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사기 2 |
길갈은 과거의 온갖 아름다운 추억이 남아 있는 곳이다: 요단강을 걸어서 건넌 기념 돌비가 있고(수 4:20), 눈 앞의 적을 무시하고 할례를 행하였던 곳(수 5:9), 온갖 전투에서 승리하고 돌아와서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던 곳이다(수 10:15, 43). 그러므로 지난 날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와 약속을 상기시키기에 좋은 장소다. 그런 다음 보김으로 와서 그 약속을 저버린 이스라엘에게 책망의 말씀을 전하신 것이 아닐까? 길갈에서 일어났던 일을 회상해보면 보김에서 책망해야 할 이유가 선명하게 드러나는 셈이다. 2. 하나님은 언약에 철저하시다(1). 하나님께서 지키신 언약은 무엇이며 앞으로도 지킬 언약은 무엇인가? 지키신 언약은 열조를 애굽에서 구하여 낸 것(=열조에게 행한 맹세), 지킬 언약은 언약을 어긴 자(2)에 대한 벌로 대적을 쫓아내지 아니하는 것(3). 3. ‘울어도 못 하네’라는 찬송이 있다. 안 될 일이 운다고 될까? 제사도 드렸는데? 믿어야지: 찬송가에는 ‘믿으면 하겠네’라고 되어있다. 우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말씀대로 순종해야 되는 건데. 가룟 유다도 후회하고 가슴을 쳤으니 틀림없이 울었을 것이다. 운다고 끝이 아니다. 돌아왔어야 했다. 베드로도 얼마나 울었는가! 4. 순서상으로 보면 1-5절을 어디에 넣으면 좋을까? 10절 다음에. 5. 이스라엘 자손이 각기 땅을 차지하였고 여호와를 섬겼다는 것은 정말 좋은 말이다. 그런데 무엇이 문제인가? ‘여호수아의 사는 날 동안과 여호수아 뒤에 생존한 장로들 곧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행하신 모든 큰 일을 본 자의 사는 날 동안에’(=그 사사의 사는 날 동안에는, 18) 그랬다는 것이 문제다. 사사시대가 암흑의 시대가 된 것은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직접 체험한 세대가 그 경험과 체험을 다음 세대에 물려줬어야 하는데(신 6:2) 이 일에 실패했기 때문이다. 엘리도 실패했고(삼상 2:12), 사무엘도 이 일에는 실패했다(삼상 8:3). 6. 사사 시대가 비극적인 시대가 될 수밖에 없었던 가장 크고도 근본적인 원인이 무엇인가? 여호와를 알지 못하는 것(10): 온갖 비극의 원인은 이것이다(호 4:14). 출애굽 시에 애굽이 그렇게 두들겨 맞은 것도 하나님을 알지 못한 탓이다. 하나님의 가장 오랜, 간절한 소원은 자기 백성이 하나님을 아는 것이다(호 6:3, 6, 사 11:9). 7. 그렇게도 간절하게 하나님만 섬기라고 해도(신 4:15-28) 말을 듣지 않던 자들이 바알과 아스다롯(아세라)은 왜 그렇게 쉽게 섬길까? 누가 강요하지도 않았을텐데? 보이지 않는 하나님과 눈에 보이는 바알과 아세라, 제사를 드리는 것과 먹고 마시며 음란하게 섬기는 제의의 차이: 아이들에게 성경공부와 오락 중에서 선택하라면 어느 것을 선택할까? 정상적이라면 성경공부를 선택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럴 수 있도록 부모가 미리 가르쳤어야 한다. 진짜 아끼고 사랑하는 부모의 말보다 별 도움이 되지도 않을 친구나 선배의 말에 더 귀를 기울이는 현상과 비교하면 어떨까? 8. 예배에 빠진다고 즉시 하나님께서 벌을 주시지는 않던데? 우상을 섬긴다고 바로 징계를 하셨을까? 길게 보면 그렇다: 아마 고난을 당해도 초기에는 이유를 잘 알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다가 문득 하나님의 말씀을 기억해내고 하나님께 매달리면 하나님께서 사사를 보내주셨다. 보통 그 기간이 길면 20년이나 걸렸다. 당장에는 아무 일이 없는 것 같아도 길게 보면, 하나님을 저버리고 우상을 섬기면 필연적으로 고난을 당한다. 오늘 당장에 아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고 웃을 일이 아니다(욘1: 3). 9.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인도하여 들이신 땅에는 두 가지가 준비되어 있었다(신 11:10-12, 22-25). 하나는 하나님을 잘 섬길 때를 대비한 ‘젖과 꿀’이다. 또 다른 한 가지는 하나님을 배신할 때를 대비한 것인데 무엇일까? 사방의 강력한 대적들: 대적으로부터의 안전을 보장하겠다는 말씀(신 11:22-25)을 뒤집어 생각해보면 배신할 때는 안전을 보장할 수 없다는 말이 된다. 대적의 한 가운데서 젖과 꿀을 즐기는 것은 자칫하면 대단히 위험한 일이다. 화약을 지고 불 가운데서 노는 격이다. 하나님을 잘 섬기면 그런 위험 가운데서도 문제가 없을 것이지만 하나님을 배신하면 노략을 당할 것이라고 하셨다. 10. 어디를 가든지 재앙이 임했다. 그런데 이 재앙은 예고된 것이었단다(15)! 하나님께서 언제 어디서 이런 재앙을 말씀하셨고, 맹세하셨을까? 레 26:14-46, 신 28:15-68: 가나안 땅에 들어오기 전에 모세를 통해서 신신당부한 말씀이었다. 먹고 살만하면 이 말씀을 잊었다. 그렇게 된다고 미리 미리 경고를 그렇게 했음에도 그렇게 됐다. 11. 하나님 아닌 다른 신들을 좇는 것을 왜 ‘음란하듯’이라고 표현할까(17)? 하나님을 저버리고 우상을 섬기는 행위 자체를 음란한 짓이라고 비유할 뿐만 아니라 실제로 우상을 섬기는 제의 자체가 음란하기도 했다. 우리가 보기에 음란이지 당사자들은 거룩한 의식이라고 여겼을 것이다. 신전의 여사제와 성스러운(?) 일을 행함으로 바알과 아세라에게 흥분을 일으켜 그들로 하여금 성스러운(?) 행위를 하게 하면 그 결과로 이 땅에 비가 내리고 풍년이 온다는 식이다. 12. 사사를 세워 건져내시면 그 다음에는 같은 짓을 하지 말아야지(19)? 지난 잘못을 속히(17) 또 반복하는 것이 우리 인생인가? 지나간 역사에서 교훈을 받지 못하면 결국은 망하게 된다. 역사를 배워야 하는 중요한 이유 중의 하나다. 13. 백성들이 슬피 부르짖으면 여호와께서 뜻을 돌이키셨다. 그런데 백성들과 함께 하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사사와 함께 하셨다(18)? 그 사사의 사는 날 동안에는 여호와께서 대적의 손에서 구원하셨다? 하나님은 누군가 순종하는 사람을 통해서 역사하신다: 그 일에 적합한 사람을 부르시거나 키우셔서 일을 맡기셨다. 천지를 창조하신 이후에는 반드시 사람을 통해서 함께 일하셨다. 하나님의 부름에 응답하는 그 한 사람이 중요하다. 14. 하나님의 작정은 불변인가, 아니면 종종 뜻을 돌이키시는가? 불변: 자기 백성과 함께 하겠다고 약속하신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불변이다(삼상 15:29, 마 28:20, 히 13:8). 그러나 회개하면 뜻을 종종 돌이키신다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니다(18, 출 32:9-14). 애초에 범죄한 자기 백성들을 징계하는 것이 본 뜻이 아니기 때문에 이런 표현이 등장하는 것이다. 언약의 준수 여부에 따라 하나님께서 역사하시는 양상이 달라질 수 있다. 15. 하나님께서도 이 백성들을 시험하시려고(22-23) 가나안 열국을 쫓아내지 않으시겠다(21)? 이스라엘이 이런 잘못을 저지른 후에 하시는 말씀이지 본래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다: 사람들이 행한 일에 따라서 하나님께서 적절하게 이용하시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먼저 작정을 하신 것이 아니라 사람의 행위에 따라 하나님께서 작정을 돌이키신 것이다. 16. 1장이 무대(본문)라면 2장은 조명(해설)이다. 1장에서는 조명이 ‘쫓아내지 못함(아니함)’이라는 표현에 집중하고 있었다면 2장에서는 어느 표현에 집중적으로 조명하는 셈인가? 언약(혹은 맹세, 1, 2, 15, 20), 혹은 언약에 대한 배신(2, 10, 11, 12, 13, 17, 19, 20): 앞으로 일어날 모든 비극의 원인이 이것이기 때문이다. 17. 이스라엘이 실패한 원인은 하나님 대신 우상을 섬긴 탓이다. 본문을 근거로 한다면 도대체 이건 누구의 책임일까? 지도자들(7절의 여호수아와 장로들, 19절의 그 사사): 근본적으로는 어른들의 말을 듣지 않는 백성들이 문제이긴 하지만 이들의 사후에 그렇게 되었다는 것은 이들이 사후에도 백성들의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도록 제대로 가르쳤어야 했다는 말이기도 하다. 지도자는 내 시대에만 잘 되면 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사라진 후의 일도 생각해야 한다. 다음 세대를 준비해야 하는 것은 기업이나 교회나 가정이나 다 마찬가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