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수기 17장


1. 성경에는 하나님께서 친히 이적을 보여주신 적이 더러 있다. 이적을 요구하자 기꺼이 보여주신 적도 있지만(기드온의 경우 삿 6:13), 이적을 요구하지도 않는 경우에 스스로 보여주시기도 했다(모세, 아하스, 히스기야, 다니엘, 예수). 이번 경우에도 하나님께서 무엇이 답답해서 이적을 보여주시려고 하는 걸까?

    매를 들고난 다음의 아픈 마음의 표시다. 하나님께서 대제사장으로 아론을 선택했음을 분명하게 보여줌으로 다시는 매맞을 짓을 하지 말기를 바라는 것이다. 도대체 누가 답답한 건지 모르겠다. 하나님의 이런 마음을 이스라엘이 도무지 깨닫지 못하는 탓이다.

2. (재미로) 각 지파(종족)의 족장은 지팡이를 하나씩 가져왔다. 지파를 상징하는 것이 지팡이인데 지파와 지팡이? 글자가 비슷한데 무슨 관련이 있는 걸까? 우리말은 별로 상관이 없는 것 같아 보이는데 히브리어는 같은 단어다. 두 가지 의미에 공통점이 있다는 말이다. 이 두 단어의 본래의 의미가 무엇인지 짐작해보자. (종족이라고 번역하기보다는 지파가 더 원래 의미를 잘 나타내는 표현이다)

    가지(branch): 그러니까 지파란 말은 나무 가지가 갈라지듯이 쪼개어졌을 뿐 한 민족이라는 개념이 바탕에 깔려 있는 표현이다. 직역을 한다면 ‘각 가지를 따라 가지를 하나씩 가져오라’는 식이다.

3. 다른 이적도 많이 있을텐데 하필이면 죽은 가지에 싹이 나고 꽃이 피는 기적을 보여주셨을까?

    하나님에게는 이런 것이 가장 중요한 것 아닐까? 죽은 가지에 생명을 불어넣는 것, 흙으로 빚어진 인간에게 생기를 불어넣으신 분, 죽은 인간을 다시 살릴 수 있는 분이시다. 아마도 하나님께서 가장 소중하게 여기시는 일이기에 그러할 것이다. 산을 옮기는 기적보다 죄인이 회개하고 돌아오는 것을 더 큰 기적으로 여기시는 셈이다. 결국은 훗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죄와 허물로 죽은 우리를 살리실 것(엡 2:1, 골 2:13)에 대한 상징이기도 하리라.

4. 아론의 지팡이에서 싹이 나고 열매가 맺혔으니 계속 자랐을까?

    아마 조화처럼 성장이 정지된 채로 있지 않았을까? 알 수 없는 일이다. 더구나 이 지팡이는 언약궤 앞에 두었다는 표현도 있고 언약궤 안에 두었다는 표현도 있다(히 9:4, 잘라서?). 일단은 길이가 법궤 안에 들어갈 수 없을 만큼 길테니까 앞에 두었던 것이 맞을 것 같고, 그러다보니 가장 먼저 분실된 것(왕상 8:9) 아닐까?

5. 이적을 본 이스라엘 백성들의 반응(12-13)이 이상하지 않은가? 이 사람들이 왜 이럴까?

    하나님의 의도를 오해한 탓: 땅이 갈라져 고라의 무리들이 빠져죽은 것이나 염병으로 14,700명이 죽은 것이 분명히 하나님으로 말미암은 것임을 확인하는 순간에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이 밀려온 것이다. 성막에 가까이 가면 죽는다는 생각만 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의도는 죽지 않게 하는 건데(10)? 오늘날에도 하나님을 사랑하는 아버지나, 친구를 위해서 목숨을 버릴 수도 있는 친구로 알기보다는 심판자로 생각하고 두려움에 떠는 성도가 적지 않은 것을 보면 백성들이 이러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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