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레미야애가 2장


1. 1절에 이스라엘을 가리키는 표현이 몇 가지인가?

    3가지:
    1) 분노의 구름에 덮힌 처녀: 구름으로 덮으면 시원하잖아? 이게 어떻게 진노하신 결과일까? 이 구름은 더위와 햇빛을 가리는 보호용 구름이 아니라 천둥과 번개를 동반한 무서운 심판용 구름이다. 처녀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것이다. 예쁘게 차려입은 처녀가 천둥치는 구름 밑에서 뭘 어쩌겠는가?

    2) 하늘에서 땅으로 던져진 아름다운 것: 아무리 아름다워도 하늘에서 땅으로 던져버리면 어떻게 되나? 옥떨메라는 말이 있었는데 ‘옥상에서 떨어진 메주’같이 못 생겼다는 뜻이다.

    3) 잊혀진 발등상: 발등상은 발을 올려놓는 도구인데 솔로몬 왕의 발등상(족대)은 금으로 만들어졌다(대상 9:18). 하나님께서 자신의 발등상을 기억하지 않는다면 차버렸나? 여기서 발등상은 언약궤 혹은 성전을 가리킨다(대상 28:2, 시 99:5, 132:7). 그렇게 소중하게 여겼던 성전마저 하나님께서 기억하시지 않을 정도면(왕상 9:7) 하나님의 마음이 완전히 떠나버린 셈이다. 이것이 이스라엘에게는 엄청난 불행이다.

    이런 고통을 노래하면서 어떻게 시의 형태에 신경쓸 수 있었을까? 엄청난 고통이나 아픔을 시로 노래하는 걸 보면 그럴 수도 있겠다 싶은데... 절제된 아픔일까?

2. 하나님께서 진노하셔서 행하신 일을 다음과 같이 말하는 것(2-3)은 어디에 비유하는 것인가? 혹은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가?

    거처를 삼키시고? = 불(3, 4절).
    견고한 성을 헐어 땅에 엎으시고 = 지진?
    이스라엘 모든 뿔을 자르셨음이여 = 힘있는 짐승: 뿔이 잘린다는 것은 권세와 힘을 잃어버리는 것을 상징한다(신 33:17, 미 4:13).
    원수 앞에서 오른손을 거두시고: 지원 중단.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지원없이 이길 수도 살 수도 없는데... 하나님은 이 손을 들어 오히려 이스라엘을 치신다(4). 비극도 이런 비극이 없다.

3. 눈에 아름다운 자를 살육하다니? 아비가 자식을 죽이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무엇이라고 한 마디 한다면?

    그럴 수가(죽임 당한 자의 입장을 고려하면)? 오죽하면 그랬을까(심판자의 입장을 이해하면)? 언젠가 몸을 움직이지 못하면 남편에게 수년간 설탕물만 준 부인이 있었다. 뼈다귀만 남은 모습의 남편을 보고서 사람들이 ‘독한 여자’라고 수군거렸다. 그러나 20여년이 넘도록 남편에게 맞아면서 살았던 여인의 형편을 알고는 ‘오죽하면 그랬을까?’ 하더라.

4. 말짱한 정신으로 자기 자식을 죽여야 했다면 그 다음에는 무슨 일을 할까(6-7)?

    자신을 죽이는 일: 성막을 허는 것, 공회 처소를 훼파하는 것, 절기와 안식일을 잊어버리게 하는 것, 왕과 제사장을 멸시하는 것(6), 자기 제단을 버리시고 자기 성소를 미워하시는 것, 원수가 여호와의 전에서 훤화하게 하는 것(7) 들이 바로 하나님께서 스스로를 죽이는 일이나 마찬가지다.

5. 성을 헐기로 결심하셨는데 줄을 띤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분명한 계획을 따라서 일을 추진하다는 뜻: 줄을 띤다는 것은 건물을 세운다는 의미도 있지만 건물이 온전한지 아닌지 따져서 부술지 말지를 결정하기 위한 수단이기도 하다(왕하 21:13).

6. 땅에 묻힌 성문, 꺾여진 빗장, 열방 가운데 흩어진 왕과 방백들, 묵시를 받지 못하는 선지자들(9), 땅에 앉아 잠잠한 장로들(10)의 공통점이 무엇인가?

    아무 소용이 없다. 답답하고 허무하고 안타깝고 속이 터질 일이다. 여기에 비하면 ‘앙꼬없는 찐빵’, ‘고무줄 없는 팬티’는 호사다.

7. 어린 자녀와 젖먹는 아이들이 성읍 길거리에 혼미한 이유가 무엇일까?

    굶어서: 집안에 먹을 것이 없으면 집을 나와서 길거리를 헤매다가 죽는다. 더 어린 갓난아기는 엄마 품에서 울다가 죽는다. 뭐라고 하면서 울었을까? 젖 달라고 울지 않았을까?

8. ‘곡식과 포도주가 어디 있느뇨?’라는 말(12)은 갓난아이가 굶어죽으면서 하는 말인데 번역을 아기말에 어울리게 해야지, 참 나! 뭐라고 번역하면 좋을까?

    ‘엄마 밥, 엄마 물’ 이러면서 죽어갈 것이다. 이런 판국인데도 왕, 선지, 장로들이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한다.

9. 이스라엘이 당한 비극(1-12)은 비극 중의 비극이다. 바다만큼이나 큰 비극을 당하면서도 더욱 절망적인 것은 어떤 점인가?

    이런 비극을 돌이킬 방법이 없다는 것, 희망이 없다는 말이다: 하나님께서 징계하시니 누가 너를 고칠소냐(13c)?

10. 선지자가 파괴된 예루살렘을 무엇으로 비유, 혹은 무엇에 비교하는가(13)?

    비교(비유)할 대상이 없다: 파괴됨이 너무나 커서 그 무엇과 비교, 비유할 수가 없을 정도라는 말이다. 파괴됨이(상처가) ‘바다같다’는 것은 크기나 흉용함을 말하는 것이다. 비슷한 예를 든다면 노아 때 세상에 임한 심판을 홍수라고 하는데 말이 홍수지 실제는 홍수가 아니다. 홍수라는 말은 너무 약한 표현이다. 온 세상을 뒤집어 엎는 대재앙인데 구체적으로 표현할 적당한 단어가 없어서 홍수라고 한다. 그 심판을 홍수라고 하는 것도 그런 의미에서 적절한 것은 아니다.

11. 이스라엘이 이렇게 파괴되도록 한 선지자들이 자신이 본 것을 말했으니(14) 거짓말을 한 것은 아니다. 그러면 무엇이 잘못되었는가?

    엉뚱한 것을 본 탓이다: 헛되고 어리석은 묵시를 보았고 거짓 경고와 미혹케 할 것만 보았다. 굳이 죄라면 잘못된 것을 보고, 배운 죄다. 누가 그런 것을 보여주었는가? 선지자가 하나님의 말씀에 바르게 서 있지 않으면 자신의 생각대로, 혹은 보고싶은 것만 보인다. 그래서 거짓된 메시지가 보이는 것이다. 결국은 이렇게 미혹된 자신의 잘못이다.

12. 대적들이 예루살렘의 처참한 광경을 보고 입을 벌려 웃으며 박장하며 비소(비웃음)하면 누가 가장 가슴이 아플까?

    하나님: 하나님께서 그렇게 되도록 하셨잖아? 예컨대 어쩔 수 없이 매를 들지만 매를 드는 아버지가 매맞는 아들보다 더 아픈 것과 같은 이치다. 이스라엘이 멸시를 당하지만 실제로는 하나님께서 멸시를 당한다. 다윗은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을 견딜 수 없었다(삼하 1:20).

13. 성도가 죄를 짓고 세상 사람들에게 멸시를 당하면 일반인들보다 훨씬 더 비참하다. 명색이 성도 아니냔 말이다. 예루살렘이 파괴된 것은 다른 성이 파괴되는 것보다 더 비참하다. 왜?

    한 때 ‘온전한 영광, 천하의 희락’이라 불리던 성이기 때문이다. 거지가 자빠지는 것이야 별로 부끄러울 것도 없다. 그러나 요조숙녀가 엎어지면 얼마나 부끄러운 일인가!

14. 여호와께서 다 이룬 ‘이미 정하시고 옛날에 명하신 말씀’이 무엇인가?

    범죄한 이스라엘에 대한 징계: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버리면 어떻게 되는지 다 미리 말씀하셨다(레 26:1-45, 신 28:15-68). 범죄한 이스라엘을 긍휼히 여기지 아니하시고 훼파하사 원수로 즐거워하게 하며 대적의 뿔로 높이 들리게 하셨다.

15. 18-19절을 요약하면 ‘쉬지 말고 밤낮없이 하나님께 마음을 드려라’고 할 수 있겠다. 하나님께 전적으로 매달린다는 것이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가? 아쉬운 점이 있다면 무엇인가?

    진작에 그러지: 예루살렘이 처참하게 무너지기 전에 그래야지 다 무너진 후에 그러면 어떡하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이라도 하나님께 매달려야 한다.

16. 여인이 자식을 잡아 먹는 일이나, 제사장과 선지자가 성소에서 죽임을 당하는 일은 비극의 극치다. 이제 어떡해? 하나님께 할 말씀이 무엇인가?

    여호와여 감찰하소서 뉘게 이같이 행하셨는지요(20)? 우리가 도대체 누구인지 살펴봐달라는 것이다. 못난 자식이지만 하나님의 백성 아닙니까?

17. 이스라엘을 이렇게 비극으로 몰아간 장본인은 바벨론이다. 바벨론에 대한 언급은 본문 어디에 있는가?

    전혀 없다: 외형상 바벨론이 예루살렘을 폐허로 만들어버렸지만 진짜(내적인) 원인은 하나님에 대한 불순종이라는 것을 인정하는 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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