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 9 장


1.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맡기신 임무를 두 가지로 요약하면?

    하나님 나라를 전파하는 것과 병 고치는 것; 사도들이 행한 이 일은 예수님께서 늘 하시던 일이다. 병 고치는 일도 그만큼 중요한 일이었다는 것은 신앙이 육체의 일을 깨끗이 버리는 것을 말하지 않는다. 믿음을 갖도록하는 일이 우선이지만 동시에 인간의 육적인 필요를 채우고 도우는 것도 중요한 일이다. 심지어 적절한 휴식과 오락까지(10절 참고).

2. 복음을 위하여 아무 것도 가지지 말라는 이유가 무엇일까? 목사님들을 이 말씀대로 살아야 하지 않을까?

    복음을 전하는 일 외엔 아무 것도 신경을 쓰지 말라는 의미; 초등학교 때 긴 머리를 중학교 들어가면 까까머리로 깎아 버린다. 짧게 깎는 이유가 스님이 대머리로 민 이유와 비슷하지 않을까?
    평생 그렇게 살라는 뜻은 아니지만 그런 마음가짐을 잊어서는 안된다. 교회가 힘을 가지고 돈을 가지면서 복음보다는 엉뚱한 일로 바쁜 경우는 반성해야한다.

3. 이스라엘 사람들의 욕은 대체로 하나님과 관계가 끊어지는 내용과 관련이 많다. 가령 '내 백성이 아니라'는 말은 심한 욕이다. 그러면 발의 먼지를 떨어버리는 것도 사실은 욕이라고 할 수 있다. 왜 그럴까?

    발의 먼지를 떨 듯이 하나님께서 너희를 떨어 버릴 것이다. 라는 의미

4. 예수께서 많은 일을 하셨지만 가장 하고 싶었고 가장 관심이 많은 일은 (하나님 나라)를 전파하는 것이었다.

    본문에서만 해도 이 말이 다섯번이나 나온다. 1, 11, 27, 61, 62; 말끝마다 하나님 나라라고 하시는 것이다. 한 때 잊혀졌다가 비교적 근래에 와서 새로이 사람의 관심을 끌게된 단어이다. 길게 설명하자면 끝도 없는 것이지만 하나님 나라란 한 마디로 무엇일까?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것, 우리가 하나님의 뜻에 합당하게 사는 것

5. 제자들의 전도여행이 아주 효과적이었음을 보여주는 증거 세 가지는?

    헤롯의 반응, 백성들의 반응, 벳새다 들판에 이렇게 많은 무리가 모여든 것;
    제자들이 흩어져서 놀라운 능력으로 말씀을 전한 결과 소문이 널리 퍼졌기 때문이다.

6. 예수는 하나님 나라의 일을 이야기하고 병자를 고치기 바쁘다.
제자들은 할 일이 없으니까 딴 걱정을 하고 있었다. 무슨 걱정?

    이 사람들 배고플 텐데; 학교 선생님이 되면 아이들만 잘 가르치면 되는 줄 알았다. 그런데 막상 시작해보니 아이만 잘 가르치면 되는 게 아니다. 오만가지 할 일이 다 있다. 장부정리, 공문처리, 학부형 면담, 문제아 상담, 진로지도, 청소지도, 자습지도, 환경정리, 각종 돈 거두기, 복장지도, 운동장에 줄 서기, 고운말 쓰기, 예절지도......, 언젠가 생활지도를 한답시고 지키고 준수해야 할 일들을 정리해보니 당장 급한 것만 해도 20여 가지를 넘길래 인쇄해서 나누어 주고 신경을 쓰라고 했더니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숨이 막힌다고 했다. 정상적이라면 숨쉬기 운동밖에 안되는 일들만 적었는 데도...... 학교 선생님도 공부만 가르치는 것이 아니다. 예수님도 다 잊어버리고 하나님 나라에만 전념할 수 있으려면 이런 잡무를 제대로 맡아줄 수 있는 제자들이 필요하다. 공부에는 신경 안 쓰고 엉뚱한 걱정한다고 제자들을 나무라지 말자. 우리도 교회에서 이런 일에 신경을 써야한다. 교역자들이 이런 데까지 신경쓰지 않아도 되도록......

7. '아이고 예수님 농담도......' 예수님의 어느 말에 제자들이 이런 반응을 보였을까?

    너희가 먹을 것을 주어라(13); 우리는 우리에게도 없는 것을 나누어주는 사람이어야 한다. 아니, 없는 것을 어떻게 나누어주나? 참,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있는 것을 나누어주어야 한다. 남의 필요를 채우는 사람이 되자. 그러기 위해서 내가 풍성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그리스도의 풍성 말이다. 제자들은 나누어줄 능력이 없었다. 우리도 없다. 오직 그리스도를 힘입어 그리스도의 것을 나누어줄 수밖에.

8. 이런 능력을 지니신 분이 남은 것을 거두어야 할 이유가 있을까?

    이런 식으로 노력하지 않아도 먹고 살 수 있다는 마음을 갖지 않도록 하기 위함. 이번 뿐이다.
    근검 절약은 가난한 자만이 지켜야하는 것이 아니다. 온 천하의 모든 것을 소유하신 예수님도 남은 것을 버리지 않고 다 거두었음을 기억하자.

9. 과학적이고 동시에 합리적인 사고를 지닌 사람에게는 기적이 존재하지 않는다. 끊임없이 늘어나는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보라. 이 정도 능력도 없다면 어떻게 하늘에서 내려와 온 인류에게 풍성하게 나누어지는 떡이 되겠는가? 결국 이 五餠二魚의 기적은 무엇을 예표한다?

    온 인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드리는 예수님의 모습이다. 내가 곧 생명의 떡이로라.

10.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는 질문에 베드로는 멋진 대답을 남겼다. 마태복음16장에 기록된 답이 정답일텐데, 여기에 기록된 '하나님의 그리스도' 시니이다라는 말은 의미만 살린 말이어서 일반인들이 알아듣기 어려운 말이다. 쉬운 말로 설명을 해 보자.

    하나님의 기름부음을 받은 자; 그리스도란 히브리어 메시야의 헬라어 의역이고 뜻은 '기름부음을 받았다' 이다. 기름부음을 받았다는 것은 하나님에 의해서 세움을 입었다

11. 예수님은 비로소 자신의 죽음에 대해서 말씀하신다. 무엇을 확인하고서?

    제자들이 자신을 메시야로 믿고 있음을 확인하고서; 예수의 죽음은 자신이 메시야인 것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죽음으로써 메시야의 사역을 완수하는 것이고, 메시야가 아니면서 죽는다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다. 우리가 고난을 받아도 믿음 때문에 받는 것은 좋으나 애매히 고난을 받으면 아무 유익이 없다. 그것도 이기적인 욕심 때문에 다른 사람들에게 비난을 받는 것은 너무나 어리석은 일이다. 자신의 욕심과 무지로 인한 비난과 참된 신앙 때문에 받는 비난은 분간할 수 있어야 한다.

12. 예수님은 돌아가셔서 며칠만에 부활하셨는가? 사흘만에? 금요일에 돌아가셔서 주일에 부활하시면 그게 사흘이 되나? 이틀 아냐?

    아무리 생각해도 사흘이란 말이 잘 이해가 안된다. 여기에 보면 '제 삼일에' 란 말이 나온다. 세번째 날에란 말이다. 이것이 정답이다. 실제로 이틀만이라고 해야 옳을 것 같은데 히브리식 표현과 관련이 있단다. (정목사께 질문)

13. 예수님 말씀대로라면 믿는 사람들이 가는 길은 십자가 행렬이다. 참 우습겠다. 제일 앞에 대형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이 가고 그 뒤를 많은 사람이 형형색색의 십자가를 지고 그 뒤를 따르면 묘한 행렬이다. 혹시 우리는 그 뒤를 자가용 타고 따라가고 있지는 않은가? 나의 십자가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꼭 버리고 싶지만 그리스도를 위하여 버릴 수 없는 것, 남을 위해 내가 아픔을 참아야 하는 것, 인내와 용기로 버티어야 하는 것 ↔ 아무에게도 유익이 되지 않는 자기 고집, 자기에게는 유익하나 타인에게 거리낌이 있는 것 등은 아니다; 특히 '날마다' 라는 말은 인내를 강조하고 있다.

14.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겠느냐(25)?
그러니까 목숨을 소중히 여기라? 바로 앞 구절은 목숨을 버리라는 것처럼 들리는데?

    핵심은 하나님 나라를 얻기 위하여 목숨을 버리라는 것이다; 온 천하보다 더 소중한 것이 목숨이니까 목숨을 소중하게 여겨야하는 것처럼, 예수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이 무엇보다 소중한 것이니 그 소중함을 취하라. 헷갈리나? 가장 소중한 것(하나님 나라)이 무엇인지 확인하고 그것보다 덜 소중한 것(자기 목숨)을 버려라! 다시, 모든 것을 얻고도 목숨을 잃으면 다 잃은 것이다. 자기 목숨을 보존하려다가 예수 그리스도를 잃으면 목숨은 건지겠지만 알맹이를 잃은 것이다. 진짜 소중한 것을 얻으려면 예수를 위하여 목숨을 버려라.

15. '여기 섰는 사람 중에 죽기 전에 하나님의 나라를 볼 자도 있느니라' 는 이 말씀 때문에 예수님의 재림이 곧 있을 것이라고 믿었던 사람들이 많았을 것이다. 아무래도 그렇게 들리는 말씀이니까. 하나님의 나라가 예수께서 구름 타고 우렁찬 나팔 소리와 함께 임하는 것이라고만 생각하는 데서 오는 오해일 것이다. 죽기 전에 볼 수 있는 하나님의 나라는 무엇이었을까?

    성령이 임하고 초대교회의 부흥을 목격한 사람은 틀림없이 그것을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는 것이라고 믿었을 것이다. 아마 쉽게 상상하기 어려울 것이다. 연변에 세워진 연변과기대를 보면서 간첩의 소굴이라고 경계하던 중국의 공산주의자들이 '진정한 공산주의는 여기에서 실현되었다' 라는 말을 했단다. 이 말에 눈물이 쏟아지지 않으면, 콧날이 시큰거리지 않으면 위의 설명을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좀 더 배우자.

16. 전도의 일을 마치고 신이 나서 돌아온 제자들을 데리고 가신 벳새다, 너희는 나를 누구하고 하느냐고 물으신 곳, 베드로와 요한을 데리고 올라가신 산은 공통점이 있다. 무엇일까?

    기도하기 위한 곳(18, 28); 벳새다는 기도하기 위한 곳이라는 말은 없지만 12절에 '빈들', 10절에 '따로' 란 말이 그것을 암시하고 있다; 신이 나서 떠들고 있는 제자들에게 따로 조용한 곳에 데리고 가셔서 이럴 때일수록 하나님과의 교제를 중요시해야 한다(기도)고 가르치실려는 데 이곳까지 사람들이 들이민 것이다. 많은 일을 하는 것도 열심히 노력하는 것도 중요하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기도하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예수님께서 철저히 본을 보이시면서 제자들을 가르치고 싶었던 일이었다.

17. 변화산 위에는 모두 몇 분이 계셨는가?

    7명 (6명 + 하나님)

18. 예수님께서 기도하시는데 모세와 엘리야가 나타났단다. 요한복음 8장에 따르면 아마 이 장소에 가장 오고 싶어한 분은 아브라함일 것이다. 그런데 왜 모세와 엘리야가 나타났을까? (이 때 대화의 주제 즉 예수님의 별세와 관련해서 두 사람이 무슨 이야기를 했을까?)

    모세는 율법을 대표하고, 엘리야는 선지자의 대표인 셈이다; 결국 구약의 대표들인 셈인데 구약이 지향하는 것이 예수니까 지극히 당연한 모임이다. 두 사람 다 하나님의 영광을 몸소 체험했고 이 세상을 정상적으로 떠나지 않았다. 모세는 지도자의 힘든 사역, 엘리야는 선지자의 일과 승천에 대하여 이야기하지 않았을까?

19. 불 火자는 人에서 빛이 나는 형상이다. 영화로울 榮은 빛이 나는 두 사람이 선악과(木)와 격리되어 있는 모습이다. 선악과를 따먹기 전의 인류는 하나님을 닮았고 아마 몸에서 빛이 발했을 것이다. 모든 것을 다스리라고 하신 하나님께서 그 정도의 위엄은 허락하셨을 것이다. 회사의 임원도 품위유지비라는 것을 지불하는데 하물며 모든 피조물의 우두머리인 사람을 짐승과 같은 모습으로 두셨을라고? 변화산의 예수님이나 모세, 엘리야의 모습이 빛이 나는 모습이었고 옷이 희어졌다고 하는데 어쩌면 그것이 바로 처음 창조되었던 우리의 모습이며 부활 후에 우리가 입게 될 영광스러운 모습일 것이다. 얼마나 놀라운 모습일지 본문을 이용해서 설명해 보시오

    베드로가 놀래서 정신이 없을 정도, 제자들이 잠잠하여 함부로 말을 하지 않았을 정도; 사도 바울이 회심할 때도 둘러비취는 빛 때문에 쓰러졌던 적이 있다. 단순한 빛은 아니라고 본다. 빛되신 하나님 그 자체가 아닐까?

20. 베드로의 전공은 (nonsense quiz)? 어부라고 대답하지 말 것. 심심풀이로 묻는 것이니까.

    결정적인 순간에 조는 것(90점); (졸다가 깨어나서 실수하는 것 100점) 졸다가 정신 번쩍 들었음을 나타내는 말은? 아주 깨어

21. '믿음이 없는 패역한 세대여' 이 책망은 누구를 보고하는 것일까?

    제자들, 귀신들린 아이의 아비?; 얼마 전에 예수님께서 능력을 주셨는데 어디다 다 까먹고? 왜 까먹었을까? 기도를 안하기 때문이다. (마태복음17장 참고) 기도함으로 병을 고치는 은사를 가진 분들은 그만큼 많은 시간을 들여 기도하고 있다. 기도하지 않으면 이런 능력이 지속되지 않는다. 기도할 생각은 없으면서 능력만 원하시는 얌체짓은 바라지도 말고 원하지도 말라.

22. 두 번에 걸쳐서 죽음을 예고해도 제자들이 알아듣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귀신을 쫓아내고, 병을 고치시며 기적을 베풀어 수천명을 먹이실 능력을 가진 분이 죽는다고? 사람들은 남이 말하는 대로 듣거나, 들리는 대로 듣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생각대로 듣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이런 경우를 흔히 눈에 뭐가 쒸었다고 한다. 그럴 경우에는 다른 사람의 어떤 말도 들리지 않는다.

23. 천국에서 가장 큰 자는 예수의 이름으로 어린아이를 영접하는 자이다. 그러면 천국에서 가장 작은 자는?

    자기 욕심에 이끌려 능력있는 큰 사람만 영접하는 사람; 어린아이는 영접을 받은 만한 자가 아니다. 나에게 아무 유익이 되지 않을 사람을 예수님 때문에 영접한다면 큰 자라는 뜻이다. 유명한 깡패출신 목사님이 버스간에서 깡패를 만났단다. 주먹을 부르르 떨면서 '예수는 내가 믿고 덕은 네가 본다'라고 했단다. 예수님 때문에 참는 자가 진정으로 큰 자라는 말이다.

24. 요한이 짜증이 난 모양이다. 웬 녀석이 예수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다. 우리도 못해서 예수님께 야단만 맞았는데 말이야. 예수님! 우리편도 아니면서 선생님 이름 팔고 다니면 안되죠? 이런 요한을 우리 주변에서 찾는다면?

    이웃 교회의 부흥을 기쁨으로 보지 않고 시기심으로 바라보는 것; 이웃교회도 분명히 예수의 제자요 교회의 일원이거늘 함께 기뻐해야 한다. 자기들끼리만 똘똘 뭉쳐 다른 무리에 대하여 배타적인 예수의 제자라기보다는 똘마니 형상, 자기가 속한 그 무리만 볼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입장에서 생각해야 한다.

25. 밤길을 걸을 때 후레쉬를 발 밑에 비추면 안된다. 피아노 연주자 옆에서 악보를 넘겨주는 사람을 우습게 보면 안된다.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악보를 미리 읽고 미리 넘겨주는 일이 쉽지 않다. 연주자는 지금 당장 치는 곳을 보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앞부분을 읽으며 치고 있기 때문이다. 자동차 운전도 멀리 보면서 하는 것이지 바로 앞만보면 사고치기 쉽다. 예수님도 그랬다. 어떻게?

    눈 앞에 닥친 십자가만 보는 것이 아니라 멀리 그 이후를 내다보시며 힘든 길을 이기고 계셨다(51 승천); 바로 눈 앞의 어려움보다는 멀리 내다보며 용기를 내자.

26. 베드로만 성질이 급한 줄 알았더니 한 술 더 뜨는 형제가 있었구나. 형제는 용감했다. 언젠가 그들의 엄마가 치마바람을 일으키며 이 둘을 영의정 좌의정 삼아 달랬던 바로 그 형제들이다. 이 형제들의 이런 성격을 보여주는 그들의 별명은?

    보아너게 (우뢰의 아들, 막 3:17)

27. 다음 구절은 예수님께서 이 땅에 계실 때 어떤 삶을 사셨는 지 잘 보여주는 말씀이다. '머리 둘 곳이 없다' 라는 말을 순 한국식 표현으로 고친다면?

    '예수께서 가라사대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집이 있으되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도다' (9:58)
    집도 절도 없다.

28. 예수와 제자들의 손발이 잘 맞지 않는 대목들을 다음과 같이 정리해 보자.

                       제자들                                          ↔   예수님
    1) 이 사람들을 보내서 밥이라도 사먹게 해야죠? ↔    너희가 주라.
    2) 예수님은 그리스도시니이다.                          ↔   난 죽을 거야.
    3) 모세와 엘리야가 예수님의 수난을 논의함       ↔    제자는 졸고.
    4) 여기가 좋사오니                                          ↔    내려가자
    5) 누가 크냐?                                                  ↔    나는 죽을 것이다
    6)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는 것을 금해야죠?    ↔    그냥 두라
    7) 불로 확 싸질러 버려야죠?                             ↔     돌아가자
    원래가 이렇게 철딱서니 없는 제자들이었다. 예수님은 훌륭한 스승이었고; 시끄럽고 말 많은 아이들을 기뻐할 줄 아는 사람이 진짜 선생님이시다.

29. 예수를 따르려는 세 종류의 제자들

    세상의 명예와 재물과 이생의 안락함을 버리고 나를 따르라(58)
    주를 따르기로 했으면 그것이 가장 소중한 일이다. 먼저 해야할 일이 무엇인지 잊지 말라.(59, 61의 먼저)

30. 어떤 이들은 예수께서 십자가에 죽으신 것이 예수의 정치적 혁명이 좌절된 것, 혹은 사람들의 악한 의도 때문이나 예수님 자신의 자포자기 등으로 설명하려고 한다. 그러나 1) 십자가의 길은 결코 그런 것이 아니었음을 보여주는 말씀이 있다면? 2) 오히려 그것이 하나님의 작정하심이었음을 보여주는 말씀은?

    1) 굳게 결심하시고(51) 2) 기약이 차가매(51)

    <공지 사항>
    (이 난을 애독하신 분들께; 적용부분을 특히 사랑해 주신 분들께 미안한 인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제가 교회를 옮기는 바람에 함께 공부하던 친구들과 헤어지게 되어서 이 공부를 더 계속할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다시 또 기회가 오면 계속할 수 있게 되기를 빕니다만 일단 적용 부분만여기서 중지합니다. 다만 매주 1장씩 질문과 대답은 평생 계속하려고 합니다. 신대원공부와 교회를 섬기는 일이 쉽지 않지만 노력하겠습니다. 대신에 설교란에 설교를 계속 올리게 될 지 모르겠습니다. 위해서 기도를 부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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