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레미야 6장


1. 예루살렘의 멸망을 예고하면서 드고아(남쪽)나 벧학게렘(북동쪽)을 언급하는 것은 이들이 예루살렘과 가까운 성읍들이기 때문이다. 나팔소리는 위험을 알리는 경고이겠고 ‘기호’는 ‘봉화불’로 번역되기도 했다. 베냐민 자손은 무슨 관계가 있을까(삿 1:21)?

    예루살렘이 베냐민 지파의 땅에 속하였기 때문에(삿 1:21) 그렇게 불렀지만 결국은 예루살렘을 가리키는 말이다. 예레미야가 베냐민 지파라는 점도 관계가 있을지 모르겠다.

    추가 설명: 수 18:16의 여부스는 베냐민 지파의 경계선 안쪽이고, 수 15:8의 예루살렘은 유다의 경계 바깥이다. 위치는 베냐민의 영토 내에 있는데 성읍과 싸우기는 유다가 싸워 이긴다(삿 1:8, 삼하 5:6-7). 그래서 그런지 일반적으로는 유다 지파의 성읍으로 분류됨. 명목상으로는 베냐민 지파의 땅, 실질적으로는 유다 지파의 땅이다.

2. 딸이 늦게 들어오면 잠도 자지 못하는 아버지가 있는데 아름답고 묘한 딸을 멸하다니? 도대체 어떤 아버지가 그럴 수가 있는가?

    여기서는 도대체 딸이 얼마나 못된 짓을 했으면 그렇게 하겠느냐는 뜻으로 이해해야 한다. 평소에 그런 분이 아닌데 오죽하면 그랬겠느냐? 자기 자식을 제 손으로 경찰에 고발하는 부모 마음이 어떨지 생각해보자.

3. 예루살렘의 멸망과 목자들이 무슨 상관이 있는가?

    목자는 적군에 대한 비유이다: 짐승들이 풀을 뜯듯이 적군이 예루살렘을 뜯어 먹을 것이다. 그냥 일회성으로 끝나는 일이 아니라 장막을 치고 풀을 다 뜯어 먹을 때까지 오랫동안 머무를 것이다.

4. 예루살렘을 치는 적들이 얼마나 열심인지 4-5절을 한 마디로 요약한다면?

    밤낮없이: 정오나 밤중에는 쉬어야 할 때이기도 하다. 그런 때에도 쉬지 않고 공격을 계속할 것이다.

5. 회개하라고 말하지 않고 아예 도피하라(1절)고 하는 것은 외적의 침입이 기정사실이 되었다는 말이다.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길이 없다는 뜻이다. 정말 하나님께서 뜻을 돌이킬 가능성이 전혀 없을까?

    있다, 8절의 훈계를 받으라는 말씀은 아직도 희망은 있다는 말이다.

6. 이스라엘의 멸망을 포도 따는 것에 비유하면서 ‘이스라엘의 남은 자를 말갛게 주우리라’는 말씀은 하나님의 심판이 철저할 것을 의미한다. 왜 그런지 신 24:21절과 비교해서 생각해보자.

    하나님의 법에 따르면 추수할 때 말갛게 따는 법은 없다. 얼마를 의도적으로 남겨두기도 했다. 그렇게 하라고 말씀하신 하나님께서 자신의 법을 뒤집어 가면서까지 심판하신다는 것은 얼마나 철저하게 심판하실 것인지를 잘 보여준다.

7. 9절의 ‘자주자주’는 ‘한 번 더’로 번역하는 것이 좋겠다. 적의 침입으로 인해서 이스라엘이 완전히 사라질 것이라고 하시면서 ‘한 번 더 손을 놀리라’는 것은 결국 무슨 말인가?

    그런 비극이 닥치기 전에 구할 수 있는 사람들을 위해서 한 번 더 노력하라

8. 귀에도 할례를 행하나?

    할례받지 못한 사람은 모양은 하나님의 백성이라도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구실을 못하는 것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못하는 귀는 할례받지 못한 하나님의 백성과 마찬가지라는 비유다.

9. 이스라엘의 죄를 두 가지로 요약한다면?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는 것(10, 16, 17, 19)과 외식적인 종교 행위(20).

10. 부모나 선생님의 진정어린 충고를 잔소리로 여기는 자는 굴러들어온 복을 걷어차는 자나 다름없다. 여호와의 말씀을 욕으로 여기는 자는?

    여호와의 분노로 이스라엘이 대적에게 사로잡히듯이 사로잡히겠지(11-12)!

11. 여호와의 분노가 선지자에게 가득하다니? 자기가 분노를 대신 받았다는 말인가, 하나님처럼 분노했다는 말인가? 아무래도 후자 같은데, 하나님께서 분노하시는데 선지자는 왜 분노하는가?

    선지자의 마음은 하나님의 마음과 온전하게 일치하고 있기 때문이다.

12. 선지자나 제사장이 어느 정도로 타락하였는가?

    가증한 일을 하면서도 부끄러워하지 않을 정도. 선생님들이 조금 잘못하면 ‘선생님이 저럴 수 있느냐?’고 한다. 하나님의 선지자나 제사장이 거짓말을 하면서 부끄러워하지 않을 정도라면 정말 종말이라고 봐야지.

13. 선지자나 제사장들이 무슨 거짓말을 하였을까?

    평강하지 않은데 평강하다고: 하나님과의 관계가 최악으로 치닫고 있는데도 ‘평강하다’고 외쳤다. 하나님의 뜻을 전혀 모르고 있는 것이 주원인일 것이다. 심각한 상처를 심상히(예사롭게) 보아 넘겼다. 의사가 ‘괜찮습니다’라고 했는데 얼마 뒤에 암이었거나 대수롭잖다고 한 것이 어린 아이에게 심한 장애를 초래한 경우와 비슷하다.

14.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는 이스라엘에게 징계를 내리면서 이제는 열방에게 들으라고 하신다? 이스라엘을 버리고 열방을 자기 백성으로 삼겠다는 말인가?

    열방으로 하여금 증인이 되라는 의미이다. 제사장 나라 역할을 감당하지 못한 이스라엘의 징계가 확실하다는 의미일 뿐이다.

15.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잘 섬긴다고 시바에서 유향을 가져오고 원방에서 향품을 가져왔는데 받지 않으신 하나님이 잘못 아닌가?

    그런 것 가져오지 말고 말이나 잘 들어라: 우상을 섬기듯이 제물이나 드리고 제사만 드리면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 하나님을 섬기는 방식이 아니다. 마음으로 섬기지 않으면 아무리 귀하고 제물도 소용없다.

16. 결국 하나님의 심판은 외적의 침입으로 나타난다. 하나님에게 순종치 않던 자들이 이제는 어떤 자들에게 순종하게 되는가?

    자비가 없는 자: 적군에 대한 여러 가지 표현이 있지만 이 표현이 가장 대표적인 것 같다. 그로 인한 고통은 해산의 고통과 같다.

17. 심판으로 인한 고통을 어디에 비유하고 있는가(두 가지)?

    해산의 고통과 독자를 잃음: 아들이 없이 죽은 경우에는 동생을 빌려서라도 형의 대를 잇게 하던 이스라엘에서 독자를 잃었다는 것은 최고의 끔찍함이다.

18. 본문에서 제련과 관계된 금속은 무엇인가?

    납과 은: 납은 제련 과정에 필요한 것이고 은은 결과인데 제대로 되지 않았다는 말이다. 놋, 철은 제련과 관계된 것이 아니고 이스라엘의 완고함을 표현하는 말이다.

19. 본문 중의 다음 표현들은 무엇을 비유하는가?

    목자들(열심이 특심한 침입자들), 아름답고 묘한 딸(언약의 백성인 이스라엘), 물을 솟구쳐 내는 샘(끊임없이 악한 짓을 하는 이스라엘), 포도 따는 자(철저하게 파괴하는 침입자), 할례받지 못한 귀(완고하게 버티는 이스라엘), 해산하는 여인(고난당하는 이스라엘), 놋과 철(완고한 이스라엘), 내어버린 은(버림받을 이스라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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