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15 장


< 로마서 요약 >

      제 1 부 하나님의 의의 계시/1:1-8:39
      제 2 부 하나님의 의에 대한 변론/9:1-11:36
      제 3 부 하나님의 의의 적용/12:1-16:27
         1. 하나님, 교회, 사회에 대한 의무/12:1-21
         2. 권세, 이웃에 대한 의무/ 13:1-14
         3. 자유의 원리/14:1-23
         4. 자유의 실천/ 15:1-13, 편지를 쓴 목적, 계획/15:14-33
         5. 맺는 말/ 16:1-27

1. 열렬히 연애하던 사람들도 결혼을 하면 전에는 보이지 않던 단점들이 하나, 둘 나타나기 시작하더니 급기야는 단점 투성이가 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사람이 어째 그 모양인가?'하면서 싸운다. 그런 사람인 줄 알지 못한 것이 자신이기 때문에 상대방을 원망하면 안된다. 서로에게 완벽한 상대를 만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결혼 전에야 지지고 볶더라도 일단 결혼했으면 상대방의 단점을 지적하고 고치려는 노력은 포기해야한다. 그러면 어떡하란 말인가?

    강한 자가 마땅히 연약한 자의 약점을 담당해야 한다(1); 상대방의 부족함을 발견하면 내가 보충해 주어야할 부분이라고 여겨야 한다. 그것을 비난하고 책망하는 것이 바로 자기를 기쁘게 하는 일이다. 아내나 남편을 무시하면서 자신을 우월한 존재로 여기는 것은 결혼할 자격이 없는 사람이다. 부부 사이에서 이런 훈련을 쌓아서 드디어 이웃에게까지 이런 여유를 보여줌으로 아름다운 그리스도의 공동체를 이루어 가는 것이다(2).

    자기 만족을 추구하지 말아야 한다(1); 결혼해서 싸우는 근본 원인도 따지고 보면 이기적인 자기사랑일 때가 많다. 사랑받을 자격이 없는 사람을 사랑하는 법을 배우는 것이 인생이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우리를 사랑하셨기 때문이다(3).

2. 이웃을 잘 만나는 것도 복이다. 말이 통하지 않는 이웃을 만나면 속에 천불이 나기도 하는 데 어떻게 '이웃을 기쁘게 하되 선을 이루고 덕을 세우도록' 한다는 말인가? 다른 이웃이라면 몰라도...

    그리스도께서 자기를 기쁘게 하지 아니하셨음을 믿는 믿음 위에서 가능한 일이다; 주님께서 받을 이유가 전혀 없는 온갖 비방을 다 받으셨음(3)을 기억하는 것이 유일한 방법이다.

3.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자신의 이익이나 기쁨을 위해서 노력한다. 그런 눈으로 보면 타인을 위해서 헌신적으로 봉사하는 사람도 그것이 자기를 기쁘게 하는 방법이기 때문이라고 평가절하하기도 한다. 결과적으로 그것이 봉사자에게 기쁨을 준다고 하더라도 그런 식으로 말해서는 안된다. 결과도 다르지만 기쁨의 질도 다르기 때문이다. 믿는 우리는 무엇을 위해서 노력해야할까? 당연히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겠지만 본문의 표현으로 말해보자.

    선을 이루고, 덕을 세우기 위하여(2); 법에 따라서 사는 사람은 '최소한 인간'이라고 할 수 있다. 인륜이나 양심에 어긋나지 않으면 '인간다운 인간'이라고 할 것이다. 그러나 성도는 그 정도를 넘어서야 한다. 법이나 사람의 도리를 따지기 전에 덕을 세우는 일인가를 먼저 따지는 정도는 돼야 '하나님의 백성'다운 것 아닌가! 최소한 그렇게 노력하는 정도는 돼야한다. 그렇게 살 수 있는 근거를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주셨다(5).

4. 전에 기록된 것은 우리에게 교훈은 주기 위함이다(4). 그러므로 구약 성경을 열심히 읽으면 무엇이 보일까?

    인내와 안위의 하나님(5), 소망의 하나님(13); 구약을 잘 안다고 하는 사람 중에는 구약에서 공의의 하나님을 발견한다고 한다. 그 말은 하나님이 두렵다는 뜻이다. 징계하시고 심판하시는 분으로만 인식하면 하나님이 두려울 수밖에 없다. 그러나 바울처럼 심판하시는 가운데서도 인내하시고 위로하기를 기뻐하시는 하나님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어야 한다. 쉽게 드러나지 않는 속 마음을 읽을 수 있는 사람은 진실로 행복한 사람이다.

5. 하나되기 위해서 해야 할 일은 '서로 받는 것'이다(7). '다른 사람은 몰라도 저런 인간은 형제로 삼을 수 없다!' 이런 말에 바울은 무엇이라고 대답을 하는가?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받으신 것과 비교해 보라(6);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서 목숨을 버리시고 우리를 자녀로 형제로 받으신 것을 생각해보면 감히 그런 소리를 못할 것이다. 언제 우리가 그럴만한 가치가 있었느냐를 생각해 보라.

6. 예수 그리스도께서 할례의 수종자라는 말은 할례받은 자들을 섬기는 자였다는 말이다. 자신을 주심으로 그들을 섬긴 결과는 무엇인가?

    유대인들에게는 약속을 견고케(8) 하고 이방인들에게는 긍휼을 베푸심이다(9-13); 다시 말하면 유대인들과 이방인들을 함께 구원하는 것이다(10). 열방이 주의 백성과 함께 즐거워하는 것이다(10). 여기서는 아무래도 이방인 쪽으로 비중이 기울어진 느낌이다.

7. '내가 이렇게 설명하지 않아도'라는 느낌을 주는 단어를 하나만 찾으시오.

    14절의 '스스로'; 이 문장에서 가장 강조되는 것은 '나도 확신하노라'는 말이다. 그러면서 노파심으로 이 글을 썼다고 한다. 로마교회의 성도들의 입장을 세워주는 말이다.

8. 바울은 이방인을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의 일꾼이 되었다. 이것을 어디에 비유하고 있는가?

    제사장이 되어 이방인을 제물로 드리는 것(16); 이방인을 제물로 삼으면 되나? 강조점은 하나님께 드린다는 데 있다.

9. 자랑하는 것은 그렇게 긍정적이지 못하다. 자랑하는 것은 사랑이 아니다(고전 13:4). 그러나 가끔 바울은 자랑을 했다. 무엇을 자랑했을까?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일에 대하여(17); 더러 자랑하긴 했지만 자신의 약함을 자랑함으로 자신을 통하여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증거하기를 원했다. '내가 부득불 자랑할진대 나의 약한 것을 자랑하리라'(고후 11:30), '내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이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고후 12:9) 그리스도께서 자신을 통해서 하신 일과 성령의 능력으로 하신 일만(18) 자랑했다.

10. 말과 일, 표적과 기사는 누가, 왜 행한 것인가?

    그리스도께서 이방인을 순종케 하기 위하여(18); 실제로 행한 사람은 바울 자신이다. 그러나 바울은 '자신을 통하여 그리스도께서 역사하신 것'이라고 말한다. 성경이 가진 독특한 사상이다. 하나님께서 친히 나서서 역사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통해서 역사하시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동역자 없이 하나님은 역사하지 않으신다. 설교자라는 인간을 통해서 하나님은 말씀하신다. 나라는 인간을 통해서 내 이웃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기 원하신다.

11. 도심지에는 한 건물에 여러 개의 교회가 들어서기도 한다. 신주택지가 들어서면 여러 개의 교회가 주변에 우후죽순처럼 생긴다.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곳에는 복음을 전하지 않기로 힘썼노라'는 바울과 사상이 다른가?

    사상은 같은데 교단이 다르다고 대답할지 모른다; 교단이 수 없이 갈라진 것이 비극의 원인이다. 같은 교단이라면 어느 정도 거리를 두지만 교단이 다르고 노회가 다르면 전혀 규제가 되지 않는다. 복음을 전하는 것도 복음을 전혀 듣지 못한 사람들에게 전하는 것이 더욱 소중하다. 남의 교인들을 끌어오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잘 양육하는 차원에서 방황하는 자들을 말씀 위에 굳게 세우는 것은? 반드시 필요한 일이지만 믿는 자들을 끌어모으는 수단이 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그 시대에 '남의 터'라고 불릴만한 사람이 누구일까?

12. 일루리곤이 어디인지 평소실력으로 찍어보자. 본문에서 알 수 있는 사항은 예루살렘과 대비되는 곳이며, 아직은 바울이 로마에 가보지 못했다(22)는 점이다.

    아드리아해 동쪽, 마케도니아의 위쪽, 지금의 유고슬라비아 지역이다.

13. 바울은 필요에 따라 구약을 자유자재로 인용하고 있다. 놀랍다! 우리의 성경실력과 비교해 보자. 우선 구약의 어느 성경을 인용하고 있는가?

    시 69:9(3절), 삼하 22:50(=시 18:49, 9절), 신 32:43(10절), 시 117:1(11절), 사 11:1(12절), 사 11:10(12절), 사 52:15(21절); 시편과 이사야서를 인용하는 실력이 부럽기만 하다. 성도에게는 필요할 때 필요한 하나님의 말씀이 떠올라야한다. 우리가 약한 부분이 시가서, 선지서 쪽인데...

14. 자랑하지 않겠다고 하지만 이것은 자랑할만 하다. 이 지방에 일할 곳이 없다? 도대체 사역을 어떻게 했으면 일할 곳이 없단 말인가? 어디까지 가려는가?

    가르치고 양육하는 일이 아니라 복음을 전하는 일을 말한다. 복음이 거의 모든 지방에 전하여졌다. 그만큼 널리, 효과적으로 복음을 전했다는 말이다. 교회를 개척해서 자립할 만큼 튼튼하게 세운 후에 또 다른 개척교회를 시작하려는 모습이라고 할까?

    서바나(스페인; 지금처럼 명확하게 국경이 그어진 때가 아니므로 꼭 같지는 않을 것); 로마를 거쳐 소위 땅끝까지 가려는 열망이다.

15. 바울이 아시아(소아시아)에 복음 전하는 일은 주로 안디옥 교회가 후원했다. 이제 서바나로 가는 일은 로마교회가 후원해 주기를 바라고 있다. 그냥 가면 되지 꼭 후원은 받아야하나?

    아무리 사명감에 넘쳐도 인간은 인간이다. 하나님도 사람과 동역하시기를 원하신다. 하물며 사람이 혼자서 모든 일을 다 감당하려고 하는 것은 잘 하는 일이 아니다. 재정 뿐만 아니라 기도의 후원없이 감당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혼자 할 수 있겠다 싶어도 뒤에서 후원하는 동역자가 없이는 차라리 시작하지 않는 것이 좋다.

16. 바울에게는 로마에 가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지만 지금은 다른 일이 있어서 가지 못한다. 다른 일이란 '예루살렘 성도를 섬기는 일'이다. 이것이 구체적으로 무슨 일이며 그렇게 소중한 일인가?

    구제 헌금을 전하는 일(26-27)

    바울은 복음을 전하면서 헌금을 많이 하도록 당부했다(고전 16:1-4, 고후 8:2). 1차적으로 예루살렘 성도들의 어려움을 도우려는 것이지만 2차적으로 이방인 교회와 유대인 교회를 하나로 묶으려는 것이다. 유대인들은 이방인들을 함께 상종할 인간으로 취급하지 않았다. 하물며 그들의 동정을 받으려고 하지도 않았다. 이들의 헌금을 받는다는 것은 말씀으로 함께 형제된 것을 인정하는 셈이다. 바울의 생각에도 이것이 그렇게 호락호락한 일이 아니었다(31). 이 헌금을 전하면서 각 교회의 대표들을 동행시켜 예루살렘의 성도들을 만나게 했다(행 20:4). 이 때 엄청난 금액을 예루살렘에 전했을 것이다. 그래서 바울을 억류한 벨릭스가 내막도 모른 채 돈을 바라고 바울을 자주 불러 이야기를 나누었을 것이다(행 24:26).

17. 바울을 통하여 복음을 전해들은 이방인들은 정말 유대인에게 은혜를 입었는가? 신령한 빚을 졌다는 말이 맞는가? 우리는 이런 빚을 지고 있지 않은가?

    유대인들이 이방인 교회를 세우기 위해서 특별한 일을 한 것도 특별한 지원을 한 것도 아니다. 어쩌면 수고는 바울이 다 했다. 그러나 복음이 이들을 통해서 왔다는 것만으로도 이방인 교회는 이들에게 빚을 졌다고 말한다. 하물며 우리에게 적극적으로 복음을 전해준 서방교회와 선교사들에게 우리는 더 큰 빚을 지고 있다. 은혜를 잊지 않는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한다.

18. 로마로 갈 때 바울이 가지고 갈 그리스도의 충만한 축복(29)이란 무엇일까? 설마 선물을 많이 가지고 가는 것은 아닐테고...

    이들의 만남이 충만한 축복 가운데서 이루어질 것임을 확신하는 말이다; 바울에게는 로마에 가게되는 것 자체가 큰 축복일테고, 로마의 성도들에게 바울의 가르침은 다른 어떤 것보다 더 큰 축복일 것이다.

19. 바울이 마지막으로 부탁하는 세 가지 기도 제목은 무엇인가?

    대적하는 유대인들에게서 구원받도록; 도처에 바울을 살해하려는 유대인들이 있었다(행 20:3, 21:11, 27-32).

    헌금을 잘 전달하도록; 액수도 많았지만, 유대인 성도들이 기쁨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로마에 가서 편히 쉬는 것; 바울의 쉼이란 일을 접어두고 육체가 쉬는 것을 말함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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