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레미야 7장


< 8:3까지 성전에서 꾸짖는 설교>
1. 여호와의 집 문에 서서 ‘너희는 이것이 여호와의 전이라고 하는 거짓말을 믿지 말라’고 하면 사람들이 무엇이라고 하겠는가? 무슨 뜻으로 말도 안 되는 말(?)을 하는가?

    길과 행위를 바르게 하지 않으면서 여기서 행하는 모든 행위는 소용이 없다는 뜻: 하나님을 섬기는 방식은 형식과 절차를 따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그 분의 원하심이 무엇인지를 따르는 것이다. 말하자면 인격적인 교제가 있어야 하는 일이다. 행함이 없는 믿음이란 이런 인격적인 교제가 없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하나님의 뜻과 아무런 상관없이 형식적으로 성전에서 하나님께 경배하는 것은 또 다른 우상 숭배일 뿐이다. 이런 말을 근거로 예레미야는 성전에서 하나님께 경배하는 것을 무시했다고 말한다면 그것은 꼬투리를 잡는 짓 일뿐이다. 이 말이 성전예배를 무시하려는 의도는 결코 아니다. 예레미야도 여전히 이스라엘의 회복을 바라는 선지지이다(31:6, 33:11).

2. 길과 행위를 바르게 한다는 것이 종교적인 의미인가 아니면 일상적인 삶을 가리키는가?

    일상적인 삶의 방식을 말한다(이웃에게 공의를, 약한 자를 압제하지 않으며, 무죄한 피를 흘리지 않으며, 우상을 좇지 않는 것, 9절 참고): 좁게 본다면 일상적인 삶을 말하는 것인데 이것이 하나님 경외와 별개의 것이 아니므로 녋게 보면 종교적인 의미이기도 하다. 외형적으로 하나님을 경배하기는 하는데 일상적인 삶에서 전혀 그렇지 않다는 것은 하나님을 제대로 경배하는 것이 아니란 뜻이다. 하나님을 경배하는 것과 일상적인 삶은 결코 별개의 것이 아니다.

3. 우상을 섬기는 것도 무슨 좋은 것이 있기 때문일텐데 어떻게 ‘다른 신들을 좇아 스스로 해하지 않으면’ 이라고 하는가?

    실제로 다른 신들을 좇는 것은 스스로를 해롭게 하는 것이다. 일차적으로는 우상을 섬기면서 자신이나 자식을 해하는 것이고 이차적으로는 그렇게 해서 하나님으로부터 징계를 받는 것이다.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을 섬기는 것은 결국 자해 행위일뿐이다.

4. 영원 무궁히 주신 땅에 거하게 하리라(7)? 이상하다, 하나님께서 일단 ‘영원히 무궁히 주신 땅’이면 얘기가 끝난 것 아닌가? 한번 하신 말씀을 뒤집을 분이 아닌데 이런 말씀을 하시는 이유가 무엇인가?

    한번 하신 말씀을 결코 뒤집을 수 없는 분이 자신의 말을 뒤집어야 할 상황이 되어 가는 것을 보시면서 마음이 아파서 하시는 말씀이다.

5. 예레미야의 메시지가 유대인들에게 충격을 주었음에 틀림없다. 아니면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하고 무시했거나. 선지자의 말이 자기들의 생각과 전혀 다르기 때문이다. 그들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가?

    하나님의 성전이 있는 예루살렘은 난공불락이다. 하나님께서 지키시니까! 이것이 여호와의 전이라고 하는 말의 의미가 바로 이것이다.

6. 유다인들이 바알이나 다른 신들을 좇으면서 왜 여호와의 전에서 구원을 얻었다고 하는가?

    하나님도 섬기고 다른 신도 섬기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하나님 홀로 하나님이 아니라 하나님도 다른 신들과 마찬가지로 많은 신 중의 한분이라고 생각하고 섬기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상을 섬기면서도 하나님께 당당히 나아온다. 하나님은 한 분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은 아무 신이나 섬기는 법이다. 쉽게 굴복하고 쉽게 신을 바꾼다.

7. 도적이 굴에서 무엇을 하길래 성전을 도적의 굴혈이라고 하시는가?

    물건도 숨기고 자신도 숨어있는 곳: 굴이 도적에게는 가장 안전한 곳이다. 유대인들이 온갖 도적질을 다 하면서도 성전 때문에 안전할 것이라고 말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것을 하나님께서 보셨단다. 도적의 굴이 들키지 않으면 안전한 곳이지만 누군가에게 들켰다면 끝장났다고 봐야지! 아무리 하나님의 전이지만 도적의 굴혈이라면 무너질 수밖에 없다는 선언이다.

8. 계속 악을 행하면 하나님께서 징계를 가하시겠다고 하신다. 마치 무엇처럼(두 가지)?

    실로 파괴와 북 이스라엘의 멸망.

9. 이스라엘이 가나안에 들어와서 법궤를 안치하고 하나님을 섬기던 곳이 실로이다. 그 실로를 어떻게 하셨는데(삼상 1-7장)?

    파괴시켜버렸다, 법궤는 빼앗기고: 엘리 제사장과 그 아들들의 패역으로 인하여 빼앗긴 법궤가 스스로의 능력으로 돌아오지만 실로로 돌아오지 않고 산에 있는 아비나답의 집에 오랫동안(적어도 80년 이상, 다윗이 등장할 때까지) 방치되다시피 버려졌다. 이것을 기억하는 한 유다는 예루살렘 성전도 그렇게 될 수 있다는 생각을 가져야 한다.

10. 하나님께서 에브라임 온 자손을 언제, 어떻게 쫓아내셨는가?

    북 이스라엘의 멸망을 가리키는 말이다. 이들 역시 하나님의 백성이 틀림없음에도 이렇게 망하지 않았느냐는 것이다.

11. 새벽부터 부지런히 말하는 사람이 누구인가?

    아버지지: ‘일나라(일어나거라)’부터 시작해서 ‘밥 무라’, ‘학교 가야지’, ‘그러다가 학교 늦는다’, ‘거봐라 늦는다고 안 카다’... 아무리 그래도 꿈쩍도 안 하고 대꾸도 안 하는 아들처럼 유다가 그랬다는 것이다. 너무 말이 많으니까 싫어서? 요즈음 아이들 같으면 잔소리가 많다고 대들지도 모르겠다. 하나님께서 선지자들을 통해서 하신 일을 이렇게 비유하신 셈이다. 피리를 불어도 춤추지 않고 애곡을 해도 울지 않는 장터의 아이들처럼(눅 7:32)!

12. 백성을 위하여 기도하지 말라? 끝났다는 말이다. 하나님께서 듣지 않으시겠다고 했으니 이제 선지자는 무엇을 해야 하나?

    그래도 구해야 한다: 이스라엘을 진멸하겠다고 말씀하셨음에도 하나님께 기도한 모세처럼(출 32:9-14). 그러니 예레미야가 얼마나 고생을 했겠는가!

13. 다음 중에서 직원을 가장 힘들게 하는 사람은 누구일까? 하나님에게 이스라엘은 어느 경우일까?
< 무능하고 게으른 사장, 무능하지만 부지런한 사장, 유능하지만 게으른 사장, 유능하면서도 부지런한 사장 >

    무능하지만 부지런한 상사: 이런 상사 밑에서 직장 생활하려면 정말 골치 아프다. 차라리 게으르기나 하지!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꼭 이런 식 아니었을까? 얼마나 열심인가 보라. 자식이나 아비나 부녀들이 다 우상을 섬기는데 열심이다(18-19). 차라리 게으르기라도 하면 낫지!

14. 다른 신들을 섬기는 것은 하나님을 격노케 하는 일이다. 동시에?

    자기 얼굴에 치욕을 자취함이다(19). 하나님을 노엽게 하거나 섭섭하게 해서 득이 될 리가 없다. 거꾸로 생각하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 가장 쉽고 복된 방법이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마 6:33).

15. 사람들이 잘못하여 분노를 쏟으실 때 애꿎은 짐승과 들나무는 왜?

    짐승과 들나무는 사람을 위해서 지은 것이다. 사람이 징계를 받아서 쫓겨나는 판에 짐승과 나무가 무슨 소용이 있느냐는 것이다.

16. ‘희생(제물)’과 마찬가지로 번제물도 너희가 먹으라는 것은 무슨 뜻인가?

    너희끼리 다 먹고 치워라: 원래 번제물은 온전히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기 때문에 사람들이 먹을 몫은 없다. 그런데 그것도 다 먹으라는 것이다. ‘안 막을란다. 니나 무라’ 이러는데 ‘아버지 속이 안 좋은 모양이다. 우리끼리 먹자’ 이러고 자식들끼리 잘 먹어 치우면? 맞아 죽기 일보 직전이다.

17. 출애굽 때 번제나 희생에 대해서 말씀하시지 않았다고? 레위기의 제사법이 출애굽 때 주신 것인데?

    번제나 희생이 우선이 아니라 처음부터 하나님의 목소리를 듣는 것이 우선이었다(23, 출 19장, 삼상 15:22). 예배는 신령과 진정으로(요 4:24) 드려야 하는데 처음부터 그랬다는 것이다.

18. 출애굽 이후에도 하나님은 계속 해서 선지자들을 보냈으나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말씀에 청종하지 않았다고 하신다. 오늘날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으면 뭐라고 하실까?

    ‘친히 아들을 보냈는데도 듣지 않았다. 아예 적어서 줬는데 제대로 읽지도 않았다(성경)’고 하시지 않을까? 루터가 목숨을 걸고 성경을 번역했고, 우리에게 성경을 전하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사람이 얼마나 많은 고생을 했는지 안다면 우리가 성경책을 이렇게 소홀하게 취급하지 않을텐데...

19.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아도 별 일 없는 것으로 생각한다. 당장에 무슨 일이 생기는 것만 중요하게 여긴다. 그러나 실상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는 것이 가장 위험한 일이다. 왜?

    진실이 입에서 끊어지는 일이기 때문이다: 입에서 진실이 떠나면? 거짓으로 가득 찬 세상이 될 것이며 그런 세상이 얼마나 지탱될 수 있는가? 머리털을 베고 호곡해야 한다. 끝 날이 이르렀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뒷전이고 학교 공부만 죽으라고 시키면 성공하겠지? 참으로 위험한 생각인데 도무지 위험하다는 사실조차 모른다.

20. 하나님의 말씀을 아무리 외쳐도 듣지 않으니 어떻게 해야 하나?

    그래도 외쳐야지! 다만 교훈이나 회개를 외치는 것이 아니라 징계를 외쳐야 한다.

21. 나실인은 머리털을 밀지 않았다. 긴 머리는 아름다움의 상징이었다(삼하 14:26). 머리털을 의미하는 원어(나제르)에는 ‘구별, 헌신, 화관, 왕관’ 등의 의미가 있다. 이것을 밀어버리라는 것은 무슨 뜻인가?

    하나님과의 관계가 다 끊어졌다는 뜻이 함축되어 있다: 영광이 떠나갔고, 구별된(선택된) 백성도 아니다.

22. 하나님의 이름으로 일컫는 집에 가증한 것을 둔 사건은 무엇인가?

    아하스가 성전에 이방신을 섬기는 단을 만든 것(왕하 16:10-16)과 므낫세가 일월성신을 섬기는 단을 여호와의 전에 세운 것(왕하 21:4-5).

23. 도벳(아마도 사당 이름), 혹은 힌놈의 아들의 골짜기가 왜 살육의 골짜기라고 불리게 될까?

    제대로 장사조차 지내지 못하고 시체를 버릴 것이기 때문에: 시체를 매장하지 못하는 것은 대단한 저주로 여겨졌다(시 79:3). 매장은커녕 짐승들에게 뜯길 것이다. 여기서 자녀를 불살라 우상을 섬겼으니 이런 끔찍한 징계를 당하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예루살렘에서 사람의 소리가 끊쳐질 것이다.

< 렘 8:1-3 > (내용상 전장에 연결됨)

24. 죽은 자들의 뼈를 묘실에서 끌어내어 해와 달과 별빛에 말리면 어떻게 되는가?

    이스라엘에게 시체가 매장되지 않은 채 버려지는 것은 큰 저주와 수치였다. 죽은 자들도 이런 수치를 당할 것이라는 말이다. 죽은 자가 이렇게 수난을 당하면 살아있는 자는 얼마나 더 할까(왕하 25:5-7)?

25. 죽어서 뼈라도 그들이 섬기던 해와 달과 별에 쬐이는 것은 행복 아닌가? 일종의 비꼬는 말인데 이것이 어떻게 비꼬는 말이 되는가?

    자신들의 뼈가 매장되지 못하고 버려져도 그들이 섬기던 신, 즉 해, 달, 별이 아무런 도움도 주지 못하고 내려다보기만 할 것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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