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수기 22장


1. 모압이 아모리인들에게 당한 적이 있는데(21:29) 그 아모리들을 모조리 격파한 이스라엘이니(2) 겁을 낼만도 하다. 그러나 좀 더 생각을 해보면 그렇게 겁을 먹지 않아도 되는데 왜 그랬을까? 그래서 화를 자초하고 만다(신 23:4-6).

    에돔과 모압을 건드리지 않고 빙 둘러서 여기까지 왔다는 것은 싸울 마음이 없다(신 2:9)는 뜻이다: 아모리인들을 치면서도 중간에 있는 모압과 형제의 나라인 암몬을 건드리지 않았다. 이스라엘은 이 모압 평지에서 할 일이 많아서 모압을 건드릴 여유가 없다. 여기에서 모세가 백성들에게 행한 설교의 내용이 신명기다. 자체 교육만도 바쁜데... 그 외에도 2차 인구조사(26장)를 통해서 가나안 진군 준비에 바빴다. 여리고 맞은 편이면 모압의 입장에서 보면 진행방향이 아니다. 옆으로 지나가는 중인데? 자기에게 오지 않고 지나가기만 해도 겁난다.

2. 이스라엘을 보고 소떼라고? 겁이 덜 난 모양이구나! 성경에서 소떼보다 더 무서운 것은?

    메뚜기(출 10:15, 삿 6:5, 욜 1:4): 성경에는 주로 메뚜기가 재앙이지 소가 재앙으로 등장하는 경우는 여기 뿐이다. 그래도 소를 기르는 사람들에게는 소떼가 풀을 뜯는 것은 실감나는 표현일 것이다.

3. ‘강변’(5)이란 고대에 번영의 한 축이었던 유프라테스강을 가리킨다. 브돌은 이 강의 상류에 있던 성읍으로 모압에서 거의 600km가 넘는 거리다. 거기까지 두 번이나 왕복하려면 시간이 꽤 많이 걸렸을텐데... 누가 이런 사람을 발락에 추천을 하는가? 왜 그럴까?

    미디안 장로들(4): 미디안의 일부는 대상을 통한 무역에 종사하였다. 그들을 통해서 이런 저런 정보가 전달되기도 했다. 온 세상을 돌아다니는 사람들이니 아는 것도 많을 수밖에!

4. 발람이 어떤 사람인지 정확하게 알기는 어렵다. 하나님을 섬기는 선지자는 아니다. 그렇게 먼 거리에 있는 발람을 모압왕이 통 사정을 하는 것을 보면 유명하기는 유명했나보다. 요즈음 말로 하면 어떤 인물인가?

    용한 점쟁이? 그가 복을 비는 자는 복을 받고 저주하는 자는 저주를 받는다고 소문이 나서 모압 왕이 믿을 정도였다(6). 정말 효력이 있었을까? 사단의 힘을 빌어 능력을 발휘하는 거짓 선지자는 오늘날에도 있다.

5. 발람이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이라면 이런 의도로 찾아온 손님들에게 유숙하라(8)고 하는 것은 잘못이다. 하나님의 뜻에 맞지 않는 일이라면 물어볼 것도 없이 끝냈어야 한다. 그런데 왜 유숙하라고 할까?

    귀신을 섬기는 자이기 때문이다: 귀신을 섬기는 자는 옳고 그름이나 신의 뜻이 무엇인지 스스로 판단할 능력이 없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스스로 하나님의 뜻을 판단해서 책임있게 행동하기를 원하신다.

6. 발람이 하나님의 말씀에 대답도 잘 하고 순종도 잘 하지 않는가?(10-11, 13).

    귀신을 섬기는 자도 귀신의 말은 잘 듣는다. 선지자와 다른 점은 존경심 때문이 아니라 두려움 때문에 순종하는 것이다.

7. 일단 거절한 것(18)은 잘한 일이다. 그런데 알아보긴 뭘 알아봐! 무슨 마음이 있는 걸까?

    모압의 귀족을 따라가고 싶은 마음: 물어보고 하지 말라면 안 하면 되지? 이런 생각은 귀신을 섬기는 자의 생각이고,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면 스스로 포기하는 것이 하나님을 섬기는 자의 자세다. 하나님의 자녀들 중에도 자녀답지 못한 자들이 많아서 탈은 탈이지만...

8. ‘발락이 그 집에 은, 금을 가득히 채워서 내게 줄지라도 내가 능히 여호와 내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어 덜하거나 더하지 못하겠노라’는 이 말(18)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은 무엇인가?

    그렇게 가고 싶거든 가봐라(20): 하나님은 18절에 감동을 받는 것이 아니라 19절에 나타난 발람의 마음을 아신다. 말이야 얼마든지 근사하게 할 수 있다. 사기꾼일수록 더욱 그러하다.

9. ‘그 사람들이 너를 부르러 왔거든 일어나 함께 가라’ 지난 번에는 가지 말라고 하셨는데? 사람들에게서 흔히 볼 수 있는 비슷한 예를 찾아보자.

    그렇게 공부하기 싫거든 학교 가지마라, 그렇게 가고 싶거든 가서 생고생 한번 해봐라: 하나님의 말씀은 ‘그렇게 가고 싶거든 가봐라’ 는 것이다. 이게 허락이 아니다. 발람의 욕심을 하나님께서 이용하시기로 하신 것이다. 함부로 하나님께서 기도를 들어주셨다고 날뛰지 마라. 집나가려고 하는 아들에게 재산을 떼어주시는 것이 복이 아니다. 아버지의 뜻도 아니다. 그러니 가라고 해놓고도 길을 막으려고 하는 것이다(22).

10. 나귀가 보는 것이나 말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특별하게 역사하신 일이다. 무슨 말씀이 하시고 싶어서 이러실까?

    야, 이 짐승보다 못한 놈아!: 명색이 온 세상에 이름을 떨치고 있는 술사, 점쟁이다. 하나님의 손에서는 나귀보다 못한 인간임을 깨달으라는 것이다. 엉뚱한 욕심에 눈이 멀면 남들이 다 보는 것을 보지 못하고 어리석은 짓을 한다. 훗날 이 나귀는 유명세를 탔을 것이다. 술사 발람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본 나귀! 독립해서 따로 점포를 차리면...?

11. 가라고 해놓고서 천사가 죽일듯이 나타나는 것은 절대로 딴 마음을 먹지 말라는 당부인 셈이다. 발람이 딴 마음 먹을만한 인물일까?

    본문에 나타나지 않는 꾀를 부린 사람이다(31:16, 벧후 2:15, 유 1:11, 계 2:14): 하나님의 말씀에 절대 순종하는 것같이 하면서 엉뚱한 잔머리를 굴리는 점쟁이일 뿐이다.

12. 나귀와 사람이 어떻게 대화가 되는가? 무슨 동화도 아니고...

    하나님께서 나귀의 입을 여시면 가능한 일이다: 방법이야 어떠하든 하나님께서 하시려면 하실 수 있는 일이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뜻이지 나귀나 사람의 능력이 문제가 아니다(참고, 출 4:11). 영적인 통찰력이 있다고 하는 발람도 나귀보다 못하다는 것을 일깨우기 위한, 자기 백성들 위해서 베푸시는 놀라운 은혜이다.

13. 발람은 왜 여호와의 사자가 칼을 빼들고 길에 선 것을 보지 못하였을까?

    눈이 어두워서: 눈을 뜨고 있다고 모든 것을 다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의 눈은 물질세계조차도 일부만 보고 있다. 하물며 영적인 부분은 오죽하겠는가? 우리 눈이 모든 것을 다 볼 수 없다는 것을 아는 것만으로도 훌륭한 눈을 가진 셈이다. 더구나 물질이나 허영에 눈이 멀면 눈을 뻔히 뜨고도 볼 것을 제대로 보지 못한다. 선입견도 마찬가지다. 바둑이나 장기도 옆에서 보면 잘 보이는 수를 정작 본인은 잘 보지 못할 때가 많다.

14. 여호와의 사자가 나타난 목적은 길을 막는 것이 아니다. 길을 막아버리면 간단할텐데?

    굳이 가려는 사람을 억지로 막는 것이 하나님의 방법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소를 멍에에 매어 끌고 다니듯이 사람을 끌고 다니시지 않는다. 스스로 와서 멍에를 매는 것을 막지는 않지만(마 11:29)! ‘나의 하나님’이라고 부르지 않는 야곱의 뒤를 평생 따라 다니시며 결국은 ‘나를 기르신 하나님’이라는 답을 듣고야 마시는 분이시다.

15. 가야 할 길이 아님을 알았다면 무조건 돌아가야지 어디 또 한 소리(34)?

    가고 싶으니 그러는 것이지: 가고 싶어도 길이 아니라면 과감히 끊어야 하는데 이런 저런 핑계로 가는 것이다. 교회를 위해서, 교회를 지키기 위해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 저질러지는 가슴 아픈 일이 하나 둘이 아니다.

16. 하나님 없는 인생의 모습을 ‘발람을 기다리는 발락’ 이라고 하면 어떨까? 어떤 점이 비슷한가?

    아무런 소용이 없는 것을 의지함: 알고보면 소용이 없다기보다는 오히려 해를 끼칠 것을 의지하는 것이다. 이사야의 표현을 빌리면 독사의 알을 품는 짓이다(사 59:5).

17. 발락의 허풍은 무엇인가?

    그렇게 능력이 있으면 뭣 하러 발람을 불러? 적을 물리치면 되지!: 능력도 없으면서 장담하는 일이 얼마나 많은가? 결혼만 해주면 행복하게 해주겠다고? 그럴 능력이 있는지 따져보면 어떨까? 그래도 말은 그렇게 해야 하는가? 허풍인줄 알고 하면 그래도 다행이다.

18. 발람의 옳은 말을 두 절만 찾아보자.

    18, 38: 말은 그렇게 하면서 뒤에서 딴 짓을 했다.

19. 발락과 발람이 바알의 산당에 오른 이유는 무엇인가?

    저주하려는 대상을 보려고: 아마 보고 저주해야 효력이 있는 모양이다. 물과 가장 가까운 곳일수록 액운이 잘 씻겨나간단다. 보지 않고, 만지지도 않고 능력을 발휘하신 분은 하나님 뿐이시다(마 8:8). 아마 다른 신들은 그렇지 않을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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