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수기 18장


1. 민수기는 하나님께서 누구에게 주신 말씀인가?

    거의 대부분 모세에게 주신 말씀이고, 여기만 아론: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75번, ‘모세와 아론에게’ 8번 말씀하셨고, 아론에게는 18장에서만 3번이다. 어쨌거나 하나님께서 친히 주신 말씀이다.

2. 성소의 죄를 담당하는 자는 누구인가? 설마 레위인 전부는 아닐테고!

    아론과 그 아들들과 그 종족(=고핫 자손, 3:27-28): 아론도 고핫 자손이다. 고핫 자손이 성소의 기물을 맡았기 때문인데 결국 아론의 집안(가문) 전체가 성소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 다르게 표현한다면 레위인이라고 해서 함부로 성소의 기물을 다룰 수 없고, 고핫 자손이라고 해서 제사장의 일을 침범할 수 없다는 것이다. 업무 영역을 확실하게 구분하는 셈이다.

3. 많은 종류의 직무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는 듯하지만(2-4) 실제로는 간단하다. 두 종류로 요약해보자.

    제사장의 직무와 레위인의 직무: 직접 하나님을 섬기는 일과 그 일을 보조하는 일로 구분이 되는 셈이다. 즉, 제사장의 직무는 증거의 장막 앞에 있는 것(2, 직접 성소의 기물을 다루는 것), 성소의 기구와 단에 가까이 하는 일(3)이고, 레위인의 직무는 제사장을 섬기는 일(2), 곧 장막의 일과 회막의 직무에 ‘협력하여 지키는 것’이다. 여기서 지킨다는 것은(3, 4) 섬긴다는 뜻이다. 5절의 성소의 직무, 단의 직무에는 제사장의 일과 레위인의 일이 다 포함된 표현이다.

4. 아론과 그 아들들은 하나님을 섬긴다. 레위인은 누구를 섬기는가?

    제사장(2): 레위인들이 제사장을 섬기는 것이 곧 하나님을 섬기는 방법이다. 교회를 섬기는 것이 곧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고, 형제를 섬기는 일이 곧 하나님을 섬기는 일이다. 어린 소자에게 베푼 냉수 한 그릇도 예수님을 섬기는 일이다(마 10:42). 아무나 하나님 앞에 나아 올 수 없었다. 그나마 레위인과 아론의 자손을 통해서 하나님을 간접적으로 섬길 수 있게 길을 여셨다. 예수님께서 온전하게 길을 여시기까지!

5. 제사장 이외의 사람이 회막에 접근하는 일을 왜 이렇게 막으실까?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신 후에야 길을 여셨는데...?

    범죄한 인생이 하나님께 나아올 수 없기 때문: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을 통해서만 나아올 수 있게 하셨다. 예수께서 오시기 전에는 제사장을 임시로 예수 그리스도의 그림자로 세우신 것이다. 위급한 환자에게 숨이라도 쉬도록 호스를 꽂은 셈이다. 그것도 없으면 당장 죽을 판이다. 그나마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6. 아론과 그 아들들에게 레위인들을 붙여 주고 제사장의 직분을 준 것은 무슨 이유일까?

    이유없음: 선물이라고 하셨다(6, 7). 선물이란 은혜로 주셨다는 말이고 은혜란 받을만한 이유가 없음에도 주는 것이다. 아론과 그 아들들에게서는 이유를 발견할 수 없다. 하나님에게는 그래야 할 이유가 있다. 하나님께서 자주 쓰신 표현을 빌리면 ‘조상들에게 주신 언약을 지키기 위해서!’ 이다(신 6:23, 7:8, 8:18, 9:5).

7. 교인들이 헌금하는 것으로 목사에게 사례를 주니까 교인들이 목사를 먹여살린다는 생각은 서로에게 대단히 위험하다. 왜 그런지 본문을 근거로 수정해보자.

    교인들은 하나님께 드렸고, 목사는 하나님께 받았을 뿐이다. ‘더 내놔라’ ‘있어야 주지’ 이런 다툼이 일어난다는 자체가 하나님을 업신여기는 행위이다. 헌금은 하나님께 드린 것이다! 관리하는 사람도 그것을 지극히 거룩한 것으로 여겨야 한다(9, 10).

8. 제사장의 양식은 무엇 무엇인가? 왜 이렇게 많아?

    거제물(8, 19), 지성물 중에 불사르지 않은 것(9, = 소제와 속죄제와 속건제물), 거제물과 요제(11), 첫 소산(기름, 포도주, 곡식, 12), 이스라엘 중에서 특별히 드린 모든 것(14 = 하나님께 아주 바친 것, 수 6:18), 대속물(17-18), 레위인의 십일조(28)

9. 제사장이 아닌 제사장의 가족은 무얼 먹고 사는가?

    소제와 속죄제와 속건제물(9 = 지성물)이 아닌 것: 거제물과 요제물, 화목제물이 있고, 십일조로 드린 것도 있다. 지성물은 안된다. 정결하지 못하면 뭘 먹지? 먹을 게 없다.

10. 본문에서 사람과 부정한 짐승의 공통점을 하나 찾는다면 무엇인가(15)?

    대속해야 한다: 하나님께 직접 드리지 못하기 때문이다. 사람은 죽일 수 없고, 부정한 짐승은 하나님께 드릴 수 없기 때문이다. 혹시 사람도 하나님께서 받으시기에 부정한 존재 아닌가?

11. 하나님은 처음 난 것에 왜 그렇게 욕심이 많으실까?

    하나님께서 모든 것의 주인되심을 인정하라는 것: 가나안의 첫 성, 여리고의 모든 것을 하나님께 바치라는 것도 같은 뜻이다. 다른 성읍의 전리품도 내놓으라고 하시는 것이 아니다. 장자는 내 것이라고 하신 것은 애굽의 장자를 치실 때 피값으로 살려냈기 때문이라고 하지만 굳이 애굽의 장자를 치는 것이나 이스라엘의 장자를 살려내신 것도 좀 더 넓게 보면 모든 생명의 주인은 하나님이시라는 것 때문이다. 십일조를 내라고 하시는 근본 정신도 이것이다. 성도의 모든 행위는 이 바탕 위에 세워져야 한다.

12. 첫 아들을 대속하는 값이 은 다섯이라? 비싼가? 요셉은 20에 팔리고, 예수님은 30에 팔렸는데?

    엄청나게 싸다: 대략 20일 정도의 임금에 해당하는 액수다. 첫 아들의 값을 금액으로 환산하면 얼마나 될까? 값으로 칠 수 없는 것을 은 다섯만 받겠다는 것은 내는 시늉만 하라는 것이다.

13. 소, 양, 염소의 첫 새끼는 대속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대속할 이유가 없기 때문: 대속하는 이유는 하나님께 드릴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인데 이것들의 새끼는 하나님께 제사로 드릴 수 있기 때문이다.

14. 언약을 왜 소금에다 비유하시는가?

    변함없기 때문: 하나님께서 한번 말씀하시면 변하지 않을 터인데 굳이 이렇게까지 말씀하셔야 할까? 잘 믿지도 않고 잘 변하는 사람 때문에 하시는 말씀이지, 하나님 탓이 아니다. 하나님의 언약을 잘 지키는 것이 스스로 부패하지 않는 비결이기도 하다. 언약을 지키려고 애를 쓰면 그 언약이 결과적으로 자신을 지켜 준다. 말씀대로 산 선배들의 고백이다.

15. 다 같은 하나님의 백성이지만 땅을 소유해서 일을 해서 소득을 얻는 것과 성막의 일을 하면서 백성들의 십일조를 소득으로 얻는 것 중에 어느 것이 좋을까? 선택할 수 있다면 어느 쪽을 왜 택할 것인가 생각해보자.

    정답 없음: 아마도 소득에 관심이, 혹은 욕심이 있다면 전자가 낫고, 하는 일에 관심이 더 많으면 후자가 아닐까? 소득에 욕심이 더 많은 데도 후자를 선택한다면 교회가 타락해가는 셈이다.

16. 백성들이 십일조를 했으면 됐지 십일조로 받은 것 중에서 또 십일조를 해야 하나?

    십일조를 하나님이 필요해서 거두는 세금이나 삯으로 여기는 발상이다. 하나님께서 필요한 게 있어서 내라고 하신 것이 아니다. 하나님과 개인적인 교제를 나누기 위함이다. 레위인이 받은 것도 ‘백성들이 낸 십일조’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주신 양식’이다. 그게 그거 아니냐고? 실상은 같을지 몰라도 의미는 전혀 다르다.

17. ‘타작 마당에서 받드는 곡물과 포도즙 틀에서 받드는 즙’(27)은 무엇이며 ‘타작 마당의 소출과 포도즙 틀의 소출’(30)은 무슨 뜻인가?

    전자는 하나님께 드려야 하는 것이지만, 후자는 자신이 취하는 것, 즉 자신의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는 것이다.

18. 제사장이나 레위인들이 해야 할 일만 가르쳐 주시면 되지, 먹고 사는 문제까지 이렇게 신경을 쓰실까?

    글쎄 말이다: 신실한 성도나 목사님들 중에서도 먹고 사는 문제에 신경쓰는 것을 부끄럽게 여기는 분들이 적지 않다. 아니, 하나님께서 알아서 주실 것이니 신경을 쓰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과연 그럴까?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면 모르되 이것도 하나님께서 중요하게 여기시는 문제라는 점을 놓쳐서는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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