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수기 32장


1. 르우벤 자손과 갓 자손에게 다른 지파보다 많은 가축의 떼가 있었다는 것이 이상하다. 지난 번 전투에 참가한 인원이 더 많은 것도 아닌데 어떻게 된 걸까?

    출애굽 때 이미 많았다는 것 외에는 달리 설명할 길이 없다(출 12:38, 17:3): 혹독한 노예생활이나 광야생활에서도 자기 가축을 기르고 늘리는 재주는 남달리 있었던 모양이다. 같은 여건 속에서도 재산을 더 많이 소유하는 재주는 재주 중에 귀한 재주다. 정당한 방법과 남다른 노력으로 더 많은 것을 소유하는 것은 잘못이 아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재물에 너무 무신경한 것도 잘 하는 일은 아니다. 무소유보다 잘 쓰는 것이 더 의미 있는 일이다.

2. 가축이 많은 지파가 가축을 기르기 좋은 땅을 보더니 그만 여기 머무르겠단다. 하나님께서 주시겠다고 약속한 땅으로 가지 않고 그런 욕심을 부려도 될까?

    땅에 대한 욕심이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거나 하나님을 저버리는 행위가 아니라면 고려해볼 여지가 있다. 결과적으로 하나님의 나라가 더 넓어지지 않았는가! 중요한 것은 얼마나 하나님의 말씀에 신실한가에 달렸다. 조건부로 이 땅을 차지하게 되지만 훗날 고생도 많이 하게 된다. 사사시대에 암몬 족속이 이 땅을 빼앗으려고 입다와 싸우게 된다(삿 11-12). 외부의 침입이 있으면 먼저 수난을 당했고(삼상 11 장, 왕상 22:2-3, 암 1:3), 이스라엘 내부에 문제가 생기면 피난처 역할도 하게 된다(삼하 2:8-9, 17장). 그러다가 앗수르에 포로로 잡혀가면서 이 땅도 이스라엘의 역사에서 사라진다.

3. 두 지파의 말을 듣고 모세가 무척 놀란 증거는 무엇인가?

    말이 엄청 많다(6-15): 놀래서 속사포처럼 퍼붓는다. 자칫 잘못되면 내분으로 치달을 가능성이 있다.

4. 요단을 건너지 않게 해달라는 말에 모세가 펄쩍 뛰는 이유가 무엇인가?

    가데스바네아 사건의 재판이라고 생각한 탓: 40년이나 광야를 헤매다가 간신히 원위치에 돌아온 셈인데 또? 자라 보고 놀란 사람이 솥뚜껑 보고 놀라는 격이다. 이 땅은 약속의 땅이 아니기 때문이다.

5. 르우벤과 갓 지파의 요구사항이 40년 전 사건과 다른 점이 무엇인가?

    하나님의 허락을 받으려는 것과 적에 대한 두려움이 없음: 40년 전 사건은 적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하나님께 반항하였지만 지금은 여호와를 버리려는 것은 아니다. 지금은 땅을 차지하려는 욕심이 있을뿐 두려워할 적도 없다.

6. 모세의 책망에 대해서 두 지파가 제시한 해결책 두 가지는 무엇인가?

    선봉에 서서 싸우겠다. 강 서편의 땅을 가지지는 않겠다.

7. 빨리 가나안으로 가야 하는데 여기서 우리를 짓고 성읍을 건축하려면(16-17) 몇 년이 걸릴지도 모르는데?

    새로운 성읍을 건축하는 것이 아니라 (점령한 성읍들을 보수해서) 가족들을 안전하게 거하게 한 후에 함께 요단을 건너겠다는 뜻이다.

8. 가인이 아무도 모르게 동생을 죽였을 때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은 ‘...네 아우의 핏소리가 땅에서부터 내게 호소하느니라’(창 4:10)는 것이다. 목격자가 없는데도 죄를 지으면 안 되는 이유를 모세의 말에서 찾는다면?

    죄가 죄지은 사람을 찾아내기 때문(23): 사람은 몰라도 하나님이 계시므로 이런 일이 생기는 것이다. 만약의 경우에 이 약속을 지키지 않으면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없다는 것을 거듭거듭 강조하는 말이다.

9. 모세는 조건부로 두 지파의 요청을 수락한다(20-23). 이 조건을 반드시 지켜야 한다고 특별히 강조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하나님 앞에서(Coram Deo) 행한 약속이기 때문: 이 짧은 조건 속에 ‘하나님 앞에서’ 라는 말이 여섯 번이나 나온다. 그 중에 네 번은 두 지파와 직접 관련이 있다. 본래부터 착한 사람과 하나님 때문에 착하게 살 수밖에 없는 사람, 누가 더 복될까? 딴 짓을 하고 싶지만 하나님 때문에 차마 하지 못하는 사람을 하나님께서 더 기뻐하시지 않을까?

10. 어린 자와 아내와 양떼와 모든 가축을 성읍들에 두고 남자들이 다 강을 건너가버리면(27) 어떻게 될까?

    위험해서 안 된다: 실제로 군사는 1/3 정도인 4만 명이 건너간다(수 4:12). 원래 군대를 운용할 때 1/3은 싸우고 1/3은 대기 혹은 교대 병력으로, 1/3은 수비를 담당한다. 참고로 26장의 인구조사에 따르면 르우벤 지파는 43,730, 갓 40,500 므낫세 반 지파는 26,350 명이다.

11. ‘그들이 만일 너희와 함께 무장하고 건너지 아니하거든 가나안 땅에서 너희 중에 산업을 줄 것이니라’ 이 말(30)은 이상하다. 건너지 않는데 어떻게 땅을 줘?

    그들이 원하는 땅(강을 건너기 전의 땅)을 주지 말라는 뜻이다: 만약 이 약속을 지키지도 않은 채 강 동편 땅을 차지한다면 민족적 분열을 피할 수 없다. 다른 지파가 열심히 싸우고 있는데 자기들만 평안하게 잘 먹고 잘 살고 있다면 같은 민족일 수 없다. 그보다 더 무서운 것은 가데스바네아 사건의 재판일 수도 있다는 점이다.

12. 두 지파가 열심히 간청했는데 느닷없이 므낫세 반 지파는 뭐야(33)?

    이왕에 룰을 변경해서 두 지파에게 땅을 주는 마당에 므낫세 반 지파가 그만한 공로가 있다면 못 줄 이유가 없다. 얼결에 땅을 얻은 것 같지만 자다가 일어나 받은 것은 아니다. 열심히 싸운 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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