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사기 19


1. ‘이스라엘에 왕이 없을 그 때에’라는 말의 의미를 살려서 적당하게 바꾸어 보자.

    제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던 때에(17:6, 21:25), 제 멋대로 행하던 때에: 이하에 일어나는 일은 정말 제 멋대로다. 위 아래도 없고, 윤리나 도덕도 없는 사람들 사이에서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하나님의 뜻보다 한 사람, 한 사람의 뜻이 더 강하면 인간의 세상이 아니라 짐승의 세상이 된다. 그나마 법이라도 살아있으면 다행이지만.

2. 이해하기 어려운 행동을 있는대로 찾아보자.

    레위 사람이 첩을 둔 것, 첩이 행음하고 친정으로 돌아간 것, 넉달 만에 찾아온 남편을 반갑게 맞는 것, 딸이나 아내를 비류들에게 내주는 것

3. 첩을 두는 것이 결코 성경적이지 않다. 더구나 ‘에브라임 산지 구석에 거류하는 어떤 레위 사람’은 도무지 그럴 형편이 아니라고 봐야 한다. 왜 그런 일에 적합하지 않는가?

    깊고 깊은 산골의 조그마한 교회의 임시 목사라면 우선 급한 일이 무엇이겠는가? 더구나 행음하고 돌아가버린 첩을 뭣하러 찾으러 가는가? 뒤이어 이렇게 끔찍스러운 일이 벌어진 단초는 이 레위인이 제공한 것이다. 원문에는 ‘첩이 그에게 대항하여(against him) 행음한 것’이라고 되어있다(NKJV). 그래서 ‘남편을 떠나’ 친정으로 간 것이다. 레위인이 먼저 그런 짓을 했다는 말이다(↔레 21:7). 목사가 먼저 바람을 피우자 사모님이 집을 나가버린 셈이다. 넉달 만에 찾아간 이 사람을 반갑게 맞아주는 것이 그래서 이해가 된다.

4. 행음하고 친정으로 돌아간 첩을 다시 찾아오려는 레위인의 마음은 진심일까?

    진심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당사자가 반갑게 맞아들였으니 진정성이 있었다고 할 수 있다. 서로 화해하고 다시 합치는 것이 아름다운가? 문제는 간음죄는 그리 쉽게 용서되는 일이 아니란 점이다(레 20:10). 죽을 죄를 쉽게 저지르고 쉽게 용서하는 것은 그만큼 타락한 증거다. 그것도 누구보다 거룩하게 살아야 할 레위인이!

5. 왜 이렇게 대접이 융숭하지(4-9)? 딸이 잘못한 게 있어서?

    아마 그럴 것: 삼 일 동안 대접한 것으로도 부족하다고 여겼던 모양이다. 본래 부인을 데려가기 전에 이렇게 대접하는 풍습이 있었단다. 그렇다고 해도 이렇게 강권하다시피 머물라고 하는 것은 과잉 접대인 것은 틀림없다.

6. 그렇더라도 아침에 떠나지 밤에 길을 떠나나? 그렇게 멀지 않아서?

    아마도 업무상 아닐까?(18절 참고): 원래 아침에 떠나려던 것이었으니(5) 날씨 관계는 아닌 것 같고 4박5일을 보냈으니 안식일에 해야 할 일이 있기 때문 아닐까? 그렇다고 본다면 이 레위인은 우유부단한 사람이다. 아무리 붙들더라도 뿌리칠 것은 뿌리쳐야 하는데 마지막 날에도 종일 우물거리다가 막판까지 몰린 상태에서 무리수를 둔 셈이다.

7. 첩을 둔 레위인이 이방인의 성읍에는 안 들어간다?(12) 어딘가 이상한데?

    어떤 계명은 철저하게 지키고, 어떤 것은 무시하는 셈이다: 자신에게 불리한 계명은 지키지 않고 유리한 것은 지킨다면 그것은 이미 자신이 만든 계명이지 더 이상 하나님의 계명이 아니다. 평소에도 놀면서 안식일은 하나님께서 쉬라고 하신 날이니까 쉬어야 한다? 안식일을 잘 지키는 것이 아니다.

8. 숙박할 곳을 찾아야지 ‘성읍 넓은 거리에 앉아’ 있으면 어떡해?

    숙박할 곳을 찾는다는 신호다: 그렇게 앉아 있으면 사람들이 자기 집으로 데려가서 숙박하게 해주는 것이 기본 예절이다(신 10:19). 이방인을 피해서 일부러 찾아온 동족을 이렇게 푸대접을 하다니! 기본이 안 되어 있었더라는 말이다.

9. 예루살렘이 왜 이방인의 성읍인가?

    본래 여부스인들이 살았다. 사사시대에도 여전히 여부스인의 성읍이었다. 훗날 다윗이 왕이 되고난 후에 이 성을 차지하고 예루살렘이라고 부르게 된다.

10. 에브라임 산지 구석으로 가면서 왜 여호와의 집으로 가는 중이라고 말할까(18)?

    같은 말로 보면 될 것이다: 에브라임 지파가 차지한 땅은 거의 산지다(수 17:15). 그래서 여기에 쓰이는 ‘산지’라는 말은 고유명사로 쓰인 셈이다. 그러고 보니 에브라임 산지라는 말이 본문에 세 번이나 나온다(1, 16, 18). 결국 ‘에브라임 산지’라는 말은 에브라임 지파의 땅을 가리키는 표현이다. 여호와의 집이 있던 실로도 에브라임 경내에 있었다. 여호와의 집으로 간다는 말은 자신이 레위인임을 나타내는 셈이다.

11. 여물과 양식과 포도주가 넉넉하다는 것(19) 은 크게 신세를 지지 않겠다는 뜻이다. 그러면 이 말이 어떻게 기브아 사람들에 대한 원망이 될 수도 있을까?

    장소만 제공해줘도 되는데? 혹은 숙박비를 다 내겠다는 데도 거절하더라고 고발하는 격이다.

12. 낯선 손님들을 내놓으라고 하고 손님을 보호한답시고 딸을 내놓겠다는 이런 고약한 장면이 또 어디에 나오더라?

    소돔과 고모라: 하늘에서 유황불을 내려 멸해버려야 할 도시만큼 이스라엘도 악해졌다. 남자들이 남자를 욕보이겠다(22)? 도대체 무슨 재미인지, 무슨 악취미인지?

13. 처녀 딸이나 첩은 이렇게 함부로 내줘도 돼나?

    그만큼 상황이나 시대가 험악했다는 말이다. 이들의 이러한 행동이 후일에 아무런 징계를 받지 않았다는 것은 기브아 거민들이 암묵적으로 동의하고 있다는 뜻이다. 불량배나 그 마을 사람들이나 마찬가지다. 나그네나 객을 대접하기보다는 오히려 적대시하는 지역 이기주의의 발로인가? 딸이나 첩을 이렇게 취급하는 것도 하나님의 말씀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이방 풍습일 뿐이다. 하나님을 저버린 사회에서 일어나는 현상이다.

14. 불량배들이 힘만 믿고 멋대로 설치는 사회, 법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는 사회이었다. 그래서 사사기는 해결책이 무엇이라고 하는가?

    왕이 필요했다(삿 17:6, 18:1, 19:1, 21:25): 그것이 당시 백성들의 일반적인 생각이었다는 말이다. 하나님은 스스로 왕이 되고자 했지만 백성들이 거부한 셈이다.

15. 이 불량배들이 요구한 것은 레위인 자신이었다. 레위인은 자신이 살기 위해서 사랑했던 첩을 내주었다. 함께 죽는 방법을 택해야 했을까?

    이런 일이 생겨나지 않도록 예방하는 것이 최선이겠지만 최악의 경우에는 자신이 먼저 죽을 각오를 하는 것이 옳다. 이런 식으로는 살아나더라도 온갖 비난을 다 뒤집어 쓸 수밖에 없다. 하나님의 말씀을 두렵게 여기지 않는 레위인이니 설마 그렇게까지 생각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16. 이 레위인이 일찍 떠나려고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자기가 내어준 여자의 행방이 밤새 궁금하지도 않았을까?

    포기하고 도망가려는 모양이다: 어떻게 구해낼 방법이라도 찾거나 기다려볼 마음도 없었던 모양이다. 서글픈 사랑이여!

17. 어디다 하소연할 방법도 없던 시절이니 이런 끔찍한 방법 외에는 달리 무슨 수가 없었을 것이다. 거룩한 성경에 어떻게 이런 얘기가 기록되었을까?

    하나님을 잊어버린 인간 사회가 얼마나 악해질 수 있는가를 보여준다. 결과적으로 이 사건은 훗날 가장 악독한 시대의 대명사로 언급된다(호 9:9, 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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