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드로전서 4장


1. 더 이상 죄를 짓지 않아야 할 이유는 무엇인가?

2. 갑옷은 적의 공격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는 옷이다. 그리스도께서 받은 육체의 고난이, 같은 마음을 가진 우리에게 어떻게 갑옷이 되는가?

3. 음란과 정욕과 술취함과 방탕과 연락(宴樂)과 무법한 우상 숭배라는 것이 이것들을 행하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대단히 매력적인 것들이다(아무래도 술이 주원인이다). 죄는 이런 것들을 통하여 역사한다. 이런 것들이 주는 유혹을 어떻게 한꺼번에 끊어버릴 수가 있을까?

4. 그리스도께서 고난을 받으신 이유를 본문에서 찾는다면?

5. ‘극한 방탕에 달음질하지 아니하는 것을 저희가 이상히 여겨 비방하나...’ 이것은 그리스도인의 시각에서 하는 말이다. 똑 같은 내용을 ‘저희가’ 말할 때는 어떻게 말할까?

6. 극한 방탕에 달음질하는 자들이 지금은 신이 나서 떠들지 몰라도 장래에는 어떻게 될까? (참고로, 직고(直告)의 의미는 ‘직접 고한다’가 아니다. 앞에 한 단어를 보충해보면 쉽다)

7. ‘죽은 자들에게도 복음이 전파되었다’는 말은 죽은 후에 전파되었다는 말이 아니고 그들이 ‘죽기 전에 복음이 전해졌다’는 말이다(사도신경의 ‘산 자와 죽은 자’ 참조). 복음을 전하는 이유는 무엇이라고 하는가?

8. 초대 교회 성도들에게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웠다고 말한 것은 결과적으로 틀린 말 아닌가?

9. 다음 (      )에 알맞은 단어 하나만 넣어보자. ‘사랑은 (       ), 대접은 (       ) 없이, 봉사는 (       ) 하라’

10. 사람이 다 똑같을 수는 없다. 한 교회를 섬기는 성도들도 마찬가지다. 남의 능력을 부러워하기보다는 자신의 능력을 계발해서 다른 측면에서 성도를 섬겨야 한다. 어느 단어가 이런 뉘앙스를 풍기는가?

11. 어렵게 사는 성도도 많지만 때로는 고위직에 있거나 많은 재물을 소유하고 있거나 많은 능력을 소유한 성도도 있다. 이런 경우에는 아무리 애를 써도 없는 척하고 살 수도 없는데 어떡하란 말인가?

12. ‘설교는 하나님의 말씀인가, 목사의 말인가?’ 본문의 표현을 이용해서 답을 해보자.

13. 봉사는 자기 힘으로 하는 것인가, 하나님께서 주시는 힘으로 하는 것인가?

14. 사도 바울은 자신을 하나님의 동역자라고 표현했다(고전 3:9, 막 16:20). 직접적으로 말하지는 않지만 그런 사상이 본문 어디에 있는가?

15. 처음으로 믿기로 작정한 사람이 ‘예수 믿고 교회 다니면 좋은 일만 생길 줄 알았는데 왜 이런 비극이 생기나?’라고 한다면 무엇이라고 대답할 수 있을까?

16. 시련이나 욕을 받으면 즐거워하고 기뻐해야 할 이유가 무엇인가?

17. 고난도 고난 나름이지 아무 고난이나 다 복된 것은 아니다. 고난을 두 종류로 나눈다면?

18. 베드로가 이런 말을 다 하다니? ‘만일 그리스도인으로 고난을 받은즉 부끄러워 말고 도리어 그 이름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왜? 베드로는 이렇게 말하면 안 되나?

19. 하나님의 심판은 자기 백성들로부터 시작된다고 생각하였다(렘 25:29, 겔 9:6). 그러니까 믿는 자들에게 고난이 임하는 것을 하나님의 심판이 시작된 것으로 여긴다(17). 성도들이 먼저 심판을 받고 겨우(?) 구원을 얻는다(18-19). 왜 겨우 구원을 얻는다고 할까? 롬 8:37, 벧후 1:11에서는 넉넉히 얻는다고 하는데?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롬 8:37), ‘이같이 하면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원한 나라에 들어감을 넉넉히 너희에게 주시리라’(벧후 1:11)

20. 시련이 아무리 거세고 강하다고 해도 크게 보면 다 하나님의 뜻이다. 이것을 아는 성도는 시련 가운데서 어떻게 하는가?

연락(宴樂); 먹고 마시는 연회의 즐거움(다소 부정적인 의미로 쓰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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