은 것을 잃은 사람이 아니다. 정작 많은 것을 잃어버린 사람은 자신이 무엇을 얼마나 잃어버렸는지 모르는 사람이다. 원래 우리는 영원한 행복을 누리는 존재로 만들어졌다. 이것을 잊어버린 채 길어야 100년도 못되는 찰나의 행복에 온갖 정열을 다 쏟고 있다. 죄라는 것이 우리에게 빼앗아 가버린, 우리가 알지도 못한 채 잃어버린 엄청난 것을 본문은 무엇이라고 표현하는가? 하나님의 영광; 노름꾼이 돈을 얼마 잃었다고 속상해하고 있을 때 정작 잃어버린 것은 돈으로 계산할 수 없는 건강, 명예, 가족의 사랑일 것이다. 정작 우리가 잃어버린 가장 소중한 것은 낙원이요, 하나님이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영광이다. 6. 救贖을 拘束으로 잘못 읽는 사람이 의외로 많다. 구속의 뜻이 무엇인가? 값을 주고 구하여 낸다; 7. 값없이 얻은 것은 보통 싸구려가 많은데 우리가 거저 받은 것은 어떤가?
값을 지불할 능력이 없는 우리 입장에서 값없는 것이지 실제로 가장 비싼 것을 얻기 위해서 가장 비싼 값을 치루었다. 그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이다. 구원은 결코 값싼 싸구려가 아니다.
엄청난 댓가를 지불한 것이며 아무에게나 마구 던지는 것도 아니다. 그런 의미에서 본인의 의사와 상관없이 모든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라는 사상은 성경적이지 않다.
하나님의 이 큰 복은 '어린아이처럼 믿는 모든 자'에게 거저 주어지는 것이다. 8. 다투고 화해하기를 바라는 사람들이 흔히 하는 말이 '술 한 잔하자'는 말이다. 한 잔하면서 헛소리를 좀 하고 나면 감정이 풀린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에게 어떻게 화해를 청하셨는가? 독생자 예수가 대신 죽었으니 믿겠느냐고 물으신다; 예수를 화목제물로 삼으셨다(25). 9. 본문에 구약 성경을 가리키는 말이 있다면 무엇인가? 율법과 선지자(21); 하나님께서 친히 주신 것(율법)과 선지자들을 통해서 주신 것을 뜻하는 말이다. 율법과 선지자의 증거란 말은 구약 성경의 최종 목표가 예수 그리스도라는 것이다. 즉 오실 메시야에 대해서 증거하는 것이 구약 성경이다. 10.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기를 원하신다면 그냥 용서하고 없던 일로 하면 간단할텐데 왜 예수 그리스도가 죽어야하는가? 의로우심 때문이다. 하나님 자신이 의로울뿐만 아니라 우리도 의로운 존재로 만드셨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의로운 존재로 만드셨기 때문에 그 신분에 맞는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해야한다. 깡패는 주먹으로 문제를 해결하지만 대학교수는 부부싸움도 토론과 논리로 한다. 사람을 하나님과 대등한 인격으로 만들어 교제를 원하셨기 때문에 그냥 아무렇게 용서하지 못한다. 공의로우신 분이시기 때문에 인간의 체면을 세우시려는 것이다. 체면대 체면이 마주치듯이 인격과 인격의 만남으로 해결하시려는 것이다. 그냥 간단히 부수고 새로 만드는 그런 관계가 아니기 때문이다.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들은 함부로 관계가 손상되지도 않지만 한번 손상을 입으면 쉽게 복원되는 것이 아니라 어려운 과정을 거쳐야한다. 11. 하나님은 의로우신 분이셔서 죄를 그냥 눈감아 주는 법은 없다. 그런데 어떻게 '전에 지은 죄를 간과(25)'하시는가? 看過란 깊이 관심을 두지 않고 대강 보아 넘긴다는 말이니 흔히 하는 말로 '눈감아 주시는 것' 아닌가? 화목제물없이 눈감아주면 의롭지 못하지만 화목제물을 보고 눈을 감는 것이기 때문에 용서받은 우리의 입장에서 볼 때 '눈감아 준 것'이지 하나님의 입장에서는 눈감아 준 것이 결코 아니다. 이것을 위하여 길이 참으셨음도 잊지 말자. 12. 행위로 의롭게 된다면 자신의 행위를 자랑할 수 있지만 믿음으로 구원을 얻으면 자랑할 수 없단다(27). '내가 믿었기 때문에 이렇게 구원을 얻었다'라고 자랑하면 안되나? 믿음으로 구원을 얻었다고 외친다면 이것은 '자랑'이 아니라 '감사'이다. '믿음으로'라는 말의 의미는 '구원을 얻을 만한 아무런 행위를 하지 않고'라는 뜻이다. 이 말을 다른 사람에게 한다면 자랑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이 말을 하나님께 할 수는 없으니 자랑할 데가 없는 것이다. 13. '하나님은 홀로 유대인의 하나님 뿐이시뇨 또 이방인의 하나님은 아니시뇨 진실로 이방인의 하나님도 되시느니라'(29) 이 문장에는 우리 말 어법으로 어색한 표현이 하나 들어있다. 자연스럽게 고쳐보자. 번역된 성경은 원문의 뜻을 훼손하지 않도록 주의하면서 자연스럽게 고칠 수 있다. 그것은 말씀에 더하거나 빼는 일이 아니다. 하나님은 홀로 유대인의 하나님 뿐이시뇨 → 하나님은 유대인만의 하나님이시뇨?; 선민 사상으로 무장된 유대인에게는 기절할 정도로 충격적인 말이다. 14. 왜 갑자기 하나님을 한 분이라고 강조할까? 30절에서 '하나님은 한 분'이라는 의미는 인원수를 의미하는 것보다는 다른 어떤 의미에 강조점이 있는 표현일까? 같은 하나님이란 뜻이다; We are an age. 이것은 '하나의 나이'가 아니라 '같은 나이'라는 말이다. 유대인이 섬기는 하나님이나 이방인이 섬기는 하나님은 별개의 다른 하나님이 아니다. 할례자나 무할례자를 의롭다고 하시는 분도 여전히 같은 분이시다. 그러므로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할례자나 무할례자나 다 같은 방식, 즉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 15. 우리는 더 이상 죄 용서를 받기 위하여 제사를 드리지 않는다. 그렇다면 제사를 드리라고하는 율법은 폐지되었는가?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를 위하여 돌아가셨다고 믿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제사 제물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는 것이다. 가장 훌륭한 제물을 드린 셈이다. 그래서 믿음이 율법을 굳게 세운다(3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