욥기 16장


1. 욥이 많이 들은 이런 말이란?

    친구들이 하는 뻔한 말: 즉 악인이 하나님의 징계를 피할 수 없다는 말.

2. 번뇌케 하는 안위자(위로자)란 위로한다고 하는 말이 오히려 더 아프케 하였음을 뜻한다. ‘똑똑한 바보’란 표현처럼 일종의 역설이다. 친구들이 의도한 바는 아니겠지만 결과적으로 그렇게 되고 말았다. 무엇이 문제이었을까?

    사랑없는 위로: ‘사랑으로 행치 아니한 모든 것이 죄니라’ 이런 구절이 있을까? 가장 비슷한 구절이 고전 16:14 이다. 교회가 양적으로 자라나서 권력을 행사하게 되면 반드시 타락의 길을 걸었다. 힘이 생기고 돈이 생기면 사랑을 잃어버리는 것이 주원인 같다. 사랑으로 행하라.

3. 진지하게 고민하지도 않고 위로한답시고 함부로 말을 내뱉으면 오히려 더 번뇌케 하는 법이다. 친구들이 하는 말은 한 마디로 ‘뻔한 말’이라는 것이다. 그것을 의미하는 욥의 표현은 무엇인가(1-5)?

    내가 많이 들은 말(2), 끝없는 허망한 말(3), 나도 할 수 있는 말(4), 입술의 위로(=입에 발린 말, 5): 처음처럼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가만히 있는 것과 입에 발린 뻔한 말이라도 하는 것 중에 어느 것이 위로가 될까? 사람들 사이에 오가는 수 많은 말 중에는 이렇게 뻔한 말이 얼마나 많은가! 이런 말이라도 해야 한다. 문제는 아무리 뻔한 말이라도 재난을 당한 사람을 배려하는 마음보다는 죄를 지적하면서 회개해야 이런 재난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말은 위로가 되지 않는다.

4. ‘허망한’이란 히브리 말로 ‘바람’을 뜻한다. 위로한다고 뱉어내는 친구들의 말이 바람처럼 무의미하다는 뜻이다. 무엇에 대한 반격인가?

    욥의 지혜를 동풍이라고 한 것(15:2): 동풍이라고 비난한 것에 비하면 좀 약하긴 하지만 전혀 도움도 되지 않고 의미도 없다는 뜻이다.

5. 만약 욥이 친구들의 입장이라면 어떻게 하겠다고 하는가(5)?

    격려, 위로: 나도 너희들처럼 할 수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격려하고 위로할 것이다. 친구라면 그래야 하는 것 아니냐는 것이다.

6. 상담자가 아무런 해답을 주지 않고 그냥 듣기만 해도 문제가 해결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그러나 욥의 친구들은 적극적으로 해답을 말해 주어도 욥의 근심이 풀리지 않았다. 왜 그런가?

    친구들의 엉뚱한 해결책 때문이다. 차라리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더라면 나았을지도 모른다.

7. 나를 곤고케 하신 주께서 패괴케(=죽이신) 하신 나의 무리란?

    욥의 가족:

8. 욥은 자신의 죄 때문에 이런 고난을 당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욥이 죄를 지은 증거를 대라면 친구들이 어떤 증거를 댔을까(8)?

    시들은 욥의 모습, 파리한 모양: 죄를 지은 증거가 무엇이냐고 항변하면 친구들은 ‘네가 이런 고난을 당하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는 것 아니냐?’ 고 말한다. 욥에게 임한 이런 재난이 결국은 자신의 죄를 증거하는 결과가 되고 말았다는 푸념이다. 욥이 인정하는 것은 아니지만...

9. 욥의 고난은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다. 그러나 욥은 하나님의 의도를 알지 못한다. 극심한 고난 속에서도 결국은 하나님의 의도가 성공할 것이란 근거를 본문에서 찾아보자.

    친구들을 향해서 원망도 해보고 비난도 해보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으면 욥의 시선은 또 다시 하나님을 향한다(7-16, 19-21). 나를 대적하시는 하나님에게 원망하는 듯 하다가도 여전히 하나님을 의지하는 욥이다.

    또 한 가지는 아무리 극심한 재난 가운데서도 자신의 무죄성을 철저하게 주장하는 것이다(17). 실제로 욥은 그런 삶을 살았다. 올바른 삶을 살지 못하는 사람들은 주변에서 던지는 한 두 마디에 멀쩡한 가정이 깨어지기도 하지만 건강한 가족은 웬만한 모략과 중상에도 끄덕하지 않는다.

10. 하나님께서 언제 뾰족한 눈으로 욥을 보셨으며 언제 무리들이 욥을 향해서 입을 벌렸을까?

    욥이 고난을 당한 때: 욥의 고난은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다. 하나님께서 그러시니 사람들이 자신을 대적하는 것이다. 사람들의 대적도 하나님으로 말미암은 것이다. 하나님에 대한 원망인가 싶은데...

11. 하나님께서 욥을 어떻게 다루고 계신다고 생각하는가(12-15)?

    전쟁 통에 적을 공격하듯이: 짐승을 잡는 것처럼, 과녁처럼 다루신다. 자신의 당한 고난의 원인을 알지는 못해도 이 모든 것을 주관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시라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11). 그런 고난을 당하면서도 하나님에게 매달리는 욥이다(17).

12. 땅이 피를 가리우는 것은 증거인멸이나 마찬가지다. 욥이 땅을 향하여 왜 증거를 없애지 말라고 하는 걸까(18)?

    훗날 변백하는 날에 증거가 있어야지: 친구들이 증인이 되면 될텐데도 이렇게 말하는 것은 이런 놈들이 증인으로도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부르짖음이 쉴 곳이 없다는 것은 현장보존에 해당하는 것 아닐까? 그만큼 원통함을 풀 날이 있을 것을 기대하는 셈이다.

13. 하나님께서 자기를 원수처럼 공격한다고 하더니 이제는 증인이시요, 보인(보증인)이시라(19)고 말할 수 있을까?

    두들겨 패다가도 서로 끌어안고 우는 경우나, 밉다고 앙탈을 부리다가 품에 안겨우는 아이처럼 기본적으로 하나님을 적으로 인식하고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 장면에서 욥이 하나님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지 분명하지는 않지만 우리가 보기에는 성부 하나님의 일과 성자 예수님의 일을 말하는 것처럼 보인다. 이런 구별이 불가능한 욥이 보기에는 둘 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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