욥기 25장 |
소발이 말이 없다. 빌닷의 대답이 너무 짧다: 세 차례 변론하는 동안 순서는 엘리바스, 소발, 빌닷, 욥의 차례이었다. 그런데 소발이 더 이사아 말이 없고, 욥의 대답이 길게 이어졌지만 빌닷이 같은 말을 간단하게 되풀이 할 뿐이다. 2. 빌닷의 말이 맞는가? 거듭 얘기지만 말 자체는 맞다. 그러나 이 말이 욥의 말에 대한 대답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엉뚱하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지엄하심이나 인간의 무가치함을 욥을 부정하는 것이 아닌데도 마치 욥이 그것을 부정하는 것처럼 계속 주장하기 때문이다. 내용도 엘리바스보다 더 나을 것도 없으면서... 할 말이 없으면 소발처럼 가만히 있든지... 3. 빌닷의 표현을 빌리면 하나님은 얼마나 위대하신 분인가? 온 세상의 주관자라고 정리하는 것이 좋겠다: ‘지극히 높은 곳에서 화평을 베푸시느니라’란 영계를 평화롭게 다스리는 분으로 이해할 수도 있다. 그런 하나님 앞에 인간 세상의 어느 누가 감히 당당하게 설 수 있느냐는 의미인 듯하다. 4. 하나님에게도 군대가 있나? 모든 군대의 대장이란 뜻에서 부르는 하나님의 이름은? 만군의 여호와(시 89:8): 만군의 하나님이란 표현까지 합치면 270여 회나 쓰였다. 만군이란 군대란 뜻과 만상이라는 뜻을 다 포함한다. 단순히 군대의 지휘관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만물의 창조주요 주관자란 뜻으로 쓰였다. 5. 하나님 앞에 사람은 벌레, 구더기인가? 능력 면에서는 그렇다: 문제는 그런 인간을 하나님께서 능력만으로 평가하지 않으신다는 점이다. 그렇게 연약한 인간을 사랑의 대상으로 삼으셨기 때문에, 하나님의 관심의 대상이기 때문에 함부로 인간을 무가치하게 여겨서는 안된다(시 8:4-8). 적어도 하나님의 아들을 희생시킬 만큼 소중한 존재이기도 하다. 능력만 따진다면 갓난아기가 무슨 가치가 있을까마는 부모에게 갓난아기는 단순하게 능력만 따지는 존재가 아니다. 6. 교회에서 무슨 일을 할 것인가에 대해서 이런 저런 논의를 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한 분이 ‘이런 게 다 무슨 소용이 있느냐 예수님께서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고 하셨다’고 나서는 바람에 분위기가 이상해져 버렸다.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것이 대전제라면 그 날의 논의는 그것을 어떻게 실천하느냐는 구체적인 세목에 해당하는 셈이다. 모든 논의를 ‘무’로 돌려버리는 논리적 오류인 셈이다. 빌닷이 어떻게 이 사람과 비슷한가? 이해하지 못할 일이 벌어진 데 대해서 욥이 이런 저런 말로 아픔을 토로하였는데 그 모든 말을 한 마디로 식혀 버렸기 때문이다. 이런 식이라면 그렇게 떠들 필요가 없다. 구더기 주제에 무슨 할 말이 그렇게 많으냐? 모처럼 성도들이 야외에 나갔는데 ‘기도나 하고, 이 돈 아껴서 선교나 하지’ 이러면 안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