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 1 부 하나님의 의의 계시/1:1-8:39 1. 아마 교회에 문제가 있었나보다. 불화가 있는 교회가 하나되기 위해서 사도 바울이 제시하고 있는 방법은 믿음이 연약한 자를 비판하지 말라는 것이다. 믿음이 연약한 자를 비판하지 말아야하는 이유를 있는대로 찾아보자.
1) 서로의 견해 차이를 인정하라; 약한 자도 있을 수 있고 강한 자도 있을 수 있다. 날과 음식에 대한 견해는 다를 수도 있다(2, 3, 5). (그 사람의 견해를) 비판하지 말고 (그 사람 자체를) 받으라!(1) 2. 실력과 열심을 겸비한 사람을 사소한 일로 시비를 걸어 논쟁을 불러일으키고 세력을 끌어모아 사람을 매장시키거나 잘라내는 짓을 교회(교단) 내에서도 적잖게 볼 수 있다. 본문의 어떤 표현이 이와 비슷한가? 그렇게 잘라낸 사람이 다른 곳에서 큰 인물로 성장하는 것을 보면 가슴이 아프기도 하고 다행이다 싶기도 하다. 먹지 못하는 자는 먹는 자를 판단하지 말라(3); 해결책은 우리가 다 주를 위하여 사는 사람이라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다(7-8). 3. 하나님을 섬기는 방법도 모두가 다 꼭 같을 수는 없다. 어떤 것은 교리화하여 일률적인 규칙을 만들기 어려운 일들도 많이 있다. 이런 것은 어떻게 해야 좋은가? 각각 자기 마음에 확정할 지니라(5); 자기 나름대로 마음을 정하고 실행해야한다. 4. 죽으면 모든 것이 끝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내가 살아 있으니까 하나님도 있는 것이지 내가 죽어버리면 하나님이 나를 어쩔 것이냐? 그러므로 내가 가장 소중한 것이다.' 그럴 듯한 주장이지만 죽는다고 모든 것이 끝이 아니다. 죽은 이후라도 여전히 하나님의 주권 아래 머물러 있음을 보여주는 말씀은?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8), 산 자와 죽은 자의 주가 되려 하심(9) 5. 하나님 앞에 설 때 우리는 완전히 개인적인 입장이 된다. 잘못한 일에 대하여 'OO가 이렇게 하라고 했는데요' 라든가 '△△가 그것은 틀린다고 하던데요' 라는 말은 전혀 소용이 없는 일이다. 오로지 나 자신의 판단과 책임하에서 신앙생활을 해야하는 것을 보여주는 말씀은? 각인이 자기 일을 하나님께 직고하리라(12). 선생님이든 목사님이든 하나님 앞에 설 때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물론 보증이 될 수 없고. 스스로 판단하고 서는 훈련을 많이 해야한다. 6. 특히 하나님을 믿는 우리는 형제를 자기 나름대로 판단해서 실족케하지 말아야 한다. 그 당시에 주로 어떤 문제로 형제를 판단한 것 같은가? 날(절기5, 6; 언제 어떻게 예배를 드려야하는가), 식물(정하다, 부정하다); 본질적인 곳에서 부차적인 곳으로 관심이 옮겨가고 있는 셈이다. 7. 교회 다니는 친구가 담배를 피운다. 본문의 교훈대로라면 어떻게 하란 말인가?
1) 담배 그 자체는 아무 것도 아니다(14, 17, 20). 8. 교회 안에는 아름다운 것이 대단히 많다.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 말로 다할 수 없는 아름다운 교제가 있다. 그러나 사람들이 교회를 욕하고 하나님을 비방할 때는 이런 것을 보지 않는다. 그저 옥에 묻은 티 하나를 보고 비방하는 법이다. 이런 티마저 없는 삶을 살자. 몇 절에 이런 말씀이 있는가? 16; 너희 선한 것이 (아무 것도 아닌 것 때문에) 비방을 받지 않게 하라. 9. 먹을 것이냐 말 것이냐? 이런 고민하지 말고 이것이 사람들에게 성령 안에서 ( )를 세우고, ( )과 ( )을 주는 것이냐를 먼저 생각하라. 의, 평강, 희락(17) 10. 유대인들에게는 부정의 유무를 가리는 것이 대단히 중요한 일이었다. 예수님께서 '입으로 들어가는 것이 부정한 것이 아니라 입에서 나오는 것이 부정한 것이다(막7:18, 19)'는 말씀으로 유대인들의 심한 반발을 받았다. 만물이 다 정하다고 하는 말씀에 따르면 식물 자체가 부정한 것은 없다. 그러면 무엇이 부정한 것일까? 형제를 거리끼게 하는 것 11. 포도주는 식사 때 물처럼 마시던 것인데 고기도 먹지말고 포도주도 마시지 말라는 말인가? 그럴 자유가 있는 것인가? 없는 것인가? 그것은 자유다. 만약에 그것이 형제를 거리끼게 하는 일이라면 그렇게 하지 않는 것이 더 아름답다는 말이다. 무조건 먹지말라가 아니고. 진정한 자유는 하나님의 뜻과 나의 뜻이 합치되어질 때 가능하다. 12. 교회에 의견 대립이 있었던 모양인데 사도 바울은 누구의 편을 들어 주었는가? 아무 편도 들지 않았다. 굳이 말하자면 제 삼자 즉 하나님의 편을 들었다. 하나님의 사업을 무너지게 말라(20) 했으니. 가장 좋은 해결책이다. 13. 올바른 판단을 내릴 수 있는 지성과 그 판단을 실행에 옮길 수 있는 용기를 겸비한 사람은 정말 복되다. 이런 말씀은 몇 절인가? 22; 자기의 옳다 하는 바로 자기를 책하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14. 사람이 모인 곳에는 어디든 인간의 냄새가 나기 마련이다. 몇 십년 동안 헤어졌던 형제나 이산가족이 만나면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다'면서 마음껏 운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서 '차라리 만나지 않았더라면'하는 소리가 나온다. 성도가 모인 교회에서도 서로 비난하는 소리가 들리게 마련이다. 인간적이라면 그럴 수 있지만 말씀대로 사는 성도라면 형제를 보고 이기적이라거나 게으르다거나 바보같다는 말을 할 수 없는 이유가 무엇인가? 그리스도께서 대신하여 죽으신 형제이기 때문이다(15); 실제로 그런 비난이 맞다고 해도 주님께서 그런 인간을 위해서 대신 죽었다는 데 우리가 무슨 할 말이 있는가! 이 정도는 돼야 그리스도를 섬기는 자는 하나님께 기뻐하심을 받으며 사람에게도 칭찬을 받는 것 아닌가?(18) 15. 먹는 문제를 가지고 형제를 판단하고 업신여김으로 실족케 하였다면 예수님께서 무엇이라고 한탄하실까? 나의 희생(죽음)이 그 정도 가치밖에 되지 않더냐? 20절의 '하나님의 사업'이란 한 생명을 구원하기 위하여 예수께서 행하신 구원사역이다. 이것을 아무런 의미도 없는 식물로 망쳐 버렸다면 얼마나 원통스런 일인가? '사랑으로 행치 아니하였기 때문이다'(15)는 것도 답이 될 수 있으나 한탄의 강도가 약해서 20절을 인용한 것을 정답으로 삼는다. 16. 본문에서 적절한 구절을 인용하여 수련회 주제를 뽑아보라. (네) (모든 일을) '사랑으로 행하라!'(15); 그 외에도, '마음을 확정하라'(5), '사나 죽으나 주를 위하여'(8), '아름다운 형제 사랑'(21) 등등이 가능할 것이다. 17. 본문을 요약한다면 연약한 형제를 비판하지 말고(1), 판단하지 말라(3)는 것이다. 아무리 봐도 내 판단이 틀리지 않았는데 그러지 말라는 이유가 무엇인가? 이를 위하여 그리스도께서 죽었다가 다시 살으셨기 때문이다(9). 그리스도께서 대신하여 죽으신 형제이기 때문이다(15); 남의 하인이기 때문이다는 말도 맞다. 그러나 앞의 두 가지 표현보다 느낌이 약해서 정답에서는 제외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