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수기 27장


1. 므낫세의 현손은 누구인가?

    슬로브핫: 현손은 손자의 손자이다. 마길의 증손, 길르앗의 손자, 헤벨의 아들, 이 표현은 전부 슬로브핫을 가리킨다. 요셉으로부터 슬로브핫의 딸까지는 7세대다. 이 기록이 얼마나 역사적으로 정확한 사실인가를 보여주는 셈이다. 우리는 몇 대 조상까지 기억하는가를 생각해보라.

2. 슬로브핫의 딸들이 모세에게 나아온 이유는 무슨 말을 들었기 때문일까? 26장에서 답을 찾아보자.

    땅을 분배하는 원칙을 들었기 때문(26:52-56): ‘이 계수대로’(26:53) 하면 슬로브핫은 가족이 전혀 없는 셈이다. 20세 이상의 남자만 계수에 들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땅을 나눠주지 않으면 다섯이나 되는 딸은 어떻게 먹고 살지? 빨리 시집가는 수밖에 없나?

3. 슬로브핫의 딸들이 ‘아버지는 자기 죄에 죽었다’고 말한다. 이게 무슨 자랑인가?

    기업을 나눠 받을 자격이 있다는 뜻이다: 고라의 무리에 들지 않았다는 것은 권리가 박탈될 이유가 없다는 말이고, 자기 죄에 죽은 것은 모든 사람들이 죽는 일반적인 죽음이라는 말이다. 사람은 다 그렇게 죽는 것이기 때문에 아버지가 기업을 받지 못할 이유가 없다는 말이다. 죄인이면서 당당할 수밖에 없는 죄인? 모든 인생은 자기 죄에 죽는다. 그렇지만 하나님 앞에 당당하게 나와야 한다.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모습을 정확하게 아는 사람만이 ‘당당한 죄인’이 될 수 있다. 효자가 아니라도 당당하게 아들이라고 해야 하는 것이 자식이다.

4. 아버지의 이름으로 땅을 받아서 시집을 가면 어떻게 될까?

    양자들이듯이 데릴사위를 들여서 아버지의 이름을 이으면 될 것 같은데(그렇게 했을지도 모른다) 훗날 그들에게 주어진 규정은 같은 지파의 가족에게만 시집을 가라는 것이다(36:6-9).

5. 아들이 없다고 아버지의 기업이 사라진다? 이런 일은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한 당찬 딸들의 요구가 제대로 받아들여졌는가?

    요구한 것 이상으로 응답되었다: 아들은커녕 딸도 없는 사람까지 혜택이 돌아가게 되었고, 자신들뿐만 아니라 같은 처지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 혜택이 돌아가게 되었다. 아예 새로운 법이 주어졌다.

6. 기업(땅)이 무엇이기에 이렇게 중요하게 여기는가?

    땅과 후손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의 상징이다: 땅이 생존에 필수적이지만(창 3:23) 생존의 차원을 넘어 하나님의 선물이기도 하다. 하나님께서 은혜로 주신 기업은 어떤 경우에라도 타인의 손에 넘어가지 않도록 해야 했다. 혹시 팔리더라도 희년이 되면 본래 주인에게 돌아 가야 한다. 이런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땅을 빼앗아버린다는 것은 얼마나 큰 징계인가?

7. 모세가 올라가서 죽은 산 이름이 무엇인가(참고 신 34:1)? 비스가? 느보? 아바림?

    아바림 산맥의 북쪽 끝에 있는 비스가산의 느보 봉우리! 40년 간 꿈에 그리던 땅을 바라보라. 그리고 죽어라?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하셨던 약속을 신실하게 지키셨다는 의미에서 그 땅을 바라보라고 하신 것이다(신 34:1-4). 하나님께서 주신 복을 세어볼 수 있는 사람은 정말 복되다. 하나님의 약속이 신실하게 이루어진 것을 보는 복이다.

8.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말고 ‘이제 그만 죽어라?’는 말인데 모세는 억울하다는 말도 한 마디 못하고 대신에 후계자를 세워달라고 했을까?

    모세와 하나님의 관계가 그렇게 고약한 주인과 종의 관계가 아니다. 친구 이상의 끈끈한 관계를 감안해서 그 말씀의 의미를 생각해야 한다. 그는 하나님을 대면하여 본 자이다(신 34:11). 모든 것을 다 잃어버리고도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았던 욥을 보라. ‘조상에게로 돌아간다’는 표현이 내용상 ‘죽는다’는 말과 같을지 몰라도 느낌은 전혀 다르다. ‘조상’이라는 말은 난외주를 보면 ‘백성’과 같은 말이다. 조상, 혹은 백성들을 만난다는 의미이다. 먼저 간 조상들을 만나서 진정한 휴식을 누리게 된다는 뜻이다(마 8:11). 가나안 땅을 몹시 사모했지만 모세는 상징적인 가나안이 아니라 진짜 가나안으로 바로 들어간 셈이다.

9. 모세가 신 광야 가데스의 므리바에서 하나님의 거룩함을 나타내지 않은 것이 천추의 한을 남겼는가? 만약 그 때 그렇게 실수를 하지 않았더라면 가나안에 들어갔을까?

    아니다: 모세가 맡은 역할은 백성들을 이끌고 가나안 입구까지 가는 것이고(율법의 역할) 가나안으로 들어가는 것은 여호수아(예수, 은혜, 믿음)의 몫이다. 이 두 사람은 율법과 은혜(예수)의 상징이다. 율법은(모세는) 몽학선생이 되어 우리를 그리스도(여호수아)에게로 인도할 뿐이다(갈 3:24). 하나님의 구원사역에서 맡은 일정한 역할이 있음을 알고 하나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셔도 모세는 알아들었을 것이다.

10. 하필 여기서 여호와는 모든 육체의 생명의 하나님이시라는 말을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하나님의 말씀에 추호도 불만이 없다는 뜻이다. ‘그 문제에 대해서는 전적으로 동의합니다만 이 일은 해결해 주셔야겠습니다’는 식이다.

11. 후계자 문제도 하나님께서 다 알아서 하실 일인데 모세가 쓸데없이 참견하는 것(16-17) 아닌가?

    능력으로만 본다면 그렇겠지만 하나님과 우리와의 관계를 생각해보면 그렇게 말해야 한다. 우리가 드리는 수 많은 기도는 어떤 측면에서 보면 쓸데없는 참견이다. 모든 것을 주관하시는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에 어디?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를 자녀로 삼으시고 소원을 두고 기도하라고 하셨다. 그런 관계에 기초해서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따라 기도해야 하는 것이다. 자녀가 아닌 사람이 그런 말을 하면 정말 쓸데없는 참견일 뿐이다.

12. 양에게 목자가 없으면 어떻게 될까?

    죽은 목숨이다(겔 34:5-6): 양은 스스로 자신을 지킬 수 없는 짐승이다. 눈도 어둡고, 무기도 없고, 빠르지도 않다. 어떻게 이런 짐승이... 저절로 생겼을까? 하나님께서 인간을 위해 특별히 만드신 짐승 아닐까? 제사 제물로도 적격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상징으로도 제격이다. 아벨이 양을 치는 자였다는 것은 처음부터 양이 인간과 함께 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13. 여호수아는 ‘신에 감동된 자’이다. 신들린(?) 사람이었을까?

    ‘신에 감동된 자’란 직역하면 ‘신이 그 안에 있는 사람’이란 뜻이다. 하나님의 뜻에 기꺼이 순종할 수 있는 믿음의 사람(창 41:38)을 가리키는 말이다.

14. 훗날 백성들이 여호수아에게 복종하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하나님께서 그렇게 만드셨기 때문(20): 하나님의 명에 따라 모세의 존귀함을 전달받았기 때문이다. 여호수아는 오래 전부터 모세의 비서였고, 장수였으며 뛰어난 신앙의 인물이었다. 당연히 모세의 뒤를 이어 민족의 지도자가 될 사람이었지만 외견상의 그런 요소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뜻이다. 여호수아 개인에게도 지도자가 될만한 요소가 있지만 그렇다고 그것 때문에 지도자가 된 것은 아니다.

15. 엘르아살이 높은 거야, 여호수아가 높은 거야?

    맡은 역할이 다를 뿐, 높고 낮음의 문제가 아니다: 엘르아살은 하나님의 대리인이고 여호수아는 백성의 대표인 셈이다. 백성을 통솔하되 엘르아살을 통해서 하나님의 뜻을 물어야 한다. 이 때 제사장이 사용한 우림과 둠밈은 판결 흉패 속에 들어있는 일종의 제비인데 구체적으로 어떻게 사용했는지는 알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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