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수기 15장


1. 여기 제사 제도에 관한 내용은 가데스 바네아 사건과 직접적으로는 전혀 관련이 없는 증거가 혹시 있을까?

    2절: 가나안 땅에 들어갈 사람들에게 하시는 말씀이다. 반면에 13-14장의 대부분은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할 사람들에 대한 기록이다. 14장과 시기적으로 연속된 기록이 아니라, 결과적으로 필요한 내용이다. 가데스 바네아에서 회군하여 방랑하는 도중, 아마도 방랑의 마지막 어느 시점에 주신 말씀같아 보인다. 가나안에 들어가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으니!

2. 크게 보면 본문에 나오는 제사의 방식 두 가지는 무엇인가?

    화제(3-12)와 거제(17-21): 화제는 제사를 드리는 방식이지 제사의 종류는 아니다. 번제, 서원제, 낙헌제, 각종 절기제, 화목제는 전부 불에 태워드리는 화제이며 들어 올렸다가 내리기만 하면 되는 거제가 있다. 좌우로 흔드는 요제가 있지만 여기에는 언급이 없다.

3. 여기서는 번제, 서원제, 낙헌제에 대해서는 아무런 설명을 하지 않는다. 이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은 레위기 1-7장에서 보아야 한다. 그러면 여기서는 무엇을 말하는가? 5-12절이 화제에 대한 설명이 아니라 무엇에 대한 설명인지 생각해보자.

    화제를 드릴 때에는 이렇게 소제와 전제도 함께 드려야 한다: 3-4절은 5-12절 내용의 개괄적이며 기본적인 내용을 다룬 것이다. 별개의 제사를 말하는 것이 아니고 기본 사항은 이러한데(3-4) 구체적은 사항은 다음(5-12)과 같다는 식이다. 간단하게 요약을 하면 화제를 드릴 때에는 소제도 전제도 함께 드려야 한다는 뜻이다. 그리고 소제물의 기본은 ‘고운 가루 에바 십분지 일에 기름 한 힌의 사분지 일을 섞은 것’이고 전제는 포도주다.

    왜 번제에 소제와 전제를 꼭 넣으라고 하실까? 그렇게 하면 더 향기로워서?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으로 말미암아 번제물은 완비되었다. 거기에 소제와 전제를 더하라는 것은 우리의 노력과 헌신도 하나님께서 받으시겠다는 의미 아닐까? 우리 것도 드려야 할 이유가 있다는 말씀이다.

4. ‘고운 가루 에바 십분지 일에 기름 한 힌의 사분지 일을 섞은 것’(4)을 두, 세음절로 표현한다면?

    소제(물): 흴 素자를 써서 흰 제물이란 뜻으로 곡식을 빻아서 가루를 드리는 제사이다. 자세한 의미는 레위기에서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5. 소제물과 함께 드려야 하는 화제물의 종류는 몇 가지인가? (화제물의 종류에 따라 소제물의 양이 달라진다는 점을 감안해서)

    어린 양(어린 염소), 수양, 수송아지: 이렇게 세 종류로 보는 것이 좋겠다. 어린 염소에 대한 언급이 없는 것은 어린 양과 같은 수준으로 보면 될 것 같고, 어린 양의 경우에 소제물에 대한 언급이 없는 것도 기본이기 때문이라고 보면 될 것 같다. 그러면 소제물의 양은 고운 가루 1/10 → 2/10 → 3/10 에바로 많아지고 따라서 소제물에 첨가되는 기름과 전제물인 포도주도 1/4 → 1/3 → 1/2 힌으로 증가한다.

    큰 번제물을 드리는 사람은 소제물도 그만큼 양이 많아지는 것이 옳다. 믿은지 오래 된 사람과 금방 믿은 사람이 하나님 앞에서 헌신하는 바가 꼭 같을 수는 없다. 초신자에게 너무 많은 것을 기대하거나 무거운 짐을 짊어지게 하지 말라! 많은 것을 맡긴 종에게는 많은 것을 찾으신다(눅 12:48).

6. 번제를 드릴 때, 즉 고기를 불에 사를 때 기름으로 반죽한 가루와 포도주를 부어서 함께 태우면 더 향기로운가?

    모르겠다: 여기서 향기롭게 드린다는 것은 어떤 제물이든지 하나님께 향기롭게 드려야 한다는 말이지 소제나 전제가 있음으로 더 향기롭게 된다는 뜻이 아니다. 노아가 드린 향기로운 제사에는 소제가 없었다(창 8:20-21, 참고 레 1:13). 제물의 양이 많고 적음에 따라 더 향기가 나는 것도 아니다. 예수님의 표현을 빌리면 과부의 두 렙돈이 가장 향기나는 제물 아닐까?

7. 훗날 유대인들은 이방인을 사람으로 취급하지 않았다. 함께 식사를 하거나 이방인의 집에 들어가는 것은 물론 복음을 전할 생각도 하지 못했다. 소위 그릇된 선민사상이다. 그런 유대인들이 보기에는 말도 되지 않는 구절이 있다면 무엇인가?

    15절의 ‘너희의 어떠한 대로 타국인도 여호와 앞에 그러하리라’: 하나님 앞에서는 유대인이나 이방인이 구별되지 않는다는 말이다(26, 29). 그런데도 어떻게 이방인을 그렇게 차별했을까? 하나님의 말씀보다는 전통이나 조상의 가르침을 더 중요하게 여기거나 동일하게 여기면 그렇게 되지 않을까(마 15:3, 막 7:8-9)? 상놈, 양반을 구별하지 않을 때 교회는 엄청난 파괴력으로 불신세계를 파고들었다. 오늘날 교회는 이런 저런 방식으로 구별하거나 차별함으로 스스로 힘을 잃어가고 있다.

8. 거제란 제물을 높이 들어 올렸다가 내리는 것이다. 들어 올리는 것은 하나님께 드린다는 뜻이고, 내리는 것은 제사장의 몫으로 돌린다는 뜻이다. 그런데 떡을 만들어 거제를 드리되 ‘타작 마당의 거제’같이 드리란다(20). 왜 타작 마당에서 거제를 드렸을까?

    모든 제사는 성전에서 드렸다(레 23:10, 출 23:19). 타작 마당에서 제사를 드리지 않는다: 타작 마당에서 바로 가져와서 드렸기 때문에 그렇게 불렀다. 처음 추수를 해도 하나님께 먼저, 처음 익은 곡식으로 떡을 해도 하나님께 먼저! 범사에 하나님을 먼저 기억하라는 것이다. 다 내놓으라는 것도 아니고 많이 바치라는 것도 아니니 즐거운 마음으로 먼저 드리는 것이 복이다.

9. 어른이 먼저 숟가락을 들면 아이들도 따라서 드는 것이 밥상머리 예의인 한국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처음 것을 바치라고 해도 별 이의가 없겠다. 고생해서 추수했지만 그렇게 하는 것이 하나님에 대한 예의 아닐까?

    그런 생각도 좋겠지만 사실은 이렇게 추수할 수 있는 땅을 주신 것(18)에 대한 감사여야 한다. 애굽에 있을 때는 아무리 애를 써도 자기 것이 되지 못했다. 이미 받은 은혜, 즉 하나님께서 베풀어주신 구원에 감사하는 표를 내는 것 뿐이다. 성도는 이런 감사가 먼저다.

10. 타이타닉호가 침몰했을 때 그렇게 많은 희생자가 나온 것은 그럴 가능성이 있으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기 때문 아닐까? 완벽하게 만들었다고 자부심을 가지고 별도의 대비책을 세우지 않으면 큰 탈이 난다. 인터넷으로 온 세상이 연결된 현대는 더욱 그렇다. 반면에 전능하신 하나님께서는 자신이 만든 인간이 약점이 많다는 것을 알고 계셨다. 그런 예를 제사규례에서 한 가지 찾는다면?

    부지중에 죄를 범할 수 있는 것이 인간이란 것을 알고 계셨다. 모세를 통해서 주신 하나님의 모든 명령을 지키지 못하는 일이 반드시 생긴다. 그런 경우를 대비한 제사법을 따로 주셨다. 이것이 얼마나 사려깊은 배려인지 생각해보자.

    인간은 완벽하지 않다. 서로의 단점을 보충해가며 서로 의지하며 살아야 하는 것이 인간이다. 혼자서 모든 일을 다 하려고 하지 마라. 하나님께서 하자가 있다는데... 혼자서 모든 것을 다 하려고 하다가 실패한 데서 나온 말이 ‘절대 권력은 절대 부패한다’는 것이다. 가정이든, 교회든, 국가든 마찬가지다.

11. 회중이란 경우에 따라서는 모든 백성을 의미하는데 온 백성의 죄를 수송아지 하나와 수염소 하나로 용서하시는가(24-25)? 한 사람을 위한 속죄제(27)와 비교해서 너무 작지 않은가?

    정말 작다: 굳이 따지자면 속죄물로 내놓은 그것도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것이니 죄를 속할 방법이 없는 셈이다. 제사를 드리라고 하시는 목적이 제물이 아니다. 성의를 봐서 용서하시겠다는 뜻이다(25). 용서를 비는 흉내만 내도 용서하시겠다는 뜻이다. 예수 그리스도라는 진짜 제물이 있기 때문이다. 이런 방법을 만드신 분도, 가르쳐주신 분도 하나님이시다. 인간의 제안이나 고안이 아니다.

12. 온 회중의 죄를 속하기 위해서 화제와 속죄제를 드리라고 하셨다. 속죄제를 먼저 드려야 하는 것 아닌가? (화제는 무슨 의미로?)

    제사의 순서는 속죄제가 먼저다: 레위기에서도 번제에 대한 설명이 먼저 나오고(1장) 나중에 속죄제에 대한 설명이 나온다(4장). 그러나 실제로 제사를 드릴 때는 속죄제를 먼저 드렸다(레 5:7-10). 속죄제는 제물도 작고, 하나님께 향기로운 제사도 아니다. 그렇게 속함 받은 후에 감사와 헌신의 의미로 드리는 번제는 크고(소제와 전제를 함께 드림) 여호와께 향기로운 제사다.

13. 레위기 4장에 따르면 온 회중의 죄를 위한 속죄제에는 수송아지가 필요하다. 여기서는 수송아지와 수염소가 필요하니까 속죄비용이 증가한 셈인가?

    결과적으로 줄었다: 속죄제만 본다면 수송아지에서 수염소로 줄어들었다. 레위기 규례는 속죄제를 수송아지로 드리고 난 다음에는 번제를 자원하여 드렸다. 여기서는 자원제로 드리던 번제를 의무사항처럼 기록했을 뿐이다. 그러니까 수송아지 둘에서 수송아지와 수염소로 줄어든 셈이다. 자원하는 마음이 부족한 철없는 이스라엘을 교육시키는 셈으로 자세하게 언급하신 모양이다.

14. 하나님은 끝없이 인내하시는 분이시며 부지중에 지은 죄를 속할 방법까지 가르쳐주시는 분이시다. 그러나 고의로 지은 죄는 결코 용서하지 않는다. 이런 죄를 다른 말로 구약과 신약에서 각각 무엇이라 하는가?

    여호와 훼방죄(30), 성령훼방죄(마 12:31, 막 3:29): 안식일에 일 하다가 돌에 맞아 죽은 사람은 바로 이 죄에 해당하는 셈이다. 예수께서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아서 오신 증거가 명백함에도 불구하고 의도적으로 부인하는 것이 성령훼방죄다. 간단하게 말하면 안 믿는 죄다. 그러니 방법이 없지!

15. 건망증이 심한 사람이 많은 물건을 한꺼번에 옮기면서 빠트리지 않는 방법 중에 하나는 개수를 세는 것이다. 배서방이 자기 이름을 잊지 않으려고 허리춤에 배를 달고 다니다가 꼭지서방이 되었다는 얘기도 있다. 학생들은 준비물 내용을 손바닥에 쓰기도 한다. 이스라엘이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여호와의 말씀이다. 잊지 않는 좋은 방법은 없을까?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말씀을 눈에 보이는 것으로 형상화하는 것이 좋은 방법이기도 하다: 옷단 귀의 술과 거기에 달린 청색 끈이 바로 하나님께서 가르쳐주신 방법이다. 기억력을 증진시키기 위한 방법에도 이런 것이 있을 것이다. 연계형? 연결형? 이름이야 어떻든! 이렇게까지 자신을 기억해주기를 바라시건만...

16.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잊지 못하도록 이런 저런 방법을 다 동원하시는 이유가 무엇인가?

    사랑: ‘나는 너희 하나님이니라’고 하시는 것은 ‘너희는 내 것이니라’는 말과 동일하다. 이거야말로 사랑고백이 아닌가? 애굽에서 구해내셔서 가나안으로 인도하시는 것도 다른 특별한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다. 그냥, 내 백성이니까! 왜 사랑하냐고? 사랑에 꼭 이유가 있어야 하나? 그냥!! 자기형상을 닮았기 때문인가? 맞는 말이지만 엄밀히 따져보면 그것도 결과적인 얘기다. 사랑했기 때문에 자기 형상을 따라서 만드셨다. 그냥! 은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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