욥기 3장


1. 욥은 말로 다 할 수 없는 고통 가운데서도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았다고 하던데 생일을 저주하는 것은 자신뿐 아니라 자신을 태어나게 하신 하나님에 대한 원망이 아닌가?

    원망이기보다는 슬픔의 표현이다: 이런 슬픔도, 고통도 없다면 욥은 인간이 아니다. 이런 고통 가운데서도 하나님을 찬양했다면 욥은 사람이 아니다. 하나님에게 원망할 수도, 그럴 마음도 없으니 대신 원망하는 것이 생일이다. 군복무 할 때 나를 힘들게 하는 고참도, 장교도 그럴 수밖에 없다고 이해를 하고나니 욕은 나오는데 퍼부을 대상이 없어서 숲에서 들어가서 고함을 질렀던 일이 있다. 대타는 필요하다. 다만 그것이 하나님도 다른 동료도 아니라면 복이다.

    7일간이나 침묵하면서 지냈지만 침묵으로 해결할 수 없는 아픔은 아프다고 해야 한다. 하나님에 대한 원망이라면 벌써 입을 열었을 것이다. 이런 슬픔을 표현하는 것조차 막으면 안된다. 울고 싶을 때에는 울어야 한다. 이런 고통 가운데 있는 사람에게 어설픈 위로나 설교를 하려고 해서는 안된다(고통의 의미, 고통 후에 올 기쁨, 하나님의 뜻). 함께 아파해 주어야 하고, 아픔을 표현하도록 돕는 것이 더 중요하다.

2. ‘생일이 없었더라면’이라는 한 마디를 몇 가지 방식으로 표현하고 있는가(3-9)?

    16번: 헤아리기도 쉽지 않다. 같은 내용을 표현방식만 바꾸어 가면서 이렇게 반복해서 말할 수 있는 것은 문학적인 재능이다. 거의 모든 경우가 ‘어두움’과 관련이 있다(캄캄함, 유암, 사망, 그늘, 구름, 적막). 8절의 ‘날을 저주(詛呪)하는 자(者) 곧 큰 악어(鰐魚)를 격동(激動)시키기에 익숙한 자(者)’는 하나님을 가리킨다(41 장 참고). 이방 종교의 색채가 물씬 나는 표현이지만 하나님을 가리키는 말이다. 욥에게서 이방신이 이런 일을 한다는 사상을 찾아볼 수 없기 때문이다.

3. ∼하지 않았더라면 좋았을 것인데(3-9) 누가 그렇게 하지 않았는가?

    하나님께서(10): 자신에게 빛을 주신 분은 하나님이시다. 욥이 모르는 것은 빛을 주시고선 왜 길을 막으시냐는 말이다.

4. 생일을 저주한 다음에는 무엇이라고 원망하는가(11-12)?

    출생 후 왜 죽지 않았던가? 원망하는 것도 출생의 과정을 잘 따라가면서 한다. 9절에서도 해가 뜨는 과정을 따라가며 생일을 저주했다.

5. 태어나더라도 곧 죽었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

    지금쯤 평안하게 쉬고 있을텐데...: 욥이 죽음 이후의 세계를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지를 잘 보여준다.

6. 욥이 생각하는 죽은 자의 세계는 어떤 특징이 있는가(14-19)?

    평등한 세상: 왕과 고관(=議士), 부자와 사산아조차 자유로운 곳 아니냐? 뒤집어 생각해보면 현실의 부귀영화가 아무런 소용이 없는 곳이 죽은 자의 세계라는 것이다. 어쨓든 현재의 고난에서 벗어날 수 있는 곳이다. 그래서 욥은 지금 낙태한 아이조차 부러울 지경이다.

7. 하나님의 어떤 일이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가(20-23)?

    죽기를 바라는 자에게 죽지 않게 하시는가(21)? 놔두면 금방 죽을 것이고 그러면 고통도 끝나는데 왜 죽지 못하게 하시는가? 길을 막아놓고 어찌하여 빛을 주시는가(20, 23)? 고통이 전부가 아니기 때문이란 것을 우리는 알지만 욥은 하나님의 처사를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 그러면서도 스스로 죽으려는 의도는 없다. 죽기를 바란다는 말이 자살을 의미하는 것은 전혀 아니다.

8. 욥의 현실은?

    죽은 자가 누리는 안식이 전혀 없다. 오직 탄식, 앓는 소리, 두려움, 고난만 있다.

9. 욥의 생각에는 기쁨과 즐거움을 회복할 유일한 도피처를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죽음(22): 얼마나 고통이 극심했는지를 잘 보여준다. 그러나 하나님은 다른 길을 예비하고 계셨다.

10. 하나님에게 둘러 싸인 것(23)은 복인가? 산울로 두르심(1:10)은 보호인데?

    겉보기에는 고통이지만 결국은 복으로 바뀔 것: 여기서 하나님에게 둘러 싸인 것은 길이 아득함을 의미한다. ‘도무지 길이 보이지 않는데 빛은 왜 주시는가?’ 이것이 욥의 부르짖음이다. 그러나 우리는 언젠가 그가 부르짖을 감격을 알고 있다, ‘무지한 말로 이치를 가리우는 자가 누구니이까 내가 스스로 깨달을 수 없는 일을 말하였고 스스로 알 수 없고 헤아리기 어려운 일을 말하였나이다’(욥 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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