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수기 21장


1. 남방이란 네게브 사막 지역을 가리키는 말이다. 호르마는 이스라엘이 진행하는 방향과도 다르고 거리가 상당히 먼데 아랏 왕이 오판한 셈이다. 그건 아랏 왕의 입장이고 하나님의 편에서 본다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앞으로 있을 가나안 전쟁을 위한 준비운동: 이스라엘이야 원통해서 한 마음으로 기도하고 하나님께 서원을 하고 용감하게 나섰지만 앞으로 있을 전쟁을 위해서 하나님께서 준비시키시는 일이다. 온갖 불행이나 어려움도 하나님의 손에 잡히면 훗날 복으로 돌아온다.

    되로 받은 것을 말로 갚아야 한다? 대상을 잘 살펴야 한다. 응징해야 할 대상인지 결국은 내가 돌보아야 할 대상인지! 가나안 족속들은 이스라엘이 철저하게 멸해야 할 대상이었다. 하나님께서 오래 전에 심판하시기로 작정하셨기 때문이다.

2. 홍해(4)? 애굽 쪽이면 말이 안 되는데 왜 또 그리로 갔을까?

    애굽 쪽으로 간 것은 아니다: 지금 수에즈 운하가 있는 곳과 아카바만이 둘 다 홍해의 일부다. 그러니까 에시온 게벨이 있는 지역으로 지나갔다는 말이다. 홍해의 끝이 Y자처럼 갈라져 있다.

3. 에돔을 피해서 홍해 길로 가는 길은 바란 광야를 통과해서 멀리 돌아가는 길이다. 성질이 날만도 하다. 아랏 왕을 치듯이 에돔하고 붙어버리면 되는데 돌아가게 하니 성질이 나는 모양이다. 성질을 내? 참아? 먹는 문제를 걸고 넘어졌는데...(5)

    이해는 가지만 참아야 했다: 이스라엘은 먹는 것 가지고 불평할 계제가 아니다. 처음 만나를 보았을 때 얼마나 감탄했는데? 그것을 박한 식물이라고? 물도 마찬가지다. 언제는 물을 저장해두고 있었나? 반석에서 물을 내셨던 것을 생각하면 불평할 이유가 없다. 일상화된 기적을 기적으로 알지 못하는 어리석은 것이 우리 인생이다. 매일 먹는 음식, 함께 사는 가족을 기적으로 여길 수는 없는 걸까? 살아있는 자체를 기적으로 알고 감사할 수는 없는 걸까?

4. 외적으로 몇 사람(1)이 잡혀간 것과 불평으로 많은 사람(6)이 죽은 것을 비교해보자.

    외적의 침입보다 불평이 더 무서운 결과를 가져왔다. 외적이 몇 사람을 사로잡아간 것에 분노하여 아예 그들과 성읍을 멸해버렸다면 그들의 불평에 대해서 얼마나 큰 징계를 받아야 하는가? 내부의 불평이 이렇게 무서운 것이다. 예로부터 외적의 침입으로 무너진 나라보다 스스로 무너진 나라가 훨씬 더 많다.

5. 고열로 죽어가는 사람에게 장대에 높이 달린 모형 뱀(놋뱀)을 쳐다 보면 살리라? 믿으라는 말이다. 웃기지 말라고 버티다가 죽은 사람은 없었을까? 믿음은 때로는 이렇게 말이 안 되는 짓을 하는 것이다. 오늘 우리도 이런 짓을 하는가?

    2000년 전에 십자가에 달린 예수를 나의 구세주로 믿으라는 말과 별반 다르지 않다. 이 놋뱀도 나무에 달린 예수의 모형이다. 쳐다보기만 해도 된다고 해도 너무 쉬운 일이라서 웃고 쳐다보지 않고 죽는 사람도 많다.

6. 죽을 사람은 죽고 살 사람은 살았다. 일이 끝난 다음에 이 모형 뱀은 어떻게 해야 하나?

    기념물로 보관해야지: 훗날 우상이 되었다가 파괴되었다(느후스단, 왕하 18:4). 모형 뱀 자체가 능력이 있는 것이 아닌데 세월이 지나면서 하나님은 잊어버리고 모형 뱀만 신성시해버린 것이다. 엘리 시대의 법궤처럼! 오늘날의 어떤 교회당처럼! 어떤 전통이나 습관처럼!

7. 지명은 잘 모르니까 지도를 참고하자. 오봇 → 이예아바림 → 세렛 골짜기 → 아르논 건너편 → 브엘 → 맛다나 → 나할리엘 → 바못 → 비스가 산! 이 지역의 공통점이 뭘까?

    사람이 거의 거하지 않는 곳: 에돔과 모압을 우회하는 이유가 바로 사람이 없는 지역으로 가는 것이다. 멀기도 하지만 사람이 거하지 못하는 광야나, 바위 투성이 산이다.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없이 살 수 없는 길이다. 오봇에서 비스가까지! 은혜로만 살 수 있는 길이다.

8. 전해지지 않는 책이 있네. 무슨 내용이었을까? 이 책에 대해서 알 수 있는 것은 본문에서 인용한 것이 전부란다.

    서사시집: 인용된 짧은 시 세 편(14-15, 17-18, 27-30)을 보고 짐작컨대 아마도 이 책은 출애굽 과정에 있었던 전투장면들을 서사시로 읊은 것 아닐까?

9. 우물을 홀과 지팡이로 팠다고?

    지도자들의 명을 따라서 우물을 팠다는 뜻이다.

10. 이스라엘의 입장에서는, 지나가겠다는데 덤비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싸워서 땅을 점령해버렸다? 에돔왕이 도전할 때는 싸우지 않고 돌아왔는데? 시혼 왕의 입장에서 보면 절대로 통과시킬 수 없는 막강한 세력이다. 하나님께서 보시기에는 어떨까? 창 15:16절을 참고해서 생각해보자.

    심판해야 할 때가 이르렀다: 역사도, 전쟁도, 사람의 편에서 보면 나름대로 이유가 있지만 하나님의 편에서 보면 또 이유가 있다. 하나님의 섭리를 이해하는 것이 역사를 제대로 보는 눈이다. 아모리인들의 죄악이 관영하기까지 하나님께서 미루어두신 심판의 때가 이르렀을 뿐이다. (신 2:24) 너희는 일어나 진행하여 아르논 골짜기를 건너라 내가 헤스본 왕 아모리 사람 시혼과 그 땅을 네 손에 붙였은즉 비로소 더불어 싸워서 그 땅을 얻으라

11. 이스라엘이 지나온 경로를 참고로 요단강 동편에 있는 다섯 나라들을 남쪽에서 북쪽의 순서대로 나열해보자.

    에돔 → 모압 → 아모리 → 암몬 → 바산: 바산은 아모리인들의 북왕국이다. 아모리인들은 심판의 대상이었지만 다른 세 나라는 심판의 대상이 아니었다.

12. 이스라엘이 시혼 왕에게 빼앗은 땅의 원래 주민은 누구인가?

    모압(26): 시혼 왕이 모압에게서 빼앗은 땅을 이스라엘이 차지했다. 후에 르우벤 지파가 이 땅을 차지했다(헤스본은 레위 지파). 사사시대에 이 땅을 암몬이 욕심을 냈다가 입다에게 혼이 났다(삿 11:12-28). 아합의 사후에 모압이 독립하고(왕하 3:5) 결국은 이 땅을 차지하게 된다.

13. 달리기에서 1등한 녀석이 2등한 친구에게 ‘야, 열심히 뛰어’ 하는 경우와 비슷한 부분이 있다면 어디일까?

    27절: 자기들이 점령한 성읍에 대해서 ‘견고히 하라’는 얘기는 일종의 조롱이거나, 승자의 여유부림이다. 28-29절도 비슷하다. 모압을 점령한 아모리인들의 위업을 노래하는 듯하다. 자기들이 점령해버린 그 아모리인들(30)을 말이다. 그래서 모압의 신, 그모스까지 조롱의 대상으로 삼고 있다. 훗날 역사를 참고하면 참으로 드문 승리의 기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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