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10 장


< 로마서 요약 >

      제 1 부 하나님의 의의 계시/1:1-8:39
      제 2 부 하나님의 의에 대한 변론/9:1-11:36
        1. 이스라엘의 과거/9:1-29
        2. 이스라엘의 현재/9:30-10:21
        3. 이스라엘의 미래/11:1-36
      제 3 부 하나님의 의의 적용/12:1-16:27

1. 무식한 게 용감하다는 말이 있다. 어쩌면 바울 자신의 이야기가 아닐까? 그리스도인들을 핍박하던 자신의 모습은 용감하기 이를 데 없었지만 돌아보면 부끄럽기 그지없다. 다 무식한 탓이지... 이스라엘 사람들의 모습이 꼭 그런 자기를 닮아 보인다. 몇 절에 그런 말이 있는가?

    2절; 유대인의 열심이야 대단하지만 바른 지식이 없었다. 지식(지혜)없는 열심은 게으른 것보다 더 위험하다. 무식하면서 열심있는 상사를 만나면 이게 보통 일이 아니다.

    성경을 소중하게 품고 다니며 낙서는 물론이고 접지도 않으면서 잘 읽지 않는다. 노트 필기를 깨끗하게 하느라고 공을 들이느라고 선생님의 설명을 잘 듣지 않는다. 그러다가 선생님이 판서를 잘못했다고 지우기라도 하면 난리가 난다. 열심은 있으나 지혜롭지 않은 학생이다.

2. 유대인들은 율법을 지키는 자기들의 노력으로 의로워진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열심히 노력한 것이 결과적으로는 두 가지 잘못을 저지른 셈이다. 등산에 비유해서 두 가지 점을 지적한다면?

    길을 잘못 들었다(=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유대인들이 몰랐던 하나님의 의는 자기들의 노력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의를 추구해야했다. 그것은 자신들의 노력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너무 멀리 갔다(=힘써); 길을 잘못 들었더라도 게을렀으면 돌아오기 쉬웠을 텐데 힘써서 멀리 갔으니...

3. 바늘의 끝에 천사가 몇 명이나 올라갈 수 있을까? 알 수도 없지만 알아도 아무 소용없는 질문이다. 이런 논쟁을 끝없이 하는 사람을 가리켜서 어떤 사람이라고 하면 좋을까?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쓰는 사람; 유대인들의 논쟁 중에 안식일에 손수건을 갖고 다녀도 되는가라는 것이 있다. 결론은 주머니에 넣고 다니는 것은 '일'에 해당하므로 안되고 목에 걸고 다니는 것이나 소매에 꿰매어 다니는 것은 '입고' 다니므로 괜찮다는 것이다. 이런 답을 내려놓고 얼마나 자신의 지혜로움을 자랑스럽게 여겼을까? 자기 의를 세우려는 사람의 하는 짓이 그렇다.

4. 마침표(.)는 언제, 어디에 찍는가? 그러면 4절의 '마침'을 다른 단어로 바꾼다면?

    완성(성취); 문장을 마친다 혹은 끝낸다는 것은 완성되었다는 뜻이다. 예수 그리스도 없이 율법은 완성될 수 없다. 제사를 예로 든다면 제물로 드리는 짐승의 죽음이 예수의 죽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면 그게 하나님께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그러므로 그리스도를 믿는 것이 진정으로 율법을 지키는 일이 된다. 그리스도 없는 율법은 사랑없는 선물이나 마음에 없는 칭찬처럼 역겨운 것이다.

5. 모세가 기록하였다고 하는 말씀은 '너희는 나의 규례와 법도를 지키라 사람이 이를 행하면 그로 인하여 살리라 나는 여호와니라'(레 18:5)는 말씀이다. 이것도 하나님의 말씀인데 그러면 이 말이 틀렸다는 말인가?

    하나님은 이런 율법을 주시기 전에 이스라엘의 행위와 관계없이 애굽에서 구원하셔서 자기 백성으로 삼으셨다(출 20:2). 이스라엘에게는 규례와 법도를 지키기도 전에 이미 자신들을 자녀로 삼으신 하나님에 대한 감사가 더 중요했다. 그러면 이런 율법의 해석이 달라진다. 율법을 준행하면 살리라는 말씀들(느 9:29, 겔 20:11)은 그야말로 최소한의 도리에 불과한 것이지 하나님을 진정으로 기쁘게 할 수 있는 차원이 되지 못한다.

6. 하나님의 의는 다른 말로 하면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다(6). 이 의는 '입으로 시인하며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얻는다(9). 그러므로 쓸데없는 짓을 하지 말라고 한다. 구원을 얻기 위해서 많은 사람들이 하고있는, 쓸데없는 노력을 바울은 무엇이라고 표현하는가?(참고 신 30:11-14)

    하늘에 올라가는 일과 음부에 내려가는 일; 마치 로마 신화에 나오는 이야기처럼 하늘에 계시는 그리스도를 모셔와야 구원을 얻거나, 음부에 계신 그리스도를 살려와야 구원을 얻는 식으로 착각하지 말라는 것이다. 참고 구절을 인용한다면 우리의 구원은 참으로 쉬운 것이다.

    내가 오늘날 네게 명한 이 명령은 네게 어려운 것도 아니요 먼 것도 아니라 하늘에 있는 것이 아니니 네가 이르기를 누가 우리를 위하여 하늘에 올라가서 그 명령을 우리에게로 가지고 와서 우리에게 들려 행하게 할꼬 할 것이 아니요 이것이 바다 밖에 있는 것이 아니니 네가 이르기를 누가 우리를 위하여 바다를 건너가서 그 명령을 우리에게로 가지고 와서 우리에게 들려 행하게 할꼬 할 것도 아니라 오직 그 말씀이 네게 심히 가까와서 네 입에 있으며 네 마음에 있은 즉 네가 이를 행할 수 있느니라 (신 30:11-14)

7. 마음으로 믿는 것과 입으로 시인하는 것은 어떻게 다르며, 의에 이르는 것과 구원을 얻는 것은 어떻게 다른가? 어느 것이 먼저인가?

    같다; 다음 문장들의 구조를 보라. 순서상의 문제가 아니라 하나의 표현 양식이다. 같은 말로 네 번 반복하는 것과 비교해 보면 차이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a;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b; ......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얻으리니
         B;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A;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8. '기록된 바'라는 표현은 구약에서 인용했다는 말인데 '저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치 아니하리라'(11)는 말은 간이 관주에 나타나 있지 않아서 구약에서 찾기가 쉽지 않다. 이 문장을 어디서 봤더라?

    롬 9:33; 바로 앞에서 본 표현이다. 사 49:23, 욜 2:26-27에서 문자대로 인용한 것이 아니라 자유롭게 의미를 따온 것이다. 구약의 이 말씀은 먼 훗날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회복시키시는 내용이다. 예수님의 복음을 깨닫고 나니 이 구절이 바로 믿는 모든 자를 부르시는 의미인 것을 새삼스럽게 발견한 셈이다.

9. 하나님의 말씀과 아무런 관계도 없는 설교가 적지 않은 현실에서 성경 말씀을 그대로 인용하면서 설득력있는 설교를 할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귀한 일인지 모른다. 그나마 단순하게 성경 구절을 나열하는 것이라도 고마울 때가 있다. 바울은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다는 소중한 말씀을 증거하면서 본문에 구약을 몇 번이나 인용하고 있을까?

    11번; 5(레 18:5), 6(신 30:12), 8(신 30:14), 11(사 49:23, 욜 2:26-27), 13(욜 2:32), 15(사 52:7), 16(사 53:1), 18(시 19:4), 19(신 32:21), 20(사 65:1), 21(사 65:2). 인용하고 있음을 표시하고 인용한 것은 7번(5, 11, 15, 16, 18, 19, 20)이고 위의 문제에서 두 개는 참고로 봤으니 9번 이상이면 정답이라고 할 수 있겠다. 성경을 이렇게 자유자재로 인용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부러운가? 그러니 위대한 사역을 감당할 수 있었을 것이다. 이렇게 되기는 어렵더라도 가끔 한 두 구절이라도 결정적인 순간에 떠오른다면 얼마나 좋을까? 겨우 생각나는 것이 '만일 네 오른눈이 너로 실족케 하거든 빼어 내버리라'(마 5:29)인가?

10. 12-13절의 내용은 9장의 어떤 내용과 대조를 이루는가?

    하나님은 토기장이; 12-13절의 내용은 '하나님은 주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사람에게 차별없이 부요하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면 토기장이가 제 멋대로 그릇을 만드는 것과 대조된다. 하나님의 절대 주권은 토기장이와 같지만 그 권한을 기분내키는 대로 흔들어버리는 것이 아니라 '주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사람에게 차별없이 부요하시다'는 것이다. 전권을 가진 상사가 끗발부리지 않고 인격적인 방법으로 부하 직원을 다스린다고 생각해 보라. 직장생활하면서 서러움을 당해본 사람은 하나님이 얼마나 고마운지 알거다.

11. 본문을 근거로 믿음에 이르는 과정(선교, 전도의 과정)을 정리해보자.

    보내져야함(가야함), 전파, 들음, 믿음, 부름; 어떻게든지 가서 전하는 일은 해야한다. 우리가 무슨 일을 하면서 살든지 이것만은 늘 염두에 두어야하는 일이다.

12. 부족하지만 그래도 전하고 외치는 수많은 사람이 있다. 아무 것이나 듣는다고 믿음이 생기는 것은 아니다. 오직 (             )이어야 한다. 설교의 주제도 이것이어야 하고, 우리가 전하고자 하는 것도 반드시 이것이어야 한다. 잠시 다른 경유지(윤리, 도덕, 상식, 성공의 비결 따위)를 거치는 수도 있겠지만 목표를 잊지 말아야한다.

    그리스도의 말씀;

13. 16절은 번역이 아무래도 이상하다. '저희가 다 복음을 순종치 아니하였도다'는 말은 성경적으로도 맞지 않을 뿐 아니라 관주로 제시된 롬 3:3, 히 4:2절과 차이가 있다. 조금만 고쳐보자.

    영어로 말하면 not all의 의미로 부분 부정이다. '저희가 다 복음을 순종한 것은 아니었다'로 하면 된다.

14. 우리말에 '듣는다'는 것은 두 가지 의미가 있다. 단순한 '들음'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듣고 '순종'하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18절의 '들음'은 어느 쪽인가?

    단순한 들음이다; 온 이스라엘에게 복음이 들려질 것이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할만큼 할 것임을 의미한다(11:26).

15. 이스라엘의 구원을 말하는 18-21절의 동사는 전부 과거형이다. 이스라엘의 구원은 끝났다는 말인가?

    이스라엘의 불순종에도 불구하고 종일 손을 벌리셨던 것처럼 여전히 기다리고 계신다는 말씀이다(11장을 참고). 히브리어 용법에 확실한 미래는 과거형으로 표시한다. 미래형으로 해석해도 좋다는 뜻이다. 과거에 많은 선지자를 보냈고, 아들을 보내신 하나님께서 그 후에도 두 팔을 벌리고 기다리고 계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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