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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 부 하나님의 의의 계시/1:1-8:39 1. 앞장에서 이스라엘의 구원에 관한 내용은 과거사이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버리셨느뇨?'라는 물음은 현재사를 말하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그토록 말을 듣지 않는 자기 백성을 버리지 않은 예를 두 가지 들고 있는 셈인데 무엇인가? 바울과 엘리야 시대의 7,000명;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버리려면 일찍 버렸지, 노아, 아브라함과 조상들을 선택하여 구원역사를 이루어오신 분이 이제 와서 자기 백성을 버린다? 다 버렸다해도 내가 있잖아! 그리스도를 핍박하던 나를 택하여 사도로 삼으신 것을 보라(2절)! 2. 버리셨느냐? 아니! 그럴 수 없다. 그러면 어떻게 하셨다는 말인가? 남겨두셨다(4-5); 하나님이 버리신 것이 아니라, 유대인들이 하나님을 떠났지만 하나님은 남겨두셨다. 그 하나님은 지금도 두 손을 벌리고 종일 기다리고 계신다(10:21). 집나간 아들을 기다리는 아버지처럼(눅 15). 이스라엘이 버려진 것 같아도 남겨진 이스라엘이 있다. 3. 유대인들은 하나님께서 자신들을 하나님의 백성으로 삼으신 것은 다른 모든 민족을 버리신 것으로 이해했다. 그래서 이방인들을 지옥의 불쏘시개감으로 여겼다. 이에 대하여 바울은 무엇이라고 하는가? 7,000명을 남겨두었다는 말은 나머지는 다 버린다는 것이 아니라 이 7,000명을 통해서 나머지도 구원하시려하신다는 뜻이다. 이스라엘을 하나님의 백성으로 택하신 것은 이방인을 버리기 위함이 아니라 이스라엘을 통하여 그들을 구원하시기 위함이었다(12). 4. 5절의 '은혜로'가 수식하는 말은 무엇인가? 남은; '은혜로'가 '택하심'을 꾸민다고 보기보다는 동일한 의미의 반복이라고 보는 것이 좋겠다. 그러면 '은혜로 남은 자'가 곧 '택하심을 따라 남은 자'이다. 5. 6절은 아무래도 지나는 길에 삽입한 말 같다. 은혜로 구원을 받는다는 말은 바울의 애창곡이라서 기회만 있으면 부르는 것이다. 5절을 말하고 보니 그만 6절을 한 마디 더 한 것 같은데 바울은 자신이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빌 3:6). 그런 그가 어떻게 행위가 아닌 은혜로 구원을 얻는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을까?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를 만난 것은 결코 자신의 노력 때문이 아니다. 아니, 어쩌면 잘못된 행동 때문인가? 잘못된 짓을 하고 있음에도 자신에게 찾아오셔서 새로운 빛을 주신 그 사건이 아마 결정적이었을 것이다. 그렇게 되고 보니, 그것이 자신에게 우연히 되어진 사건이 아니라 만세 전부터 하나님께서 작정하신 일이란 것을 깨달았을 것이다. 그래서 말끝마다 '행위가 아니라 은혜로' 되는 것이라고 하지 않을까? 6. 이스라엘이 구하는 그것을 얻지 못하고 오직 택하심을 입은 자가 얻었다(7)는 말은 하나의 예이다. 무엇을 뜻하는 예인가? 행위로 말미암지 않고 은혜로 구원을 받는다(6); 이스라엘은 아브라함의 혈통적 후손이면 전부 구원을 받는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바울은 이 사상을 뒤엎어버린 것이다. 율법을 지키는 행위가 아니라,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다. 혈통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 믿음이 중요하다. 7. 하나님이 저희에게 혼미한 심령과 보지 못할 눈과 듣지 못하는 귀를 주셨다(8)면 이스라엘이 구원받지 못하는 책임이 하나님께 있는 것 아닌가? 비록 다윗이 '저희 밥상이 올무와 덫과 거치는 것과 보응이 되게 하옵시고 저희 눈은 흐려 보지 못하고 저희 등은 항상 굽게 하옵소서' 하였을지라도 하나님이 그렇게 하셨다면 책임이 하나님께 있는 것 아닌가?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실 수밖에 없는 원인제공자가 이스라엘이다; 인용한 본문(사 29:10)의 문맥을 찾아보아야 한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이렇게 하신 이유는 사 29:13에 있다.
'주께서 가라사대 이 백성이 입으로는 나를 가까이하며 입술로는 나를 존경하나 그 마음은 내게서 멀리 떠났나니 그들이 나를 경외함은 사람의 계명으로 가르침을 받았을 뿐이라.'
그래서 하나님께서 '이 백성 중에 기이한 일 곧 기이하고 가장 기이한 일을 다시 행하리니 그들 중의 지혜자의 지혜가 없어지고 명철자의 총명이 가리워지리라'(사 29:14)고 하신다. 8. 다시 정리해보자.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버리셨느뇨? 이 질문을 던지고 그렇지 않음을 길게 설명하는데(1-11) 이 답변을 간단한 세 마디로 요약한다면? 그럴 수 없느니라(1), 남은 자가 있다(5), 넘어지기까지 실족하지는 않는다(11); 완전히 버린 것은 아니다는 뜻이다. 그러면서 이스라엘이 회개하고 돌아선다면 얼마나 풍성한 은혜가 있을 것인가 라고 반문하고 있다(12c). 9. 바울이 열심히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하는 한 가지 이유는 무엇인가? 동족의 얼마를 구하려는 의도; 복음이 이방인에게로 넘어가서 이스라엘을 시기케 하여 그로 인해 다시 이스라엘의 얼마를 구원하려함이다(11, 14). 이스라엘이 자신을 통해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친히 목격하게 되면 돌이키는 자가 있기를 바라는 것이다. 하나님을 믿고 잘 사는 모습을 보여줌으로 불신 친척들을 구하려는 의도와 비슷하지 않을까? 10. '공부 안 해도 이 정돈데 만약 공부를 열심히 하면 어떻게 될까?' '난리 나겠지!' 바울이 이런 대답을 하고 있다. 어디서?
12절과 15절, 24절; 자기 동족에 대한 애틋함을 이렇게 표현하는 것이다. 나중에 회복될 이스라엘의 풍성함을 바라보고 있다. 11. 제사하는 처음 익은 곡식 가루가 거룩한즉 떡덩이도 그러하고 뿌리가 거룩한즉 가지도 그러하다면(16) 처음 익은 곡식 가루와 뿌리는 유대인이고 떡덩이와 가지는 이방인인가? 유대인과 이방인의 이야기(수평적 관계)가 아니고 조상들과 후손들에 대한 이야기(수직적 관계)이다. 조상들이 거룩하니 후손들도 거룩하다는 말이다. 조상은 족장들을 가리키고 후손은 회심하는 유대인들을 가리키는 말이 아닐까? 12. 아들이 쫓겨난 집에 양자가 들어왔다. 이 양자가 쫓겨난 아들을 보고 '쫓겨날만 하니까 쫓겨난 것 아니냐?'고 하면 말이 맞는가? 말이야 맞지만 그러면 안 된다! 다른 사람들이 그런 말을 하더라도 자신은 그러면 안된다. 오히려, 쫓겨난 아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자신을 돌아 보아야한다. 이방인이 이스라엘 민족을 보면서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옳다는 말이다. 13. '하나님이 원 가지들도 아끼지 아니하셨은즉 너도 아끼지 아니하시리라,'(21) '그렇지 않으면 너도 찍히는 바 되리라'(22). 하나님에게는 인자와 엄위가 있다(22). 잘못 걸리면 죽는다는 얘기 아냐? 하나님의 속성 중 '사랑'과 '공의'의 다른 표현이다. 엄위의 대상이 되면 죽을 수밖에 없고 인자의 대상이 되면 살 수밖에 없다. 인자의 대상이 되려면 믿기만 하면 된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공로를 입은 성도는 더 이상 하나님의 공의로우심에 대해서 두려워할 이유가 없다. 죄없는 사람이 경찰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과 같다. 14. 접붙임에 대한 비유는 생물학의 입장에서 보면 다소 문제가 있다. 좋은 가지를 구해서 접을 붙여야한다. 그럼에도 이런 비유를 쓰는 이유는 무엇인가? 구원 사역의 주체는 좋은 뿌리되신 그리스도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좋은 열매를 맺는다면 그것은 우리가 좋은 가지이기 때문이 아니라 좋은 뿌리에 근거를 두었기 때문이란 점을 강조하려고 한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열매를 좌지우지 할 수 있을 정도로 강력한 뿌리이다. 우리를 통하여 무슨 선한 일이 나타난다면 그것은 우리로 말미암음이 아니요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것이다. 15. 25절의 이스라엘과 26절의 이스라엘에 차이점이 있는가?
과거의 범죄한 이스라엘(25)과 장차 회복될 이스라엘(26); 26절의 온 이스라엘이 구체적으로 누구를 가리키느냐는 것은 논란거리다. 많은 분들이 영적 이스라엘로 이해하고 있다. 16. 이스라엘은 하나님께 원수이기도 하고 사랑받는 자이기도 하다(28). 어떻게 한 사람이 원수도 되고 사랑의 대상이 되기도 하는가? 못난 아들이면 그럴 수 있다. 흔히 하는 말로 죽이지도 살리지도 못하는 경우에 그렇다. 17. 25-32절 사이에 번역상 미스가 있다. 찾아보자. 30절의 '이스라엘에' → '이스라엘의' 18. 어떤 고민이든지 하나님께 가져가면 해답이 나온다. 바울에게 큰 근심과 그치지 않는 고통이 있었다(9:2-3). 그것이 이제 어떻게 변했는가? 하나님을 더 잘 알게되고(36) 찬양함(33-35); 불의가 득세하는 것을 차마 견딜 수 없었던 하박국이 끝내 '모든 것이 사라지더라도 여호와의 구원을 인하여 기뻐 노래하리라'던 것과 비교해보면 똑같다. 하나님께 문제를 가져가면 그로 인해서 하나님을 알게되고 결과적으로 찬양이 터져 나온다. 하나님을 아는 것이 가장 큰 복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