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수기 5장


1. 병이 있는 것도 서러운데 진 밖으로 쫓겨나야 하다니? 부모님이 돌아가셔도? 일종의 격리인데 이런 일을 통해서 어떤 유익을 얻을 수 있을까?

    전염을 방지하고 스스로 돌아볼 수 있는 기회도 제공한다(질병의 원인은 대체로 자신에게 있으므로). 하나님 앞에서 정결한 삶을 살아야 한다는 영적교훈을 얻을 수 있다: 질병과 죽음조차 구별된 삶을 가르치는 요긴한 도구로 쓰신 셈이다.

2. 이스라엘 자손은 이웃 사람에게 죄를 지으면 속죄하는 것이 우리와 어떻게 다른가?

    당사자에게 1/5을 더해서 보상할 뿐 아니라(7) 하나님께도 속죄의 예물을(8) 드려야 한다. 이웃에게 죄를 범한 것이 곧 하나님께 죄를 범한 것(=몸에 죄를 얻거든)이기도 하다(6).

3. 피해를 입혔는데 보상받을 사람이 없으면 어떻게 하는가?

    제사장에게 대신 갚아야 한다: 그냥 용서는 안된다는 말이다. 공의의 하나님은 그냥 넘어가는 일이 없다. 죽을 죄인은 반드시 죽어야 한다. 그게 하나님의 원칙이다. 이 원칙을 지키면서 죽어야 할 우리를 살리시려고 결국은 자신의 독생자를 죽게 하신 하나님이시다.

4. 기업을 주지않은 레위인들을 위하여 하나님께서 제사장에게 무엇을 주셨는가? 본문에 언급된 것만 찾아보자.

    속죄의 수양, 오분지 일을 더한 주인없는 죄값, 거제, 구별한 물건: 문맥상 필요한 것은 ‘오분지 일을 더한 주인없는 죄 값’이다. 9-10절은 굳이 여기서 언급하지 않아도 될 것 같은데 굳이 언급한 이유는 다른 예물이 제사장의 몫으로 주어진 것처럼 그것도 제사장의 것으로 주라는 의미인 것같다.

5. 남편이 아내를 의심하게 된 상황이 문제다. 여자에게 아무런 문제가 없는데도 남편이 의심하게 되면 억울하지 않은가?

    잉태하는 복, 가장 큰 복으로 갚아주신다(28): 성도는 억울하다고 가슴을 쥐어뜯고 잠 못 이루며 힘들어 할 이유가 없다. 다른 방법으로 갚아주시는 하나님을 믿는다면 잠잠히 기다릴 여유가 있어야 한다.

6. ‘한강에 배 지나간다고 흔적이 남느냐?’ 바람을 피워도 흔적이 없는데 무슨 걱정이냐고 하는 말이다. 맞는 말인가?

    하나님없는 사람들에게는 맞는 말이다: 엉뚱한 짓을 하고 싶어도 하나님의 눈이 무서워하지 못하는 사람이 복된 사람이다. 엉뚱한 짓을 저지르고 싶은 마음도 없다? 사람이 그렇게 선한 존재가 아니다. 하나님께서 울타리가 되고 감시자가 되심을 기뻐하는 사람이 복되다.

7. 남편에게 생긴 의심은 원어상으로 단순한 의혹 정도를 넘어서 질투심을 불러일으킬 정도의 의심을 가리킨다. 제사장이 몹시 바쁘지 않았을까?

    아마도 이런 일로 그리 바쁘지 않았을 것: 이런 규례가 있음에도 의심받을 짓을 했을까? 건전한 가정을 이루도록 울타리를 쳐준 셈인데 굳이 이 울타리를 넘었을까? 결과가 너무나 엄청나서 함부로 의심해서도 안되고 의심받을 짓을 해서도 안된다. 더구나 발각되면 돌로 처형당하는데(레 20:10)?

8. 어떤 이유든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빈 손으로 갈 수 없다. 무슨 예물이든 드려야 한다. 그런데 부인을 의심해서 하나님께 나아오는 자의 예물을 하나님은 기뻐하실까? 예물을 드리라고 하면서도 그것을 기뻐하시지 않는 증거를 두 가지 찾으라.

    보리 가루, 기름도 붓지 말고 유향도 두지 말라는 것: 일반적인 소제는 ‘고운 밀가루’를 드렸다. 고운 밀가루는 요즘 말로 하면 고급품이고 보리 가루는 거칠어서 질이 낮은 것이다. 기름, 유향을 쓰지 말라는 것도 정상적인 예물보다 격이 낮게 취급되는 셈이다. 원래 소제는 감격, 헌신, 봉사의 의미가 있는 것이지만 죄를 생각하게 하는 소제(=의심의 소제)는 하나님도 기뻐하시지 않는다. 어쩔 수 없이 받으시는 목이 메이는 제물인 셈이다.

    부부가 싸우다가도 이렇게 살면 고통스러워할 부모를 생각해서 참는 경우도 더러 있다. 하물며 하나님의 이런 마음을 안다면 부부가 어떻게 살아야 할까? 성도는 행복한 가정을 이루어야 할 의무가 있다.

9. 의심을 받은 여인이 서게 되는 장소는 어디인가?

    여호와 앞(16, 18): 이 표현은 일반적으로 ‘성막 앞’을 가리키는데(레 1:3, 3:1) 이 경우에는 성막 뜰의 입구쪽이었다고 한다. 아무튼 이 곳에 선 여인의 마음을 생각해보자. 우리 선배들이 항상 되뇌이든 ‘코람데오’란 말이 바로 이 말이다. 어디에, 어떤 모습으로 있든 하나님 앞에 서 있다는 자세로 살아야 한다.

10. 의심받는 아내가 재판받는 절차가 좀 복잡하다(16-23, 25-26, 24, 27절 순으로 진행된다). 간단하게 처리하면 안될까?

    근본 목적은 이런 죄를 범하지 말란 뜻이며, 설령 그런 일로 나아왔을지라도 이실직고하란 뜻이다. ‘셋만에 나오라’ 하면서 하나, 둘, 둘의 반, 반의 반... 하는 격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짜 죄를 범하고 끝까지 버틴다면 정말 대단히 악한 사람이다. 아나니아와 삽비라의 경우와 비교해보라.

11. 성막의 티끌은 거의 독극물 수준이다. 거기서 매일 하나님을 섬기는 제사장은 별 일 없을까?

    이 모든 행위가 하나님의 통치에 대한 상징적인 의미를 지닌 것이다. 끝까지 버틴 여인이 이런 징벌을 받는다 해도 그것은 성막의 티끌의 능력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이다.

12. 넓적다리가 떨어져 나간다는 표현이 좀 애매하다. ‘배가 붓는 것’ 과 대비되는 현상이라면 어떤 의미로 보면 좋을까?

    허벅지가 마르는 것(표준새번역): 하체가 썩어 문드러질 것이라고 번역하기도 한다.

13. 이런 방식이 원시인들이 행하는 주술적인 것과 비슷하지 않는가?

    근본적으로 다르다: 이런 상징을 통해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이 계시느냐 아니 계시느냐의 차이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동일하게 보인다.

14. 남자들이 간음을 하면 어떻게 되었을까? 아내가 남편을 의심하면 어떻게 해?

    분명한 기록은 없음: 이 법이 징벌을 위함보다는 예방차원이며 억울한 아내가 생기지 않도록하는 역할이 더 중요한 것이다. 따라서 불공평한 법으로 보기는 어렵다. 또, 하나 만약 간음한 여자가 끝까지 버티다가 이런 징벌을 받았다면 이 벌을 내리시는 하나님께서 상대 남자를 그냥 두셨을까?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모든 문제의 해결책이다.

15. 우리나라에는 소위 문명국가에 없는 뒤떨어진 법(?)이 있다. 간통죄가 그것이다. 개인의 문제를 왜 국가가 간섭하느냐는 게 그 이유다. 스스로 알아서 결정할 문제라는 것이다. 일리는 있는 말인데 자신의 일을 스스로 알아서 제대로 처리할 능력이 없는 사람들에게는 그나마 도움이 되기도 한다. 하나님께서 친히 통치하시는 신정국가의 법에 개인의 문제라고 할 간음을 중요하게 다루는 이유가 뭘까?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여기서 흔들리면 사회의 기반이 흔들리는 것이다. 부부라는 제도는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실 때 주신 제도다. 인간사회의 근간인 셈인데 이것을 절대로 흔들지 말라는 말씀이다. 음란하기 이를 데 없는 가나안 땅 한 가운데서도 이스라엘이 한 민족으로 굳게 설 수 있었던 바탕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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