욥기 8장


1. 빌닷이 욥에게 ‘네가 어느 때까지 이런 말을 하겠으며 어느 때까지 네 입의 말이 광풍과 같겠는가?’ 라면서 이렇게 공격적으로 나오는(2) 이유는 6-7장에 나오는 욥의 말 때문이다. 그 중에서 가장 대표적인 한 두 구절을 고른다면?

    6:21-23, 27 아닐까?

2. 요리를 하다보면 접시를 깨는 수도 있다. 접시 하나 깼다고 요리를 집어치울 수는 없다. 일을 하다보면 절차상 하자나 작은 실수가 있을 수 있다. 그런 경우에 본질은 접어두고 절차상 하자를 문제 삼아 일을 하지 못하게 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빌닷이 보았어야 할 본질은 무엇이며 절차상 하자는 무엇인가?

    본질은 욥의 고통, 절차상 하자는 욥의 과격한 발언: 욥의 고통을 이해하고 어떻게든 위로했어야 한다. 반면에 엄청난 고통을 이기지 못해서 뱉은 말이 좀 과격했다고 해서 ‘광풍’ 운운하는 것은 절차상의 작은 하자를 물고 늘어지는 꼴이다. 더구나 욥은 자신의 말꼬리를 잡지 말라고 부탁을 했었다(6:26).

3. 빌닷의 요지는 ‘빨리 잘못했다 해라’는 것이다. 그러면 어떻게 될까?

    곧 창대하게 될 것이다. 욥이 지금 바라는 것은 창대해지는 것이 아니다. 당장 먹을 것이 없어서 굶어 죽을 판인데 먼 훗날의 장미빛 얘기만 해서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우선은 함께 아파해주는 것이 더 중요한 일이다.

4. 빌닷의 말대로 ‘하나님이 어찌 심판을 굽게 하시겠으며 전능하신 이가 어찌 공의를 굽게 하시겠는가?’ 욥이 이런 사실을 모를까?

    안다, 알기 때문에 더 곤혹스럽다: 빌닷은 욥이 자기보다 수가 더 높은 상수라는 것을 모르고 하수가 상수를 꾸짖는다. 상수의 수준 높은 질문(순전한 자가 왜 고난을 당해야 하나?)을 하수가 자기 수준으로 알아듣고 자기 수준의 대답(죄를 지었으니 그렇지)을 하는 셈이다. 상담자의 상황을 모르는 것은 제쳐두고 말뜻도 못 알아듣고 조언하는 하는 용감한 사람이 옛날에도 있었다. 빌닷의 말이 틀린 것이 아니라 그게 전부가 아니란 점을 이해하지 못했다.

    설령 맞는 말이라도 해서는 안될 말이 있다. 못 생겼다고 고민하는 사람에게 사실대로 ‘못 생겼지 않느냐?’ 고 말해야 하나? 자녀를 잃어버리고 극한 슬픔에 잠겨 있는 자에게 죽은 자녀들이 죄로 죽었다고 말하는 것은 전혀 위로도 도움도 되지 않는다. 어떡하란 말인가?

5. 자녀들에 죽음에 대한 빌닷의 말(4)에 욥이 도저히 동의할 수 없는 이유가 있다면?

    만약에 있을지도 모르는 죄에 대해서까지 면밀하게 자녀들을 살피며 제사를 드렸는데(1:5)
    그들의 범죄로 인해 그렇게 죽었다면 다른 집 아이들도 다 죽었어야 하는 것 아니냐?

6. 만일 하나님을 부지런히 구하며 전능하신 이에게 빌고 청결하고 정직하면 하나님께서 정녕 돌아보시고 형통하게 하시는가(5-6)?

    맞는 말이지만 욥에게 아무런 위로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 문제다.

7. ‘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네 나중은 심히 창대하리라’는 빌닷의 이 말은 새롭게 일을 시작하는 경우에 아주 많이 쓰인다. 그럴 경우 욥과 다른 점이 무엇인가?

    빌닷이 말하는 ‘미약한 시작’은 범죄함으로 고통받는 것이며 ‘나중의 창대함’은 회개한 자의 받을 복을 가리킨다. ‘만일 하나님을 부지런히 구하며 전능하신 이에게 빈다면’(5절) 그렇게 되리라는 말이다. 그러니까 사업의 미약한 시작과 창대한 끝은 범죄한 자의 회개와 회개한 자가 받는 복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단지 자연의 법칙에 따라 시작이니까 작은 것(방금 싹이 튼 씨앗처럼)이고 열심히 노력하면 커질뿐(자라난 식물처럼)이다. 사업이 번창하라고 막무가내 식으로 인용할 구절이 아니다.

8. 빌닷이 보기에 하나님은 자판기와 같다. 어떤 점에서 그런가?

    반응이 기계적이니까! 기분이 좋으면 더 줄 수도 있는 것이고, 마음에 들지 않으면 돈을 넣어도 주기 싫을 수도 있는 것이 소위 인격이다.

9. 조상에게 물어보아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지식을 갖추기에 우리 인생이 너무 짧기 때문에: 우리는 어제부터 있었을 뿐이라는 말과 세상에 있는 날이 그림자와 같다는 말은 우리 인생이 너무 짧아 제대로 배울 틈도 없으니 조상에게 배우라는 것이다. 여기서 인생이 그림자같다는 것은 단순히 허무함을 가리키는 뜻이 아니다.

10. 나름대로 지혜를 동원하여 욥을 공박하던 빌닷이 이제는 무엇을 동원하여 자신의 논리를 전개하는가(8-12)?

    선조들의 경험: 8-10절은 선조들의 경험의 중요성을 말하는 것이라면 11-12, 14- 16절은 구체적인 내용이다.

11. 왕골이 진펄이 아니고 나겠으며 갈대가 물 없이 자라겠느냐(11)?는 말은 ‘아니 땐 굴뚝에 연기나랴?’와 같은 말이다. 이런 말에 잘못이 있는가?

    없다: 자연의 이치는 그렇다. 그런데 사람의 일은 자연의 이치를 그대로 따르지 않는 수도 있다. 사람은 자신의 의지에 따라 자연의 이치를 거스르기도 한다. 생명을 지닌 물고기는 물이 흐르는 대로 떠내려가지 않는다. 물을 거슬러 올라가기도 한다. 하물며 하나님은 더더욱 자연의 이치를 거스를 수도 있다는 점을 빌닷이 모른 탓이다. 빌닷이 오히려 욥을 괴롭게 한 것은 학문적 지식이나 지혜가 뛰어나도 하나님에 대한 지혜가 부족한 탓이다.

12. 왕골이나 갈대가 어떻게 다른 풀보다 일찌기 마르지(12)?

    수분이 있을 때는 무성하게 잘 자라지만 물이 마르면 즉시 말라버리는 것을 가리키는 말이다. 범죄한 인생(13절의 ‘하나님을 잊어버리는 자’)의 모습이 그렇다는 뜻이다.

13. 빌닷은 하나님을 잊어버린 자를 왕골과 갈대 외에 또 어디에 비기는가?

    거미의 집(=거미줄)과 뿌리 뽑힌 식물: 거미가 아무리 공을 들여 집을 지어도 작대기로 한번 휘젓으면 허사가 되고, 아무리 무성하게 자란 식물도 뿌리가 뽑히면 순식간에 마를 수밖에 없다.

14. 뿌리가 돌 가운데로 박고 들어갔으면 상당히 단단히 박혔으니 쉽게 뽑히지 않는다. 그렇더라도 뽑히면 땅이 아는 체를 하지 않는단다. 이 모습이 욥과 어떤 점이 닮았는가?

    악한 자는 잘 뽑히지 않는다. 그러나 일단 뽑히면 모두가 자신을 버릴 것이다: 잘 나가는 악한 자의 모습을 설명하는 데는 좋은 비유지만 욥에게는 어울리지 않는다. 비유는 훌륭했으나 적용대상을 잘못 짚었기 때문이다.

15. 식물이 뽑히고 나면 후에 그 자리에 다른 것이 난다는 것은 악인이 사라지고 나면 또 다른 악인이 계속 나타난다는 뜻인가?

    ‘그 자리가 식물을 모른 체한다’는 말과 같은 의미, 즉 배신을 뜻한다. 악인이 연속해서 나타난다는 의미보다는 철저하게 멸망 당한다는 뜻이다.

16. 빌닷의 이 말 ‘하나님은 순전한 사람을 버리지 아니하시고 악한 자를 붙들어 주지 아니하신즉...’은 맞는 말인가?

    크게 보면 맞다. 그러나 자세히 보면 맞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경우도 있다. 때로는 하나님의 뜻과 다른 일이 일시적으로 벌어지는 것이 이 세상이다(주기도문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를 참조). 욥의 경우만 하더라도 일시적으로 고난을 허락하거나 고난을 당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일 수도 있기 때문에 빌닷의 말이 틀린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빌닷의 주장을 요약하면 욥이 지금 당하는 고난은 욥이 저지른 죄의 결과다(인과응보). 이것이 일반 원리로는 전혀 문제가 없으나 구체적인 상황에 적용하는 데에는 문제가 있다. 말하자면 상황에 따라 적절하게 응용하지 못하고 기계적으로 적용시키다보니 잘못 적용한 셈이다. 바둑 용어를 빌리면 ‘한 칸 뜀에 악수 없다’지만 기계적으로 뛰다가는 망하는 수도 있다.

17. 하나님은 순전한 사람을 버리지 아니하시고 웃음으로 네 입에, 즐거운 소리로 네 입술에 채우실 것이다. 그러니 어떻게 하라는 말인가?

    빨리 회개해서 이런 날이 오도록 하나님께로 돌아서라. 빌닷의 말은 맞는데 욥의 경우에 맞지 않을 뿐이다. 어려움에 처한 형제에게 정죄하고 심판하는 말보다는 따뜻한 위로가 더 필요하다. 예수님도 배고픈 사람에게 우선 먹이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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