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훔 2


1. 본격적으로 니느웨에 대한 파멸을 묘사하는데 엉뚱하게 보이는 한 구절이 삽입되어 있다. 일단 괄호로 묶어두고 읽어야 할 구절은 몇 절인가?

    2절: 1장 15절과 마찬가지로 니느웨의 멸망을 유다의 입장에서 묘사한 부분이다. 일단 빼고 읽어야 읽기가 쉽다. 뒷부분은 이스라엘의 과거, 앞 부분은 가까운 장래의 일이다. 이스라엘이 약탈을 당한 과거는 앗수르에게는 영광이지만 곧 회복될 미래는 앗수르의 멸망이다.

2. 적군이 쳐들어왔으니 단단히 준비하란다(1). 격려하는 말인가?

    일종의 조롱: 죽어보라는 것이다. 이스라엘을 치고 괴롭게 하더니 이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영광을 회복시키신다(2). 그러니 아무리 용을 써도 소용이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힘을 써보라는 것은 비꼬는 말이다!

3. 3-4절은 니느웨를 치러 올라온 자를 가리키지만 5절은 좀 애매하다. 니느웨 군사를 가리키는지 적군을 가리키는지에 따라 번역이 약간 달라질 수 있다. 개역은 니느웨를 가리키는 걸로 번역되었다. ‘존귀한 자’도 사실은 복수형이다. 그러면 엎드러질듯이 달려서 급히 성에 이르러 막을 것을 예비하는 자들을 다른 말로 하면 어떤 자들일까?

    정예병들: 요즈음 식으로 말하면 수도경비사령부 병사들인 셈인데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잘 훈련된 병사들이다. 그래도 소용이 없다는 것이다.

4. 적군의 모습을 묘사하는 것(3-4)에 비하면 니느웨의 멸망은 너무 간단하다(6). 겨우 다섯 단어다. 왜 좀 자세하게 설명하지 않는 걸까?

    길게 언급할 가치도 없다는 뜻이다: 그렇게 무너지고 난 결과만 치욕적으로 묘사하고 있을 뿐이다. ‘정명대로’란 말은 ‘숙명처럼’이란 말인데 여기서는 ‘하나님께서 정하신 대로’라는 뜻이다. 이 말씀이 아마도 산헤립으로 말미암아 나라의 운명이 풍전등화처럼 흔들리던 시기에 주어졌을 것이라고 추정한다. 어쩌면 히스기야가 끝까지 하나님께 매달릴 수 있었던 힘을 주지 않았을까(왕하 18-19, 사 37장)?

5. 니느웨를 ‘물이 모인 못’이라고 표현하는 이유를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도망치는 것’과 비교해서 설명해 보자.

    예나 지금이나 인구가 국력이다. 모든 강물이 흘러드는 못처럼 사람들이 많았던 곳, 강성한 곳이었다는 뜻이다. 그런데 침략자에 의해서 모든 사람이 도망쳐버릴 것이다. 사람이 사라지면 니느웨도 황무지가 된다(10).

6. 니느웨가 잘 나가던 시절에는 엄청난 은과 금을 소유했다고 한다. 수많은 나라를 정복하고 전리품을 거둬들였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을 빼앗기게 될 것이다. 특별히 유다가 이런 말씀을 들으면 속이 시원한 이유가 무엇일까?

    자기들도 그렇게 빼앗긴 적이 있기 때문이다(왕하 18:14-16): 히스기야 시절에 그렇게 많은 은과 금을 빼앗고도 재차 침입하여 괴롭혔던 일을 생각하면 깨소금 맛이다.

7. 잘 나가던 시절의 니느웨의 별명이 무엇인가? 왜 그런 별명이 붙었는가?

    사자의 굴: 약탈품이 가득하기 때문이다(12). 그렇게 채우려면 얼마나 많은 짐승을 찢었겠는가? 잔혹했다는 말이다.

8. 그렇게 잘 나가던 니느웨를 누가 멸망시키는가?

    하나님: 실제로는 바벨론(갈대아 사람)과 메데의 연합군에 무너진다. 그러나 그렇게 역사하시는 배후에는 하나님께서 계신다.

9. 니느웨의 흥망성쇠를 선지자가 사용한 표현을 빌리면 한 때 ‘물이 모이던 못’ ‘사자의 굴’이 ‘횃불’과 ‘번개’를 만나서 무엇이 되었다고 하면 좋을까?

    슬피우는 비둘기(7): 앗수르는 하나님께서 사용하신 도끼에 지나지 않는다(사 10:5-15). 그런 줄도 모르고 기고만장하여 하나님을 모독하기를 서슴지 않았던 그들이기에 이런 결말은 당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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