욥기 14장


1. 6절까지는 13:20절부터 시작된 기도의 계속이다. 자신을 날리는 낙엽, 마른 검불(13:25), 썩은 물건, 좀먹은 의복(13:28)에 비유했던 욥이 여기서는 자신을 어디에다 비유하는가?

    시드는 꽃, 그림자: 인생은 그렇게 짧고, 괴롭다.

2. 이렇게 허무한 인생을 무엇하시려고 주목하시나이까(3)?

    실제로는 그렇게 무가치한 인생이 아니기 때문: 욥이 보기에는 그러했을지라도 하나님께서 보시기에는 그렇게 무의미한 인생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관심을 가지고 계시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인생은 중대한 의미가 있다. ‘각하의 관심사항’이라는 말이 얼마나 위력적인 말인지 아는 사람은 안다. 불가능한 일을 가능한 일로 바꿀만큼 위력적인 말이다. 하물며 하나님의 관심이 쏠린 인생이라면?

3.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성령으로 난 것은 영이니(요 3:6) 라는 말씀과 통하는 욥의 말은?

    누가 깨끗한 것을 더러운 것 가운데서 낼 수 있으리이까 하나도 없나이다(4): ‘더러운 것 가운데서 어떻게 깨끗한 것이 나오겠습니까?’라고 번역하면 더 쉬울텐데. 원죄 가운데 있는 인생은 한 사람도 의로울 수 없다.

4. 욥은 인간의 연약함(1-2, 4)과 하나님의 절대성(5)을 잘 인식하고 있다. 그런 하나님께 바라는 간절한 소원이 무엇인가?

    어쩔 수 없는 인생이기는 하지만 좀 쉬게 해주세요(6).

5. 품꾼이 그 날을 마치면 어떻게 될까?

    그 날의 품삯을 받고 편히 쉰다. 비록 일시적일지 몰라도 쉴 수 있는 여유가 있다. 그 정도라도 쉴 수 있게 놓아 주십사고 간청하는 셈이다.

6. 인생을 나무와 비교하면?

    영원과 유한: 나무는 찍힐지라도, 줄기가 죽을지라도 다시 움이 나서 자라는데 우리 인생은 한 번 죽으면 다시 살아나지 못한다. 사람이 죽으면 소멸된다는 표현도 내세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인생이 죽을 수밖에 없는 연약하고 가련한 존재라는 점에 강조점이 있다.

7. 어떤 강이 인생을 닮았는가?

    물이 말라버린 강(=건천):

8. 하늘이 언제 없어지는가?

    절대로 없어지지 않는다. 그러니까 영원히 눈을 뜨지 못한다는 말이다. 우리 식으로 말하면 ‘해가 서쪽에 뜰 때까지’라는 말이다.

9. 고통스런 현실에서 벗어날 수만 있다면 어디에라도 숨고 싶은가?

    음부: 신약에서는 음부를 지옥, 혹은 무저갱이라는 뜻으로 이해하지만 구약시대의 히브리인들은 죽은 사람들이 일시 머무는 곳(죽은 자의 대기소)으로 생각했다. 욥의 이 생각이 스스로 목숨을 끊음으로 이 세상의 고통을 벗어나고자 하는 사람들의 어리석음과 어떻게 다를까? 욥은 일시적으로라도(13절의 ‘기한을 정하시고’) 이 고통을 벗어나 숨고 싶다. 하나님께서 다시 자신을 찾는 날까지! 하나님의 영역을 벗어나려는 의도는 아니다. 많은 사람들이 죽으면 하나님과도 상관이 없는 것으로 착각하는 모양이다. 죽음으로 도망을 쳤는데 깨어보니 심판하시는 하나님 앞이라면 얼마나 놀랄까?

10. 자신의 인생을 왜 ‘싸우는 모든 날’이라고 표현했을까(14)?

    자신의 인생을 전쟁터에 나간 병사나 병마와 싸우는 환자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놓여나는 것’은 ‘제대’나 ‘퇴원’을 의미한다. 죽어서 이 고난을 벗어나기보다는(14a = 사람이 죽으면 그만이지만) 참고 인내하며 그 날을 기다리겠다는 말이다. 자신에게 닥친 고난에서 언젠가 벗어날 것을 기대하는 말이다.

11. 15절은 자신이 고난에서 벗어나는 날을 상상하며 하는 말이다. 주께서 부르시면 즐거운 마음으로 대답할 것이며 주께서 자신을 아끼실 것이다. 그렇지만 현실은 어떠한가?

    나의 걸음을 세고 계신다(16a): 그러나 그 때에는 나의 죄를 살피지 아니하실 것이며 내 허물을 주머니에 봉하시고 내 죄악을 싸매실 것이다(17).

12. 소망을 저버리지는 않지만 현실은 너무나 힘들고 아프다. 소망이 무엇처럼 사라지는가?

    무너지는 산, 옮겨지는 바위, 물에 닳는 돌, 홍수에 실려가버린 흙: 산이나 바위는 영원히 변치않는 것을 의미하는데 이런 것들조차 흩어져버리는 판에 연약한 인생 하나야 말해 무엇하는가?

13. 아들이 존귀하든지 비천하든지 아버지가 그것을 깨닫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하나님께서 소망을 끊으셨기 때문, 즉 죽었기 때문이다. 죽은 사람은 그 후손이 어떻게 되든 알지 못한다는 뜻이다. 자기 자신의 아픔만 있을 뿐(22)!

처음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