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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 문안과 하나님의 의/1:1-17 1. 1장에서 언급된 죄의 주인공은 하나님을 섬기지 않는 자이었다. 2장에 나타난 대상은 어떤 인물인가? 하나님을 섬긴다면서 범죄하는 자(스스로 선하다고 생각하는 사람) 2. 여기서 '남을 판단하는 사람'이 정확하게 누구인지 알기는 어렵지만 무언가를 안다고 생각하는 지식층, 지도층의 사람일 수도 있고, 이런 일을 습관적으로 하고 있던 유대인을 가리킬 수도 있다. 하나님을 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특히 주의해야할 점은 무엇인가? 남을 판단하기 전에 먼저 자신을 살피는 일이다; 남의 행위에 대한 판단이 자신을 판단하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가장 좋은 예가 나단이 찾아와서 비유를 들려주었을 때 다윗이 분개하면서 내린 판단이다(삼하 12장). 자기가 자기를 판단한다면 객관성이 떨어지지만 타인의 일인줄 알고 판단한 것이라면 타당성이 아주 높은 것이다. 3. 바울은 그의 복음은 전하기 위하여 인간의 죄악부터 설명하고 있다(1:18-3:20) 1장은 일반적인 사람들의 죄를 설명하고 있는 데 비하여 2장은 아마 유대인들의 죄를 지적하는 것 같다. 17절 이하의 대상이 유대인이라는 것은 확실하다. 그 앞 부분도 그렇게 말할 수 있는 근거가 어디에 있는가? 1) 축복이든 저주든 먼저 유대인에게(9-11) 4.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일은 누구나 해야되는 일 아닌가? 판단력이 흐려서 일을 그릇되게 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여기서 판단의 의미는 옳고 그름을 분별하는 것이 아니고 '구별하다' '정죄하다'는 의미이다. 저들은 하나님의 저주를 받은 인간이고 우리는 하나님의 선택을 입은 백성이라는 식으로 나쁜 선입견을 가지고 사람을 구별해서는 안된다는 의미이다. 우리가 택한 백성이라는 믿음을 가지는 것은 반드시 필요하지만 그것이 타인을 상대로 선택을 받았을까 못 받았을까를 따지는 것은 하나님의 심판을 초래할 만큼 무서운 것이다. 5. 자신이 지적하는 잘못과 똑같은 일을 자신도 하고 있다는 것을 알까? 아마 모를 것이다. 모르니까 계속하지! 사람이란 존재는 타인에 대하여 민감하고 자신에 대하여 둔하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자신은 하나님을 잘 섬기고 있다고 착각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하나님의 기준이 아닌 자신의 기준으로 판단하기 때문이다. 민주적인 언로가 차단된 대통령이 위험한 것이나 교인들의 말을 무조건 무시하는 목사가 큰 사고를 치는 것처럼 다른 사람의 말을 듣지 않는 상태가 되면 남은 것은 하나님의 심판뿐이다. 아내의 말을 전혀 듣지 않는 남편은 어떻게 될까? 6. 하나님은 오해를 받을만큼 인자하시다(4). 반면에 사람은? (對句법으로) 사람은 회개하지 않을 만큼 고집이 세다(5). 7. 예전에 어머니들은 자식에게 좋은 것을 먹이려고 일부러 생선의 꼬리와 머리통 부분을 좋아한다고 말했다. 이 아이가 어른이 되어서도 할머니는 여전히 머리통과 꼬리만 좋아한다고 하면서 생선의 몸통은 자기 자식에게만 준다면 얼마나 서운할까? 자식이 부모의 마음을 읽지 못하는 것이 바로 부모를 멸시하는 것이다. 남의 잘, 잘못을 판단할 능력이 있는 사람이 하나님을 멸시하게되는 경우가 왜 생길까?
하나님의 인자하심 때문에(4);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용납하심과 길이 참으심이 풍성한 것은 회개할 기회를 주기 위함이다. 하나님의 인자하심 때문에 회개할 기회가 있는 것인데,
심판이 즉시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에 자신의 행위가 정당한 것으로 오해될 수도 있다. 8. 전장에서 범죄한 인생에 대해서 하나님은 내어 버려두셨다. 2장에서는 어떻게 하시는가? 인내하심; 버려두신 것보다는 기대감을 갖고 계시지만 결국은 진노의 날이 임하실 것이다(5). 9. 사람들의 재판원리는 '법대로'이다. 하나님의 심판의 원리 두 가지는(1-10에서) 무엇인가?
진리대로(2); 사람의 법은 상황에 따라, 대상에 따라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耳懸鈴鼻懸鈴)인 경우가 많지만 하나님의 심판은 절대적인 기준에 따른 것이다. 10. 하나님은 행한대로 보응하신단다(6). 그렇다면 행위가 중요한 것 아닌가? 6절의 행함은 그 다음의 참고 선을 행하는 것과 일치하는 것이며 영광과 존귀와 썩지 아니함을 구하는 것과 일치(↔진리를 좇지 아니함)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행함'은 곧 하나님을 믿는 '믿음'을 가리키는 말이다. 즉, 우리가 행할 수 있는 가장 귀한 행함은 믿는 것이다(바울식의 표현). 우리의 믿음을 우리의 행위로 인정하는 것이다(야고보식 표현). 11. 진리를 좇지 않는 사람은 당을 지어 불의를 좇지 않는다(8절)고 말한다. 정당정치를 하지말라는 말인가? 영광과 존귀와 썩지 아니함을 구하는 것과 반대 개념 즉 무리를 지어 사리사욕을 추구함을 말한다. 정당정치와 관계없는 것이다. 12. 악을 행하는 자들에게는 환란과 곤고가 따르므로 잠간 좋은 일이 있어도 결국 인생은 괴로운 것이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의 얼굴 표정이 어둡다면 문제가 있다. 왜 그런가? 영광과 존귀와 평강을 소유할 사람들이 비록 어려운 일이 있다해도 표정까지 어두워질 수 없다. 그리스도인들은 이 땅에서도 평강을 누리는 삶을 살아야한다. 13. '첫째는 유대인에게요 또한 헬라인에게라'는 표현이 벌써 세 번째다(1:16; 2:9; 10). 유대인은 헬라인보다 더 자부심을 가져도 좋다는 말인가? 선을 행할 경우에는 상을 먼저 받지만 악을 행하면 벌도 먼저 받는다. 14. 하나님께서는 외모로 사람을 취하지 아니하신다. 구체적으로 신경쓰지 말아야할 외모란 무엇인가? 유대인이냐 헬라인이냐? 15. 2:1-16에서 언급하는 대상이 유대인일 수 있다는 증거는 무엇인가?
남을 판단하는 사람(1); 남을 판단하는 행위는 유대인의 특징이다. 성경대로 산다고 하는 사람이 자칫 잘못하면 이런 사람이 된다. 16. 위에서 언급한 점이 있다고 해서 이 본문이 유대인에게만 해당되는 말이 아니란 이유는 무엇인가? 헬라인에 대한 언급이 두 번, 율법없는 자에 대한 언급(14-15)도 있기 때문이다. 17.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율법이란 모세의 위대함만큼 위대하고 소중한 것인데 바울은 무엇이라고 하는가? 심판의 근거(12); 18. 교회를 다니지 않으며 하나님에 대하여 아는 바가 없어도 '이렇게 살아서는 안되겠구나'라고 느끼면서 그대로 산 사람을 가리키는 말은? 율법없이 본성으로 율법의 일을 행하는 이방인; 인간적인 기준으로 보면 선하지만 결국은 스스로 세운 기준을 스스로 지킬 수 없는 것이 인간이다. 바울의 요지는 아무도 율법의 요구를 벗어날 수 없으며 핑계하지 못한다는 것에 있다. 19. 사도 요한은 계시록을 기록하면서 첫 마디를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라고 말했다. 마태는 복음서를 기록하면서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라고 시작했다. 그런데 바울은 어떻게 '내 복음'이라고 말하는가(2:16, 16:25, 딤후 2:8)?
내가 '전한 복음'이란 뜻이다; 흔히 바울의 복음을 예수의 복음과 다른 것으로 이해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바울이 가르친 것이 예수의 가르침과 다른 것이 아니다.
바울이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 된 것같이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 되라 (고전 11:1)'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자신의 삶과 가르침이 예수님에게서 온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동시에 이 말은 자신의 사도직분에 대한 확신도 내포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