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레미야애가 1장


0. 애가서 각 장은 전부 몇 절로 되어 있는가? 왜 그럴까?

    각 장은 한 편의 시이다. 1-4장은 답관체(각연의 첫 자가 히브리 알파벳의 순서대로 하는 시작법)이므로 각장이 22연으로 되어 있다. 5장도 22연이긴 하나 답관체는 아니다. 3장이 66절인 것은 각 알파벳에 3절씩 배치되었기 때문이다(시 119편은 8절씩). 3행시처럼 22행시인 셈이다.

1. 우리말 ‘슬프다’는 말하는 화자(話者)의 감정을 나타내는 말이다. 내가 슬프다는 말이다. 이것을 영어로는 How deserted lies the city! 라고 표현하는데 화자의 감정은 담겨있지 않다. 그 도시가 불쌍한 모습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차이점 때문에 한국인들은 1-2절에서 예레미야가 슬퍼하는 것처럼 느낀다. 실제로 여기서 슬퍼서 눈물을 흘리는 자는 예레미야가 아니다. 누군가?

    남편과 자식을 잃고 버림받은 가상의 여인(과부): 유다를 이런 여인에 비유하고 있는데 이 여인이 슬프고, 눈물을 흘리는 것이다. 예레미야의 슬픔은 2차적인 문제다. 복음송 중에 ‘미칠 것 같은 이 세상’이라는 가사도 이와 비슷하다. 누가 미치는가? 우리말로는 ‘내가’ 미친 느낌이 강하지만 영어는 ‘crazy world'다. 세상이 미쳤으면 미쳤지 내가 미치는 것이 아니다. 이래서 번역이 쉬운 게 아니다.

2. 예루살렘의 본래 모습과 현재 모습을 비교해보자(1-2).

    본래 모습: 거민이 많았다. 열국 중에 크던 자, 공주 되었던 자,
    현재 모습: 적막히 앉았다. 과부 같고, 조공 드리는 자. 사랑하던 자 중에 위로하는 자가 없고 친구도 다 배반하여 원수가 되었도다.

3. 과부가 되고 종이 된 여인이 밤새도록 운다. 눈물이 마르지 않는다. 왜?

    위로하는 자가 없고 친구도 다 배반하여 원수가 되었기 때문이다: 유다의 멸망을 모든 것을 다 잃어버리고 위로 받을 길이 없는 불쌍한 과부의 처지에 빗대었다.

4. 어릴 때부터 죽자고 고생만 하다가 시집이라고 외국에 팔려갔다. 견디지 못해서 도망쳐서 이리저리 떠돌다가 결국은 막다른 골목에 다다른 한 많은 인생이다. 이게 누구의 얘기인가?

    유다

5. 도로가 처량하고 성문이 황적하며 제사장들이 탄식하고 처녀들이 근심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사람이 없기 때문: 다들 잡혀가고 죽고... 처녀들이 근심하는 이유는? 아마도 잡혀가고 죽은 사람들이 대부분 남자들이었기 때문 아닐까? 4절 끝의 ‘저’는 시온이다!

6. 이렇게 사람들이 없어진 까닭은 무엇인가?

    하나님의 심판: 유다의 죄 때문에 대적이 머리가 되고 원수가 형통하게 된다.

7. 목백(=군주)은 백성을 보호할 수 있어야 하는데 무엇과 같은가?

    꼴을 찾지 못한 사슴이 쫓는 자 앞에서 힘없이 달림 같다(7): 대적에게 쫓겨 제 앞가림도 못하는 형국이다. 대적 앞에서 힘을 쓰지 못하는 방백이 무슨 소용이 있나! 이런 방백이 자기 백성들 앞에서는 큰 소리치더라! 아마도 몰래 탈출했다가 잡혀온 시드기야 왕과 그 신하들의 모습 아니겠는가!

8. 옛날의 화려함을 회상하는 것, 대적의 비웃음, 불결한 자가 됨(버려짐을 의미), 아랫것들이 비웃음(7-8), 예루살렘이 이런 수모를 당하면서도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대꾸도 못하고 탄식하며 물러갈밖에 없다! 가장 끔찍한 것은 불결한 자가 되는 것이다. 하나님께 선택받은 자라는 자부심이 깨끗이 사라지는 치욕이다.

9. 지금 당장의 치욕 때문에 나중에 어떻게 될 것을 생각할 겨를이 없다. 그러니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비명같은 기도를 올릴 뿐이다(9).

10. 이방인이 주의 성소에 들어갔다(10)는 것은 모든 것을 다 빼앗겼다는 뜻이다. 원래는 어떤 곳이었길래?

    제사장 마저도 함부로 들어갈 수 없던 곳이다. 이런 하나님의 처소가 언약의 자손도 아닌(=공회에도 들어오지 못하는) 이방인에게 유린당했으니 그 무엇이 온전하겠는가!

11. 먹을 양식이 떨어져서 굶어죽을 판이니 보물이 무슨 소용인가(11)? 예루살렘이 언제 이런 꼴을 당했는가?

    예루살렘이 점령당할 시점에 3년이나 포위당해 있었으니 양식이 완전히 떨어져서 보물이고 뭐고 간에 닥치는대로 내어주고 양식을 구하려고 애를 썼을 것이다.

12. 치욕에, 굶주림에 고통스럽기만 한데 지나가는 나그네에게 물어봐야 무슨 소용인가(12)?

    답답하면 아무라도 붙들고 무슨 소리라도 지껄여야 덜 답답하다. 하소연이라도 해야 속이 좀 풀린다. 달리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13. 유다가 당하는 고난을 잘 나타내는 말이 ‘불, 그물, 곤비’다(13). 불에 타고말 위험에 처했지만, 그물에 걸려서 옴짝달싹 못하는 신세가 되었다는 말이다. 같은 내용을 14절은 어떻게 설명하는가?

    목에 멍에를 쒸운 짐승: 내 힘으로 도저히 당할 수 없는 상황이다. 죄악이 멍에가 되어 나를 꼼짝할 수 없게 만들어버렸다. 죄를 지을 때에는 그것이 그렇게 나를 얽어맬 것이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아니, 어떤 경우에는 즐겁기까지 했을 것이다.

14. 하나님께서 군사를 몰아(=성회를 모아) 유다를 치신다면 유다의 용사들은 있으나마나다. 용사들이 아무런 힘을 쓰지 못한다면 처녀들은 어떻게 되나?

    포도주에 틀에 밟히는 포도송이처럼 되지(15): 포도를 열매 그대로 먹는 우리나라와 달리 포도주를 만드는 나라에서는 포도를 그대로 틀에 넣어 밟아 으깨어버린다.

15. 이렇게 슬피우는 이유는 무엇인가? 유다가 망했기 때문에?

    아무도 나를 위로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16, 17, 21) = 나를 소성시킬 자가 멀리 떠났기 때문이다 = 하나님께서 우리를 버리셨다.

16. 야곱의 사면에 있는 자가 모두 야곱의 대적이 된 것을 가리켜 왜 ‘예루살렘은 저희 가운데 불결한 자 같도다’라고 하는가?

    불결한 것은 불로 사르든지 깨부수든지 버리든지 하기 때문이다.

17. 온갖 불행이 닥치면 하나님을 원망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런데 어떻게 이런 상황에서 ‘여호와는 의로우시도다’라고 할 수 있을까?

    하나님은 항상 의로우시다는 것을 선지자는 알고 있다(렘 12:1). 그러니 그만큼 더 고통스럽다! 진작에 백성들이 이런 믿음을 가졌더라면 이런 고통을 당하지 않았을 것을! 백성들이 진작에 내 말을 들었더라면... 내 근심을 이해할 수 있었더라면...(18)

18. 처녀와 소년들이 사로잡혀 가는 상황에서 ‘나를 속인 나의 사랑하는 자’는 누구인가?

    동맹국들, 특히 애굽: 바벨론이 유다를 칠 때 유다는 애굽의 도움을 간절히 바랐으나 끝내 애굽 군대는 오지 않았다(렘 37:7).

19. 나의 사랑하는 자는 나를 속였고 나의 자녀들을 사로잡혀 가버렸다. 이제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가?

    하나님께 호소하는 것(20): 여호와께서 돌아보시는 것 외에는 기대할 것이 아무 것도 없다. 위로해줄 자도 없고, 원수들은 이런 내 모습을 오히려 기뻐하니... 대부분의 사람들은 인간적인 소망이 다 사라진 후에 하나님을 찾는다. 진작에 하나님을 의지하고 산다면 이런 고생을 안 해도 될 텐데...

20. 희망도 보이지 않는 고통 속에서 바라는 것이 단 한 가지 있다면?

    주께서 반포하신 날: 주의 날을 기다리는 것 뿐이다. 그 날에는 저희 모든 악을 주 앞에 나타내시고 나의 모든 죄악을 인하여 내게 행하신 것같이 저희에게 행하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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