욥기 35장


1. 전도하다가 간혹 듣게 된 말에 ‘교회 가면 떡이 나오나 밥이 나오나?’ 말이 있다. 이런 말을 하는 사람은 하나님에 대해서 아무 것도 모르는 사람이다. 엘리후의 어느 말이 욥을 이 정도로 취급하고 있는가?

    내가 하나님보다 의로운들 유익이 무엇인가?: 2-3절을 요약하면 이런 말이 되는데 욥이 그랬다고? 극심한 고통 가운데서 한 불평과 원망(7:20, 9:22-24, 12:6)은 ‘말은 그렇게 해도 본심은 그것이 아니다’는 식으로 가볍게 보아줄 수도 있는데 오히려 더 과장한다. 심하다. 본인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듣는 사람의 주관에 따라 이해하고 비난하는 일은 너무 흔한 일이다. 사람의 말이 자신의 뜻을 정확하게 표현하는 온전한 도구가 아니란 사실을 항상 염두에 두어야 한다.

2. 하늘은 왜 쳐다보라고 하는가?

    하늘에 대고 할 일이 아무 것도 없지 않느냐? 하물며 하나님에 대해서 무슨 영향을 미칠 수 있겠느냐?

3. 하늘을 향해서 침을 뱉으면 하늘이 노여워 할까? 엘리후의 견해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7:17-21에서 욥도 그렇게 말했다. 능력으로만 본다면 하나님과 우리 관계는 그렇다. 하나님의 초월성과 내재성 중에 절대적 초월성만 강조하는 것은 올바르지 않다.

4. 엘리후는 ‘백번 양보해서 너의 말대로 네가 의롭다고 하자. 그게 하나님과 무슨 상관이냐?’고 공박했다. 욥의 의로운 생활이 하나님에게 아무런 상관이 없었는가?

    욥의 고난이 시작된 것은 욥의 의로운 생활에 대한 하나님의 자랑 때문이었다. 욥의 의로움이 하나님을 몹씨 기쁘게 했다. 상관이 있다. 초월적인 하나님이시면서도 동시에 인간 세상에 내재하셔서 인간과 인격적이고 윤리적인 교제를 나누는 하나님이시다.

5. 하나님과 인간의 능력에 관한한 엘리후의 말(6-8)이 맞다. 토기장이와 토기의 관계라고 할 수 있다. 자기 마음대로 토기를 빚는 하나님이란 말이다. 그런데 하나님은 스스로 그런 토기장이가 아니란다. 그럼 어떤 토기장이인가? 엘리후가 놓친 점이 무엇인가?

    토기를 사랑하는 토기장이: 롬 9장에서 바울이 토기장이 이야기를 하는 것은 결국에는 ‘절대 주권을 가진 하나님께서 기분내키는대로 함부로 하는 것이 아니라 권리를 잠시 접어두고 우리를 끔찍하게 사랑하셨다’는 것을 말하기 위함이다. 선생님께서 아이들에게 잘못하면 매를 댈 수 있다고 선언하고도 매를 들지 않고 사랑으로 돌보는 것과 같다. 엘리후는 하나님의 이런 관심 때문에 하나님과 우리 사이가 땅과 하늘처럼 그렇게 먼 것이 아니란 점을 놓쳤다.

6. 도움을 부르짖으나 응답이 없는 이유가 무엇인가?

    하나님께 부르짖지 않기 때문(10-11): 은근히 하나님께 기도하지 않았다고 욥을 비난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어려움에 처해야 기도한다는 언급도 욥의 삶과는 달라 보인다. 이런 고통을 당하기 전에 욥은 기도하는 사람이었다. 하나님의 계시를 받아서 말한다는 엘리후의 말이 의심스럽다.

7. 엘리후는 하나님을 어떤 분이라고 하는지 두 가지로 정리해보자(10-11).

    밤중에 노래하게 하시는 하나님: 바울과 실라가 매맞고 옥에 갇혀서도 기도하며 찬송하던 장면을 연상케 한다. 앞뒤를 분간할 수 없는 극심한 고통 속에서도 노래하게 하신다.

    짐승이나 새와는 다르게 인간을 창조하신 창조주: 짐승을 훈련시키는 방법과 사람을 가르치는 방법이 다르다는 뜻을 포함하는 말이다. 짐승은 기계처럼 먹는 것과 매를 적절하게 활용하면 훈련된다. 사람은? 권선징악이나 상선벌악이라는 기계적인 방법만이 아니라 잘 하고 있는데도 채찍을 가해서 더 높은 단계로 이끌기도 한다.

8. 하나님은 교만한 자의 헛된 부르짖음을 돌아보지 않으시는데(12-13) 하물며 너를 돌아보시겠느냐(14)? 말하자면 교만한 자의 최고수가 욥이라는 말이다. 도대체 욥이 무슨 잘못을 저질렀기에 그러는가?

    욥의 무죄 확신: 나는 그를 기다릴 뿐이라는 말은 자신의 무죄를 증명해주실 분은 하나님 뿐이시라는 확신을 의미하는 바 엘리후가 보기에는 욥의 이런 태도가 가장 교만한 것으로 보인다.

9. 15-16절을 껄렁한 아이들이 힘없는 아이를 만만하게 보고 하는 말로 바꾸어 보자.

    봐줬더니 기어 올라? 욥을 너무 얕잡아 본다. 처음에는 예의바른 젊은이답게 등장하더니 욥보다 더 교만해보인다. 진리를 안다고 자부심을 가진 자들 중에는 예의바르지 못한 분들이 적지 않다. 설교시간에 반말이나 욕설을 함부로 하는 분들도 그런 경우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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