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레미야애가 4장


[ 1-10: 기근으로 인한 참상 ]

1. 기근으로 말미암아 유다의 모습이 어떻게 변해버렸는가?

    성소 → 길거리에 버려진 돌(1),
    정금 → 토기장이의 질항아리(2),
    처녀 → 광야의 타조(3),
    붉은 옷을 입고 진수를 먹던 자 → 거름더미를 헤집는 거지(5),
    마광한 청옥 → 숯과 막대기(8),
    자비한 부녀 → 식인종(10).

2. 금이 빛을 잃고 변하면 무엇처럼 되는가?

    토기장이의 만든 질항아리: 항아리면 쓸모가 있지, 빛을 잃어버린 금은 전혀 쓸모없는 항아리 조각이나 마찬가지다. 금이 값이 나가는 이유는 성질이 변하지 않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도무지 일어날 수 없는 비극이 일어났다는 말이다.

3. 제자리에 있는 성소의 돌과 각 거리 머리(모퉁이)에 쏟아진 성소의 돌이 어떻게 다른가?

    제자리에 있어야 값어치가 있는 것이지 길모퉁이 버려진 돌은 치워야 할 장애물이다. 마치 논 가운데 피어난 장미처럼! 보배로운 시온의 아들들이 아무 쓸모도 없는 항아리 조각이나 길거리의 장애물처럼 버려졌다.

4. 본문이 말하는 들개와 광야의 타조의 차이점은 무엇인가?

    들개는 새끼에게 젖을 먹이지만 타조는 새끼를 먹이지 않는다: 혹독한 기근이 닥치자 보배로운 시온의 아들들이 잔인할 뿐만 아니라 부정한 들개보다 못하다. 광야의 타조는 알을 낳고는 잊어버린단다. 아예 새끼를 돌볼 생각도 않는 타조와 비슷한 수준으로 떨어졌다. 최우선적으로 돌보아야 할 젖먹이나 어린 아이에게 떡 하나 떼어 줄 사람이 없다.

5. 붉은 옷을 입고 진수를(=진수성찬을) 먹던 자가 이제는 어떻게 되었는가?

    거리에서 거름더미를 헤집는 거지: 전에 같으면 거들떠 보지도 않던 것을 이제는 찾아 먹어야 한다.

6. 아무려면 유다의 죄가 소돔보다 더 하려고?

    더 하고 덜 하고의 문제가 아니라 그만큼 악했다는 말이고 예루살렘이 소돔처럼 무너졌다는 뜻이다.

7. 미인의 조건은 희어야 할 부분은 희고 붉어야 할 부분은 붉어야 하는 것이다. 유다가 한 때는 그랬다(8). 지금은 어떻게 되었는가?

    희어야 할 부분은 검고, 붉어야 할 부분은 막대기같이 말랐다. 그래서 거리에서 알아보는 사람이 없다.

8. ‘칼에 죽은 자’(9a)와 ‘(칼에) 찔림’(9b)의 의미상 차이는 무엇인가?

    ‘칼에 죽은 자’는 단번에 죽은 자를 말하고 ‘(칼에) 찔림’은 부상을 입어서 서서히 죽어가는 것을 의미한다. 부상으로 시름시름 앓다가 죽는 것과 굶주려서 죽는 것이 단칼에 죽는 것보다 더 불행할 정도로 혹독한 굶주림을 겪었다.

9. 왜 하필이면 자비한(동정심이 많은) 부녀가 손으로 자기 자녀를 삶아 먹었다고 하는가?

    다른 사람은 몰라도 자비한 부녀라면 절대로 못할 일이기 때문이다. 다른 예와 마찬가지로 도무지 있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났다는 말이다.

[ 11-16: 지도자들 의 죄 ]

10. 이 단락에서도 도무지 있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났다고 말한다. 그것이 무엇인가?

    대적과 원수가 예루살렘 성문으로 들어가는 것: 세상 열왕과 천하 모든 백성이 믿을 수 없었던 일이란다. 난공불락의 요새로만 알았던 곳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세우신 나라, 하나님의 백성이 거하는 하나님의 전이 있는 곳에 어떻게 대적이 들어올 수 있다는 말인가? 이것은 유다의 자만이다. 불가능을 가능케한 유다의 범죄가 얼마나 컸겠는가!

11. ‘여호와께서... 시온에 불을 피우사 그 지대를 사르셨도다’는 것은 구체적으로 무엇을 가리키는 말인가?

    예루살렘이 불태워진 것: 왕하 25:9)여호와의 전과 왕궁을 사르고 예루살렘의 모든 집을 귀인의 집까지 불살랐으며...

12. 예루살렘이 이렇게 철저하게 무너지는 것은 선지자들의 죄와 제사장들의 죄악 때문이다. 징계를 당하면 어떤 모습으로 변하는가?

    부정하여 사람이 접근할 수 없음: 부정한 사람들을 정결케하는 일을 하던 제사장들이 마치 문둥병자처럼 부정하게 된 것은 그야말로 엄청난 징계이다. 이들이 옷에 피를 묻힌 채 소경처럼 방황한다. 지도자가 소경이 되었으니 뻔한 결과 아니겠는가! 사람들이 피한다. 아무도 높이거나 대접지 아니한다. 16절의 ‘저희’는 이방인이다. 의인의 피를 흘리게 하다가 하나님께 징계를 받은 이들을 누가 높이겠는가! (16절의 끝 부분은 ‘아니하였도다’로)

[ 17-22: 백성들의 헛된 소망 ]

13. ‘우리가 눈이 상하도록 바라보았던 우리를 구원치 못할 나라’는 어느 나라인가?

    애굽(렘 2:18, 36, 37:7-10): 예레미야뿐 아니라 이사야도 애굽을 의지하지 말라(사 30:3-7, 31:1-3)고 소리를 높였지만 유다는 애굽을 믿었다가 낭패를 당하고 말았다. 의지할 것은 애굽도 바벨론도 아니라 하나님이시라고 했지만 결국 선지자들의 외침도 소용이 없었다. 오늘 우리가 진정으로 믿어야 할 것은 하나님일까, 돈일까? 하나님 우선이어야 가진 돈도 돈이지, 하나님없이 돈만 의지하는 것만큼 어리석은 일은 없다. 그렇다고 하나님만 믿고 돈 벌 생각도 않거나 살기 위한 아무런 계획을 세우지 않는 것도 어리석은 짓이다.

14. 우리를 엿보는 자들이 거리를 지키고 있고(18a), 산꼭대기로 도망을 가려니 독수리같이 쫓아오고 광야로 가려니 매복하고 있다(19).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나?

    끝났지!(18b): 우리의 끝이 가깝고 우리의 날이 다하였고 우리의 마지막이 이르렀도다. 하나님을 의지해야 할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을 버리고 애굽을 눈이 빠지도록 기다렸으니 도무지 방법이 없다는 말이다.

15. 함정에 빠진 여호와의 기름 부으신 자는 누구인가? 한 때 ‘저의 그늘 아래서 열국 중에 살겠다’ 하던 자인데?

    유다의 왕: 도망갈 곳도 없는데다 한 때 믿었던 왕마저 함정에 빠졌으니 완전히 끝이다. 왕을 가리켜 우리의 콧김, 즉 호흡만큼이나 중요한 분이었는데 도망치다가 잡혔으니... (왕하 25:5)

16. 처녀 에돔이 즐거워할 이유가 무엇인가?

    잔이 주어질 것이니: 잔을 부어마시고 취하여 벌거벗으리라는 것은 일면 기분 좋은 것으로 들릴 수도 있으나 한편으로는 수치를 당할 것임을 의미할 수도 있다. 22절의 표현을 보면 형벌에 대한 의미이다. 처녀가 벌거벗겨질 것이다. 그러므로 이 잔은 진노의 잔이며 기뻐하라는 것은 일종의 조롱이다.

17. 처녀 에돔이 이렇게 수치를 당할 때 처녀 시온은 어떻게 되나?

    먼저 수치를 당하였으나 형벌이 끝났다: 유다에게 대적하거나 유다의 멸망을 기뻐하던 자들을 하나님께서 징계하실 것이지만 시온은 회복될 것이라는 확신을 가졌다.

처음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