욥기 10장 |
대상이 다르다: 9장에서는 친구들이 대상이었지만 10장에서는 하나님을 향해서 욥이 말을 한다. 친구라는 것들이 도무지 도움이 안되니 거기다 대고 말을 해봐야 소용이 없는 탓일까? 그래서 10장의 하나님은 ‘나를 지으신 하나님’이시기도 하고 ‘나를 괴롭히시는 하나님’이시기도 하다. 2. 원통하고 괴로워서 하는 말(1-9)의 핵심이 무엇인가? 나를 만드실 때는(3, 8, 9, 11) 무슨 이유로 만드시고 이제 괴롭히시는 것은 무슨 까닭입니까(2)? 우리가 몹씨 고통스러우면 흔히 부모님들을 원망한다, ‘왜 나를 낳으셨나요?’ 이와 비슷한 상황에서 욥이 하나님을 원망하는 것은 역설적으로 하나님에 대해서 신뢰하는 마음이 있기 때문이다. 3. 장인이 자기 손으로 만든 것을 부수는 거야 당연한 일 아닌가? 그런데 욥이 쟁변하려는 이유가 무엇인가(3, 7)? 장인이 부술 때는 작품이 잘못되었기 때문인데 잘못된 작품에는 빛을 비추고(3) 제대로 된 자기(7)를 이렇게 부수다니? 2절의 ‘주의 손으로 지으신 것’도 같은 의미다. 4. 극심한 고통 가운데서도 하나님을 원망하기보다는 도무지 하나님의 처사가 이해가 되지 않는다. 어떤 점이 이해가 되지 않는가(4-6)? 하나님은 인생과 같이 실수하실 분이 아닌데 지금은 실수를 하는 것 같아 보인다: 인생은 잘못보기도 하고(4), 멀리 내다보지도 못해서(5) 때로는 자백을 받거나 증거를 찾아내기 위한 방편으로 혐의자를 고통스럽게 하기도 하지만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께서(삼상 16:7)는 이렇게 하실 이유가 없다(6). 아무래도 하나님께서 실수하시는 것 같다고 말하는 것은 이런 고난을 당할만큼 죄를 범하지 않았다는 확신이다. 하나님의 절대주권도 인정하고 자신의 잘못이 없음도 확신하는 점에서 욥을 정말 대단한 신앙인이다. 5. 욥이 악하지 않은 것과 욥을 주의 손에서 벗어나게 할 자가 없다는 것(7)은 무슨 상관이 있는 표현일까? 욥이 악하지 않은 이유가 주의 손에서 벗어난 적이 없기 때문: 자신을 주의 손에서 벗어나게 할 자가 없다는 것은 그만큼 최선의 삶을 살았다는 자부심이 담긴 말이다. 주의 손에서 벗어나는 것이 바로 범죄에 빠지는 일이다. 6. 나를 만드신 분께서 왜 나를 멸하지 못해서 그렇게 안달하시는가(8-9)! 예전의 하나님과 오늘의 하나님이 너무 달라서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11-17을 그렇게 두 부분으로 나누어 보자. 예전의 하나님 = 나를 만드신 하나님: 가죽과 살로 내게 입히시며 뼈와 힘줄로 나를 뭉치시고 생명과 은혜를 내게 주시고 권고하심으로 내 영을 지키셨나이다(11-12) 7. 욥은 하나님께서 자신을 창조하신 사실을 두 가지 방식으로 묘사한다. 한 가지는 창조주 하나님께서 친히 자신을 만드셨다는 것이다(8-9). 10-12절도 하나님께서 자신을 창조하신 내용이라면 방법에서 어떤 차이가 있는 걸까? 부모님을 통해서 자신을 만드시고 돌보셨다: 10절은 수태과정을, 11절은 모태에서 성장하는 과정을 묘사한 히브리식 표현이란다.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육신에 생명을 주셨고 권고(眷顧, 돌보아 줌)하셨다(12). 새번역은 10절을 ‘주께서 내 아버지에게 힘을 주셔서, 나를 낳게 하시고, 어머니가 나를 품에 안고 젖을 물리게 하셨습니다’라고 번역했다. 8. 8-12절을 염두에 두고 13절을 풀이하면 ‘이렇게 나를 만드신 하나님께서 왜 이러십니까?’라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뭘 어쨌다고? 사냥하듯이(16), 나를 치시다니(17): 그것도 공의로우신 하나님께서(14, 역설적으로 자신의 무죄함을 주장하는 셈) 어떻게 이럴 수가 있을까? 그러면서도 갈등이 생기는 것은 ‘의로울지라도 머리를 들지 못한다’고 인정한다(15). 욥에게 하나님은 이해도 안 되고 갈등만 주신다. 9. 욥에게 닥치는 고통을 어디에 비유하고 있는가(17)? 증인, 군대: 법정에서 자신을 고발하는 증인처럼, 적을 치는 군대처럼 고통이 끊임없이 밀려든다. 10.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 하나님의 처사에 대해서 욥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가? 죽음을 바람(18-22): 하나님! 차라리 나를 버려 두옵소서! 11. 죽음을 바라면서도 마지막 소원이 있다면? 잠간이라도 나를 버려두옵소서(20): 곧 죽음이 닥쳐올 것(=내 날이 적지 아니하니이까)을 내다보고 있으면서 ‘숨이라도 좀 돌리고 가게 나를 버려두십시오’ 하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