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드로전서 1장


1. 베드로가 편지를 보낸 지역 ‘본도, 갈라디아, 갑바도기아, 아시아, 비두니아’ 전체를 현재는 무엇이라고 부를까?

    소아시아(혹은 터어키): 터어키의 중부지역을 서쪽에서부터 동쪽으로 아시아, 갈라디아, 갑바도기아(넓은 지역), 그 윗부분, 흑해에 임한 지역을 서쪽에서 동쪽으로 비두니아, 본도(해변을 따라 길쭉함)라고 불렀다. 아랫 부분에 조그마한 루기아, 밤빌리아가 있고, 동쪽에 제법 넓은 길리기아가 있다.

2. ‘흩어진 나그네’란 표현은 유다가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간 이후 유대인들이 산지사방으로 흩어진 이후에 생겨난 표현이다. 그러면 베드로 전후서는 베드로가 유대인에게 보낸 편지일까?

    그리스도인에게 보낸 편지: 교회의 출발은 개종한 유대인들로 말미암았지만 이미 복음 안에서 유대인과 이방인의 구별이 없어져 버렸다. 유대인을 의미하는 단어조차 영적인 유대인, 즉 그리스도인을 가리키는 말로 변해버렸다.

3. 우리의 구원을 위하여 누가 무슨 일을 하셨는가(2)?

    아버지의 미리 아심과 택하심(계획, 예정, 20, 행 2:23), 성령의 거룩하게 하심, 예수 그리스도의 피뿌림: 우리에게 임한 구원이 어느 날 우연히 이루어진 일이 결단코 아니다.

4. 성도를 가리켜 ‘나그네’라고도 하고 ‘택하심을 입은 자’라고도 한다. 의미에 어떤 차이가 있는가?

    세상에서 보면 나그네이지만 하나님 편에서 보면 택함 받은 자이다: 이 편지를 읽는 초대 교회의 성도들은 거의가 개종한 사람들이다. 예수를 믿고 가족이나 친척들에게 버림받은 채 소외된 삶을 사는 그들이 이 땅에서는 나그네이지만 실제로는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은 성별된 존재라고 격려하는 셈이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택하셨기 때문에 우리는 이 땅에서 나그네로 살아야 한다. 이 땅에서 천년만년 살 사람처럼 살지 말자.

5. 무엇이 우리를 거듭나게 하는가(3, 5)?

    하나님의 많으신 긍휼, 예수님의 부활하심(3), 너희의 믿음, 하나님의 보호하시는(=성령의) 능력(5):

6. 거듭난 자는 결과적으로 무엇을 얻게 되는가(3, 5, 9)?

    산 소망을 가지게 됨(3): 산 소망을 구체적으로 말하면 쇠하지 아니하는 기업을 잇는 것(=영원한 기업), 하늘에 간직하신 것(4, = 결코 빼앗기지 아니함), 말세에 나타내기로 예비하신 구원(5), 믿음의 결국 곧 영혼의 구원을 받는 것(9), 이를 위하여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호하시는 것(5), 등이다.

7. ‘말세에 나타내기로 예비하신 구원’은 특별한 구원인가? 구원에도 보통 구원이 있고, 특별 구원이 있는가?

    우리가 얻은 구원이 주님께서 나타나실 때에 온전하게 성취될 것을 가리킨다. 양자를 들인 경우에 법적으로(혹은 서류상으로)는 아들이 되었으나 실제로 아들의 지위를 누리기까지는 다소 시간이 걸리는 것에 비유할 수 있다.

8.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가 아니라 ‘구원을 얻기 위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호하심을 입었다’고(5)?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부터는 구원을 얻었지만 사람에게는 핍박을 받는 상황이 되자 하나님께서 보호하셨다는 뜻이다.

9. 구원을 얻는 것과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호하심을 입는 것은 동의어인가?

    아니다, 후자는 이미 얻은 구원을 ‘지키는 것’이다. 칼빈주의의 5대 강령의 표현을 인용하면 성도의 견인(Perseverance of the Saints, 한번 믿은 자는 끝까지 하나님께서 인도하신다)에 해당하는 것이다.

10. 믿음으로 구원을 얻으면 기쁨만 넘치는 게 아닌가?

    근심할 일도 있게 마련이다(6). 잠간 근심과 크게 기뻐함이 대조를 이룬다. 없던 시험거리가 생기게 마련이다. 잘 이겨내면 엄청난 복이 기다리는 시험이다. 베드로는 네로 황제의 핍박이 시작될 무렵에 이런 시련을 예상하고 이 글을 쓴 것 같다.

11. 여러 가지 시험을 당했는데 오히려 크게 기뻐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여러 가지 시험(=믿음의 시련)이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하기 때문이다(7).

12.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7)? 불로 연단하는데 왜 없어지나?

    불로 연단하여 잘 제련된 금도 결국은 없어지는 것이지만(18) 구원을 이룬 믿음은 결코 없어지지 않는다. 금과 믿음의 공통점은 연단을 통하여 더욱 순수하게 되며 귀한 것이라는 점니다. 차이점은 금은 일시적(없어지는 것)이만 믿음은 영원하다.

13. 그리스도인의 진정한 기쁨은 어디에 근거를 두고 있는가(6, 8-9)?

    영혼의 구원: 이것이 모든 기쁨의 원천이어야 한다. 혹시나 물질의 풍부함이나 욕심을 이룬 탓이지 않은가?

14. 하나님의 말씀을 전한 선지자들이 연구하고 부지런히 살피는 것은 무엇을 찾으려고?

    그리스도의 고난과 얻으실 영광이 어느 때인지(11)=너희에게 임(할)한 은혜(11): 선지자들이 자신이 예언한 말씀을 스스로 상고했다는 것은 자신들도 내용을 다 모른 채 말했다는 것이다. 자신들의 말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한 것이기 때문에 그렇다.

15. ‘선지자들도 부지런히 연구하던 것(10), 너희를 위한 것(계시로 알게 된), 성령을 힘입어 너희에게 전하여진 것, 천사들도 살펴보기를 원하는 것(12)’은 성도들의 믿음과 무슨 관계인가?

    믿음(구원)의 내용(10절의 ‘구원에 대하여’), 곧 복음(12절의 ‘복음을 전하는 자들이 너희에게 고한 것’): 복음은 그렇게 값싼 것도 아니고, 쉬운 것도 아니다. 우리보다 훨씬 더 하나님의 뜻을 잘 아는 천사들도 쉽게 이해할 수 없는 것이 우리가 받은 구원의 내용이다. 천사들도 살펴보기를 원할 정도로 귀중한 것이다(눅 10:24).

16. 현실의 어려움을 이겨내는 가장 좋은 방법은 꿈(희망)을 가지는 것이다. 희망이 없다면 현실이 아무리 좋아도 비관할 수밖에 없다. 그리스도인은 무슨 희망을 가지고 사는가?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 때에 가져오실 은혜(13): 그리스도인은 기본적으로 내세주의자이다. 현실에서 한발짝 정도 떨어져 있기 때문에 오히려 현실에 매몰되지 않고 현실을 바로 볼 수 있다. 현실주의자는 버려야 할 것을 버리지 못하기 때문에 오히려 현실에 매몰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 결국은 건전한 내세주의자가 현실주의자보다 더욱 현실적일 수 있다.

17. 세상의 온갖 유혹에 굴하지 않고 자신을 지킬 수 있으려면 나름대로 분명한 가치관(믿음, 신념, 소신, 등)이 있어야한다. 본문의 표현(14-17)을 빌려서 한 가지를 추가한다면?

    자신의 정체성(Identity)을 확립하는 것,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과 이 땅에서 나그네라는 것(17): 자신이 거룩하신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을 확신한다면 세상의 유혹에 끌려 들어갈 수 없다. 내가 누구냐? 거룩하신 하나님의 아들이며 모든 것을 아시는 하나님의 아들 아니냐? 이것이 구원받은 성도가 성화되는 출발점이다.

18. 그리스도의 피가 은이나 금보다 더 보배로운 이유는 무엇인가(18-19)?

    효력이 영원하기 때문이다(23, 25): 일반적으로 본다면 은이나 금은 육신에 속한 것이요 그리스도의 피는 영혼을 살리는 것이기 때문이라고 해야겠지만 18절에서는 ‘영원성’이 옳다. 영혼을 영원히 살리는 것은 은이나 금이 아니다. 교회가 어디에 더 관심을 가져야 하는가? 한 영혼의 가치를 제대로 평가하고 영혼을 살리는 일에 최대의 관심을 가져야 한다.

19. 창세 전에 예수가 알려졌다고(20)? 나타나기는 말세에? 이게 무슨 뜻인가?

    하나님에게 알려졌다, 즉 하나님은 미리 아셨다는 말이다(2). 예수 그리스도가 구세주로 나타나실 것은 창세 전에 이미 하나님께서 아셨던 일이다. 구속사의 전 과정은 어쩌다가 그렇게 된 일이 아니라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님께서 계획하시고 이루신 일이다.

20. 20-21절을 다음과 같이 (        ) 부분을 생략하고 읽으면 이해하기 쉽다. 그러면 끝 부분의 ‘있게 하신 이’는 누구일까? ‘그는 창세 전부터 미리 알리신 바 된 자나 이 말세에 너희를 위하여 나타내신 바 되었으니 너희는 (저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시고 영광을 주신) 하나님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믿는 자니 너희 믿음과 소망이 하나님께 있(게 하셨)느니라’

    이 모든 일을 주관하신 분, 곧 하나님: 창세 전에 이미 그리스도를 아시고, 이 세대에 나타나게 하시고,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시고, 영광을 주시고, 그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믿게 하시고, 결국은 우리의 믿음과 소망이 하나님께 있게 하신 분은 당연히 하나님이시다. 성도가 거룩해야 할 이유도, 형제를 사랑해야 할 이유도 바로 이것이다.

21. 지금까지 하나님의 놀라운 구속 사역에 대해서 언급하더니(3-21) 갑자기 형제를 사랑하라고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당연한 귀결이다: 우리의 형제를 하나님께서 이렇게 사랑하셨는데 우리가 어떻게 사랑하지 않을 수 있느냐는 말이다.

22. 그리스도인의 거듭남은 살아있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말미암는다(23). 그리스도의 피로 거듭나는 것 아니고? 아니, 세례라고 하던데?

    하나님의 말씀의 구체적인 내용이 그리스도의 피이다: 이 하나님의 말씀이 바로 선지자, 전도자들이 전해준 복음이고(10-12) 그 복음의 핵심이 바로 그리스도의 피흘림이다. 불신자들에게 바로 이 말씀을 들려주어서 거듭나게 해야 한다(롬 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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