욥기 18장


[ 빌닷의 두 번째 변론 ]

1. 빌닷이 책망하는 대상은 ‘너희’다. 자기만 빼고 다른 친구들까지 도매금으로 비난하는 것일까?

    내용을 보면 너희란 말 속에 다른 세 친구는 포함되어 있지 않다: 그러니까 욥을 악한 자들의 대표로 보고 말하는 셈이다. 욥의 말로만 말하는 것이 아니라 욥을 포함한 모든 악인들의 말로에 대해서 일반론을 제기하는 것이다.

2. ‘말을 찾겠느냐’는 것(2절)은 ‘말에 올무를 놓는다’거나 ‘말을 사냥한다’는 뜻이다. 우리 식으로 말하면 어떤 표현이 적당할까?

    말꼬리나 잡느냐는 비난: 욥의 대답을 진정어린 마음으로 듣지 않았다. 그래서 말을 그만하고(대부분의 성경이 이렇게 번역하였음) 우리의 충고를 듣고 좀 깨달으라고 빌닷이 나섰는데, 충고가 좀 시원찮다.

3. 욥이 언제 친구들을 부정한 짐승으로 취급했던가?

    욥이 그렇게 했다기보다는 빌닷이 그렇게 느꼈을 것: 설령 욥이 좀 심한 말을 했다고 하더라도 고난 가운데 있는 자가 그럴 수도 있다고 인정해 줄 수도 있을텐데 그걸 따지자니 이런 말을 하게 되는 것이다.

4. 억울함을 견디지 못해서 스스로 목숨을 끊거나 자해하는 경우가 있기는 하다. 그러면 세상이 좀 달라지는가? 빌닷의 견해는?

    한국 사회에서는 좀 달라지는 모양인데 서양에서는 소용이 없는 것 같더라: 빌닷의 견해는 그런다고 땅이 버려지고 바위가 옮겨지나? 자연법칙에 전혀 영향을 주지 못하는 것처럼 욥의 많은 그 말이 아무런 소용이 없는 짓이라는 것이다. 말은 맞는데 욥에게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운다고 죽은 사람이 살아나겠니?’ 라고 위로하는 것보다는 차라리 실컷 울라고 등을 두드려주는 것이 낫다.

5. 빌닷은 악인의 말로에 대해서 길게 서술하고 있는데(5-19) 악인의 말로를 한 마디로 요약한다면?

    사라진다: 악인은 빛처럼 환하고, 불꽃처럼 찬란해도 결국은 꺼지고 말 것이며(5-6), 힘이 있다해도 쇠하여져서 스스로 함정에 빠지고(7-10), 흔적도 없이 사라질 것이다(14-19).

6. 악인에게 힘이 있는 것이 왜 비극인가?

    그 힘 때문에 결국은 올무에 얽히기 때문(8-9): 차라리 아무 것도 없었더라면 더 큰 어려움을 겪지 않게 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재산이나 권력이 도리어 불행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7. 7-9절은 악인을 무엇에 비유한 셈인가?

    덫에 치이는 짐승: 그물은 새나 짐승을 잡을 때 쓰는 것, 얽는 줄은 함정을 파고 그 위를 덮는 데 쓰는 그물, 창애는 덫, 동일 줄은 올가미을 가리킨다. 악인이 가는 길에는 온갖 그물과 함정과 덫이 숨겨져 있다. 사냥당한 짐승이 죽임을 당하는 것처럼 악인도 그렇게 사라질 것이다. 욥이 회개하지 않으면 그렇게 된단다. 내 참!

8. 악인에게는 사방에서 그를 놀라게 하는 것이 쫓아 온단다(11). 이것을 우리말로는 뭐라고 하는가?

    도둑이 제발 저린다? 시골 한적한 마을에 아주 튼튼한 집을 짓길래 마을 사람들이 왜 저럴까 의아하게 생각을 했다. 어떻게 보면 탈출이 불가능한 감옥처럼 보였는데 나중에 보니 주인의 업이 도둑이었다.

9. 악인을 징벌하는 것이 무엇인가(11-14)?

    무서움(=죽음), 기근, 재앙, 사망의 장자(=죽음을 초래하는 질병), 무서움의 왕(=죽음): 사망의 장자란 말은 질명을 가리킬 수도 있다.

10. 악인이 징계를 받아 사라지면 무엇이 남는가?

    아무 것도 남지 않는다. 흔적도 없다: ‘그에게 속한 않은 자’는 사람이 아니라 들짐승을 의미한다. 유황이 그 처소에 뿌려진다는 것은 사람이 살지 못하도록 황폐화된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뿌리가 마르고 가지가 찍힌다는 것은(16) 멸족을 당한다는 뜻이다. 욥의 가정이 완전히 말살된다는 말이다. 후손이 없다는 것은 치욕 중의 치욕이었다. 한 마디로 광명에서 흑암으로(18)!

11. 빌닷이 처음 변론한 8장에는 있었지만 18장에서 사라진 내용이 무엇인지 찾아보자?

    소망이나 회복에 대한 내용(8:5-7과 8:20-21): 하나님께서 욥을 심판하신 것을 보면 모든 사람이 놀랄 수밖에 없다. 회복에 대한 언급은 전혀없이 거의 저주 수순이다. 빌닷이 욥에 대답에 화가 몹시 난 모양이다.

12. 악인의 말로에 대한 빌닷의 말은 옳다. 그럼에도 이것은 친구를 향한 말처럼 들리지 않는다. 무엇이 문제인가?

    욥에 대한 이해가 잘못되었다: 욥은 그런 악인이 아니었다. 일반적으로 옳은 얘기라도 구체적인 상황에 기계적으로 대입할 수 없는 경우가 많다.

13. 빌닷이 보기에 욥은 정말 답답한 사람이다. 친구들의 권면을 새겨듣지 않고 꾸역꾸역 대꾸하는(16-17장) 이 답답한 친구에게 멋진 해결책을 제시하는가?

    빌닷이 다른 친구들보다 나아보이지 않는다. 아예 욥을 하나님을 모르는 자로 치부한다(21). 오히려 가장 어리석은 자 같아 보인다. 차라리 가만히 있는 게 본전이라도 건질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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