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레미야 52장


1. 관주에 보면 1-27절에 대해서 왕하 24:18-25:21을 참고하란다. 비슷한지 대조해보고 가장 큰 차이점이 무엇인지 찾아보자.

    거의 똑 같다. 10-11절을 왕하 25:7에는 요약형태로, 4절의 ‘흉벽’이 ‘토성’(왕하 25:1)으로, 11절의 ‘모든 방백’과 21-22절은 조금 더 보충된 내용이다. 굳이 차이라고 할 수 없다. 다만 12절의 ‘5월 10’이 ‘5월 7일’로 차이가 난다. 한 사람이 같은 내용을 두 군데 실었으면 인용이라고 하나?

    (왕하 25:17)그 한 기둥은 고가 십팔 규빗이요 (렘, 주위는 12규빗이며 그 속이 비었고 그 두께는 4지 놓이며) 그 꼭대기에 놋머리가 있어 고가 삼(렘, 다섯) 규빗이요 그 머리에 둘린(렘, 머리 사면으로 돌아가며 꾸민) 그물과 석류가 다 놋이라 다른 기둥의 장식과 그물도 이와 같았더라 (렘, 그 사면에 있는 석류는 96이요 그 기둥에 둘린 그물 위에 있는 석류는 도합이 100이었더라)

2. 시드기야가 왜 하필이면 여호야김의 모든 행위를 본받았을까? 여호와 보시기에 악한데?

    하나님께서 보시기에는 악할지라도 시드기야의 눈에는 그것이 최상의 것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우리 눈에 좋은 것이 하나님의 눈에 옳지 못하다면 엄청난 불행이다. 하나님과 눈높이를 맞추자, 이것이 행복의 지름길이다.

3. 유다가 멸망당한 결정적인 이유는 므낫세의 악행이었다(왕하 23:26, 24:3). 요시야의 개혁도 대세를 돌려놓지 못했다(왕하 23장). 결정적인 파국을 막기 위해서 예레미야가 전한 하나님을 말씀을 참고하면 유다 멸망의 결정타를 초래한 사건은 무엇인가?

    시드기야의 배반: 예레미야는 바벨론에 대항하지 말고 항복하라고 외쳤다. 시드기야는 이 경고마저 무시하고 바벨론을 배반했다. 예레미야 선지자의 말을 들었더라면 완전 파멸은 피해갈 수도 있었을 것이다. 패망의 모습을 에스겔도 몸으로 보여주었다(겔 4장). 결국은 예레미야와 에스겔을 통한 하나님의 마지막 경고마저 듣지 않았다. 최후에 남았던 무리들마저 예레미야의 말을 듣지 않고 애굽으로 떠나버렸다(렘 43:4-7).

4. 유다가 망할 때 유다만 망한 것은 아니다. 주변의 모든 나라들이 이미 바벨론에 점령당한 뒤다. 바벨론의 강성함을 제대로 견제하지 못한 주변 국가들의 허약함이 이런 결과를 낳은 것 아닐까? 본문은 무엇이라고 하는가?

    여호와의 진노하심(3): 이것이 주 원인이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께서 세계 역사를 주관하고 계신다는 것을 누가 알겠는가? 유다의 태도가 역사를 뒤집어 놓을 수도 있다. 대통령의 아들이 진학을 할 때마다 입시 제도가 바뀐 적이 있다(중, 고 무시험 추천 입학제 도입, 대학교 계열별 모집, 등)는 소문이 돌았다(1970년대 이야기다). 하나님의 아들이 어떻게 처신하느냐에 따라 전국이 아니, 전세계가 요동칠 수도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5. 바벨론 군사들이 예루살렘을 얼마동안 포위하고 있었는가?

    시드기야 9년 10월 10일에 시작하여 11년 4월 9일이면 1년 6개월간 포위하고 있었다. 날짜까지 정확하게 기록하고 있다는 것은 그만큼 위기 상황이었음을 드러내는 것이다.

6. 성벽에 구멍을 뚫었다는 것은 선공부대가 들어왔다는 말이고, 모든 군사가 도망하여 여리고 평지까지 갔다는 것은 포위망을 뚫고 탈출하는 것은 성공했다는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드기야가 잡혀서 비극적인 최후를 맞게 된 것은 끝내 하나님의 말씀에 귀 기울이지 않은 것에 따른 필연적인 결과이다(겔 12:14). 누구의 무슨 말을 그렇게 듣지 않았다는 말인가(렘 38:17-23)?

    예레미야의 ‘바벨론에 대항하지 말고 섬겨라’는 말(대하 36:12, 렘 38:17, 겔 17:15). 시드기야의 비극적인 최후도 예언되었던 것이다(렘 38:17-23, 렘 32:4, 34:3, 겔 12:13.)

7. 느부갓네살이 예루살렘을 둘러쌌다더니(5) 왜 립나에 있나(9)?

    여러 가지 가능성이 있을 수 있다. 아마도 립나에 본부를 차려놓고 여기 저기 군사를 파견했는데 그 중의 한 부대가 예루살렘을 포위하고 있었다고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아마 느부사라단의 인솔 하에). 아니면 개전 초기에 참가했다가 포위 기간이 길어지자 중간에 본대로 귀환했을 수도 있고...

8. 죽은 사람도 적지 않았겠지만 이번에 포로로 잡혀간 사람은 4,600명 뿐이네! 그러면 도망가거나 남은 사람도 적지 않았을 텐데 ‘유다가 사로잡혀 본토에서 떠났더라’고 하는가? 남은 사람들이 농민들이라고 무시하는 표현 아닌가?

    하나님께서 바벨론에 항복하라고 했으면 항복하는 것이 옳다. 본의는 아닐지라도 결국은 말씀대로 잡혀간 자들에게 회복의 싹이 튼다: 남은 사람들이 정치적으로 격이 떨어지는 것도 사실이지만 더 중요한 이유는 장차 유다의 미래는 바벨론으로 잡혀간 포로들에게 있다고 이사야, 예레미야, 에스겔이 예언했기 때문이다(사 52:1-12, 렘 50:17-20, 51:45-49, 겔 37장).

9. 느부갓네살 19년(12)이 유대식으로 말하면 언제일까?

    시드기야 11년이다. 그 해 4월 9일에 양식이 떨어졌다(6). 한 달 뒤에 전후처리를 위해서 느부사라단이 도착한 모양이다. 그러니까 느부사라단의 기사는 또 다른 전쟁 이야기가 아니라 같은 이야기 중에서 전후처리 문제에 관한 것이다.

10. 이전에도 여러 번 침입을 받았지만 이번처럼 여호와의 전과 왕궁과 집을 모조리 불태우지는 않았다. 느부갓네살의 침공 목적이 이전과 어떻게 달랐다는 말인가?

    점령이 목적이 아니라 예루살렘을 파괴하는 것이 목적이었기 때문이다.

11. 경주의 감포 앞 바다에서 황룡사의 거대한 종을 찾으려고 노력을 많이 했으나 아직은 성과가 없다. 몽고 군사들이 신라의 황룡사를 불태우고 이 종을 가져가려고 했으나 너무 크고 무거워 배로 운반하려고 재를 넘어서 바닷가로 가져가다가 어디선가 물에 빠트려 버렸고, 그 종이 아마도 감포 앞바다 어디엔가 있을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바벨론 군사들은 몽고 군사들보다 더 무식하다. 왜?

    성전의 두 기둥과 놋바다를 깨뜨렸으니까: 워낙 커서 깨뜨려서 바벨론으로 가져갔다. 깨버리면 값어치가 훨씬 떨어지는데... 놋기둥의 지름은 약 4규빗, 높이가 18규빗이고, 놋바다의 크기는 직경 10규빗, 둘레 30규빗, 높이 5규빗, 용적 2000밧, 두께 한 손 넓이(뼘이 아니고 손바닥 넓이로 6분의 1규빗, 3인치), 열두 마리의 소가 사방을 바라보며 바다를 받치고 있었다(왕상 7장). 1규빗을 대략 50cm로 계산해보라.

12. 성전의 기물들을 빼앗기는 과정도 이전과 좀 다르다. 이번에는 주로 놋으로 된 물건을 빼앗겼다. 왜 무게를 기록하지 않았을까?

    너무 많아서

13. 16-17절과 20-23절은 중복 같아 보인다. 왜 같은 내용을 두 번이나 기록하였을까?

    두 번째 언급은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무게를 말하려는 것이다.

14. 성전 기둥에 웬 그물과 석류인가(17)?

    그물 모양과 석류모양으로 된 장식을 일컫는 것이다.

15. 사로잡혀 간 자와 사로잡혀 죽임을 당한 자를 비교해보자.

    처음에 사로잡힌 자 중에서 쓸 만한 인재는 다 잡아가고 빈천한 자만 남겨 두었다(11-12). 그 후에 사로잡힌 자는 전부 죽였다(18-21): 아마도 끝까지 바벨론에 항복하지 않으려 했던 사람들 같다.

16. 예레미야서의 대부분은 예레미야가 선포한 내용이다. 마지막 장은 선포한 메시지가 아니라 역사적 사실을 기록했다. 더구나 열왕기에 있는 내용인데... 왜 그랬을까?

    말씀에 순종하지 않아서 이렇게 징계를 당했지만 그것으로 끝이 아니다는 메시지를 전하기 위함이다. 31-34절이 그것이다(아래 질문 참조).

17.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이 여호야긴을 포로로 잡아가고 대신에 시드기야를 왕으로 세웠다(24:17).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다윗의 위가 영원하리라고 하셨는데 다윗의 위는 시드기야로 이어지는가 아니면 여호야긴으로 이어질까?

    메시야의 계보는 여호야긴으로 이어진다. 말미에 여호야긴의 이야기를 언급한 것이 그런 연유이다: 마 1장의 여고냐가 여호야긴이다(대상 3:16, 렘 37:1의 고니야).

    히스기야는 므낫세를 낳고 므낫세는 아몬을 낳고 아몬은 요시야를 낳고 바벨론으로 이거할 때에 요시야는 여고냐와 그의 형제를 낳으니라 바벨론으로 이거한 후에 여고냐는 스알디엘을 낳고 스알디엘은 스룹바벨을 낳고(마 1:10-12)...

예레미야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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