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사기 1 |
재판하는 사람(士師): ‘판관기’라고 번역하기도 했던데 요즈음 용어로는 ‘판사기’라야 하나? 평시에는 재판을 위시한 백성의 대소사를 담당하다가 전시에는 장군이었다. 2. 사사기의 시작은 여호수아가 죽은 때이다. 사사기의 끝은 언제일까? 삼상에도 사사들의 얘기가 나온다(삼상 8:1-2)는 사실을 염두에 두고 생각해보자. 왕이 세워질 때까지: 구체적으로 말하면 블레셋에게 정복당했다가 사무엘의 인도로 벗어나기 시작하면서 사울을 왕으로 세울 때까지다. 3. 여호수아는 왜 죽기 전에 후계자를 지정하지 않았을까? 지도자 대신 모세가 기록한 하나님의 말씀이 있었다. 이 말씀에 따라 살면 하나님께서 친히 이끄시는 셈이 된다. 인간을 왕으로 세우지 않고 하나님께서 친히 왕이 되시는 것이 하나님의 소원이었지만(삼상 8:7) 이 땅에서는 이루기 어려운 소원이었다. 주님께서 다시 오셔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마음대로 하지 못하는 일이 인간을 다루는 것이다. 인간을, 마음대로 주무를 수 있는 피조물이 아니라 자신의 형상을 닮은 인격체로 만드셨기 때문이다. 결국에는 자신의 뜻대로 이루시겠지만 독생자의 희생이 필요했다. 4. 여호수아가 생존할 당시에 사방에 대적이 없었다(수 11:23, 21:44, 23:1)고 했는데 아직도 싸워야 할 적들이 이렇게 많은가? 여호수아 생전의 평화는 가나안 족속을 전부 멸한 것이 아니고 일부 지역에 국한된 잠정적인 평화였던 모양이다(참고, 출 23:29-30, 신 7:22). 수 13:1-7절을 참고하면 아직도 점령해야 할 많은 땅이 남아있는 상태다. 5. 누가 하나님께 물었을까? 어떤 형태로? 대제사장이 있었으니까 우림과 둠밈으로 물었을 것이다(민 27:21). 구체적인 절차는 유감이지만 알 수 없다! 6. 선봉부대로 유다가 선택된 인간적인 이유는? 제일 강성한 지파였기 때문: 유다가 이런 복 받을 짓을 했다. 어려운 때에 가족을 살리기 위해서 최선을 다 했던 유다(창 43-44장)를 야곱이 축복했다(창 49:8-12). 유다는 벌써부터 선봉부대였다(민 2:3, 9). 용감하게 선봉에 서는 사람을 하나님도 선봉에 세우셨다. 사람이 판별해도 유다였을 것이다. 하나님의 뜻이 매번 사람의 뜻과 다른 것은 아니다. 다만, 전투는 누가 하든 이기게 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하나님 편에서 보면 굳이 강한 지파를 선택해야 할 이유도 없다(참고, 기드온의 300 용사). 7. 가장 강력한 유다지파가 시므온지파에게 도움을 요청한 이유는 뭘까(참고, 수 19:1, 9)? 시므온 지파는 가장 미약한 지파로 스스로 땅을 차지할 능력이 없었기 때문에 유다의 일부를 할당받았다: 유다는 잘 나갈 때 가장 약한 형제를 돌아보는 셈이다. 반면에 시므온 지파는 이렇게 쪼그라들었다(민 26:14, 절반으로: 광야에서 잘못함, 함께 사고쳤던 레위는 승승장구하는데...). 8. 첫 전투가 가장 어려운 전투였던 모양이다. 아도니 베섹이 그리 만만한 왕이 아니었던 증거는 무엇인가? 한 때 칠십 왕을 정복한 적도 있었으니(7): 여기서 왕이라고 번역된 말은 작은 성읍의 통치자를 가리킨다. 어쨌든 아도니 베섹이 가나안 사람과 브리스 사람들의 유력한 왕이었던 모양이다. 사로잡은 적의 신체의 일부를 자르는 일은 흔히 있었던 일이다. 손가락은 무기를 못 쓰게 하고 발가락은 도망가지 못하게 하려는 것이다. 전쟁이 사람을 황폐하게 하기는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9. 아도니 베섹(베섹의 우두머리)을 사로잡아 왜 아직 점령하지도 않은 예루살렘으로 끌고 왔는가? 아마도 예루살렘이 아도니 베섹의 왕도나 그에 버금가는 성읍이 아니었을까? 확실하지는 않은 모양이다. 여호수아 시대에 예루살렘 왕은 아도니세덱이었다(수 10:1). 관련이 있기는 있을 것 같다. 10. 유다가 예루살렘을 취했다고 했는데(8) 아래에 보면 베냐민 지파가 예루살렘을 다 취하지 못한 것으로 나온다(21). 도대체 어떻게 된 걸까? 심지어 여호수아도 예루살렘 왕을 죽인 적이 있는데...(수 10:23-26) 점령을 하고 불태우기만 했을뿐 자신들의 소유지로 만들만큼 여력이 없었던 모양이다. 완전하게 정복하지는 못했다는 말이다. 400년 쯤 후, 다윗 시대에 가서야 완전하게 정복된다. 예루살렘이 요새이긴 요새이었던 모양이다. 여부스 족이 아직 예루살렘에 거주하고 있다는 것은 사사기가 다윗 이전에 기록되었다는 좋은 증거이기도 하다. 11. 유다 자손이 제비뽑아 얻은 땅을 지형의 특성에 따라 어떻게 구분하고 있는가? 산지, 남방, 평지(9): 산지(예루살렘, 헤브론)와 평지(세펠라라고 불림)는 남북으로 나란하고 그 아래 쪽의 동서로 뻗은 부분이 남방(네게브)이다. 그러니까 10 모양이다(0은 산지, 1은 평지, __은 남방!). 12. 헤브론을 점령한 것(8-10)은 여호수아 때의 일이다(수 11:21-23, 15:13-14). 그 때에 두 번이나 헤브론을 점령했다(수 15:13-14=20?, 8-10은 세 번째?). 자랑스러운 기록이다. 여기서 그 얘기를 다시 언급하는 이유가 뭘까? 이렇게 자랑스러운 일을 후손들이 망치는 얘기가 사사기다. 13. 딸을 팔아서 성읍을 빼앗으려고 하는가(12)? 딸을 이용해서 어려운 일을 시킨 사람은 라반도 있고 사울도 있는데? 고대 왕들의 포상 방법 중의 하나다. 갈렙의 입장에서는 용감하고도 능력있는 신앙인을 사위로 고르는 방법일 수도 있다. 결국 이런 사람이 갈렙의 뒤를 잇는다. 14. 출가하면서 이렇게 땅을 탐내도 되나? 땅을 차지하려고 애를 쓰던 시절에는 넓은 땅을 차지하는 것이 미덕이다. 욕심이 좀 있어야 한단다. ‘애살’이라고 하던가? 좀 적극적인 자세를 가지는 것이 바람직하다. 물이 귀한 남방(네게브, 사막지대)으로 시집을 가지 않느냐고 우겨 결국은 샘물까지 얻었다. 15. 함께 가나안으로 가자던 모세의 권유를 거절했던 사람들이(민 10:29-30) 마음을 돌린 모양이다. 그렇다고 이 사람들의 얘기를 여기에 불쑥 언급할까? 나중에 이들이 이스라엘에 협력하여 중요한 일을 하게 되는 것에 대한 사전 준비(일종의 복선)이다. 시스라가 이 족속의 여인에게서 죽임을 당하게 된다(4:17-21). 16. 겐 사람들이 종려나무 성읍이란 좋은 땅을 두고 왜 황무지로 가서 거하나? 자신들이 살아온 생활 습관을 버리지 못하는 탓이다. 이주하더라도 비슷한 환경이어야 한다. 송충이는 솔잎을 먹어야 하기 때문이다. 유목민들에게 정착하라고 아파트를 지어주어도 결국은 일년의 대부분은 나가서 살더란다. 17. 유다가 취한 가사, 아스글론, 에그론은 다른 말로 블레셋인데? 블레셋인들도 다 쫓아낸 거야? 블레셋은 5개 도시의 연합체인데 가드, 아스돗에 대한 언급이 없다. 완전하게 쫓아내지는 못한 셈이다: 이들을 친 방향이 남쪽에서 북쪽으로 올라간다. 유다 산지를 타고 내려왔다가 해안을 따라 올라가면서 싸웠다. 18. 하나님께서 함께 하셔도 철병거는 어렵나? 기도로 감기는 고쳐도 암은 안 되나? 하나님 탓이 아니라 하나님을 철저하게 의지하지 않는 사람 탓이다. 믿고 싸우면 이기게 하실텐데(4:13-16, 수 17:16-18) 지레 겁을 먹고 싸우지 않은 탓이다. 19. 모세가 언제 헤브론을 갈렙에게 주었을까? 가데스 바네아의 정탐보고시에(수 14:9, 민 14:24): 모두가 안 된다고 할 때 오직 맏음으로 할 수 있다고 주장하여 얻은 땅이다. 벌써 40년 전의 일이다. 나이가 많이 들었음에도 변함없는 신앙의 열정을 지니고 있다. 20. 예루살렘은 유다 자손이 취하였다고 했는데(8) 베냐민 자손이 여부스 족을 쫓아내지 못했다는 건 무슨 말인가? 예루살렘이 유다와 베냐민 지파의 경계선상에 있었는데 일부를 유다 자손이 취했고 나머지 일부는 베냐민 자손이 차지해야 하는데 두 지파가 다 온전하게 차지하지 못했다. 21. 이기면 여호와께서 함께 하셨다고 하는 것 아닌가(22)? 못 이기면 함께 하신 것이 아니고(21)? 삐딱하게 보면 그렇게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어떡하랴? 믿음으로 나서면 이기고 믿지 못해서 싸우지 않으면 결국은 지는 걸! 믿는 수밖에 없다. 믿음은 객관적인 증거로 증명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22. 싸우러 간 사람들이 성읍의 입구도 모른다? 눈에 보이는 입구가 아닌 보이지 않는 입구를 가르쳐 달라는 것이다. 그러니까 비밀 통로 같은 것 말이다. 23. 가나안 사람들이 결심하고 떠나지 않겠다(27)고 하는 것은 그럴 수 있다. 문제는 이스라엘이다. 그런 허점을 내보였기 때문이다. 철저하게 진멸하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한 것 외에도 무슨 잘못이 있는가? 힘이 없을 때는 믿음이 부족해서 쫓아내지 못했지만 힘이 있을 때는 부려먹으려고 그냥 두었다. 바쁠 때는 바빠서 봉사하지 못하고 여유가 있을 때는 노느라고 못하고? 이렇게 쫓아내지 못했거나 쫓아내지 않은 백성들이 결국은 이스라엘에게 가시가 된다(2:3). 하나님께서 힘과 능력을 주실 때 깨끗하게 마무리를 했어야하는 건데! 믿음의 사람 다윗이 올 때까지 오랜 고통의 세월을 지내야 한다. 24. 이스라엘이 쫓아내지 못한 성읍 중에는 훗날 바로의 도움으로 차지하게 되는 성읍도 있다. 어느 성읍인지 왕상 9:15-17을 찾아보자. 게셀: 애굽의 바로가 딸을 솔로몬에게 시집보내면서 결혼 선물로 주었다. 말하자면 다윗의 치세하에서도 점령하지 못했다는 말이다. 25. 제일 못난 지파는 단 지파다. 오히려 쫓겨가기까지 했으니(34)! 그러면 그 다음으로 못난 지파는? 아셀: 못나도 다른 지파는 가나안 족속에게 주도적이었지만 이 두 지파는 오히려 가나안 사람들에게 주도권을 빼앗긴 채 그들 가운데 거하였다(32). ‘가나안 사람이 그들 가운데 거하였더라’는 표현과 ‘그들이 가나안 사람 가운데 거하였으니’라는 표현을 비교해보라. 아셀 지파가 쫓아내지 못한 악고, 시돈은 훗날 베니게(페니키아)로 발전하면서 이세벨이 아합에게 시집와서 이스라엘에 엄청난 피해를 입히게 된다. 26. 유다 지파나 요셉 지파 외의 다른 지파는 승리한 적이 전혀 없었을까? 있었을 것이지만 별로 의미가 없는가보다: 결말이 실패로 이어질 경우에는 처음의 승리가 별 의미가 없다. 반대로, 작은 승리라도 결국은 큰 성공으로 끝을 맺었다면 중요하게 여겨질 것이다. 실패한 이야기를 기술한 사사기에서는 초기의 작은 승리는 별 의미가 없으니까 생략해버렸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