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수기 1장


1. 출애굽한 후 13개월(정확하게는 12개월 보름) 동안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

    시내 산에서 성막을 지었고 교육을 받았음: 애굽에서 시내산까지 오는 데 두달 걸렸으니(출 19:1) 11개월 동안 성막을 지었고(출 40:17, 2년 1월 1일) 한달간 교육을 받았다. 성막을 완성한 것은 한 달 전이다. 이제 출발해서 가나안 입구, 즉 모압 광야에 이르는 과정을 소개한다.

2. 애굽에서 그토록 어렵게 탈출했는데 빨리 가나안으로 가지 않고 왜 여기서 근 1년 동안 미적거리고 있었을까?

    하나님의 자녀다운 자녀가 되는 것이 우선이지 가나안에 들어가는 것이 우선이 아니다: 여기서 교육과 훈련을 받고 그 후 38년이나 체험을 하고 들어가서도 제대로 하나님을 섬기지 못했는데 가나안으로 바로 갔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 비근한 예로 8.15 해방만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후에 나라를 바로 세우는 일이 더 중요한 것인지도 모른다. 제대로 세우지 못하면 죽 쒀서 개주는 꼴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장가가고 시집가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제대로 아버지가 되고 어머니가 되도록 준비하는 것도 중요하다.

3. 본서의 명칭은 70인역을 따라서 ‘민수기’라고 불리지만 맛소라 사본은 ‘광야에서’(베미드바라)라고 불렀다. 광야가 그렇게 중요한 의미가 있는 곳일까? 하긴 광야교회라는 말도 있으니(행 7:38) 중요한 것 같기는 한데...

    하나님의 도움 없이는 하루도 살기 어려운 곳이다. 식량을 전혀 조달할 수 없는 죽음의 땅에서 200만이 넘는 민족이 살아가려면 날마다 하나님의 기적을 체험하지 않고는 불가능하다. 이런 광야에 세워진 회막은 죽음의 땅에 생명을 불어넣는 하나님의 은혜의 상징이다. 이런 곳에서 어떻게 살아나올 수 있었는지를 보여주는 책이라는 뜻에서 ‘광야에서’라는 제목은 일리가 있다.

4. 회막(會幕)은 성막(聖幕, 출 26:9, 민 9:17), 장막(帳幕)과 혼용되는 말이다. 거룩한 곳이니 성막이고, 천막처럼 이동할 수 있어서 장막이다. 그렇다면 회막이라고 번역한 이유는 뭘까?

    회중이 하나님을 만나는 장소란 뜻: 회막은 성막이나 장막으로도 번역할 수 있는 단어(오헬)에 회중(모에드)을 뜻하는 말이 붙어 있다.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과 만나는 장소’란 뜻이다. 거룩한 하나님에게서 쫓겨나 도무지 함께 할 수도, 만날 수도 없는 인생임에도 하나님께서 주도적으로 만날 수 있는 길을 여신 것이 바로 회막이다.

5. 이스라엘에서는 사람을 헤아릴 때 여자와 아이들은 수에 넣지 않았다고 한다. 도대체 왜 그랬는지 본문에서 특별한 이유를 찾는다면?

    전쟁에 나갈 수 있는 사람의 숫자가 중요했기 때문(3): 더 근본적인 원인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남자가 가족의 대표로 인식되었기 때문이다. 결코 여자나 아이의 인격을 무시한 탓이 아니다. 동일하게 오늘날 부부는 주종관계가 아님에도 남편이 대표성을 가지고 가정을 꾸려가는 것이 여러 가지로 유익이 많다.

6. 나이만 20세가 넘으면 계수의 대상이 된 것은 아니다. 사람 취급을 받으려면 나이 외에 또 무엇이 필요한가?

    싸움에 나갈만한 체력(3):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싸움에 나갈 수 없는 사람은 계수하지 않았다는 말이다. 전쟁을 위한 군대를 조직하는 것이 목적이니까 당연해 보인다. 어차피 하나님께서 이기게 하시는 전쟁인데 체력이 뭐 그리 중요할까?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도 반드시 그 일에 적합한 사람을 통해서 하셨다. 성도는 대장이 부르면 언제든지 일을 감당할 수 있도록 스스로 준비하고 있는 병사와 같다.

7. 아무리 능력 있는 지도자라 해도 혼자서 모든 일을 다 처리할 수는 없는 법이다. 절대적인 권위를 지닌 군대 지도자 모세에게 누가 참모 노릇을 하는가?

    각 지파의 두령들(4): 직접 이름을 불러가며 인원수를 확인하는 일은 각 지파의 두령들(족장)이 했다. 가정, 교회, 회사...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이라면 어디든, 적절하게 일을 분배하고 맡기는 것이 효율적이다. 모든 일을 혼자서 다 하려고 해서는 안 된다. 함께 설 사람(5)이 필요하다.

8. 각 지파의 두령들은 전부 몇 명인가? 레위인은 계수하지 않았으니...(47)

    12명: 레위를 빼는 대신 요셉 지파가 둘(므낫세, 에브라임)로 나뉘어 한 지파가 늘어났기 때문에 여전히 12지파다. 야곱이 죽기 전에 요셉의 두 아들을 자신의 양자로 삼았기 때문이다(창 48:5). 그토록 사랑했던 라헬을 그리워하며...

9. 각 지파의 두령들의 이름에서 대체적인 공통점이 있는지 찾아보자.

    하나님을 뜻하는 ‘엘’이 들어있다(엘리술, 슬루미엘, 느다넬, 엘리압, 엘리사마, 가말리엘, 바기엘, 엘리아삽): 12명 중에 8명이니까 대단히 많은 것이다. 이들은 애굽에서 압제받던 시절에 태어났다. 그 때에는 하나님을 잘 알지 못하던 시절이기도 하다. 그런데 그들의 이름이 하나님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구체적으로 자신에 대해서 계시하기 전에도 이들의 삶이 알게 모르게 하나님과 관련된 삶이었음을 보여준다. 복이다! 노아의 아들 셈이 받은 복이며, 하나님께 부름 받은 아브라함의 후손이 자신도 모른 채 받은 복이다!

10. 이스라엘 백성을 가리켜 군중이나 백성이라고 하지 않고 회중이라고 하는 것(2, 16)은 이 단어가 특별한 의미를 지녔기 때문이다. 증거, 증인, 약속의 의미가 포함되어 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으로부터 부름 받은(약속을 받은) 무리라는 말이다. 그러면 회중에서 부름 받은 자(16)는 부름 받은 자 중에서 또 부름을 받은 사람이라는 말이다. 이렇게 부름 받은 사람을 가리키는 현대적 용어는 무엇인가?

    교회: 부름 받아 나와서 모인 무리라는 뜻이다. 계시록의 7교회가 있던 곳을 안내하던 가이드가 ‘교회가 어디에 서 있었느냐?’고 묻는 관광객의 질문에 ‘초대 교회는 건물이 아니란 것 아시죠?’ 했다. 정말 그렇다. 교회는 건물이 아니다. 하나님에게서 특별히 부름을 받고 응답한 무리를 가리키는 영광스러운 이름이다.

11. 언제 이스라엘이 천만인이나 됐지?

    문자적으로는 천명이란 뜻인데 상징적으로 ‘많은 무리’란 뜻이다. 그들에게 부과된 임무가 얼마나 막중한가를 나타내기 위한 표현이다. 아이들 몇 명 데리고 있는 교사나 조그마한 교회를 맡고 있는 목사도 바로 이 ‘천만인의 두령’이라는 심정을 가져야 한다.

12. 자기 계통을 말한다(18)는 것은 자기 족보를 명확하게 밝혔다는 뜻이다. 군사로 등록할 때에 어느 지파 어느 문중인지를 확인하고 지파나 문중별로 등록했다는 말이다. 그러면 부대 이름도 가족이나 문중의 어른 이름을 따서 붙이면 되겠다. 문제는 애굽에서 나올 때 함께 나온 중다한 잡족(출 12:38)은 어떻게 되나?

    군사의 자격이 없는 셈이다: 중다한 잡족에 해당하는 사람들은 다른 잡무에 종사할 수는 있어도(신 29:11 참고) 민족의 안위를 위해서 싸워야 하는 전쟁에 참가할 수는 없었다. 이런 일에는 신분이 분명한 사람만 나서야 한다.

    힘없고 능력 없는 사람이 어쩔 수 없어서 가는 곳이 군대라는 인식이 들면 나라가 흔들리는 징조다. 로마가 가장 강성하던 시절에는 전쟁이 일어나면 귀족을 위시하여 로마시민들이 전쟁에 나갔다. 반면에 노예나 무산자는 원칙적으로 전쟁에 나갈 자격이 없었다.

13. 똑같은 말이 계속 반복되는 20-46절을 요약해보면 다음과 같이 간단하게 된다. [이스라엘의 지파별로 가족과 종족을 따라 이십 세 이상으로 싸움에 나갈만한 각 남자를 그 명수대로 다 계수하니 르우벤 지파는 46,500, 시므온 59,300, 갓 45,650, 유다 74,600, 잇사갈 54,400, 스불론 57,400, 에브라임 40,500, 므낫세 32,200, 베냐민 35,400, 단 62,700, 아셀 41,500, 납달리 53,400 명 (합 603,550 명)이었더라.] 이렇게 기록했더라면 좋았을 텐데...?

    단순하게 지파별 숫자만 가르쳐 주려는 것 이상의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동일한 표현의 반복일지라도 하나님께서 각 지파별로 얼마나 은혜를 주셨는지 음미하라는 것이다. 졸업식장에서 졸업장을 나눠줄 때 대표 한 사람만 불러내서 주는 수도 있는데 어떤 교장은 졸업생 전원과 일일이 악수하고 한 사람씩 나눠주는 바람에 졸업식이 무척 길어지기도 한다. 구경꾼이야 지루하겠지만 정작 어렵게 졸업을 맞이한 사람에게는 감동일 수 있다. 구경꾼으로 성경을 읽지 말고 자신이 주인공이 되어 하나님에게 부름 받은 감격으로 읽어보자.

    참고로 계수함을 입은 자의 총계가 603,550명이었다(46). 이 숫자는 대략 9개월 전 성막 건축을 위한 속전 대상자를 파악한 것(출 38:26)과 동일하다.

14. 군대를 편성하는 지파별 순서는 무슨 기준에 따른 것일까? 인원수 별? 아니면 조상들의 나이순? (정답은 2장에 있음)

    12지파를 다시 네 부대로 편성할 때의 순서(2장): 야곱의 12 아들의 이름이 때로는 나이순, 때로는 어머니의 순서로 나오기도 한다. 여기서는 군대편성에 따른 순서다. 순서대로 세 지파씩 묶으면 성막의 동서남북에 배치하게 되는 부대가 된다.

15. 야곱의 예언과 12지파의 인구수에는 어떤 관계가 있을까?

    축복을 받은 지파(유다, 요셉)는 인구가 많다. 저주를 받은 지파(르우벤, 시므온)도 인구가 적지 않다: 수학적으로는 ‘별로 상관이 없다’는 게 답이 되겠지만 축복은 그대로 이루어지고 저주는 아직 실현되지 않은 상태니 복은 1000대에, 죄는 3, 4대까지 이르게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다. 그러면 야곱의 예언은 무효인가? 그 후손들이 어떻게 하나님께 헌신하느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진다. 하나님께서 넉넉하게 시간을 주시고 기다리고 계신다.

16. 레위인이 그 계수에 들지 아니하였다는 말(47)은 병역을 면제받았다는 뜻이다. 좋겠다?

    우리나라에서 병역이 면제되는 것과는 개념이 많이 다르다. 하나님의 군대에 속하여 하나님의 이적을 체험하는 군대라면? 싸우는 족족 이기는 군대라면? 다른 사람은 들고 싶어도 들지 못하는 군대라면? 이런 병역에서 면제되었다는 것이 반드시 좋기만 한 것은 아닐 수도 있겠다.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나가서 싸우는 일이나 성막에서 하나님을 섬기는 일이나 동일하게 거룩한 일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타당하겠다. 목사가 되어 교회를 섬기는 일과 장로가 되어 교회를 섬기는 것 중에 어느 것이 더 어려울까? 이런 논쟁을 벌이는 사람이 어리석다.

17. 그러면 레위지파는 아예 몇 명인지 모르는 걸까?

    궁금하신 분들은 민수기 3장을 미리 읽어 보시라!

18. 거룩하다고 성막, 이동하기 위한 것이라고 장막, 하나님을 만나는 곳이라고 회막이라 부르더니 이제는 왜 또 증거막이라고 부를까? 무엇을 증거하는 걸까?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사랑, 거룩, 공의): 성막의 가장 거룩한 곳, 즉 지성소의 핵심에는 법궤가 있고 그 안에는 십계명이 들어있다. 하나님의 성품, 이스라엘 백성과의 관계를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이다. 증거막이라고 불릴 때는 율법, 계명, 규례와 관련이 있다.

19. 군대 조직으로 말하자면 레위인들은 하나님의 친위대인 셈이다. 이들이 맡은 일을 세 단어로 요약해보자(50-53).

    관리(=봉사), 운반, 수비: 레위인들이 해야 하는 가장 중요한 임무는 제사와 교육이지만 그것은 레위인 중에서도 제사장들이 맡게 되고 일반 레위인들이 맡은 일은 성막 주변에서 성막을 관리하고 지키는 일이며 광야에서 떠돌아다니는 동안에는 운반도 아주 중요한 일이었다. 야곱은 시므온과 레위의 장래사에 대해서 거의 저주와 같은 예언을 했는데 레위인들은 오히려 가장 귀중한 사명을 맡았다. 가장 주된 이유는 우상숭배자들을 처형하는 일에 가장 앞장섰기 때문이다(출 32:25-29).

20. 레위인들이 맡은 역할(50-53)을 오늘의 현실에 비추면 누구와 비슷할까?

    교회당을 돌보는 사찰 집사 정도로 여기지는 말자. 모든 그리스도인들의 삶의 자세를 가리키는 말이다. 교회(=성도들)를 돌보는 것이 곧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다(빌 2:4). 성도는 하나님의 친위대라는 마음으로 교회를 관리하고 지켜야 한다.

21. 50-53절을 잘 보면 백성들이 이동하여 거주할 곳에 다다르면 세워야 하는 것이 세 가지인데 무엇인지 찾아보자.

    성막(51), 레위인의 진(50), 이스라엘 자손의 막(=진, 52): 성막을 세우고 그 주위를 레위인들이 진을 세워 둘러막는다. 외인의 접근을 막아서 이스라엘 자손의 회중에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지 않도록 막는 역할을 한다. 그 바깥에 백성들이 자신들의 막을 세운다. 성막이 백성들의 중심에 있다는 것은 성도들이 하나님 중심으로 살아야 할 것을 잘 보여준다.

22. ‘여호와께서... 모세에게...’라는 표현이 몇 번이나 나오는지 찾아보자.

    4번(1, 19, 48, 54): 성경 전체가 그러하지만 성경의 진짜 주인공은 하나님이시다. 아무리 위대한 모세라고 해도 하나님께서 명하신 말씀을 그대로 순종했을 뿐, 하나님께서 명하신 것을 여호수아에게 명하고, 백성에게 전했을 뿐이다. 온갖 고생을 다 하면서 백성들을 가나안으로 인도했지만 그 일을 기획하고, 실천에 옮기신 분은 하나님이시다. 그래서 모세는 하나님의 집에서 사환으로 충성했다고 말한다(히 3:5).

처음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