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레미야애가 5장


1. 5장의 내용을 셋으로 구분한다면 1절에서 언급하는 것처럼 ‘우리의 당한 것’ ‘우리의 수욕’ 그리고 ‘하나님의 감찰’이라고 할 수 있겠다. 대강 이렇게 구분해보자.

    우리의 당한 것: 2-8절, 신분의 추락
    우리의 수욕: 9-18절, 신분이 추락한 결과 비참해진 현실
    하나님의 감찰: 19-22절, 하나님께서 우리의 이런 현실을 반드시 돌아보실 것이라는 확신 때문에 이런 간구를 드리는 것이다.

※(2-16) 다음 구절들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왜 가슴아픈 일인지 설명해보자(일반적으로 슬픈 이유 이상의 의미가 있는지 생각해보자).

2. 우리 기업이 외인에게, 우리 집들도 외인에게 돌아갔나이다(2절):

    원래 기업은 ‘물려받은 재산(유산)’을 가리키는 말이다. 이것은 외인에게 돌아갈 수 없는 것이다. 설령 팔렸다해도 희년이 되면 원주인에게 돌아가야 하는 것이다. 이것을 외인에게 (영원히) 빼앗겨 버렸다. 나봇이 왕에게도 팔지 않으려던 것이다. 이스라엘이 누렸던 기업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셔서 여호수아 시대에 차지했던 땅인데 이제 다 잃어버렸다.

3. 우리는 아비 없는 외로운 자식이오며 우리 어미는 과부 같으니(3절):

    성경이 가장 불쌍하게 여기는 존재가 바로 고아와 과부다. 과부라 해도 혼자서 넉넉히 살아갈 수 있는 오늘과는 전혀 다른, 남편없이 생계를 이어갈 수 없는 존재를 가리킨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보호없이 살 수 없다는 고백이다.

4. 우리가 은을 주고 물을 마시며 값을 주고 섶을 얻으오며(4절, 물과 섶을 정확하게 번역하면 우리의 물과 우리의 섶이다):

    우리 물을 마시는데 우리가 값을 지불해야 하다니! 이전에는 결코 값을 지불하지 않았던 것인데 값을 내야 하다니! 이민족의 혹독한 수탈로 인한 고통이다.

5. 우리를 쫓는 자는 우리 목을 눌렀사오니 우리가 곤비하여 쉴 수 없나이다(5절):

    목이 눌렸다는 것은 멍에를 매었다는 뜻이다. 하나님께 순종하기를 거부한 그들에게(출 32:9, 렘 2:20) 이방인이 멍에를 씌우는 바람에 곤비하여 쉴 수가 없다(신 28:48).

6. 우리가 애굽 사람과 앗수르 사람과 악수하고 양식을 얻어 배불리고자 하였나이다(6절):

    먹고 살기 위해서 애굽 사람이든 앗수르 사람이든 상관하지 않고 손을 내밀었다는 말이다. 이방인을 불결하게 생각하던 거룩한 백성들의 꼴이 말이 아니다. 어느 교장선생님께서 학교를 그만두고 생계를 위해서 여관을 관리했는데 미치겠더란다! 아이들이 조그마한 잘못을 해도 잔소리를 하던 분이 여관에서 막무가내로 설치는 손님들을 상대하려니 정말 때려치우고 싶더란다.

7. 우리 열조는 범죄하고 없어졌고 우리는 그 죄악을 담당하였나이다(7절):

    자신들에게는 죄가 없는데 조상들 때문에? 열조의 범죄에서 벗어나지 못한 자신들의 죄로인해 하나님의 진노를 받게 되었다는 고백이다. 엉터리같이 살았던 조상들에 대한 원망이 전혀 없지야 않았을 것이다.

8. 종들이 우리를 관할함이여 그 손에서 건져낼 자가 없나이다(8절):

    이스라엘을 다스리는 자는 바벨론의 하급관리다. 이들이 무슨 법을 따져가며 돌보아주지 않는다. 일제시대에 우리 조상들도 무서워했던 것은 일본 순사였다. 자기 나라에서는 말단 순사일텐데 이것들이 무서워서 그렇게 빌빌거리다니...

9. 광야에는 칼이 있으므로 죽기를 무릅써야 양식을 얻사오니(9절):

    광야에 웬 칼? 도적이나 강도들이 날뛰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칼을 뜻하는 단어(헤레브)는 가뭄의 뜻도 있다. 이러나 저러나 양식을 구하기에 어려운 것은 마찬가지다.

10. 주림의 열기로 인하여 우리의 피부가 아궁이처럼 검으니이다(10절):

    굶어서 쭈글쭈글할 뿐 아니라 시커멓게 변한 피부가 검댕이 눌어붙은 아궁이같다. ‘주림의 열기’란 말은 어딘가 어색하다. 주림은 약하고 힘이 없는 것인데 열기는 강하고 뜨거운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굶주림 때문에 우리의 피부가 열기가 가해진 아궁이처럼 검게 되었다는 표현이다.

11. 대적이 시온에서 부녀들을, 유다 각 성에서 처녀들을 욕보였나이다(11절):

    전쟁이 나면 여자들이 겁탈을 당하기는 예나 지금이나 별반 다르지 않다. 다만 이스라엘의 경우에는 이런 결과가 미리 경고되었다(신 28:30). 하나님에게 순결하지 못한 자는 육체의 순결도 보장할 수 없다.

12. 방백들의 손이 매어 달리며 장로들의 얼굴이 존경을 받지 못하나이다(12절):

    외적에게 항복하고 나면 방백이나 장로들은 일반백성들보다 더 모진 고난을 감당할 수밖에 없다. 다소 완곡한 표현으로 언급된 고문이나 수모를 말하는 것 같다.

13. 소년들이 맷돌을 지오며 아이들이 섶(나뭇짐)을 지다가 엎드러지오며(13절):

    소년이란 건장한 젊은이를 가리키는 말이다. 이런 젊은이가 기껏해야 맷돌질이나 하게 된다. 나뭇짐을 나르다가 쓰러지는 아이들은 옛날 가난하고 고생스럽된 시절을 회상케한다.

14. 노인은 다시 성문에 앉지 못하며 소년은 다시 노래하지 못하나이다(14절):

    성문에 앉는다는 것은 재판을 하거나 중요한 일을 담당하는 것을 말하는데 이런 일이 다 사라져버렸다. 정당한 재판이 사라져 버렸으니 노래할 일도 없다(15).

15. 우리 머리에서 면류관이 떨어졌사오니 오호라 우리의 범죄함을 인함이니이다(16절):

    면류관은 왕관를 뜻하지만 축제나 즐거운 잔치에서 쓰기도 했다. 즐거움이 다 사라져 버렸다. 이런 비극이 어디서 연유한 것인지 아는 것, 이것이 바로 회복의 시작이다. 현실의 아픔이 어디서 비롯된 것인지를 고백하는 것이다.

16. 이러므로 우리 마음이 피곤하고 이러므로 우리 눈이 어두우며(17절) 시온산이 황무하여 여우가 거기서 노나이다(18절):

    범죄한 결과 하나님께서 주신 거룩한 땅이 버림을 당하였고, 짐승이 번성하였다. 하나님의 백성이 사라지고 야생 동물들의 번성하는 것은 가장 비참함을 의미한다(사 34:8-17).

※(17-20) 다음 구절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왜 희망이 되는지 설명해보자.

17. 여호와여 주는 영원히 계시오며 주의 보좌는 세세에 미치나이다(19절):

    아무리 강력한 권세도, 아름다움도, 심지어 혹독함도 시간을 이길 수는 없다. 모든 것은 살아남은 자의 것이다. 영원불변하신 하나님께서 모든 것의, 최후의 승리자이시다. 그 분이 우리의 하나님이시니 결국에는 우리를 구할 것이다.

18. 주께서 어찌하여 우리를 영원히 잊으시오며 우리를 이같이 오래 버리시나이까(20):

    고난이 오래 계속되는 것에 대한 원망이기도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끝까지 버리지 않으시리라는 기대감의 표시이기도 하다. 원어상으로는 완전히 잊어버리지 않았고, 완전히 버리지 않았다는 의미이다(미완료 시제).

19. 여호와여 우리를 주께로 돌이키소서 그리하시면 우리가 주께로 돌아 가겠사오니 우리의 날을 다시 새롭게 하사 옛적 같게 하옵소서(21):

    하나님께서 회복시켜주실 것에 대한 기대를 여전히 저버리지 않았다. 그냥 주께로 돌아가면 되지, ‘우리를 주께로 돌이키소서’라는 게 무슨 뜻인가? 회개도 하나님께서 회개케하셔야 된다는 뜻이다. 하나님의 역사에 대한 놀라운 이해이다.

20. 주께서 우리를 아주 버리셨사오며 우리에게 진노하심이 특심하시니이다(22):

    아주 버렸는데 기도는 왜 하나? 버리지 않았다는 확신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 확신을 가진 가운데서도 또 한편으로는 투정을 부리는 셈이다. 좋아서 하는 짓이면서도 때로는 힘든다는 엄살을 떤다. 좀 봐달라는 뜻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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