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수기 10장


1. 예로부터 나팔 소리는 각종 신호로도 요긴하게 사용되었다. 몇 백만의 대군을 통솔하는 방법으로 나팔보다 더 나은 도구가 없었을 것이다. 이렇게 중요한 도구를 아무나 함부로 불면 안 된다. 그래서 제사장만 불게 했을까? 나팔수를 따로 두지 않고 바쁜 제사장이 나팔까지 불어야 하나? 출 19:16에서 답을 찾아보자.

2. 나팔 두 개로 몇 가지 신호가 가능한가? 우리가 이스라엘 백성이라면 몇 가지 신호를 구별해야 하는가?

3. 출발 신호인지 전쟁신호인지 어떻게 분간했을까? 울려 부는 것은 같은데?

4. 제사장의 입장에서는 나팔을 제대로 불어야 한다(고전 14:8). 상황에 맞지 않게 엉뚱한 방법으로 분다면 어떻게 될까?

5. 나팔 부는 방법이 제사장이나 모세의 고안이었을까, 하나님의 가르침이었을까?

6. 제사장들이 나팔을 부는 것은 ‘대대에 영원한 율례’이다(8). 그런데 지금은 왜 안 불지?

7. 하나님께서 나팔 소리를 듣고 구원하신다(9)? 나팔 소리를 듣고 너희를 기억한다(10)? 소리가 커야 한다는 뜻인가?

8. 모든 제사에 나팔을 분 것은 아니다. 어떤 제사를 드릴 때 나팔을 불지 않았는가?

9. 시내산에 도착한지 11개월 5일(애굽을 떠난지 13개월 5일) 만에 드디어 출발이다. 그러면 성막을 완성하고 하나님의 영광이 구름의 모습으로 증거막에서 머무른지는 며칠 째인가?

10. 시내 광야에서 바로 바란 광야로 갔을까? ‘자기 길을 행하더니’ 이 표현이 왜 들어와 있지? 이 부분을 NIV는 traveled from place to place로 번역하였다.

11. 행진의 가장 선두에는 누가 섰는가?

12. 세 지파가 출발하고 나자 성막을 걷었는가(13-17)?

13. 성막을 세우는 일은 누가 했는가? 고핫인은 아니다.

14.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나올 때의 모습은 오합지졸의 모습일 수도 있고, 노예군단일 수도 있다. 제대로 훈련받은 적도 없는 대규모 민병대라고 할까? 이제는 어떻게 변했는가?

15. 모세가 호밥에게 한 말은 권유 같아 보인다(29). 두 번째 한 말은 사정쪼다(31-32). 호밥이 이것을 거절하면 결국은 무엇을 거절하는 셈인가?

16. 호밥이 결국은 떠났다는 말인가, 동행했다는 말인가?

17. 이스라엘에게 있어서 눈의 역할을 법궤가 하고 있는데 호밥에게 이렇게 요청해도 되나?

18. 광야의 땡볕?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그럴 때에 구름 한 점이 얼마나 시원할까? 그런데 전 이스라엘 백성들을 덮어주는 구름이 있었다. 이게 얼마나 감격스러운 일일까? 그 구름 밑에서 하나님을 원망했으니... 우리는 어떨까?

19. 이 땅에서 사는 것도 그리 만만한 일은 아니다. 아니, 엄청난 압박과 스트레스를 이겨내야 하는 일이기도 하다. 모세의 기도문에 나타나는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이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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