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수기 19장


1. 하나님께 드리는 제물을 드리는 방법이 여러 가지인데 여기 말씀은 좀 독특한 것이다. 어떤 경우에 드리는 것일까?

    독립된 제사가 아니라 시체로 인하여 부정하게 된 경우에 깨끗하게 하기 위한, 즉 부정을 깨끗케 하는 물을 만드는 절차일 뿐이다. 그래서 특이하게도 이 제물을 드리는 사람도 부정하게 된다(7-8).

2. 몽땅 불살라서 드리는데 굳이 흠도 없어야 하고 멍에 메지 아니한 붉은 암송아지여야 하는가?

    이 송아지가 지닌 이런 특성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상징이기 때문이다: 흠이 없는 것이나 멍에를 메지 않은 것은 죄 없으신 순결한 예수를 상징하는 것이다. 굳이 암송아지여야 하는 것은 온유함을 뜻하는 걸까? 암송아지는 수송아지보다 더 얌전할까? 잘 모르겠다.

3. 아직은 아론이 살아있는데 왜 엘르아살에게 이 제사를 지내게 했을까?

    대제사장은 결코 부정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7, 레 21:10-12). 이 암송아지는 정결케 되어야 할 사람의 죄를 다 뒤집어 쓴 셈이다. 그래서 제사를 드리는 사람, 불에 사르는 사람, 심지어 그렇게 만든 잿물을 뿌리는 사람조차 부정하게 만든다(21). 죄의 심각성을 잘 보여준다.

4. 거의 모든 제사는 회막 문, 여호와 앞에서 드리도록 돼있다. 그런데 왜 진 밖에서 잡으라고 하는 걸까?

    하나님께 직접 드리는 제사가 아니라 재를 만드는 것이 목적이기 때문: 따라서 이 짐승의 죽음 자체는 부정한 것으로 취급되었다. 예수님의 사역 중에도 이런 성격이 있다(히 13:11). 부정한 것으로 여겨져서 영문 밖에서 처형당한 셈이다. 하나님께 버림받은 것도 그런 측면이다.

5. 이 암송아지를 엘르아살이 직접 잡은 것은 아니라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

    자기 목전에서(3, 5), 송아지를 불사른 자(8): 잡는 것과 불사르는 일은 다른 사람이 한다. 그러면 엘르아살은 임석한 감독관인 셈이다(일반적인 경우에는 제사를 드리는 사람이나 레위인이 잡았다). 모든 책임은 감독관이 진다. 어른이 나서서 사소한 일까지 다 해치우려고 하는 것은 옳지 않다. 일을 맡기되 책임은 자신이 진다.

6. 왜 피를 뿌릴까?

    피는 생명을 상징한다(창 9:4-5, 레 17:11).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의 실과를 따 먹으면 반드시 죽으리라’는 하나님의 선고에 따라 죄를 지은 인간은 반드시 죽어야 한다. 용서하는 데에도 반드시 대속의 피를 흘려야 한다(히 9:22). 그래서 성경은 온통 피칠갑이 되어 있다. 모든 피의 원본은 예수의 피이며 모든 제사에 흘린 짐승의 피는 사본이다.

7. 일반적인 제사에서 피와 똥은 불사르지 않는다. 그런데 이 경우에는 피와 똥까지 몽땅 불사르라고 하셨다. 예수님의 어떤 희생을 상징하는 걸까?

    온전한 희생: 피와 물까지 다 쏟으신 것에 대한 상징이다(요 19:34). 제사를 지내는 종류나 방식이 다양한 것은 예수님 사역의 다양함을 여러 방면을 보여주는 것이다.

8. 백향목과 우슬초와 홍색실은 왜 불 가운데 던지는 걸까? (이 세 가지를 이용해서 만들기에 가장 좋은 것은 먼지털이나 빗자루 형태의 것이다. 그러면 이것이 어떤 용도로 사용되었을지 생각해보라, 참고 출 12:22, 민 19:18)

    원래는 빗자루 형태로 피를 뿌리거나 바르는데 사용되었다. 그러다가 그 자체로 죄를 정결케하는 상징물이 된 것 같다. 불사르는 암송아지를 정결케하는 셈이다.

9. 다음 중에서 정한 자는 누구인가?
[임석한 제사장, 암송아지를 잡는 자, 불 사르는 자, 재를 거둔 자, 잿물을 만드는 자, 잿물을 뿌리는 자]

    아무도 정하지 않다: 죄를 뒤집어 쓰고 죽은 송아지에 관계된 모든 자가 부정하다는 것은 죄가 얼마나 무서운 것임을 잘 보여준다. 정한 자가 재를 거두어도 부정하다! 온 세상의 죄를 짊어진 아들을 오죽하면 하나님께서도 버리셨을까(막 15:34)? 오직 그 잿물에 뿌리움을 받은 자만이 정하다(19). 부정한 사람을 정하게 하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사람이 부정하게 되는가 보라. 관계된 모든 사람을 부정하게 만드는 잿물이 어떻게 뿌려진 사람을 정결케 할까? 그야말로 은혜다. 정한 것으로 간주해주시기 때문이지, 절대로 잿물의 효능이 아니다.

10. 암송아지의 재를 가지고 만든 물을 ‘속죄제’라고 하는 것은 다른 속죄제와 어떤 차이가 있는가?

    일반적인 속죄제는 제사를 드림으로 속죄가 완결되지만 이 경우는 성결케 하는 물을 만드는 한 과정일 뿐이다.

11. 이렇게 복잡한 과정을 거쳐서 잿물을 만드는 이유는 무엇인가?

    시체로 인하여 부정하게 된 자를 정결케 하기 위하여: 일반적인 부정의 경우에는 일정한 시간이 경과하면 물로 씻으면 되지만(레 15:5-11) 시체로 말미암아 부정한 경우에는 이렇게 특별한 속죄가 필요했다. 시체를 만진 사람은 물론이거니와 시체가 있는 장막에 들어가기만 해도, 근처에 있던 그릇마저 부정하다고 하는 것은 죽음이 누구나 거쳐야 하는 과정이라기보다는 죄로 말미암아 들어온 불필요한 과정이기에 하나님께서 특별히 더 부정하게 취급하신다.

12. 속죄를 위한 잿물을 만들고 다루는 과정에서 하나님께서 특별히 베푸신 은혜라고 생각되는 점이 있다면?

    재를 물에 타서 쓰게 한 점: 물에 희석시키면 양이 훨씬 많아진다. 양식이 적으면 밥 대신 죽을 쑤는 것처럼!
    정결한 사람이면 누구나 잿물을 뿌릴 수 있도록 한 점(19):
    미리 준비하게 하심: 시체를 만진 후에 이걸 다 준비하려면 본인도 바쁘고, 제사장도 얼마나 바빠야 할까?

13. 시체에 접촉하고도 정결케 하지 않으면 무슨 죄인가?

    여호와의 성소를 더럽힌 죄: 하나님의 임재를 무시하는 죄, 말하자면 죽을 죄인이 하나님 앞에 겁도 없이 나타난 셈이다. 하나님을 무시하지 않고서야 어디 감히 그럴 수가 있을까?

14. 남을 도우면서 자신의 것은 전혀 희생하지 않으려는 태도는 옳지 않다. 부정한 자를 정결케 하려면 정결한 자가 무슨 각오를 해야 하는가?

    남을 정결케 하기 위하여 물을 뿌리는 자도 후에 자신을 정결케 해야 한다(19).

15. 들판을 쏘다니다가 멋모르고 무덤을 밟았다면 어떻게 하나?

    시체를 만진 자와 동일한 결례를 행해야 한다. 그런 위험을 방지하기 위해서 무덤은 눈에 잘 띄게 회칠을 해 두었단다.

16. 재를 태우는 ‘흐르는 물’이란?

    살아있는 물이란 의미인데 ‘신선한 물’을 가리킨다. 고인 물과 비교해보라.

처음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