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드로후서 2장


1. 1장의 마지막 부분(1:20-21)과 2장의 시작 부분(2:1-3)이 어떻게 대조를 이루는지 찾아보자.

    성령의 감동하심을 입은 사람들 ↔ 거짓 선지자(선생)
    하나님께 받아 말한 것 ↔ 탐심을 인하여 지은 말(1:16 공교히 만든 이야기)

2. 베드로전서는 외부에서 닥쳐오는 시험을 잘 이겨내도록 당부하기 위해서 기록했다. 베드로후서는 무슨 목적으로 기록했을까?

    내부의 거짓 선생들을 경계시키려고(1): 과거에 거짓 선지자들이 있었던 것처럼 지금은 거짓 선생들(지도자들)이 있기 때문이다. 이들의 그릇된 가르침이 윤리적으로 문제가 컸던 모양이다. 구체적인 대응책은 1:6-7절에 있다.

3. 2장에서는 거짓 선생들에 대해서 주의하라고 경고한다. 이들이 하는 짓을 간략하게 요약한다면?

    이단을 가만히 끌어들임(1b): 결과로 자기들을 사신(bought) 주님을 부인하고 임박한 멸망을 스스로 취하게 된다. 1절 후반부가 전체의 요약인 셈이다. 히브리 문학의 표현양식 중에는 서두에 짤막하게 전체를 요약한 다음 구체적으로 서술해나가는 방식이 흔히 쓰인다.

4. 하나님께서 선지자들을 보내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말씀을 전하시고, 그들을 구속하신 목적은 사랑이다. 그래서 선지자들은 백성들에게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라고 하면서 희생과 헌신을 요구했다. 반면에 우상을 섬기는 자들이나 거짓 선지자들의 특징은 무엇인가(2-3)?

    호색(2), 탐심(3): 사이비나 이단의 가장 큰 특징 중에 한 가지는 온당치 못한 성적행위를 조장하는 것이다. 사람들을 유혹하는 데에 그만한 힘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 모든 악한 행위의 바탕에는 탐심이 자리 잡고 있다. 이외에 한 가지 특징을 더 첨가한다면 10절의 ‘교만’이다.

5. 선생님들이 학생을 사랑이나 훈육의 대상으로 여겨야 하는데 돈벌이의 수단으로 여기면 얼마나 실망스럽겠는가? 베드로가 보기에 거짓 선생들이 바로 그러하다는 말씀은 무엇인가?

    너희로 이(利)를 삼으니

6. 거짓 선생들에 대한 심판은 지체하지 않고, 자지 않는다는데(3) 실제로는 이단들이 온통 세상을 휘저으면서 잘 먹고 잘 살기도 하던데?

    하나님께서 주무시지도 않고 그들의 행위를 바라보고 계시는데 그 앞에서 잘 먹고 잘 사는 것이 정말 잘 먹고 잘 사는 걸까? 우리 눈에는 그들이 평생을 잘 먹고 잘 살아도 하나님께서 보시기에는 지체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반드시 심판하시고 멸망시키신다. 하나님의 시각으로 보자.

7. 거짓 선생들이 누구처럼 심판을 받게 될까?

    범죄한 천사들, 옛 세상(홍수이전 사람들), 소돔과 고모라 사람들: 이들은 곧 육체를 따라 더러운 정욕 가운데서 행하며 주관하는 이를 멸시하는 자들이다(10).

8. 세상은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없도록 엉망진창이 되더라도 그리스도인들은 누구와 같기를 바라는가?

    노아네 식구들, 롯: 이렇게 구원받은 백성이 얼마 되지 않는다(눅 18:8). 멸망당할 세상이야 어떠하든지 하나님의 백성은 그 가운데서도 경건하게 살기를 바란다. 롯을 어떻게 의인이라고 할 수 있는가? 의인이라서 의인이 아니라 소돔 고모라의 죄악 속에서 물들지 아니하고 고통을 겪었음을 표현하는 말이다.

9. 거짓 선생들의 또 다른 특징이 있다면 간이 크다는 점이다. 심판이 있다고 해도 도무지 겁을 내지 않는다(10b). 이들이 도대체 어느 정도로 같이 큰가(참고 유 1:9)?

    천사장 미가엘도 스스로 판단하지 않고 심판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라고 하는 점을 언급한 것(11)으로 보아 이들이 스스로 하나님인양 행세한 모양이다.

10. 거짓 선생들이 천사들보다 더 권세 있는 자처럼 담대했지만 실상은 무엇과 같은가?

    잡혀 죽기 위하여 난 이성 없는 짐승(12): 도축용 가축을 가리키는 말이다. 편안하게 잘 먹여주고 잘 재여 주니까 제가 잘 나서 그런 줄 알고 큰 소리치고 있는데 실상은 키워서 잡아 먹으려고 그러는 것이다.

11. 거짓 선생의 특징은 아무 것도 모른다는 점이다. 뭘 모르나(12-14)?

    그러다가는 죽을(멸망을 당할) 수밖에 없다는 것: 12절에 ‘잡혀 죽기 위하여 난 이성 없는 짐승’ 같다는 말은 자신들의 운명이 죽을 운명이라는 의미이다. 그게 죽는 길인 줄도 모른 채 설쳐대고 있다(훼방, 불의, 연락, 음심, 탐욕). ‘저희 멸망 가운데서 멸망을 당하며’라는 말은 ‘그 짐승들 같이 멸망을 당하며’ 라고 이해하면 될 것이다(=대부분의 다른 역본들).

12. 12절에서 남을 비방하는 사람들의 큰 특징 하나를 찾는다면?

    알지도 못하면서 훼방한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입에 거품을 물고 나선다. 회심하기 전의 사울이 그랬다(딤전 1:13). 서울 가본 사람과 안 가본 사람이 싸우면 안 가본 사람이 이긴단다. 교통사고가 나도 씨우면(우기면) 이긴다? 아무리 그래도 ‘불의의 값으로 불의를 당한다.’ 불의를 저지른 대가로 자신도 불의를 당하게 된다.

13. 낮술이라는 말이 있다. 대낮에 술을 마시는 것을 가리키는 말인데 좋은 의미로 쓰이지 않는다. 대낮부터 무슨 술이냐고 비아냥거릴 때 쓰인다. 거짓 선생들이 그랬다는 말이 어디에 있는가?

    낮에 연락(宴樂: 술자리에서 먹고 마시며 즐김)을 기쁘게 여기는 자들: 연회에서 술을 마시고 향락을 즐기는 것은 밤에 하는 법인데 대낮부터 이러니 밤에야 말해 무엇하겠는가!

14. 이런 거짓 선생은 점과 흠이다. 점과 흠은 어떻게 처리하는가?

    점은 없애거나 지운다, 흠은 가리거나 수선해서 표시가 나지 않게 한다: 아무런 유익이나 소용이 없으므로 제거해야 하는 것이다. 베드로는 하나님의 백성이 주 앞에서 점도 없고 흠도 없이 나타나기를 바란다(벧후 3:14).

15. 흔히 하는 말로는 술 한 잔 하면서 속에 든 것을 다 털어버린단다. 그러니까 함께 술을 마시는 사람을 속이는 것은 정말 너무하는 일이다. 거짓 선생들이 그랬다는 말이 어디에 있는가?

    연회할 때에 간사한 가운데 연락(宴樂)하며: 술을 마시며 웃고 즐기는 가운데서도 간사한 마음을 품고 있으니 얼마나 고약한 사람들인가! ‘음심이 가득한 눈을 가지고 범죄하기를 쉬지 아니하고’라는 표현을 참고하면 ‘어떤 여자를 잡아먹을까?’만 궁리하고 있는 셈이다.

16. 못된 짓을 하는 아이들은 자기만 그럴 뿐 아니라 못하겠다는 아이들을 억지로 물들이는 것을 즐긴다. 거짓 선생들은?

    굳세지 못한 영혼들을 유혹하며(14): 베드로는 예수님께 ‘네가 돌이킨 후에 형제들을 굳게 하라’는 명령을 받았다(눅 22:32). 아마도 자신의 실수를 기억하며 연약한 성도들을 유혹하는 거짓 선생들을 경계하고 하는 것이 틀림없다.

17. 연단이란 갈고 닦는 것이다. 갈고 닦지 않아도 누구나 잘 하는 일도 많다. 가령, 먹고 노는 일은 별로 연단할 필요도 없이 할 수 있는 일이다. 거짓 선생들은 무엇을 연단하였는가? 이걸 갈고 닦은 사람은 칭찬을 해야 하나?

    탐욕에 연단된 마음을 가진 자들이니 저주의 자식이라(14): 칭찬은커녕 저주받을 짓이다.

18. 어떤 점에서 발람은 거짓 선지자들의 표본이 되는가?

    불의의 삯을 노리다가 짐승보다 못한 인간이 되었다(16, 민 22장):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야 할 선지자가 도리어 짐승에게 책망을 받았으니 이런 창피한 짓이 어디 있는가? 그야말로 미친 짓이다.

19. 우리는 흔히 ‘앙꼬없는 찐빵’이라는 표현을 쓴다. ‘물없는 샘’이나 ‘광풍에 밀려가는 안개’와 비교하면 어떤가?

    앙꼬없는 찐빵은 실망스럽지만 그래도 뜯어먹을 밀가루라도 남았지만 물없는 샘은 사막을 여행하는 사람들에게 더 큰 갈증과 허탈감만 안겨준다. 안개가 세상을 뒤덮고 있는 듯 싶어도 광풍이 불기 시작하면 아무 소용이 없는 허무한 것이다. 거짓 선생들이 교훈이 이런 것이고 이들에게는 캄캄한 어두움이 예비되었다.

20. 18-19절은 말이 너무 복잡하다. 이것을 조금 고쳐 읽으면, ’저희가 미혹을 간신히 벗어난 자를 음란으로 유혹하여 자유를 준다 하여도 결국은 멸망의 종이 되게 할 뿐이니라.‘가 된다. 거짓 선생들이 성도를 유혹하는 것에 어떤 단계가 있는가?

    1차 관문: 미혹, 2차 관문: 음란. 육체의 정욕을 유혹의 도구로 쓸 때 이겨내기란 여간 어렵지 않다. 노아의 홍수나 소돔 고모라, 가나안 원주민들이 여기서 넘어졌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그렇다고 극북하는 것이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요셉이 좋은 예를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21. 아무런 제약도 없는 성적인 자유를 주장하는 사람들의 논리는 그래야 진정한 자유를 누릴 수 있기 때문이란다. 그래서, 성적 자유를 억압하는 순결, 동정의 개념을 없애고, 심지어 결혼이라는 제도를 폐지하고 원하는 어떤 사람과도 마음대로 성을 누릴 수 있어야 인간의 자유가 신장된다고 주장한다. 이런 주장에 대해서 본문은 무엇이라고 하는가?

    음란이 진정한 자유를 주는 것이라고 유혹하지만 결국은 멸망일 뿐이다(19): 자유를 위해서 그렇게 살자는 것은 그럴듯해 보여도 한 마디로 개처럼 살자는 얘기다(22). 개는 자라면 어미와도 교미를 한다고 한다. 자유를 누리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존엄을 잃어버리고 짐승이 되는 길이다.

22.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을 얻은 자들이 거짓 선생들의 꼬임에 빠지는 것을 어디에 비유하는가?

    토했던 것을 다시 먹는 개나 깨끗하게 씻겨주어도 더러운 구덩이에 도로 눕는 돼지: 원래 개나 돼지는 부정한 동물로 간주되었던 짐승인데 하는 짓마저 이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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