욥기 26장


1. 친구들 중에 소발은 할 말이 없고, 빌닷도 짧게 끝냈다(25장). 욥의 대답은?

    정말 길다, 혼자서 할 말을 다 해버렸다. 26장은 짧으나 그게 끝이 아니다. 31장까지 계속 이어진다.

2. 빌닷의 말이 욥에게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그래서 조롱하는 말투로 대답을 시작하는데(1-4) 이것을 두 종류로 요약하면 하나는 ‘참 잘 하였구나’다. 또 다른 한 가지는 무엇이라고 요약하면 좋을까?

    (그런 놀라운 지식을) 어디서 배웠노? 4절은 ‘누구를 위하여 그렇게 놀라운 말을 할 수 있느냐? 어떤 신이 네게 그런 영감을 주었느냐?’ 이런 느낌을 담은 말이다. 네 실력으로는 도저히 할 수 없는 놀라운 말이었다는 식의 비꼬는 말이다.

3. 논쟁하는 상대방에게 한 방 먹이려면 우선 자기는 수준이 훨씬 떨어진다고 먼저 고백을 한 다음 ‘이런 나보다 나은 게 뭐냐?’고 공박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욥은 자신이 어떤 존재라고 은근슬쩍 말하는가?

    힘도, 기력도, 지혜도 없는 자: 그런 다음에 빌닷의 말보다는 훨씬 더 차원이 높은 내용으로 반격해 버렸다. 빌닷이 얼마나 창피했을까! 일류고등학교 출신이 실업계 출신 동급생을 괄세했다. ‘나는 시원찮은 학교를 나와서 갈 곳이 없어서 여기 왔는데 넌 그 좋은 학교 나와서 왜 여기 왔냐?’ 이 말 한 마디에 다시는 출신학교에 대해서 입을 떼지 않았다.

4. 잘 했다고 비꼬았다면 그 다음에는 어떤 내용이 이어지는 것이 자연스러운가?

    내가 얼마나 잘 하는지 볼래? 자신이 더 탁월함을 드러낸다. 쪼잔스럽게 그렇게 싸워야겠냐마는 워낙 싸움의 상대가 되지 않는다. 그냥 KO시켜 버린다.

5. 빌닷이 하나님의 능력과 통치에 대해서 나름대로 언급한 것에 대한 욥의 답변을 한 마디로 한다면?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나도 안다. 내가 한번 설명해볼까?

6. 하나님의 위대하심에 대한 빌닷의 설명(25:2-3)보다 욥의 설명이 훨씬 수가 높다는 것을 간단하게 설명해보자.

    빌닷은 하늘만 언급했다. 반면에 욥은 음부, 하늘, 땅, 물, 빛과 어두움, 영계(음령, 라합, 날랜 뱀)를 넘나들며 종횡무진으로 뛰어다니는 셈이다.

7. 자살하는 사람들의 잘못된 생각은 죽으면 끝이라는 오해다. 실수를 되돌릴 기회가 남아있는 이 세상을 떠났는데 다다르고 보니 실수를 되돌릴 기회가 전혀없는 하나님의 심판대 앞인 것을 알면 얼마나 놀라게 될까? 극심한 고통 가운데서도 욥이 자살에 대해서는 생각도 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음령(죽은 자들의 영)들이 머물러 있는 음부도 하나님의 손 안에 있음을 알기 때문이다(5-6). ‘큰 물과 수족(바다에 거하는 것들)의 밑’ 이란 음부를 상징하는 표현이다. 멸망의 웅덩이도 마찬가지!

8. 욥이 아는 하나님은 하늘을 허공에 펴시며 땅을 공간에 다시는 분이시다. 한 마디로?

    천지를 창조하신 분: 땅이 공간에 떠 있다는 생각은 쉽게 가능한 생각이 아니다. 적어도 만유인력을 이해하기 전에는 이런 말을 하면 지구의 아래 쪽에 있는 사람들은 우주로 떨어져 나가는 줄로 알았다. 지구가 둥글다는 생각을 한 것이 15세기에도 상식이 아니었다는 점을 생각해보라. 욥의 이 생각이 얼마나 놀라운가!

    참고: 2세기초 그리스 천문학자 클라우디오스 프톨레마이오스가 집필한, 천동설적 우주론인 ‘천문학 대집성(알마게스트, Almagest)은 르네상스 시대까지 서양의 우주관을 지배했다. 이 때까지만 해도 지구는 견고한 지지대에 의해 떠받혀져 있다고 생각해왔다. 이 이론이 공식적으로 깨진 것을 1543년 폴란드의 천문학자 니콜라우스 코페르니쿠스가 임종 당시 그의 친구이자 신학자인 안드레아 오시안더의 의해 주저(主著)된 ’천구의 회전에 관하여‘라는 저서를 발표하면서부터다.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적 우주관은 지금의 우주관과 다소 차이가 있지만 케플러의 제3법칙(각 행성은 태양을 초점으로 하는 타원궤도로 움직인다 등), 뉴턴의 역학에 결정적 영향을 줬으며 또한 두 법칙의 등장으로 근대과학의 기초가 놓이게 됐다. 그리고 처음으로 공전의 증거가 발견된 것은 1727년에 이르러서였다.

9. 하늘에 찢어지지 않는 물주머니가 있고, 수면에도 경계가 있고, 빛과 어두움도 경계가 있다. 바다를 흉용케 하신다. 이 표현들을 한 마디로 요약하면 어떤 하나님이신가?

    자연법칙의 주관자: 자연세계도 놀라운 법칙을 따라서 움직이고 있다. 바닷물이 함부로 육지를 침범하지 않는다. 자연의 균형도 함부로 깨어지지 않는다. 인위적으로 변경시키면 원래대로 돌아가려는 현상으로 말미암아 엄청난 재앙이 닥친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만들어 두셨다.

10. 떨며 놀라는 하늘기둥이 무얼 가리킬까?

    아마도 높은 산.

11. 바다를 흉용케 하시는 하나님께서 왜 라합을 치시는가?

    본문의 라합과 여호수아의 라합(발음은 라캅에 가깝다)은 우리말이나 영어로도 같은 철자지만, 원문상으로는 비슷하지만 다른 단어다. 본문의 라합은 신화에 나오는 바다 괴물이다(욥 9:13, 26:12).

12. 빌닷의 비해서 욥의 지혜가 훨씬 탁월한 점을 하나 더 든다면?

    자신이 알고 있는 하나님의 위대함도 기껏해야 시작점(빙산의 일각), 혹은 세미한 소리일 뿐이라는 것(14): 가시광선, 가청주파수... 이런 말들은 빛이나 소리 중에서 사람이 지각할 수 있는 극히 적은 일부분을 가리키는 말이다. 빛을 창조하신 분과 그 빛의 지극히 작은 일부분만 볼 수 있는 우리와는 애초에 비교대상도 아니다. 겨우 세미한 소리나 듣는 우리가 우뢰 소리를 어떻게 알겠는가! 욥의 하나님의 대한 이해가 정말 놀랍다. 그래도 나중에 ‘무슨 말인지도 모른 채 떠들었다’고 회개하는 정도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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